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을 찾아서
최기순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맺는다는 불가의 말이 있다. 현대에선 통용될 수 없는 지나친 표현이라 하겠으나 그만큼 인연의 뜻을 알기 쉽게 풀었다고 할 수 있다.
세상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인연이 존재하고 한 사람이 태어나 죽을 때까지의 인생에서도 역시 무수한 인연들이 생겼다 사라졌다 하며 그것들이 뒤엉켜 그의 삶을 이끌어간다.
인생에서 처음 만나는 인연은 말할 것도 없이 핏줄 간의 인연이다. 그것은 천륜으로 뗄 수도 끊을 수도 없는 영원한 인연이라 하겠다. 어떤 부모와 형제를 만났느냐에 따라 그의 운명과 인생 앞길이 다르게 펼쳐진다. 부모 형제는 내 성장기를 비롯한 인생 전반에 큰 영향을 주는 존재들이다. 아버지는 학자이자 문인이라 이상적인 면이었고 전업주부인 어머니는 어려운 집안 살림을 떠맡아 현실주의자인 점이 강했다. 나는 삶의 숱한 경로에서 어느 길로 갈까 망서릴 때 부모님의 인생관을 떠올리곤 했다.
다음 배우자와의 인연은 다분히 선택에 따른 것이다. 나는 아내와 중매 반 연애 반으로 결혼했다. 중매자가 양쪽 집안에 걸친 결찌니 어느 면에서 운명적인 만남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녀는 내 선량함과 성실성에 끌렸다 했고 나는 상대의 강한 생활력과 똑똑함, 자의식이 뚜렷한 점에 반했다. 내가 한순간의 그릇된 판단으로 큰돈을 잃고 인생에 실패했을 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사람이 바로 아내였다.
친구들과의 인연 또한 가벼이 볼 수 없다. 대등한 관계라 거리감과 흉허물이 없다. 부모와 배우자에게서 숨기는 비밀을 공유하고 취미와 사고방식, 철학이 같아 함께 후반의 인생을 동행할 수 있다. 인간관계가 넓어질수록 가족 간의 애정 못지않게 절실한 것이 바로 친구 간의 우정이다.
어려서는 부모 형제, 젊어서는 배우자, 나이 들어서는 친구나 지인들과의 인연이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인연은 만남이고 만남은 곧 관계 설정으로 이어진다. 만남은 사람과 사람의 대면을 전제로 하지만 요즘 같은 디지털, 인터넷 시대에서는 온라인 상에서의 만남도 흔히 본다. 처음 단순하고 가벼운 만남이 문득 끈끈하고 진득한 인연으로 번지기도 한다.
정말 인간은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인연과 마주치는가. 앞에 말한 가족과 친구 관계 외에도 얼마든지 나타나고 맺어지는 것이 인연이다. 고향 사람들과의 만남과 인연이 있고 직장을 가지면 동료와 위아래 사람들과 피할 수 없는 인연을 맺는다. 나날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무어라 이름 지을 수 없는 만남들이 있고 그로 인해 형성되는 인연은 이루 다 열거할 수가 없을 것이다.
아니 어찌 인간과의 얽힘만을 인연이라 일컬을 수 있는가. 도시 문명을 벗어나 펼쳐지는 자연이 있고 곁에 두고 아끼는 반려동물이 있고 온갖 유무형의 사물이 있고 가슴에 담은 그리운 풍경조차 인연의 한 갈래로 삼을 수 있다.
인연은 어딘가 수동적인 냄새가 난다. 나약한 소녀 같은 모습이다. 피동적인 운명의 색채를 띠며 필연 아닌 우연의 옷을 입고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아무리 애를 써도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숙명적인 기운을 드러내는 것이 인연인가 싶다.
정(情)으로 흘러가는 인연이 있는가 하면 이해득실이 넘쳐나는 인연도 있다.
좋은 인연은 오래 기억하고 나쁜 인연은 빨리 잊어버리는 심성을 길러야 한다.
어떤 만남 뒤 헤어질 때 ‘이것도 인연인데 잘해 봅시다’라는 말을 많이 하고 듣는다. 그 만남을 말 그대로 좋은 방향으로 잘 이끌어가는 착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떡하든 상대를 이용해 혼자 이득을 얻고 자기 욕망을 채우려는 사람이 있다.
우리는 악연이라는 말을 흔히 꺼내고 익히 듣는다. 길든 짧든 인생을 살아오면서 악연을 만나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좋은 인연보다 나쁜 인연을 겪는 사람이 더 많은지 우리는 주위에서 악연의 경험을 듣는 일에 더 익숙하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결혼한 뒤 순탄하고 평온하게 행복을 구가하며 잘 살아오던 삶이 암초 같은 불행을 맞았다. IMF로 그 좋은 직장을 떠나야 했다. 신주 같던 퇴직금을 잘 간수하지 못해 온통 상실하고 말았다. 아는 사람에게 믿고 빌려준 돈을 떼이고 말았다. 부동산 동업에서 두 차례나 이용만 당하고 갈라섰다. 마지막 이모작 심는 마음으로 잡은 직장에서도 업무의 강도나 외부적인 요소보다 대인관계에서 벌어진 아픔이 더 컸다. 나이 한참 어린 동료가 나를 무시하고 괴롭히고 뒤에서 악담하고 제 잇속만 챙기려 하는 것을 다 참고 견뎠다. 명예로운 퇴직을 위해서였지만 남에게 나쁜 선례를 남기지 않았나 하는 미안함을 느꼈다. 그러나 아, 상대방 또한 악연으로 기억하고 있지 않을까. 내 얄팍한 이기심에서 비롯된 규정이 아닌가. 악연을 악연으로 새기는 것은 앞날의 인생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좋은 인연으로 바꿀 수는 없어도 비 온 뒤에 땅이 굳듯 거기서 교훈과 깨우침을 얻어야겠다. 나 또한 잘못한 부분이 없나 뒤돌아보고 나를 가다듬고 새로 거듭나는 나로 승화시켜야 한다.
빛나는 보석과 떠오르는 햇살처럼 소중한 인연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세상에 초개같이 부질없고 하찮은 인연들과 기억하기조차 싫은 악연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겠지만 작은 인연들을 잘 다듬거나 악연에서 비롯된 사슬을 끊고 가치 있고 아름다운 열매로 맺는 일은 자신의 몫이다. 석공이 쓸모없고 모난 돌을 다듬어 훌륭한 작품을 만들 듯이 말이다.
나는 자유로운 시간이 많아진 이즈음 친구들과 산에서나 모임에서 자주 만나고 있다. 다른 인간관계에서 실망하거나 믿음을 잃은 인연을 거기서 되찾고자 함이다. 순수한 자연 속에서 함께 만나는 친구들과의 우정은 우울하고 방황할 수 있는 나이의 나에게 하나의 등대와 나침반처럼 나를 인도해 주는 정말 귀중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 나는 어떤 인연과 만날까. 아니 어떤 인연을 다듬고 만들어 후회 없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새겨질 여생을 즐길까.
최기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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