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조선사상가총관 반도재산가총람








朝鮮思想家總觀 半島財産家總攬
■ 저자/편자 : 三千里社 삼천리사 ■ 출판사 : 삼천리사 ■ 발행지 : 경성
■ 발행일 : 1933년 ■ 형태 : 세로19cm 면수 94,17page
☆ 《삼천리(三千里)》는 1929년 6월 12일자로 창간된 대중잡지이다. 판권장을 보면, 편집 겸 발행인 김동환, 인쇄인 심우택(沈禹澤), 인쇄소 대동인쇄(주), 발행소 삼천리사, 총판 박문서관, B5판 50면, 정가 15전이다.
1929년 아름다운 조선의 국토를 상징한 《삼천리》라는 제호로써, “조선인은 조선인을 헐뜯지 않는다”(조선인(朝鮮人) 불타(不打) 조선인(朝鮮人)라는 발행정신을 밝히고, 모진 비바람 속에서 14년간 통권 152호를 내기까지 시종 편집인이요 발행인었던 김동환이다.
세상에서는 김동환을 가리켜 《삼천리》의 사장이요, 편집자요, 기자요, 발행자요, 소사요, 외교원으로까지 호칭했다. 그 무렵의 《삼천리》는 막강한 3대 신문사의 잡지 《신동아》·《중앙》·《조광》 등과도 맞서 경쟁을 할만큼 성장했으며, 《만국부인》(1932, 통권 1호), 《삼천리문학》(1938, 통권 2호), 《삼천리영화》(발행일자 미확인) 등 자매지까지도 발행했다.
단행본도 적잖이 출판했는데, 그 중 유명한 책은 1932년 2월에 초판한 김동환 편 《평화와 자유》(B6판, 340여면)였다. 그 내용인즉 《삼천리》에 이미 실었던 지사(志士)들의 옥중기, 망명객들의 체험기 등을 모은 것으로, 그 필진은 50여명, 주로 민족의 독립을 위하여 ‘자유와 평화’를 염원하며 활약하는 당대의 지도자들이다. 그 이름을 책의 목차 순대로 적는다. 서재필(徐載弼) 안창호(安昌浩) 이승만(李承晩) 장덕수(張德秀) 윤치호(尹致昊) 안재홍(安在鴻) 송진우(宋鎭禹) 최 린(崔 麟) 권동진(權東鎭) 허 헌(許 憲) 홍명희(洪命憙) 여운형(呂運亨) 이관용(李灌溶) 노백린(盧伯麟) 임원근(林元根) 박인덕(朴仁德) 허영숙(許英肅) 허정숙(許貞琡) 윤성상(尹聖相) 최의순(崔義順) 이여성(李如星) 이정섭(李晶燮) 홍양명(洪陽明) 김경재(金璟載) 함상훈(咸尙勳) 김우평(金佑枰) 이선근(李瑄根) 김장환(金章煥) 이광수(李光洙) 여운홍(呂運弘) 신흥우(申興雨) 김세용(金世鎔) 나공민(羅公民) 김명식(金明植) 김병로(金炳魯) 이항발(李恒發) 조만식(曺晩植) 김기전(金起田) 김동진(金東進) 이주연(李周淵) 윤형식(尹亨植) 주요섭(朱耀燮) 홍성하(洪性夏) 서 춘(徐 椿) 유광렬(柳光烈) 배성룡(裵成龍) 설의식(薛義植) 민태원(閔泰瑗) 주요한(朱耀翰) 송봉우(宋奉瑀) 김동환(金東煥). 책은 1935년 5월까지 5판을 냈으나, 총독부가 발매금지 처분을 했다.
이 무렵의 《삼천리》는 어느 잡지보다도 인기 상승하여 남북조선은 물론 만주·중국·일본에까지 보급되었으며, 미국 등지에서도 주문이 왔었고, 도꾜와 오사까에 광고취급소를 둘 정도로 활발했다. 《삼천리》의 최고 발행부수는 1만부란 기록이 있으나 전하는 바로는 3만부가 넘었다고 하며, 1932년 5월호에는 “13만 독자의 기대를 받들고자 ······”하는 발행인의 말이 있다. 또 1936년 4월호는 “《삼천리》 창간 8년 발행 총부수 500만부 돌파 기념”이라고 크게 내세우며, 면수도 창간 이래 가장 많은 A5판(국판) 400면으로 발행했다. 《삼천리》는 B5판·타블로이드판·A5판으로 판형을 바꾸는 등 체재에도 변화가 많았다.
★ 1933년 《삼천리》 2월호 별책부록 《조선사상가총관·반도재산가총람》
《삼천리》에는 그럴듯한 기사도 많지만 볼만한 ‘별책부록’도 있다. 1933년 2월호의 별책부록인 《조선사상가총관(朝鮮思想家總觀)·반도재산가총람(半島財産家總覽)》(A6판, 120면)은 지금 보아도 귀한 자료가 되겠기에 그중 ‘반도재산가 총람’만 간추려 옮긴다.
‘총람’ 〈후기〉에 보면, ‘재산가의 조사는 공정한 방법을 취했으며, 전국 100여 개 지방을 계획했으나 겨우 24개 도시에 그쳤다’고 했다. 그 재산가는 다음 158명이다.
