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4-26 주일설교
분노하지 말고 기도하라
디모데전서 2:8
제가 최근에 세 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그 책들은 모두 저의 마음을 무겁게 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희망을 주는 책입니다. 그 책들은 『디트리히 본회퍼』의 전기, 『코리 텐 붐』의 전기, 그리고 『시베리아의 불꽃』입니다.
본회퍼를 잘 모르는 사람도 “선한 능력으로”라는 노래는 알 것입니다. 본회퍼는 독일인으로서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에 반대운동을 39살에 하다가 사형당한 목사입니다.
코리 텐 붐은 그녀가 쓴 『주는 나의 피난처』라는 책으로 잘 알려졌습니다. 코리는 네덜란드 여인인데 독일이 평화로운 네덜란드를 침략하여 유대인들을 잡아갈 때 그들을 숨겨주는 운동을 하다가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그 감옥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었고 코리의 아버지와 언니도 옥사했는데 코리는 생존하여 전 세계를 돌며 복음을 전한 분입니다.
이는 모두 1945년 2차 세계대전과 함께 상황이 종료되었습니다. 세 번째 책인 『시베리아의 불꽃』은 최근까지 구, 소련에서 진행된 박해 보고서입니다. 이 책의 저자 아놀드 로제는 1929년생이니까 지금으로부터 97년 전에 태어났습니다. 로제는 원래 독일인인데 자기 조상이 200년 전에 우크라이나로 이주해서 평화롭게 살았습니다. 하지만 소련 공산당 혁명 이후에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전 가족이 영하 65도의 시베리아로 끌려갔고 엄청난 박해를 받았습니다. 당시 소련의 교회 지도자 30,000명이 끌려가서 겨우 2,000명만 생존했습니다.
로제는 11살부터 어른과 똑같이 강제노동해야 했기에 청소년 시절을 몰랐고, 15살까지는 세상에 단 것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고 43세에 석방될 때까지 배부름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았다고 합니다. 로제는 1972년에 독일이 러시아에 돈을 많이 주고 석방시켰는데, 독일에서 일본 신자들을 만난 계기로 일본과 전 세계에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1988년에는 우리나라에도 와서 CCC 모임에서 간증했습니다.
정말로 슬픈 것은 아놀드 로제가 석방된 이후에도 소련에서는 계속해서 신자들이 체포되고 시베리아에서 얼어서 죽고 굶어서 죽고 강제 노동을 하다가 쓰러져 죽어갔다는 사실입니다. 신자가 박해받으며 비참하게 죽어간 이야기가 초대교회나 종교개혁 시대가 아니라 1980년대까지 소련에서 계속되었다니 내가 세상을 너무 모르고 살았다는 부끄러움이 생겼습니다. 소비에트 연방은 1991년에 해체되었고 연방에 속한 나라들이 대부분 독립 국가가 되었으니 박해가 좀 줄어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여간 소련에서 박해받은 그리스도인의 이야기를 통해 반드시 기도해야 할 기도 제목이 생겼습니다.
디모데전서 2장은 1절에서부터 기도하라고 권합니다. 기도의 대상에는 사람을 차별하지 말고 모든 사람을 포함시켜야 하는데 특히 임금과 높은 사람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첫째, 그래야 신자가 평안하게 살 수 있기 때문이고 둘째, 하나님을 모든 종류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고 구원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7절까지는 기도에 포함시킬 대상에 관한 교훈인데 8절에서는 기도하는 마음 자세를 교훈합니다. 기도하는 자세는 바로 분노와 다툼이 없이 하라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손을 드는 것은 유대인들의 습관인데 우리가 기도할 때 손을 모으든지 손을 들든지 다 좋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거룩한’ 손을 드는 것입니다. 거룩한 손들 들려면 분노와 다툼이 없어야 합니다.
