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물림 문중 유사 및 총무를
이 재 곤
2026. 5. 14.
유사(有司)란 직책 이름은 지금의 기관단체나 사회모임에서는 들어 보기 어렵다. 세월 따라 다른 이름으로 변하였기 때문으로 유사는 전통적으로 어떤 단체나 자생적(自生的) 모임에서 사무를 맡아보는 직책을 밀 하는데 요즈음의 총무(總務)나 사무장 사무국장에 해당하는 직책이라 하겠다.
각종의 사회모임에서 그 모임의 규모가 크거나 여건에 따라 모임의 대표 즉 계장(契長)이나 회장(會長)을 따로 두지만 대체로 소규모 모임은 유사 혼자서 모든 업무(業務)를 관장(管掌) 처리하고 모임이 있을 시에는 업무처리 전반을 구성원에게 알리는 역할을 하였다.
유사나 총무를 맡는 사람은 그 모임에 대한 상식(常識)과 지식(知識)을 겸비(兼備)하고 무엇보다도 가장 성의가 있어야 한다. 모임의 목적과 임무를 정확히 숙지하여 회칙(會則)이나 계칙(契則)에 맞게 업무를 정직하고 정당하게 처리하며 의심받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하고 언행(言行)에 모범을 보이며 부지런해야 한다.
우리 집은 아버님부터 형님, 나, 조카들까지 대(代)를 이어 문중(門中) 일이라면 뒷전에서 보고 있지 않고 항상 앞장서 참여하며 족보발간, 재산관리 및 선영 수호, 묘사 모시기 길흉사 챙기기를 솔선수범하여 왔다고 자부(自負)한다.
내가 청소년 시기에는 우리 집 사랑방에 문중(門中)의 어른분들이 모여 문중일을 의논하고 아버님께서 유사(有司) 직책을 맡으시어 공동기금 마련을 위한 가구별로 출연할 곡식의 양을 배정하여 수곡(收穀)해서 제수 비용이나 문중 토지를 매입하였고 문중 토지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의 일부를 세(貰)를 받아 적립하고 문중 기금으로 사용하셨다.
아버님께서는 유사 역할을 한두 해 하신 것이 아니라 십수 년을 맡아서 하시던 중 때로는 문중 재물 관리 문제로 관련분들과 다투기도 하셨으며 문중의 일은 우리 집 일보다 먼저 챙기시고 장부에 꼼꼼히 정리하셔서 정확하게 관리하시려고 애를 쓰시는 모습을 보고 자랐다.
세월이 흐르니 아버님께서도 고령(高齡)으로 건강이 나빠지신 그 이후부터는 장남인 형님이 자연스럽게 물려받아 문중 일을 맡아 보셨다. 문중 일을 보면 가사(家事)에 다소 지장이 있지만 누가 하든지 수고를 해야 하니까 나서서 하셨다. 형님은 종중재산관리도 하셨지만 선영 수호와 묘사 축문 쓰기, 제물 준비 점검, 윗대 선영이 있는 충청도와 경기도 용인시까지 시제에 참여하시고 경비는 절대로 문중 공용 기금을 쓰지 않으시고 사비(私費)로 충당하셨다. 그리고 3년에 걸쳐 우리 문중 파보(派譜)를 한글로 편찬하는 큰일을 하셨는데 파보 발간 경비는 문중 기금으로 충당하고 개인 수고비 등은 일체 사양하셨다.
형님이 연세가 많으시고 그 이후 문중에 일가가 번갈아 유사 역할을 맡아 하시다가 내가 직장에서 퇴직하니 기다렸던 것처럼 총무 역할이 맡겨졌다. 다른 일 같으면 한사코 사양하거나 뿌리칠 수 있지만 문중 일은 그렇게 할 수 없어 자의 반 타의 반 맡게 되었다.
아버님과 형님이 문중 일을 보실 때 십수 년을 옆에서 지켜보아 왔고 내 나름은 평소에 숭조돈족(崇祖敦族)과 문중사(門中事)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 차근차근 문중 일을 배우고 어른들의 지도와 가르침을 받아 처리해 나갔다.
문중 모임의 총무 부회장 회장을 차례로 맡아 형식적이지 않고 몸과 마음을 붙여 먼저 처리한 일은 문중 소유 부동산을 정확히 파악하여 등기하였고 우리 지역 내 선영(先塋)을 수호(守護)하고 고령군 입향조 이하 후손의 행적(行蹟)을 정리하여 책으로 발간 문중원에게 배부하였으며 증조부님 별세 100주기(週忌)가 되는 해에 증조부님 일대기 은송실기(隱松實記)를 간행하여 후손들에게 배부하며 설명도 하였다.
고령군 입향(入鄕) 이전에 선조(先祖) 연고지인 충북 청주시와 진천군, 경기도 용인시, 경북 경주시를 수년 동안 왕래(往來)하면서 성묘와 시제, 향사에 참예(參詣)하고 선조에 대한 행적을 찾아 자료를 수집 정리하여 책자로 간행하여 후손 회의를 소집 배부하며 설명하는 행사를 개최한 바 있다. 선조 관련 책자 간행 및 문중 일로 출타 경비 수백만 원은 나의 사비(私費)로 사용하였고 문중 기금은 일절 사용한 일이 없다.
대를 이어 큰조카가 문중 일의 많은 부분을 맡아 오고 있다. 조카는 향리(鄕里)를 지키면서 항상 문중 일을 우선하며 문중 재산관리, 증조부님 추모 정자 (亭子) 은송정(隱松亭) 보존 관리, 선영을 수호하고 대소사에 빠지지 않고 40여 년을 참여하며 문중 일가 간 연락과 소통에도 항상 힘쓰고 있다.
우리 집은 수십 년 동안 아버님, 형님, 나, 조카들까지 대를 이어 문중 일에 유사 총무 역할을 하며 집안일보다 우선하고 성심을 다해 왔다. 문중 일은 무슨 대가를 바라고 하는 일이 아니고 오직 선조님을 숭모(崇慕)하고 문중의 일가 간 돈족(敦族)을 위함이다. 앞으로도 계속 이어 갈 것이고 한가지 바람이 있다면 후손들이 뒤를 이어 문중 일에 열심히 참여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