〈서울〉 △ 300만원 이상 민대식(閔大植) △ 100만원 이상 민규식(閔奎植) 이석구(李錫九) 민병도(閔丙燾) 임종상(林宗相) 윤덕영(尹德榮) 이상옥(李相玉) 이병묵(李丙默) 임호상(林昊相) 전형필(全鎣弼) 최창학(崔昌學)
△ 50만원 이상 김순흥(金淳興) 이종석(李鍾奭) 윤치호(尹致昊) 조남섭(趙南燮) 조준호(趙俊鎬) 박광순(朴光淳) 김한규(金漢奎) 조병학(曺秉學) 배석환(裵奭煥) 김원식(金元植) 최한우(崔翰宇)
△ 30만원 이상 백상규(白象圭) 김성균(金晟均) 이풍한(李豊漢) 최 남(崔 楠) 오정근(吳正根) 최효선(崔孝善) 이인석(李璘錫) 이종구(李鍾九) 배건식(裵建植) 이종익(李鍾翊) 한응수(韓應壽) 민영휘(閔泳徽) 이병길(李丙吉) 민윤식(閔潤植) 한긍호(韓肯鎬) 윤치소(尹致昭) 민병석(閔丙奭) 이항구(李恒九) 김익영(金益泳) 조정구(趙鼎九) 백운영(白運永) 장인영(張寅永) 한창수(韓昌洙) 김태희(金泰熙) 이상인(李相仁) 박영효(朴泳孝) 손종수(孫鍾洙) 문택규(文澤圭) 김석태(金錫泰) 박영철(朴榮喆) 백완혁(白完赫) 성낙성(成樂璿) 김성수(金性洙) 태응선(太應善) 최 진(崔 鎭) △ 10만원 이상 이승우(李升雨) 박승빈(朴勝彬) 안 도(安 濤) 장두현(張斗鉉) 원응상(元應常) 김성권(金星權) 〈하략〉.
〈평양〉 △ 100만원 이상 김진막(金鎭漠) 김병선(金秉善) △ 50만원 이상 정관조(鄭觀朝) 박경석(朴經錫) 김능원(金能元) 최정서(崔鼎瑞) 이춘섭(李春燮) △ 10만원 이상 손수경(孫壽卿) 김기로(金基魯) 강용석(姜用錫) 박기석(朴箕錫) 채원혁(蔡元赫) 김치성(金致晟) 오윤선(吳胤善) 김동원(金東元) 이춘섭(李春燮) 이기찬(李基燦) 박태성(朴泰成) 염처홍(廉處洪) 정기항(鄭基恒) 전좌용(全佐庸) 박달열(朴撻烈) 손창윤(孫昌潤) 박태홍(朴台泓) 김응수(金應銖) 백선행(白善行) 〈하략〉.
〈대구〉 △ 100만원 이상 정재학(鄭在學) 서병국(徐丙國) 장길상(張吉相) 추병화(秋秉和) 김태원(金泰源) △ 50만원 이상 서병조(徐丙朝) 이일우(李一雨) 정해붕(鄭海鵬) △ 30만원 이상 서병린(徐丙麟) 서병항(徐丙恒) 서철규(徐喆圭) 서창규(徐昌圭) △ 10만원 이상 이근상(李根庠) 서병주(徐丙柱) 〈하략〉. 〈개성〉 △ 100만원 이상 김정호(金正浩) △ 50만원 이상 고한홍(高漢鴻) 마현규(馬玄圭) 임한조(林漢祖) 공성학(孔聖學) 손봉조(孫鳳祚) 박봉진(朴鳳鎭) 최선익(崔善益) 박상우(朴尙愚) 한명석(韓明錫) △ 10만원 이상 한종수(韓宗洙) 이희영(李熙英) 최인용(崔仁鏞) 진병건(陳柄建) 최익모(崔益模) 임한선(林漢璇) 황중현(黃中顯) 손계호(孫啓鎬) 〈하략〉.
〈웅기〉 △ 300만원 이상 김기덕(金基德) △ 30만원 이상 김영근(金永根) △ 10만원 이상 김주봉(金周鳳) 김홍구(金鴻九) 김성도(金聖道) 〈함흥〉 △ 100만원 이상 한시은(韓時殷) △ 10만원 이상 홍성연(洪聖淵) 김기곤(金基坤) 김하섭(金夏涉) 〈나남〉 △ 300만원 이상 홍종화(洪鍾華) △ 10만원 이상 남수용(南壽龍) 〈원산〉 △ 50만원 이상 박창조(朴昌祚) 이병균(李秉均) 〈단천〉 △ 50만원 이상 염경훈(廉景勳) 김수근(金守根) 〈성진〉 △ 10만원 이상 김재수(金在洙) 김시민(金始珉) 〈영흥〉 △ 50만원 이상 우종임(禹宗林) 〈북청〉 △ 50만원 이상 방의석(方義錫) 〈이원〉 △ 10만원 이상 강현수(姜賢秀) 〈고원〉 △ 10만원 이상 장명하(張明河).
〈해주〉 △ 100만원 이상 김영점(金永漸) 김상돈(金相敦) 〈재령〉 △ 100만원 이상 김교철(金敎喆) △ 50만원 이상 정찬유(鄭瓚裕) 〈안악〉 △ 100만원 이상 원효섭(元孝燮) 김응석(金應石) 김홍량(金鴻亮) △ 50만원 이상 원병섭(元秉燮) 〈황주〉 △ 100만원 이상 이종섭(李鍾燮) △ 50만원 이상 이지송(李之松) △ 10만원 이상 임익근(林益根) 조정록(趙鼎錄) 〈서흥〉 △ 100만원 이상 이봉하(李鳳夏) 〈연안〉 △ 100만원 이상 김용제(金龍濟) 〈봉산〉 △ 50만원 이상 이종은(李鍾殷) 〈신천〉 △ 30만원 이상 조계찬(趙啓燦)
박시영목사 / 무지개전원교회 담임
부산•경남기독교역사연구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