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친구 광주리의 집에 놀러 가면 친구는 두 사람의 형과 누나가 있어서 부러웠다. 6.25 전쟁터에서 탄피를 엄청나게 많이 주워 모아두어 방이 그득하다. 나도 그런 형이 있었으면 했다. 탄피는 기관총 탄피처럼 큰 것도 있고 작은 탄피도 섞여서 장난감 끼워 만들기도 좋았다. 온종일 가지고 놀아도 싫증이 나지 않고 즐거웠다. 장난감이 상품화되기 전이라 신기한 호기심이 늘어났다. 친구의 두 형은 우리보다 일곱 살과 아홉 살이 많아 여러 가지 장난감을 만드는 재주도 좋았다. 탄피를 크고 작은 것끼리 꽂아서 고사포를 만들기도 한다. 불발탄을 분해하여 화약을 가루째 모아두고 쓴다. 어떤 사람은 그 화약이 속이 쓰린 데 효험이 있는 약이라 먹기도 한단다. 의약품이 귀한 시절이라 그런 말도 생겼다. 나는 혀를 대보니 화약 냄새가 고약하기만 했다. 탄피로 만들어진 고사포 안에 화약을 넣고 나무로 만든 탄알을 꽂아 불을 댕기면 쏘아지는 장치였다. 쏘는 것을 보지는 못해도 말로만 들어도 신기한 노리개다. 그런데 그 집 누나는 우리보다 다섯 살이 많았지만, 정신장애로 느끼지 않을 정도로 착하기만 했다. 우리는 느끼지 못해도 그의 부모는 장애 딸이라 귀찮아서 자식 대우를 하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는 장애로 느낄 수 없을 정도지만, 주위의 대우가 그렇게 만든 듯하다. 그 누나는 법이 없어도 죄를 범하지 않을 착한 마음이다. 남에게 해로운 말이나 행동은 전혀 없는 착하기만 한 마음씨다. 동생과 우리 친구들에게는 아주 반갑고 고마운 마음으로 늘 대해주었다. 아들 선호 사상이 강했던 시절이라 부모들이 잘못한다고 느껴졌다. 딸이 하나로 요즘 같으면 귀여움을 독차지할 일이지만, 두 오빠가 더 여동생을 냉대하는 일이다. 조금만 잘못해도 손찌검이고 심하면 발로 차기도 한다. 구석으로 몰린 여동생이 웅크리고 사정없이 오빠에게 두들겨 맞는 모습은 애처로운 일이었다. 여동생을 오빠가 폭행하는 일은 이 집에서 나는 처음 보았다. 크게 잘못한 일도 아니고 자기 시키는 일을 재빨리 시행하지 않는다고 하는 행패다. 이들은 부모의 묵인 아래 나쁜 버릇에 젖어 버린 행위다. 아들은 아무리 잘못해도 용서하는 가정의 잘못된 관행이다. 여자를 천시하고 종처럼 대우하니 정신적 장애를 만드는 일이다. 그 착한 누나가 가족들의 잘못된 대우 때문에 장애인이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만나면 착한 마음 외엔 아무런 정신장애를 느낄 수 없었다. 그렇게 착하기만 한 누나인데 말이다. 그런 이웃 누나의 처한 위치와 상황에서 내가 그런 수모를 겪었다면 나는 진짜 중증의 장애인이 되었을 일이다. 그래도 그 누나는 용케도 기가 죽어서 자기주장을 강경하게 지키지 못한다는 일이지 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니다. 사랑이 빈곤한 가족 환경의 분위기로 보아 애석하고 불쌍한 마음이 든다. 어릴 때부터 남존여비 사상의 가정환경에 휘몰려 기가 죽어서 장애인 대접을 받고 자란 것이다. 아무리 똑똑한 아이라도 저런 대접을 받는 환경에서는 지적 장애인을 면하기 어려운 일이다. 자주 놀러 가서 그 누나를 만나면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그 누나를 누가 장애인으로 변신시켰다는 말인가? 그는 다른 누구도 아닌 그들의 가족이다. 나는 자라면서 형이 있다는 친구가 몹시 부러웠다. 그러나 여동생을 폭력으로 몰아붙이는 행위를 보고 그만 실망했다. 하나뿐인 여동생을 귀여워하지는 못하고 주먹질 발길질하는 모습에 넋을 잃고 말았다. 그런 대접을 받고도 성인이 되도록 살아가는 일이 장하다고 느껴진다. 어디를 보아도 착하기만 한 그 모습이 눈에 밟히는 일이다. 나도 광주리 친구 누나와 같은 환경을 느낀 일이 있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반장을 맡아서 새로 생긴 우리 마을 학교로 반 전원이 옮겨왔다. 