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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평>
은: 각자 책을 읽은 소감을 말해보자.
협: 전반부는 신세계의 구성요건(소마, 늙지 않고 젊음을 유지하는 등의)들이 소개되고, 후반부에는 야만인 존과 통제관 무스타파 몬드의 대화가 주요 내용을 이룬다. 여기서 존은 불행해질 권리를 달라고 통제관에게 말한다. 이 둘의 대화 부분에 대해 토론해보면 좋겠다.
환: 책 제목만 봤을 때는 멋진 신세계 = 좋은 세계라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역설적 표현이었다. 지도자층이 원하는 사회를 이루기 위해 사람을 키워내는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사실 우리나라 교육도 지배계층이 원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저자의 멋진 신세계는 현실에도 있었다.
영: 나도 비슷한 생각이다. 체제는 다르지만 인물들의 대화 중에서 많은 유사점을 볼 수 있다. 요즘 아이들은 노인을 괴물이라 여긴다. 노인의 냄새가 역겹다고 표현하고 죽음이란 것에 대해 전혀 모른다. 지금과 참 많이 닮아있다. 우리도 젊어지기 위해 TV에 나오는 사람들을 따라하고 뚱뚱한 것도 혐오하지 않나.
숙: 마치 한 편의 공상과학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여러 영화에서 (이 책의 내용이) 다뤄진 경우가 있다. 헉슬리를 흔히 천재 작가라고 한다. 철학, 생명과학, 기계, 종교 등 다방면을 아우르는 천재성이 책에서도 드러난다. 제목을 보고 멋진 신세계에 대해 기대했는데 풍자작가답게 세태를 풍자한 이야기였다. 끝부분에서 절망적으로 그 세계를 묘사했는데, 나중에 다시 쓴다면 제3의 세계에서 등장인물들을 살게하겠다며 지은 책도 있다. 저자의 사상도 나중에는 달라졌다고 한다. 책을 읽고난 후, 내가 참 행복한 세계(자유의지의 세계)에서 살고 있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다 크고 빈둥지증후군이나 갱년기 증상을 겪으면서도 그 고독을 오히려 가질 수 있다는 것이 행복이구나 싶었다. 전에는 외면하거나 거짓말하고,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던 고통도 그것이 있어서 행복이구나. <파랑새>에서처럼 행복은 불행 가운데 있으며, 바깥이 아니라 우리집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안에서 사유하고 누릴 수 있는 것들도 많다. 죽음과 노화의 과정을 이제까지는 부정적으로 봤는데 존은 그것을 그대로 겪고자 했다. 감사하게 받아들이자 생각하게 되었고, 지금 이 세계가 바로 멋진 신세계라고 결론내렸다.
태: '행복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은 예전부터 있어왔다. 외부의 환경에 의한 것일까? 불편이나 고통이 없는 상태일까? 인간 사이에서 불편이나 고통이 제거되면 완성되는 것이 행복일까? 등등. 이 책은 행복이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저자는 책에서 인간이 도달하는 행복을 쾌락추구로 단순화했지만 그것이 진정한 행복은 아닐 것이다. 행복에 대해 각자 세울 수 있는 기둥들이 있을텐데 이에 대해 토론하고 싶다.
주: 읽으면서 저자가 너무나 극단적으로 멋진 신세계 vs. 후진 구세계를 대비해놓아 거부감이 들었다. 하지만 규모가 아닌 강도의 관점에서 현재 우리의 구도와도 비슷한 것 같다. 소수의 엘리트들이 법, 정책 등을 만들고 다수를 지배하는데 우리 또한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말처럼 자유의지라 말하는 것마저도 왜곡되어 있다. 영화 <더 기버> 등을 보며 토마스 무어의 유토피아, 플라톤의 아틀란티스와 같은 이상향을 떠올렸다. 만약 나에게 소마를 먹고 소유없이 편하게 사는 삶과 고통 가운데 행복을 찾는 삶,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생각하게 된다. 가끔씩 세상은 너무 야박해서 아이들을 챙기고 노쇠한 부모를 책임져야한다는 생각이 무겁게 들면 전자의 세계가 꼭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원칙적으로야 아니겠지만.
