<청교도, 개혁주의> 삼송제일교회 정대운목사의 갈라디아서 강해 25, “하갈과 사라의 비유를 통한 율법주의와 새언약의 차이"라는 제목이고, 이 중 율법주의에 대한 설교 내용입니다.
1. 양심을 포로로 할려고 하는 것이 율법주의이다(두번째 원칙)
2. 십계명을 대표로 하는 도덕법이 우리를 양심의 가책을 잡습니다.
--> 이 설명대로 하면 십계명 자체가 율법주의가 되겠네요.
왜? 십계명을 지키지 않느냐고 말하거나, 십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죄다라고 말하는 것이 율법주의!!
(제가 전에 올린 율법, 율법주의에 대한 설교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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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원리 중에, 두 번째 원리가 뭡니까? ...선행을 하지 않고, 내가 다른 사람을 도와주어야 하는데 도와주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이 그걸 통해 양심을 딱 잡고, 그 사람이 나를 포로로 할려고, 내 양심을 억압하고, 양심을 포로로 할려고 하는 것이 율법주의 두 번째 원칙이라고 했지요~ 이해가 되셨지요?
그럼 여러분 제가 한 번 물어 볼테니까 손 한 번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손 한 번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이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는거에요.
자! 나는 예배를 드릴 때, 양의 각을 떠가지고 구약의 원리대로 양의 각을 떠서 피를 뿌려서 제사를 드리지 않는 것에 대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사람 한번 손 들어 보십시오.
그러면, 그러면 또 하나 들어 보십이오. 나는 성경에 나와 있던 유대 당시에 한 3천 년 당시에 3천 년 당시에 그 시민법이 있었고 그들의 법규가 있었는데 법규가 있었는데 그 법을 지키지 않으므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사람 손 들어 보십시오.
세 번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말씀을 지키지 않으므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사람 손 들어 보십시오.
왜 아무도 안 드세요? 빨리빨리 세 번째는 들어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의 양심을 잡는 것은 의식법, 제사법, 제사법이나 시민법이 아니죠. 여러분 양심을 포로로 잡는 게 무엇이에요? 도덕법이에요.
그러므로 바울의 이야기는 바울의 이야기는 할례법을 통해서 흘러나온 것이지만 현대 21세기에서 율법주의를 공격할 때는 도덕법에 들어 들어가는 거예요, 도덕법으로요.
여러분 누가 2천 년 전에 누가 3천 년 전에 일어났던 그 제사법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받습니까? 내가 그 양의 각을 뜨지 않아서 누가 양심의 가책을 받습니까? 누가 뭐 열보만 아 안식일 날에 뭐 몇 보 이상 걷지 말아라 그거 때문에 누가 여러분들 그거 어 양심의 가책을 받습니까?어? 몇 보 이상 걷지 마라, 돈 쓰지 마라 그거 때문에 누가 요즘에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냐고 전부 다 커피숍에 가서 쭉쭉 빨아 뭐 드시는데요.
그것 때문에 우린 시민법과 제사법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아요. 우리에게 양심의 가책과 우리의 양심을 포로로 잡는 것은 십계명을 대표로 하는 도덕법이 우리를 양심의 가책을 잡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주의는 뭐냐? 율법주의는 뭐냐? 선을 행하지 않는 자는 나쁜 놈이다 라고 딱 정죄하는게 율법주의에요. 선을 행하지 않는 자는 나쁜 놈이다 정죄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율법주의는 대단히 대단히 발견해 내기가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