그때 크레용을 학교에 맡겨 두고 사용했는데 이것을 받아 오는 일에 선생님이 나에게 나누어 주도록 지시했다. 학우들에게 차례로 나누어 주는데 세종이에게 주려니 친구들이 세종이는 크레용을 아예 사지 않았다고 주지 말랬다. 한두 사람도 아니고 여럿이 주장하니 나도 그렇게 믿고 주지 않았다. 그래도 세종이는 그렇지 않다고 변명하지도 않았다. 나중에 새로 생긴 학교에 오니 자기 형이 학교 사환으로 취직되어 크레용 주지 않은 일을 일러바쳐서 매일 머리 알밤을 맞았다. 몇 년 동안 시도 때도 없이 알밤을 맞으며 학교에 다녔다. 집에 가서 일러 혼을 내줄 사람도 없었다. 형도 아버지도 없었기 때문이다. 엄마에게까지 걱정을 끼치기 싫어서 매일 나 혼자만 고민하고 알밤을 맞았다. 선생님에게 일러바치기는 보복이 두려워서 더 겁이 났다. 쩔뚝거리거나 멍으로 표나게 때려서 남이 알도록 하지 않고 정신적으로 아주 피곤하게 하는 방법을 쓰고 있었다. 주먹으로 맞아서 병신 되는 이상으로 나를 괴롭히는 그들이다. 세종이 가족이 피난해 와 살아서 전쟁이 끝나 강원도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 지옥 같은 끈질긴 억압과 폭력에 견딜 수 없는 공포의 나날 해방이었다. 세종이 이사 간 그때야 학교 폭력에서 나의 해방을 맞은 일이다. 학교에 가면 사환에게 당하는 알밤 고통도 공부 잘해 만회하는 일이 오히려 나으리라 마음으로 다짐했다. 이렇게 당하는 고민에는 아버지 원수를 갚아야 한다는 마음이 더욱 간절했다. 이런 수모는 아버지를 일찍 돌아가시게 한 그놈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학교 마치고 집에 오면 우리 집은 내가 왕자나 다름없는 대우 때문에 장애로 가는 환경은 면한 일이다. 우리 누나는 나에게 아주 훌륭한 동생이라 매일 칭찬하기에 그랬다. 마치 고모처럼 누나도 나의 용기를 북돋우는 말을 자주 한다. 누나는 한문을 자기보다 더 잘 안다고 부추기는 열성도 지녔다. 나는 서당에서 책거리를 몇 번 해 한문 배운 경력 때문에 장애인 면한 셈이다. 내 친구 광주리 누나도 우리 집에 태어났다면 나처럼 장애를 느끼지 않아도 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사람이 어린 시기에 보호받지 못하면 장애아도 될 수 있다고 느껴졌다. 우리 앞집은 발가락이 하나 더 붙어서 이름을 육발이라 했다. 나보다 다섯 살이 적은 남자아이다. 자라면서 형제끼리 발가락 하나 더 많다고 기형아라 놀렸다. 가족부터 친구들까지 주위 모두가 그랬다. 아무리 그래도 이름을 육발이가 뭐냐 부모가 지을 이름이 아니다. 그러니 이 아이는 육발이란 이름으로 학교에서도 놀림감이었다. 육발이는 자기 친구와 멀어지고 나이 어린 친구와 어울린다. 가정에도 형수가 부엌일을 여성처럼 육발에게 시킨다. 육발의 엄마도 며느리가 여자 할 일을 시키는 잘못을 나무라지 않았다. 온 가족이 장애아 대접을 하니 육발이는 자기보다 나이 어린 친구와 놀고 가족의 천한 일만 하고 차츰 장애인 흉내가 깊어졌다. 마치 광주리 누나처럼 멀쩡한 사람을 장애아로 만드는 광경이다. 육발이는 형도 둘이나 있고 누나도 세 사람이 있었다. 평소 대하는 일마다 격이 낮은 대상으로 취급당하니 습성이 지적장애인으로 발전하는 일이다. 남과 다툴 용기부터 죽어 지내게 된다. 그래도 교회에 다녀서 성경의 말씀은 누구 못지않게 성심이 깊다. 나에게 교회에 나오라고 성경 이야기를 하며 전도하기도 자주 하는 편이다. 서울에 사는 육발의 둘째 형수가 보다 못해 데리고 가서 그곳 교회에 다니게 했다. 결혼도 못 하고 돈은 알차게 모아 교회인들 주선으로 적금을 들여 죽을 때는 일억 원을 모았더란다. 이 사람과 말을 나누어 보면 멀쩡한 정신이다. 남을 속이는 용기가 없다는 일 뿐이다. 어릴 때 자기가 살아가는 환경을 잘못 만나서 그렇게 된 일이다. 종교의 교리를 설명할 때는 열을 내고 설교하는 마음이 진정한 아름다운 마음이다. 나는 그에게서 진실한 사람의 마음을 읽었다. 본디는 멀쩡한 사람에게 모든 가해자가 장애인이다. 우리 사회는 빗나가 고학력의 양심 장애인이 너무 많은 듯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