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활을 접고 96년 이곳 낭주골에 와보니
회사와 사택만 있는 허허벌판이었어요...
겨울 바람소리는 귀신이 출몰하는 듯한 소리를 냈고,
정말 아무 것도 없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시간들을 보내야 했지요...
지금이야 90여 억 원을 들여서 지은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실내테니스코트 파이브’ 에 드는 테니스코트와
수영장, 헬스장 등등의 복지시설이 들어서 있고,
도로 또한 F1서킷 덕분에 동네를 벗어나자마자 6차선 도로가 좌악 펼쳐져 있지만요....
그때 내가 제일 목말랐던 건 바로 ‘영화보기’였거든요..
영화를 고르는 눈이 꽤 까다로운 편이긴 하지만....영화를 정말 좋아했어요..
내가 이렇게 영화를 좋아하게 된 건 고1때 한 편의 영화를 보게 된
뒤부터였지요.... 찰리채플린이 등장하는 ‘모던타임즈’라는 작품이었는데요..
‘모던타임즈’는 산업사회의 인간이란 하나의 기계부품과도 같아서
자동화된 거대 시스템 속에서 멈추지 않고 돌아간다는 걸 보여준 영화였어요..
그러면서 채플린은 그 속에서 웃기도, 울기도 하는 사람의 본 모습을 그려냈던 겁니다.
영화는 세상에서 일어날 법한, 혹은 일어났던 많은 일들과(그것이 악행이든 선행이든)
삶의 본질을 꿰뚫어... 밀도 있게 담아내는 매력적인 매체인 것이죠.
게다가 재미까지 있으니 많은 사람들이 열정을 가지고 보게 만드는 거예요.
그런 걸 여기선 볼 수 없었고, 한참이나 궁해져 있던 터에 드디어!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목포 구시내(여기선 ‘뒷개’라고 부르는)에서
상영한다는 소식을 접했죠.
곧은 도로가 없던 그때, 버스를 한 시간이나 타고 조조를 보러 달려간 겁니다..
종영을 하루 앞둔 그 영화, ‘빌리엘리어트’를 보러.......
조조라서 사람이 별로 없겠다 싶긴 했는데
컴컴한 영화관 안으로 들어서자 그곳엔 나 말고는 아무도...없었죠....
영화가 시작 전이니 사람들이 조금은 더 들어오겠거니 하면서 있는데....
혼자서 그 컴컴하고도 너른 실내에 앉아 있자니...
어쩐지 으스스하고 오싹한 기분마저 들기도 했답니다.
또한 영화의 시그널이 올라갈 때까지 사람은 그 누구도 들어오지 않은 채
영화가 시작됐던 거예요.....
나 때문에 영사기가 돌아갔던 거지요..
화면 가득 해바라기 무늬의 벽지를 배경으로 한 소년이...레코드를 걸어 음악을 틀고
침대위에서 뛰어오릅니다...두 발이 공중에서 털 듯이 움직였다가 내려오고
다시 솟구치기를 계속하면서요. 소년이 침대 위에서 뛰어오르기를 하는 동안
음악이 흐릅니다...그 음악이 T-Rex의 ‘Cosmic dancer'라는 건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음악 또한 그 장면과 숨막히도록 잘...어울렸지요.
무서움은 온데간데없이 영화에 빠져들었습니다.
그 노래의 가사는 이렇죠...
난 열 두 살에도 춤을 추었어요
난 춤을 추고 있었어요
난 춤을 추며 태어났어요
난 춤을 추며 뱃속에서 나왔죠
그렇게 일찍 춤을 춘 것이 이상한가요
난 춤을 추며 태어났어요
난 여덟 살에도 춤을 추었어요
그렇게 늦게 춤을 춘 것이 이상한가요
난 죽는 날까지 춤을 추었어요
난 춤을 추며 무덤에 들어갔죠
그렇게 일찍 춤을 춘 것이 이상한가요
난 죽는 날까지 춤을 추었어요
인간의 내면에 잠재한 공포를
이해하는 것이 잘못된 건가요
미치광이가 되면 어떤 기분일까요
그건 풍선이 된 기분일거에요
난 춤을 추며 태어났어요
난 춤을 추며 뱃속에서 나왔죠
그렇게 일찍 춤을 춘 것이 이상한가요
난 죽는 날까지 춤을 추었어요
하지만 그 때 다시 한 번 춤을 추었죠
<영국 북부 어느 시골 탄광마을에서 빌리는
광부인 아버지와 형, 치매인 할머니와 함께 사는 11살 소년이었어요.
어느 날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가족의 명예를 위해 권투를 시작하라는 아버지의 말에 따라,
빌리는 낡은 권투장갑을 들고 체육관을 찾는데요.. 그런 빌리의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권투장갑이 아닌 보기에도 생소한 발레 슈즈였어요.