영: 소마얘기가 나왔는데, 요즘 정신과 약처방을 받는 학생들이 생각보다 많다. 심각한 이유라기보다는 "집중이 안돼요.", "기분이 나빠요."와 같은 이유로 정신과에 찾아가고, 또 약을 먹으면 그런 증상이 말끔하게 사라진다고 한다. 정신을 약물 하나로 안정시키고 다시 공부로 돌아간다는 부분에서 멈칫하게 되더라.
태: 책에서는 '모든 사람은 모든 사람의 소유'라 나온다. 사실, 우리 세상에서는 '가족'으로 인한 고통이 많다.
영: 때때로 가족이기주의가 심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일이 있을 때 형제부터 챙기고 하라는 식의 말도 그런 예이다.
숙: 관계맺기에 대해 저자가 부담스러워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현대정신의학에선 사람과의 만남을 어려워하는 경우 공황장애를 의심하는데 저자도 혹시?
주: 그것은 저자의 철학적 사유의 결과인 것 같다. 플라톤의 <국가>에 사람들의 계급을 3개(지도자, 군인, 일반인)로 나누고 가족의 개념을 없애는 등 저자가 착안했을 내용들이 나온다.
협: 저자 자신의 성생활도 문란했던 것 같다. 첫 번째 부인과는 공유하는 여인이 있었다고 하며, 후기에는 엘리엇이나 울프와 같은 작가들과도 가깝게 지냈다고 한다.
정: 멋진 신세계는 지금의 우리 세계와 거의 일치하는 것 같아 충격적이었다. 소마에 의한 도취된 삶, 자유로운 성교, 비싼 장비가 필요한 스포츠, 획일화된 대중문화, 각종 미디어에 의한 세뇌까지 닮아 있었다. "말파이스에서는 여자한테 사자의 가죽을 가져다줘야 합니다."라는 존의 이야기에서 큰 질투심을 느꼈다. 남자의 피와 살과 땀이 묻은 사자가죽은 요즘의 다이아몬드나 아파트와는 비교할 수 없는 생생한 감정과 강한 맹세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은: 저자에 대해 조사해봤다. 이 소설은 1932년에 2540년을 배경으로 쓴 작품이다. 집안이 화려한데, 아버지는 교감이자 작가였고, 어머니는 여학교를 세웠으며 조부인 토마스 헨리 헉슬리는 19세기의 대표적인 생물학자, 사촌은 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였다. 심지어 집에 도구가 갖춰진 실험실이 있었다고 한다. 저자는 생전에 유명세를 날렸지만 하필 존 F. 케네디가 저격당한 날 사망해서 죽음이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는 우스개소리도 있다. 국가가 개인의 삶을 어느 정도까지 통제하는 것이 맞을지에대해 토론하고싶다. 여기서는 계급, 직업 등 모든 분야에서 치밀하게 통제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출생률이 OECD 국가들 중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한다. 앞으로 이 책에서처럼 유리병에서 아이를 '만들어낼 수'도 있겠구나 싶다. 특히 낮은 계급의 수많은 쌍둥이들 부분은 끔찍했다. 제정신으로 살기 힘들어서 소마를 준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배계층의 통제수단인 3S(Sports, Screen, Sex)에 여기서는 Soma까지 더해 4S로 세상을 다스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협: 저자는 이 책을 쓰고 27년 뒤(1958년)에 <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를 썼다. 히틀러가 1933년 정권을 장악하고 나치시대가 시작되는 등 <멋진 신세계>에서 묘사한 전체주의 세상이 이렇게 빨리 올 줄 저자도 몰랐을 것이다. 이런 사회적 변화를 보며 통제하는 사회가 과연 행복을 보장하는가 하는 의문을 품게 되었다.
주: 소마는 감정을 제거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감정이 없으면 욕망이 없고, 욕망이 없으면 소동도 없는 것이다. 무서운 책.