여기에 분노와 다툼이라는 말은 왜 나왔을까요? 고대에 임금과 높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은 사람이 없습니다. 고대에는 부자와 권력자가 거의 동의어였습니다. <약 2:6>에서도 말하듯이, 부자는 돈 없고 권력 없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억압하고 법정으로 잡아갔습니다. 그리고 신앙을 비방하고 조롱합니다. 그러므로 부자와 권력자를 생각하면 기분이 좋지 않고 좋은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힘만 있다면 때려주고 싶어집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딤전 2:8>에서 분노와 다툼이 없이 기도하고 거룩한 손을 들고 기도하라고 합니다. 실제로 바울 자신도 그렇게 기도했고 디모데에게도 그렇게 기도하라고 합니다. 또한 이 편지 내용을 들은 에베소 교인들도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저와 여러분도 이 말씀처럼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고 기도해야 합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그런데 저는 그 비결을 『시베리아의 불꽃』을 통해 배웠습니다.
이 책 37쪽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번은 신자들이 비밀리에 모여 성찬식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때 KGB 높은 사람 부헨코가 와서 당장 사람들을 끌어내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런데 경찰들이 기도하는 사람들을 끌어내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부헨코는 성찬식 빵과 포도주를 뒤집으려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벌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부헨코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부헨코는 자기를 위해 기도하지 말라고 욕을 하다가 견디지 못하고 나가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일로 체포되거나 감옥에 가지 않았습니다.
65쪽에는 다네가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네가는 복음을 전한 죄로 몇 번이나 감옥 생활을 했으니 전도하지 말라는 경고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다네가와 그의 사위는 같은 공장에서 1일 2교대로 일하고 있었는데 두 사람은 언제나 버스 정류소에서 만났습니다. 어느 날 아침 사위가 버스 정류장에 왔는데 장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주변을 찾다 보니 어두운 구석에 장인이 머리가 깨어져 피를 흘리고 있었습니다. 다네가는 죽어가면서 사위에게 희미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를 이렇게 한 사람을 절대로 미워하지 말아라. 그들을 용서해 주어라. 나는 그들이 구원받기를 위해 기도했다. 하나님이 그들을 용서하시는 것처럼, 그들을 미워하지 말고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어라. 나는 그들을 천국에서 만나고 싶다.”
104쪽에는 두 명의 젊은이가 찬송을 부른 죄로 흉악범이 있는 감옥으로 투옥되었는데 들어가자마자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흉악범 대장이 그들을 죽이려고 칼을 들고 손을 높이 들었는데 손이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기도를 끝내고 누가 자기 손을 붙들었냐고 묻자 두 젊은이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그 흉악범들이 모두 무릎을 꿇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에는 로마 황제가 없습니다. 히틀러와 나치가 없고 KGB도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누구를 위해 기도하며 뭐라고 기도해야 할까요? 지금 우리 시대의 독재자는 누구일까요? 마르크스의 사상과 그 사상을 따르는 사람들이 이 시대의 독재자입니다.
지금 전 세계는 마르크스의 후예들이 깔아놓은 지뢰밭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도 예외가 아닙니다. 마르크스가 주장하는 공산주의는 공동생산과 공동분배라는 멋진 슬로건으로 많은 사람이 그 주장에 열광했죠.
하지만 공산주의에 속은 사람들의 가장 큰 실수는 인간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간과한 것입니다. 결과물을 공동으로 분배할 때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 일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공산주의는 다 같이 잘 사는 세상이 아니라 모두가 못 사는 세상을 만듭니다.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전 영국 총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본주의는 부를 불공평하게 나누어 가지지만, 공산주의는 가난을 공평하게 나누어 가진다.”
그보다 더 큰 실수는 자본가와 지주를 몰아낸 자리에 공산당 간부가 앉아서 새로운 권력자가 된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입니다.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은 인간에게 착취당하던 동물들이 주인을 몰아내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었는데 권력을 잡은 돼지가 예전보다 더한 독재자가 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결국 공산주의 혁명은 인간을 몰아내고 돼지를 주인으로 모시는 어리석은 짓입니다.
공산주의 혁명이 실패하자 마르크스의 후예들은 신마르크스주의를 통해 온 세계를 망가뜨리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어리석은 사람들은 신마르크스주의 주장이 인간이 행복해지는 방법인 줄 알고 열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럽과 호주와 아메리카대륙 등 소위 선진국 대부분이 여기에 넘어갔습니다. 지금 38개 OECD 국가 중에 포괄적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않은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습니다.
