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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고마음 (155로 측정) <내용>:세부 | 높은마음(275로 측정)<내용더하기 장>;조건들 |
구체적, 사실적 | 추사적, 상상력이 넘치는 |
제한적, 시간, 공간 | 무제한적 |
개인적 | 비개인적 |
형상 | 의의 |
세부에 초점을 맞추다 | 일반성 |
독점적 사례들 | 포괄적 ; 유형을 분류한다. |
반발하는 | 초연한 |
수동적/공격적 | 보호적 |
사건을 회상한다. | 의의를 맥락화한다. |
계획한다. | 창조한다. |
정의 | 본질, 의미 |
특수화 한다 | 일반화한다. |
지루한 | 뛰어난 |
동기부여 | 영감을 주는, 의도 |
도덕률 | 윤리 |
사례 | 원리 |
육체적 감정적 생존 | 지적발달 |
쾌학과 만족 | 잠재력의 실현 |
축적 | 성장 |
획득한다. | 음미한다. |
기억한다. | 반성한다. |
유지한다. | 진화한다. |
생각한다. | 처리한다 |
명시적 의미 | 추론 |
시간 = 제한 | 시간 = 기획 |
현재/과거에 초점을 맞춘다. | 현재/미래에 초점을 맞춘다. |
감정/원하는 것들에 지배된다. | 이성/영감에 지배된다. |
비난한다. | 책임진다. |
부주의한 | 규율있는 |
표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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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급한 | 참을성 있는 |
요구한다. | 선호한다. |
욕망한다. | 가치를 부여한다. |
당황, 긴장 | 평온한, 신중한 |
통제한다. | 확산시킨다. |
심리적 이용 | 잠재력을 본다. |
사실적 | 직관적 |
에고 자기지향적 | 에고 더하기 타인 지향적 |
개인과 가족의 생존 | 타인의 생존 |
옥죄는 | 확장하는 |
착취한다, 고갈시킨다. | 보존한다. 증진시킨다. |
설계 | 예술 |
경쟁 | 협력 |
예쁜 매력적인 | 미 |
순진한 인상받기 쉬운 | 세련된 학식이 풍부한 |
죄책감 | 후회 |
잘 속는 | 사려깊은 |
비관주의자 | 낙관주의자 |
과도함 | 균형 |
낮은 힘(포시) | 높은 힘(파워) |
열리한 교활한 | 지적인 |
생명을 착취한다. | 생명에 봉사한다. |
무정한 | 자비로운 |
둔감한 | 민감한 |
특수화하다 | 맥락화하다. |
진술 | 가설 |
종결 | 중도 변경이 가능 |
말기적 | 배아기적 |
동정한다. | 공감한다. |
등급을 매긴다. | 평가한다. |
원한다. | 선택한다. |
회피한다. | 직면하고 수용한다. |
유치한 | 성숙한 |
공격한다. | 피한다. |
비판적 | 수용적 |
선고를 내리는 | 용서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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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3
에고마음 (155로 측정) | 높은마음 (275로 측정) |
방어적 | 우호적, 너그러운 |
냉소적, 회의적인 | 낙관적, 희망에찬 |
의심하는 | 신뢰하는 |
이기적인 | 배려하는 |
인색한 | 관대한 |
계산적 | 계획적 |
솔직하지 않은 | 솔직한 |
돈키호테식 | 안정된 |
신경질적인, 까다로운 | 쉽계 기뻐하는 |
쪼들리는 | 넉넉한 |
강요한다 | 부탁한다. |
과도함 | 균형 |
무례한 | 정중한 상냥한 |
극단적 | 타협적 |
돌진한다. 서두른다. | '계속간다" |
물욕 | 돈의 전부는 아니다. |
욕정 | 욕구 |
감사할줄 모르는 | 감사하는 |
헐뜯는다. | 칭찬한다. |
선고를 내린다. | 찬성하지 않는다. |
성차별주의자 | 인도주의자 |
무기력한 | 진보적인 |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는 | 타인과 세계에 대한 관심 |
기회주의적 | 삶의 계획에 맞춘다. |
자족적 | 자기계발 |
상스런, 천박한 | 절제된 미묘한 |
발뺌한다 | 정직한 |
시기한다. | 감상, 존중 |
가혹한, 무거운 | 유머감각, 마음이 가벼운 |
<표1에서>
모든 점진적 변화는 강도를 반영하는 대조적 쌍들 간에 존재한다.
놀랍기 짝이 없다.
갈망함, 원함, 욕구, 꼭 가져야 함, 요구함과
그와 대비되는 선택지들인 선호, 희망함, 소망함, 선택함, 애호함,
혹은 수용함 간에는 차이가 있다.