<토론주제 1: 국가가 개인의 삶을 어느 정도까지 통제할 수 있는가?>
태: 인류사회의 흐름과 같이하는 논제이다. 왕조시대 탄압이 심할수록 통제가 심했다. 국가의 통제에 있어 특정 선을 정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그러나 무정부주의가 좋으냐하면 그건 아니다. 무자비한 폭력에 약한 자들을 보호하는 수준 정도의 간섭은 필요해보인다. 요즘은 자본이 힘을 발휘하고 있다. 국가와 자본(가)의 관계를 고민해봐야 할 때.
주: COVID-19 이후 국가의 통제를 더 원하는 모양새다. 국경을 봉쇄하라는 요구나 사회적 거리두기, 확진자 동선공개 등이 모두 그런 것들의 예시다. 위기상황이 닥치면 국가의 통제를 필요로 한다. 평소에는 싫은데.
숙: 미국의 지배력이 의심되는 시기이다. 선진국이 인권이 강하게 보장받는 나라이고 부통은 우리가 그런 나라들을 모델로 삼아왔는데 너무 심한 개인의 자유(마스크 착용 거부 등)는 공익에 위배됨을 요즘 보게 된다. 매스미디어 리더들은 다른 사람들과는 별개의 철학이 있어야 할 것 같다. 공중파를 타면 전파의 한계가 없으므로, 특히 어린이들의 경우 무차별적으로 수용하게 된다. 그래서 최근 아이들과 함께 한 토론에서 public good(공공의 이익)을 위하는 쪽으로 결론을 지었는데 그러면 소수의 권리는 또 침해되는 것이 아닌가? 어떤 선택을 하든 뭔가는 잃어버리게 된다.
영: 지금까지 국가는 나를 보호하는 무언가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쪼개어 깊이 들어가니까 잘 모르겠다.
협: 이 책에는 통제관 10명이 세계를 지배한다. 그 중 서부유럽이 무스타파 몬드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 그도 과학도였는데 통제자가 되는 삶을 결국 선택해서 과학을 통제하는데 이것이 멋진 신세계는 아닌 것 같다. 국가의 통제정도에 정답은 없는 것 같다. 국가는 개인의 자유와 개성을 존중해주고, 개인도 국가에 협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태: 스파르타(강력한 통제) vs. 아테네(자유의지 실현이 최고 가치)가 이 책의 신세계 vs. 보호구역의 대치구조와 일치한다. 지금의 통치자들이 고민해야 하는 모델의 양 극단. 우리는 이 두 극단의 사이 어딘가에 위치하고 있다. 상황에 따라 그 위치가 변할뿐 정답은 없다. 참고로, 아테네는 전염병때문에 멸망했는데 스파르타에서 발병했다면 그렇게 퍼지고 멸망까지 이르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거나 저러거나 역사는 아테네의 민주주의를 더 높은 가치로 밀어준다.
주: 스파르타는 진정한 엘리트주의를 표방했고 가족이라는 개념이 없이 공동육아를 했다. 이 책과 꼭같다. 국가의 통제는 융통성있게, 그때 그때 상황에 맞춰서 하는게 중요하다고 본다.
태: <녹색평론>의 김종철씨께서 얼마전 작고하셨다. 고인은 '숙의민주주의'를 강조하며 우리나라 의회제도를 비판하고 '시민의회'를 제안하였으며 20년도 전에 기본소득을 주장하셨다.
은: 책에서는 감탄사로 '포드님'을 자주 사용한다. 헨리 포드는 자동차 대량생산시대를 연 사람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이 마르크스, 엥겔스 등인 것이 다분히 의도가 있어보인다.
협: 성서에도 여자는 출산의 고통을 남자는 노동의 고통을 지는 것으로 나온다. 이 책에도 같은 내용으로 고통이 적용되고 있다.
은: 산소농도를 조절해서 아이들을 차별화하는 이야기는 너무나 무서웠다.
태: 미국과 영국은 상·하원제도가 있는데 여기서 상원은 귀족들로 구성되어 있다. 귀족사회에서 민중의 반발에 의해 하원을 열어줬다. 아직도 귀족사회에 의해 통치가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우리사회도 마찬가지이다. 학벌세습이라든가 그들만이 확보할 수 있는 고급정보라든가.