신마르크스주의에서 나온 다양한 주장들 가운데는 PC(정치적 올바름)주의, 젠더 이데올로기, 페미니즘, 기후 위기 환경론 등이 있습니다. 젠더주의와 페미니즘 등은 문화 마르크스주의이고, 기후 위기 주장은 생태 마르크스주의입니다.
이런 사상들은 남자와 여자의 경계를 허물고 가정을 해체하며 만삭 태아 살해를 정당화하며 자연이나 동물을 사람보다 더 중시하는 악한 가치관입니다. 신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기들의 악함을 포장하기 위해 신마르크스주의를 반대하는 사람에게 극우라는 프레임을 씌웠습니다.
마르크스주의는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유물론입니다. 신마르크스주의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정면으로 대항하는 사상입니다. 우리 신자들은 신마르크스주의가 현대인이 따라야 할 세련된 주장이 아니라 반성경적이며 인간의 멸망을 가져올 악한 주장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여러 폐단 중 한 가지 예를 들어볼게요. 옛날 먹고 살기 힘들 때 단칸방에 살면서 10남매를 낳아서 힘들게 길렀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자식을 낳으면 나도 힘들고 자식도 힘들다고 애를 낳지 않습니다. 그렇게 힘들다면서 개와 고양이는 열심히 키웁니다. 반려동물 산업은 2022년 기준 약 8.5조 원이며 2032년에는 20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됩니다.
지금 우리나라 출산율이 0.7명입니다. 출산율 0.7명이란 남자 100명+여자 100명=200명이 70명 낳는다는 뜻입니다. 만일 그 70명(남자 35명+여자 35명)이 모두 결혼한다면 24.5명 낳습니다. 그러니까 200명이 두 세대 후에는 24.5명(12%)으로 줄어듭니다. 이것을 대한민국 인구에 대입하면 5100만 명이 두 세대 후에는 600만 명이 된다는 소리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이 자살하고 있습니다. 이는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명령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죄악입니다.
그런데 지금 남인순, 이수진, 박주민, 손솔 네 명의 국회의원이 각각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습니다. 이 법안에는 만삭아기까지 낙태를 합법화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개나 고양이를 학대하고 죽이면 3년 이하의 징역인데, 태아는 이유도 조건도 없이 누구든지 낙태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입니다. 신마르크스주의는 오늘날 전 세계의 독재세력입니다.
우리는 이런 독재법에 관해 들으면 그 법안 발의자에 관해 분노합니다. 저도 전에는 그랬습니다. 하지만 분노는 내 인격에도 상대방 구원에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런 법안에 반대 집회도 하고 성명서도 발표하지만, 거기에 분노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 아닙니다. 분노하는 감정이 개입하면 우리가 이미 마귀에게 진 것입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보면서 분노로 반응할 사람이 아니라, 기도로 반응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분노하게 되면 거친 언사와 욕이 튀어나옵니다. 분노하는 것은 거룩한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분노할 수 없고 분노하는 사람은 기도할 수 없습니다. 악법을 발의하는 것은 그들의 일이고 분노하지 않고 기도하는 것은 우리 일입니다.
기도의 목표는 영혼 구원입니다. 동성애 독재법을 반대하는 목표도 영혼 구원입니다. 영혼 구원은 분노와 다툼으로 이룰 수 없고 거룩한 기도로만 이루어집니다. 그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억울하고 분노할 이유가 있었지만, 분노하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거룩하게 기도하기 위해서는 행위와 행위자를 구분하여 행위에 반대하면서 행위자를 사랑해야 합니다. 이제 성도 여러분은 사랑으로 기도하세요.
첫째는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신마르크스사상(PC주의, 젠더이데올로기, 생태주의 등)을 위해 기도하세요.
둘째는 동성애독재법이 물러가도록 기도하세요.
셋째는 전 세계에서 믿음 때문에 박해받는 신자를 위해 기도하세요.
넷째는 신마르크스주의에 빠져있는 통치자와 권력자들이 회개하고 구원받도록 날마다 기도하세요.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명령입니다. 그 명령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인정과 칭찬받는 신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