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포깍지길: 해국길
길은 창조된다. 예술이다. 감포 깍지길은 없던 길을 만들고 희미한 길에 옷을 입혀 구수한 맛이 난다. 용굴로 이어지는 길과 해국 자생지는 군사보호구역으로 통제되어 오다 최근에 공개된 길이라 감포 사람들에게도 낯설다. 김진룡 전 감포읍장이 해안선과 특산물, 전설 등에 대해 마을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안석 작가와 함께 8코스의 산책로를 만들었다.
해국길과 용굴로 가는 해안선에서는 선경에 눈이 팔려 발걸음을 옮기기 어렵다. 전설에 귀를 기울이고, 아름다운 풍광에 넋을 잃는다. 7개의 등대가 솔밭에서 가지를 뻗어나가 바다를 밝히는 송대말에는 일본인들의 침탈흔적이 남아 있어 속을 쓰리게도 한다. 감포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감포항과 감포시장의 표정을 살펴보는 것도 즐거움이다.
사람 살아가는 냄새 진하게 풍기는 감포항구와 감포시장, 전설과 자연의 아름다움이 절절하게 묻어나는 해국길, 송대말등대, 용굴 가는 길로 나서본다.
◆송대말등대
송대말. 소나무와 등대가 있는 끝마을이다. 감포항으로 들어오는 입구이자 나가는 출구다. 바다와 육지의 처음이자 끝이 되는 곳이다. 감포와 바다가 깍지를 가장 깊게 끼는 핵심이다. 송대말이 중지가 되어 바다 깊숙이 깍지를 끼고 있는 부분이 송대말이다.
송대말에는 7개의 등대가 북두칠성으로 깜박이며 24시간 감포를 지키고 있다. 바다 가운데 우뚝 선 푸른 등대는 만선의 꿈을 안고 출어한 감포사람들의 귀항을 안내하는 좌표가 된다. 북쪽의 해양수산부가 세운 등대는 감은사 삼층석탑의 모형을 하고 있다. 세계에서 유일한 석탑형 등대다. 연동체험마을의 치미형 등대와 마주보며 신라시대 후손들을 지킨다. 석탑등대 2층에는 등대의 역사를 설명하는 등대박물관이 설치돼 있다.
송대말에 들어서면 훤칠하게 키 큰 200년은 넘은 듯한 소나무들이 울퉁불퉁 튀어나온 바위 위에 바람을 안고 서있다. 절벽 아래 리아스식해안의 섬을 닮은 바위들이 조각작품으로 파도를 뿜어내고 있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의 파편들은 수증기로 비산하며 역사처럼 흔적없이 사라진다. 어느 장인의 손길을 거쳐 탄생한 형언하기 어려운 예술작품들이 빼곡하게 들어선 전시장이다. 방문객들의 감탄사가 저절로 터져 나오게 하는 빼어난 풍광이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
절벽을 붙잡고 찔레꽃이 피어 있다. 간간히 해국들이 조명등처럼 고개를 내밀어 카메라맨들의 시선을 잡는다. 일제강점기에 설치된 등대는 몸통이 사라지고 부식된 철근이 오래된 시간의 흐름을 전하고 있다. 무인등대도 하얗게 밤을 밝히며 송대말 땅 끝에 서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인들이 감포 전복과 돌미역, 참가자미 등의 싱싱한 수산물을 저장했던 수조가 아직 해수면에 그대로 남아 있다.
송대말 끝부분의 무인등대 앞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사진찍기 좋은 녹색명소 100선으로 선정한 곳이다. 전국의 사진 전문작가들이 눈독을 들이며 밤낮으로 찾아든다. 아이들이든 신혼의 단꿈을 꾸는 청년이든, 머릿결 은색으로 빛나는 실버층이든 이곳에 발을 들인 사람이라면 카메라셔터를 누르지 않고는 자리를 뜨지 않는다.
◆감포항과 감포시장
감포항은 1995년 연안항에서 국가어항으로 승격된 규모가 제법 큰 항구다. 오징어와 멸치, 가자미, 복어, 아귀, 꽁치 등의 청정해역에서 자라는 어종들이 펄떡이며 새벽을 밝히는 곳이다. 삶에 대한 의욕이 저절로 희망으로 살아나는 생의 현장이다. 활어를 사러 몰려든 인파가 알 수 없는 입안소리를 외는 경매꾼의 입으로 시선이 집중된다. 잡혀온 고기들이 이미 죽은 채 도매금으로 저당잡혀 어민들의 삶을 일구는 곳이기도 하다. 비린내와 청정해역에서 올라오는 간끼 배인 바람이 삶의 의지를 불사르기도 한다.
감포항은 경주수산업협동조합과 깊은 깍지를 끼고 있다. 바다가 가장 깊게 깍지를 끼고 들어앉은 곳이다. 감포항구에는 평일에도 연근해를 돌아 온 100여척이 넘는 어선들이 닻을 내리고 만선의 꿈을 충전하며 쉼표로 일렁거리고 있다. 어깨를 부비며 해풍에 부대낀 힘겨움을 서로 위로하는 모습들이 정겹다.
감포항의 남쪽은 활어와 전복, 돌미역의 가공되지 않은 자연의 맛으로 포장한 식당가가 울을 두르고 있다. 어느 식당으로 들어가도 맛에 대한 걱정은 버려도 좋다. 싱싱한 바다의 푸른 맛이 까다로운 입맛도 왕성한 식욕이 돌게 한다.