주: 수능은 단순한 입시제도가 아니라 권력투쟁의 현장이다.
협: 저자는 9살 어린 조지 오웰의 이튼스쿨 스승이기도 했다. 집안도 집안이지만 1953년경에 유전자구조가 발견되는 등 생명공학에서 많은 진보가 있었는데 저자 또한 생명공학에 대해 박식했다.
태: 1930년대에 미국에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이 있었다. 포드의 모델T도 나왔고. 사실 이 책뿐 아니라 다방면에서 과학의 발전과 획일화에 대한 저항이 있었다.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를 보라.
협: 복제양 돌리도 탄생한지 오래되었다. 우리나라에선 황우석박사 사태 등 인간복제가 불법이지만 외국에선 인간복제기술이 이미 완성되었다고 한다. 법적으로 제재하는 것일 뿐.
주: 중국에선 이미 애완동물 복제가 성행하고 있고 꽤 산업화되었다고 들었다. <블레이드 러너(1985년작)>는 2017년이란 미래를 그리고 있다. AI와 인간의 대립이 주요 내용인데 암울한 미래로 그렸지만 그 시기가 올 때는 이미 그런 문제들이 공론화되어서 대처도 가능한 수준일 것이다.
은: 책에도 9년 전쟁이 언급되지만 큰 사회적 변화 전에는 전쟁이 필요한 것인가? 저자가 1차 세계대전의 영향도 받았을 것 같다.
<토론주제 2: 인간에게 행복이란 무엇인가?>
태: 많은 철학자와 사상가들이 고민한 지점 행복! 우리시대의 행복은 비교우위에 의한 것일까? 정신적이거나 육체적인 쾌락에 의한 것일까? 나만의 행복이 존재할까? 내 가족중심의 행복이기만 하면 만족할까? 등등. 사실, 우리사회의 경쟁구도 속에서는 비교우위에 의한 행복추구가 만연해있다. 그렇다면 경쟁에서 실패한 인간들은 영원히 불행할까?
영: 이 책에서 제일 애매한 말이 행복인 것 같다. 책에서는 제일 하층의 계급도 충분히 행복감을 느끼는 것으로 묘사된다. 각 계급별로 느끼는 행복이 다르게 나타나지만 나는 그 행복들에 차이는 없다고 본다. 나는 맥주한잔에도 행복하고 고된 하루를 보내고 곤히 잠들 때도 행복하다.
태: 소마는 사유의 시간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사람들은 잠깐의 현타, 괴로움을 잊기 위해 소마를 복용한다. 엡실론이 베타계급과 자신들을 비교하기 시작하면 불행이 시작될테니.
숙: 아무리 유리병 안에서 배양이 되어도 인간의 유전자에 욕망이 살아있어서 소마를 이용해 사후적 감정차단이 필요한가보다.
주: <더 기버>, <이퀼리브리엄> 등에서도 약물로 인간은 통제한다. 하지만 종교에서는 수양(명상 등)을 통해 내 욕망을 다스리는 훈련을 한다.
숙: 책 속의 사회는 총통(통제자)이 지배하는, 인간본성이 제거된 전체주의 사회이다. 하지만 인간이라면 고난을 겪는 자체는 슬프지만 지나고나면 내가 이겨냈다는 희열을 느낀다. 행복의 정의는 모르겠으나 극단적 양극 중 하나를 선택할 필요는 없다. 개인이 자유의지를 사용할 수 있다면 행복이라 생각한다. 내가 취사선택할 수 있는 사회에 산다는 것, 국가의 간섭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행복이다.
영: '적당한 노동과 휴식'이 행복의 조건인 것 같다. 육체의 노동도 중요한 요소이다.
주: 그대는 엡실론! 우리모두 엡실론!
태: 요즘 우리 주변을 보면 실업자들이 너무나 많다. 그나마 내 능력으로 일할 수 있는 것이 행복일지도. 그런 측면에서 사회적 차원에서 실업자들의 행복도 고민해봐야 한다.
