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적♡
26.01.18(일)
◉성경: 요한복음 5장 1~9절
◉찬송: 370, 410, 419, 393
◉설교: 이 경준 목사님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양 문 곁에 히브리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요한복음 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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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요한복음 5장에 있는 말씀을 바탕으로 하여 은혜 나누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예수님이 유대 땅에 계실 때, 예루살렘 성엔 여러 개의 문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문들의 이름은 옛 문과 동문, 그리고 골짜기 문, 본문, 샘 문이라고 불리는 곳과 동물 이름으로 된 말의 문과 물고기의 문과 오늘 본문에 나오는 양의 문도 있었습니다.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서 예수님은 양의 문을 지나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시던 중, 인근에 있는 베데스다라는 연못에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것을 보시고 둘러보게 되셨습니다.
전해져 내려오는 말로는 베데스다 연못은 어떤 특별한 날에만 물이 소용돌이를 치는데, 그때 연못으로 제일 먼저 들어가는 사람은 어떤 병에 걸려있든지 낳는다는 전설이 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지나가시던 때가 그때였었는지 이 베데스다 연못가에는 많은 병자가 모여 있었습니다.
5절을 보니까 삼십팔 년 된 병자도 그곳에 있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이 오랫동안 병에 매여 있었다는 것을 아시고 “네가 낳기를 원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이 말씀에 병자는 물이 움직일 때 내가 먼저 들어가려고 애썼었지만, 다른 사람이 더 빨리 들어갔었다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예수님은 병자에게 이르시기를 “일어나서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삼십팔 년 된 그 병자는 즉시 병에서 낫게 되었고, 일어나서 자기가 누었던 자리를 들고 걸어갔다는 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의 내용을 생각해 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셨던 그 놀라운 기적이 우리에게도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삼십팔 년은 긴 세월입니다. 그것도 병으로 보낸 세월이 삼십팔 년이나 되었다고 하니 견뎌내기가 정말 어려웠을 것입니다. 단 몇 달 병을 앓게 되어도 자포자기하게 되는데, 이 병자는 삼십팔 년이나 병에 묶여 있었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베데스다 연못가에 힘겹게 누워서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 유대에는 의술로 고치지 못하는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떠도는 소문에 현혹되어 시간과 재산을 허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의학이 발달한 요즘도 용하다는 의사가 있다는 소문이 돌면 병자들이 몰리는데 그때는 오죽했겠습니까?
우리의 삶에는 항상 문제가 있고 그 문제들을 안고 살아갑니다. 질병의 문제라든지 아니면 경제적인 문제, 가정의 문제, 자녀의 문제, 사업의 문제, 그리고 직장의 문제, 이런 문제들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우리입니다. 이렇게 많은 문제를 안고도 살아가는 힘은 어디에서 생기는 것일까요? 사람은 희망을 먹고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괜찮아지겠지 하는 바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새해를 맞은 우리는 그런 막연한 희망조차도 가질 수 없는 형편에 처해 있습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경제난과 고물가로 우리의 삶은 엉망진창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선 나라 꼴이 말이 아닙니다. 크다는 기업들은 외국으로 다 빠져나가서 일자리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되었고 정부는 국방비도 제때 지급하지 못하는 처지에 몰려있는데 정치인들은 이전투구(泥田鬪狗)의 모습만 보이고 있으니 암울할 뿐입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나라의 장래인들 어떻게 안심할 수 있겠습니까?
나라에 녹을 받는 사람들이 지금의 문제들을 깨닫고 바른 정치를 해야 하는데, 그들은 정적 죽이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 때 3년 넘게 적폐 청산을 한답시고 나라를 망쳤던 일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또 이러니 어떻게 합니까? 지금이 그때보다 더 뻔뻔한 것도 같습니다.
그래도 어떻게 합니까? 실망스럽다고 포기하지는 말아야겠지요. 이 땅에 삶의 터전을 만들어 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냥 죽도록 내버려 두시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워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버텨냅시다. 하나님께서는 기적을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삼십팔 년 된 환자도 모진 고통을 견뎌내다가 좋은 날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 병자가 예수님을 만남으로 새 삶을 얻게 된 것과 같이 우리도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아가다 보면 기적은 일어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라고 하셨습니다.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문제를 내려놓고 기도합시다. 문제를 해결해 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십니다.
본문 6절에 예수님께서는 그 누우신 것을 보시고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묻고 계십니다. 이 물음은 단순한 물음이 아닙니다. 죽어가는 환자에게 낫기를 원합니까? 라고 질문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그런 의도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너를 낫게 해줄 것으로 믿느냐?'라고 물으신 것입니다. 우리도 그에 대한 믿음의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우리의 바람은 무엇입니까? 로또복권 당첨입니까? 아니면 돈을 많이 벌 기회를 얻는 것입니까?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면 그냥 포기하는 것입니까?
우리를 구원하실 분, 우리를 치료하실 분, 그리고 우리 문제를 해결해 주실 분께서는 지금 여러분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자녀 된 삶을 살게 하시려고 손을 내밀고 계십니다.
지금, 우리의 어려움을 고백합시다. 겸손하게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가정의 문제. 직장의 문제. 질병의 문제. 그 어떤 모양의 문제들이라도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해주시옵소서. 이제부터 내가 주만 바라보겠나이다.’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기적은 일어날 것입니다.
사랑과 은혜가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본문 말씀에서는
“예수께서 명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가 예루살렘 양문 곁에 베데스다라는 못 행각 안에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니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요한복음 5:5~9)고 합니다.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예수님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는 말씀에 순종하였더니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갔던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말씀대로 이루실 줄 믿고 순종하며 행할 때 그대로 이루어지는 은혜가 우리 삶 가운데 있게 하옵소서!
특별히 간구하옵기는 이념과 자원분쟁과 무역분쟁, 서해공해분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민족과 지구촌을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먼저 주의 종들과 성도들이 말씀으로 돌아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우리의 지난 과오를 회개하며 무릎 꿇고 기도할 때 회개와 대각성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시고 우상숭배와 음란으로 더럽혀진 우리 영혼이 새롭게 되고 범사에 형통하게 되며 이 민족이 열방의 제사장 국가로 지구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은혜가 임하게 하옵소서!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올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