감포항 서쪽 로타리로 이어진 감포시장은 매일 싱싱한 수산물과 건어물들이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3일과 8일에 열리는 오일장이 열려 부산하다. 전복과 돌미역, 참가자미 등의 해산물과 농산물들이 보따리 보따리에 쌓인 감포 특산물이 방문객들의 펄럭이는 옷깃과 맞춰 춤을 춘다. 요즘은 대구를 비롯한 도심지에서 부녀회별로 팀을 꾸려 단체로 시장투어를 오는 일이 잦다. 싱싱한 감포 해산물의 단맛이 이미 입소문을 타고 있는 것이다.
깨끗하게 손질된 가자미의 눈은 이미 푸름을 잊었지만 오히려 까맣게 반들거리며 희게 건조된 살색을 자랑하며 감포 참가자미의 진미를 선물하기 위해 손님을 기다린다. 각종 해산물로 담근 젓갈, 돌미역의 뿌리로 장만한 꾸다리 장아찌 등등 감포에서만 맛 볼 수 있는 특산물들이 장날에는 도로변까지 줄을 잇고 있다. 감포시장은 시끄럽다. 옆집, 앞집, 뒷집 이야기거리가 장바구니를 타고 넘어 도로를 가득 메운다.
제2용굴
◆감포바다 지키는 용굴
감포바다는 자연이 보존된 천연보물 같은 지역이다. 해안선을 따라 군사보호구역으로 민간인들의 출입이 제한되면서 훼손이 심하지 않은 청정지역으로 남은 곳이다. 철조망이 걷히고 민간에 개방된 지 불과 몇 년 되지 않아 경치가 아름다워 누구나 추천하고 싶어하는 용굴은 감포사람들 조차 잘 모르고 있다.
용굴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전경은 신비롭다. 용이 살았던 것으로 전해지는 용굴은 두 곳으로 나누어져 있다. 사룡굴과 단용굴이다. 사룡굴에는 동서남북을 지키는 청룡, 백룡, 적룡, 흑룡 등 네마리가 살았고, 단용굴에는 감포 마을을 지키는 황룡이 살고 있었다. 연기를 좋아해 향로가 되고 싶었던 황룡은 사람들의 영혼이 하늘로 올라갈 때 좋은 연기를 피워 줄 수 있는 향로가 되고 싶어 했다. 이들 다섯 마리 용은 왜국으로부터 나라를 지켰고 마을의 길흉화복을 점쳐 보호해 주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임진왜란 때는 이 용굴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몸을 피할 수 있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으로 강제 징용당해 붙들려 갈 뻔 했던 오누이가 이 속에 숨어 위기를 모면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또 다른 전설이 있다. 하늘나라에서 죄를 지어 추방된 용이 용굴에서 옥황상제가 다시 불러줄 때를 기다리며 수양을 하고 있었다. 늠름한 용의 모습에 반해버린 바다곰이 수양하는 용을 위해 이무기들을 물리치면서 굴 입구를 지키는 수문장 노릇을 했다. 또 바다곰은 용의 배고픔을 해결하는 등 천 일이나 밤낮 없이 자맥질하며 보살폈다. 그러나 옥황상제의 용서를 받은 용은 바다곰을 외면하고 승천해 버렸다. 바다곰은 하늘만 바라보며 누운 채 식음을 전폐하고 기다리다 그대로 돌이 되어버렸다. 지금도 용굴 앞에는 곰바위가 하늘 향해 입을 벌리고 누워 있다. 여름철 태풍이 치는 날이면 곰바위가 울부짖으며 거칠게 물보라를 뿜어낸다.
용굴은 지금도 철망으로 출입이 제한되고 있어 가까이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굴 깊숙이 파도가 드나들고, 태풍이 들이닥치는 날에는 물보라가 심하게 일어나 위험하다. 용굴에서 이어지는 해안선은 특히 바위섬이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해 방문객들의 감탄이 쏟아진다.
◆해국길
감포 소바짐마을 해변길은 산과 바다가 만나는 좁은 산책길이 조성돼 있고 승용차도 진입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해국이 군락으로 서식하는 곳은 드물다. 가을이면 보라색 해국이 소나무숲과 해변을 따라 줄을 지어 보라색꽃을 피워 장관을 연출한다.
해국길에는 전설이 있다. 해국이 지천으로 피는 소바짐마을에 7살 때에 눈이 먼 처녀와 홀어머니가 살았다. 앞이 보이지 않는 처녀는 절세가인이었다. 마음씨도 고와 홀어머니를 지성으로 봉양하느라 결혼은 아예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홀어머니가 어느날 바다에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처녀는 밤낮으로 바다를 향해 눈 먼 눈을 고정시켜두고 자리를 지켰다. 밤이든 낮이든 바다를 바라보며 어머니를 기다리는 처녀는 끝내 몸이 굳었다. 그녀의 이쁜 마음과 외모를 흠모한 파도가 밤마다 처녀의 문을 두들겼다. 고독과 무서움에 지친 처녀는 어머니가 파도가 되었다 생각하고 파도를 따라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파도가 바다를 동경하는 그녀의 마음을 읽었다. 밤마다 찾아오던 파도가 어느날 처녀를 바다 왕국으로 데려가 버렸다. 그 이듬해부터 처녀가 살았던 동네 바위에는 보랏빛 꽃이 바위틈마다 피었다. 아무리 파도가 심한 날도 이곳 바위는 파도가 비켜갔다고 한다. 그 보랏빛 꽃이 해국이다. 해국은 파도가 피워올린 사랑의 꽃이다. 해국은 바다를 해바라기 하던 눈 먼 처녀의 꽃이라 하여 바다해바라기 라고도 부른다. 해국의 꽃말은 기다림이다.
파도소리 메아리치는 용굴과 해국이 무리지어 피는 해국길을 걷는 일은 몸과 마음을 동시에 편안하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