협: 저자는 '문명세계의 행복=쾌락을 추구하는 말초적 행복'이란 의도로 이 책을 쓴 것 같다. 존과 통제관의 대화를 보면 여실히 드러난다. 책 말미의 존이 하는 말 "난 안락함을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신을 원하고, 시를 원하고, 참된 위험을 원하고, 자유를 원하고, 그리고 선을 원합니다. 나는 죄악을 원합니다"가 저자의 주장이라 본다. 나는 삶에서 행복이란 말보다 '가치'란 말에 더 중점을 둔다. 무엇이 내게 더 소중한 삶의 가치인가? 나는 노동도 덜하고 여유가 되면 주변 사람들과 대화하고 더불어 사는 것에 높은 가치를 둔다.
은: 가장 마지막 부분인 존의 은둔생활은 요즘 연예인들이 댓글로 인해 죽음으로 몰리는 상황과 유사한 것 같다. 알고보면 문명세계에 사는 사람들이 진정한 야만인이다. 싫다는데도 와서 조금의 배려도 없이 자신들의 호기심을 채우는 것이 특히 그렇다.
숙: 우리사회에선 다름을 인정하기가 힘들다. 아이들도 능력이 다 다르고 개성이 있는데 똑같은 틀에 넣어 교육한다. 같이 행복하려면 다름을 인정해야 하다. 기다려주는 여유도 필요한데 우리는 그게 안된다. 융합교육, 창의성 이것마저 획일화되는 안타까움이 있다.
협: 존이 엄마인 린다의 매뉴얼을 보며 글을 배우는데 오히려 문명세계의 교육보다 책을 읽고 스스로 생각하는 교육이 더 좋은 교육인 것 같다.
영: 알파계급이 유아처럼 행동해야한다'는 부분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주: 주입한대로 반응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버나드 마르크스처럼 돌출행동을 하면 멀리 섬으로 보내버린다. 내가 읽은 책의 역자인 이덕형씨는 후기에서 "모든 진보는 반드시 그 희생의 대가를 동반한다. 진보에 대한 맹신에 경고를 보낸다."고 쓰고 있다.
숙: 내가 존이었더라도 다른 선택지는 없었을 것 같다. 결론이 좀 허무했지만 이럴 수밖에.
태: 야만인인 존은 문명세계의 여자인 레니나를 사랑했다. 하지만 레니나는 감정이나 사랑따위는 모르는 여자여서 그 충격이 컸을 것이다.
은: 존은 감정의 교류를 원했다.
주: 존의 입을 통해 자주 인용되는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에서는 하나같이 감정에서 욕망이 생기고 불행이 싹튼다.
숙: 레니나는 중간중간 고민하기도 한다. 존을 기다려줬다면 사랑의 의미를 깨우치고 존과 결실을 맺을 수 있었을텐데 아쉬웠다.
영: 야만인은 나에게 끝까지 야만적이었다. 레니나를 끝까지 창녀라고 부르는 존을 보며 그렇게 느꼈다.
태: 존을 야만인으로 칭한 것은 샤머니즘의 영향도 고려해서 그랬을 것이다. 레니나도 중간중간 엄습하는 감정조차 대응하지 못해서 소마를 자주 먹었다.
주: 감정때문에 고통이 생기니까.
태: 고통이 제거된 상태가 행복은 아니다.
협: 문명세계의 반대편에서 왔으니까 야만인이라 칭한 것 같다. 존은 어려서부터 주니족과 살면서 다른 피부색 등으로 왕따를 당했다. 큰 기대를 품고 왔지만 문명세계는 엉망이었다. 다시 돌아가려해도 주니족에게 그는 이방인이었다. 돌아갈 곳이 없으니 결국 거기서 자살한 것.
태: 다양성의 관점에서 보호구역 또한 하나의 문명이라고 봐야한다. 야만인들이라고 하기보다는. 어쩌면 소수민족이 있다는 것이 희망일지도.
<토론주제 3: 내가 생각하는 신세계는?>
은: 내게는 '질병과 전쟁이 없는 세계'가 신세계였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나서 정말 질병과 전쟁이 없으면 신세계일까 의문이 들었다. 지금도 몸이 좀 아픈데 아프면서 건강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깨닫게 되는 것이다.