발레는 여자애들이나 하는 거라면서 외면하려 하지만 마치 그것이 빌리의 운명인 것처럼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되죠. 옆에서 빌리를 지켜본 발레선생의 도움으로 빌리는
본격적으로 발레를 시작하게 되고... 빌리는 자신도 몰랐던 발레에 대한 열정과 재능을 발견하게 돼요.
빌리의 타고난 재능을 발견한 발레선생은 빌리에게 전혀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게 된 거죠..
하지만 이러한 행복도 잠시 아버지와 형의 단호한 반대로 빌리의 발레수업은 중단돼 버려요.
힘든 노동과 시위로 살아온 그들에게 있어 남자가 발레를 한다는 것은
수치스러움의 대상밖에 될 수 없었던 것이죠. 하지만 성탄절 자신의 발레솜씨를 친구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빌리는 텅빈 체육관에서 혼자만의 공연을 하게 되죠....
이때 우연히 체육관을 찾았던 아버지는 빌리의 춤을 직접 보고는
빌리의 진지한 몸짓에서 자신의 아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됐던 거죠....
그날 이후, 아버지는 빌리의 열성적인 후원자가 돼서.. 빌리가 왕립발레스쿨에 들어갈 수 있는
자금을 마련하기위해 죽은 부인의 유품을 전당포에 맡기고, 시위까지 포기하며 동지를 배반하게 되지만.. 빌리를 중심으로 다시 모이게 된 가족의 배려 속에 빌리는 오디션을 받아 당당히 왕실 발레단 입단에 성공을 하게 돼요..
영화는 몇 년이 지난 후 빌리가 주인공으로 선 무대를 아버지와 형이 관람하는 모습을 끝으로 막을 내리는데요..
.백조의 호수가 절정에 치달으며 열한 살 소년이 아닌, 성인이 된 빌리가
근육의 결이 하나하나 힘 있게 살아있는 발레리노가 되어 ...
무대 중앙을 수직으로 뛰어오르면서 화면이 정지한 채 영화가 끝이 나죠...
그때의 엔딩 장면은 정말 가슴을 뿌듯하게 했는데요....혼자 영화를 봤던 것도
새카맣게 잊을 정도로 그 영화의 흡입력이 대단했으니까요.
그 영화가 나 혼자를 위해 영사기가 돌아간 것 말고도......
내게 그 영화가 특별하게 느껴졌던 건.....아들녀석 때문이었어요.
유치원 학예발표회를 하던 날, 사내아이들은 모두 개구리복을 입고 무용이란 걸 했었죠.
대부분의 아이들이 선생님이 가르쳐 준 동작을 외워서 표현하느라 부자연스럽기 그지없었던 반면,
녀석은 뭔가 달랐거든요.....뭔가를 속에서 풀어헤쳐 발산을 하고 있었죠.
작은 몸에서 심상찮은 에너지가 느껴졌던 순간이었어요......
그걸 지켜보면서 저 녀석을 뮤지컬 배우나 뭐 그런 방면으로
키워주면 좋겠다 싶은 마음이 불현듯 스쳤죠.
헌데 촌에서는 그럴만한 곳도 없고....
내가 맹모의 기질도 없었는지라 그만.....잊혀지게 되었죠..
‘빌리엘리어트’를 보면서 그때 생각이 떠올랐던 거예요......
‘내 인생의 영화’ 한 편이 된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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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 받아서 보면 좋을 영화 목록!
1.아름다운 청춘(스웨덴/ All Things Fair)
이 영화의 감독은 평생에 걸처 딱 두 편의 영화를 찍었죠.
근데 그 중 하나가 아들을 주연으로 했던 영화로...
스웨덴의 말뫼 고등학교 학생인 주인공이 세상에 눈뜨는 과정을 그린 건데요...
영화의 후반부에 아들이 엄마에게 기가 막힌(보는 사람의 가슴을 묵직하게 만드는) 대사를 쳐요.....
2.할람 포(영)
‘빌리엘리어트’의 빌리 역을 맡았던 소년 배우가 멋진 청년으로 자라, 훌륭한 연기를 보여줬던 영화
3.체리블로섬(독)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영화로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부부 중 한쪽이 죽자
남은 사람이 겪게 되는 에피소드를 다룬 것..
4.조용한 혼돈(프)
표면에 있는 주제는 무거우나, 프랑스식 기지와 위트가 반짝였던 작품.
5.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
이 영화는 영화가 끝나고도 오랫동안 가슴을 뻐근하게 했던 영화였죠,,,
6. 우리 영화, <똥파리>, <파수꾼>
<파수꾼>은 지금 씨네21에서 2500원인가에 다운 받아서 볼 수 있음.
골라 놓고 보니...반 이상이 성장영화랄 수 있겠네요...
아마도 내가 ‘성장’에 대한 갈망이 컸든가 봅니다...
어쨌든 이건 순전히.... ‘타인의 취향’인 내 기준에 의한 영화이므로 오해는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