협: 내가 생각하는 신세계는 없다. 이 책에서는 유일하게 못하는 것이 죽음을 온전히 경험하는 것이다. 책에서는 젊음을 끝까지 유지하다가 갑자기 죽는다. 존은 기독교말고라도 신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역설한다. 이를 통해 죽음과 종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환: 내게는 지금이 신세계이다. 기독교에서는 천국을 병도 죽음도 없는 영생의 상태로 설명하는데 과연 그것이 천국일까? 실패해도 괜찮고 고통이라도 괜찮다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이 오히려 신세계일 것이다.
영: 영화 <웰컴투동막골>의 동막골 사람들처럼 사는 것이 신세계같다.
숙: 신세계는 정의할 수 없다. 누구나 자기 나름대로의 가치관이 있으므로 나에게 적용되는 멋진 신세계는 각자 정의하는 것이 맞다. 나에게는 문명세계와 존의 세계가 섞인 상태, 고통이 있으면서도 행복하고 가난하지 않으면서도 타락하지 않은 사회가 신세계이다. 책을 다 읽고난 후 생로병사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 과정을 원활하게 끝내는 것이 나만의 신세계이다. 루틴을 깨지 않고 마무리를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
태: 내게는 차별없는 세상이 신세계이다. 다양성이 인정되는 세상. 다양성을 선택하는 것이 특별히 용기를 내지 않아도 되는 세상. 우리 사회는 뿌리깊은 고정관념이 있다. 나무터 시각을 바꾸고 국가도 기여해서 정말 다양성이 인정되는 사회, 소외되는 사람이 없는 사회를 만들었으면 한다.
주: 저자는 과학기술문명의 진보가 낳는 폐해를 이야기하는데, 의학의 진보는 유의미한 기여를 해왔다. 특히, 소아질병은 의학기술의 진보로 쉽게 고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질병의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사회였으면 한다. 그리고 '열린사회'였으면 한다. 국가의 통제가 적절한 수준으로 필요한데 숙의민주주의처럼 자유로운 비판이 동시에 허용되는 열린사회가 진정한 신세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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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찰흙덩이를 조물조물하더니 도자기를 만드는구려..
대단하심
내가 처음 한 얘기중에
<멋진 신세계와 후진 구세계>에서 후진 구세계가 후진국세계로 돼 있네요.
수정 부탁합니다~^^
낭군님과 법주 1잔해서... 오늘은 아니아니 아니되어요~~ 어쩐지 그 부분이 약간 모호하더라니요. 제 손이 쓴걸 제 눈은 몰라본답니다ㅜㅜ 혹 술깨고 낼 아침에 수정해도 될까요???
@다니엘 만만디..글이 도망가는 것도 아니니 아무때나 천천히 하시오~
낭군님께 안부 전해 주시구랴~^^
@카이저 소제 네엡^^ 감솨합니당~~
다니엘님의 노고에 항상 고마을 따름입니다. 수고하셨어요.
기록을 보니 각자의 목소리, 생각, 느낌을 접할수 있어 좋네요.
이것이 독서토론의 힘인가...
선생님들의 힘이 모여진 결과입니다. 제가 감사하지요^^ 즐거운 주말 되십시용~~
떠들썩했던 분위기가 기록속에 고스란히 살아있네요 ㅎ
이런 뜨거움이 ‘소마’로 제압당한다면
너무 불행할것 같아요
신에게는 아직 열두캔의 맥주가 있습니다!!!!
사자의 껍질을 사랑의 징표로 삼는 야만족의 목숨을 거는 사랑 이야기가 빠져있네..
이게 이게 현대의 물신주의적 사랑과 결혼에 대한 비판이기도 해서 의미가 있다 보여지니 첨가해주시오~^^
집으로 오면서 사자 한마리 잡아달라고 졸랐어요. 첨엔 돼지한마리 잡아다 준다고 했는데 계속 조르니까 케냐 가잡니다. 따라갈라고요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