이 단어 하나의 성질에서의 차이만으로도
살인, 격노, 우울, 비참함과,
그와 대비되는 만족, 이완, 느긋한 기대 간의 차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
철학은 물론이고
심리학, 정신의학, 뇌 화학에서도
테도에 관한 연구에 거의 주목하지 않는데,
그것은 인간의 태도가
인간의 행복, 만족, 성공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감안할때
놀랍기 짝이 없다.
간단한 연습삼아 표2 마음의기능 태도를
대조적 목록으로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자유로워지는 효과가 나타난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동안 간과되었던
다양한 선택지들을 알게 해주기 때문이다.
<표2에서>
자기 앎에 이로운 더 이상의 선택지와 가능성들을 드러내 준다.
한계가 있는 태도는
성격결함으로 불렀는데
영정성장을 지지하는 단체들은
그러한 결함을 인지하고 자신의 것으로 인정하자마자
그것이 감소하기 시작했다는 걸 알아챘다.
즉 자신의 결함을 부정하는 대신
그 결함을 수용하는 것이 이로움은
자기의 정직성, 안전함, 높은 자존감과 같은 내적 감각에 고양되는 것이고
더불어 방어적 태도가 대폭 감소되는 것이다.
자신에게 정직한 사람은
타인으로 인해 감정을 다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그러므로 정직한 통찰에는
잠재적인 것은 물론이고 실제적인 감정적 고통을 줄여주는 즉각적 이로움이 있다.
사람이 겪는 감정적 고통은
자기의 앎의 정도 및 자기 수용의 정도와 정확히 관련이 된다.
우리가 자신의 그늘을 인정할 때
타인은 그 부분을 공격하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감정적으로 덜 취약하며
보다 안전하고 무사하독 느낀다.
가정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언쟁은
단순한 성격 결함에 대해서조차
그것을 인정하거나 책임지기를 거부하는데서 비롯된다.
예를들면
그것은 어떤 심부름이나
어떤 사소한 일을 깜빡하는것 같은 일인데
기묘하게도 그런것이 대인관계의 갈등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가정에서의 대부분의 말다툼은
감정적 성숙함과 정직성이 있어다면
미연에 방지되었을
사소한 일들로 인힌 끝없은 상호비난을 나타난다.
가정폭력과 배우자 살해는
아무것도 아닌 일에서 시작되어
그 다음에 그것이 자기애적 에고를 풀어 놓음에 따라 점점 고조되는데
이때 자기애적 에고에 대해 '정당성'은
놀랍게도 심지어 생명자체보다 더 중요하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고통없는 성장의 비결은 겸손함인 것을
이 겸손함이란
자부심과 가식을 버리고
오류가능성은 자신과 타인의 정상적 인간 특성으로
수용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낮은 마음은 관계를 경쟁적으로 보지만
높음 마음은 관계를 협력하는 것으로 본다.
미안합니다 라는 단순한 말이
대부분의 불을 고통없이 끈다.
삶에서 승리하는 것은
누구 잘못이냐에 대한 강박을 포기함을 뜻한다.
상냥함이 호전성보다 훨신 강력하다.
승리보다는 성공이 낫다.
(정직한 겸손함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어느 유명인사는 감옥행을 피할수도 있어을 것이다. )
<표3에서>
자기존중은 자기 정직성에서 비롯되며,
심술궂고 타투기 좋아하는 방어적 태도와 팽창인 시비조 태도
그리고 비현실적 기대에 초점을 맞추는 태도를
함게 버릴 수 있게 해준다.
정상적 아동기에 괴롭힘과 장난을 주고 받은 것은
성숙과정을 돕는데,
그것은 과민함을 줄여 주고
남들이 비위를 맞춰주지 않을 때
에고가 무시당하는 느낌을 줄여준다.
아이들은 서로를
멍청이라고 부르지만,
신경질적이고 반사적으로 방어하는대신 그것을 넘어서는 법을 배운다.
성공의 비결은
자신을 바꾸는 것만으로 아주 간단하게 타인을 바꿀수 있다.
뉴욕 시는
차갑고 무레히고 냉혹한 곳일까?
아니면 우호적이고 정중한 곳일까?
이 모든 것은
뉴오커들이 누군가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
누구인가에 달려 있다.
크게 진화한 사람은
뉴욕시를 친근하고 거의 고향 같은 곳으로 여긴다
미 성숙한 사람은
그곳을 차갑고 거부하는 곳으로 본다.
그 이유는
세상은 본인 스스로가 투사시킨 지각을 되비춰 주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깐 생각나는 것
무학대사와 태조 이성계 일화 생각난다.
돼지와 임금같다는 말)
성공은
건설적 태도의 자동적 부산물이다.
잭 캔필드가 성공의 원리에서 묘사한 것과 같은
단순하고 상식적인 기초의 자동적 부산물이기도 하다.
그 과정은
힘겹지 않고 매우 즐거우며 그 자체로 보상이 된다.
성공은 상당히 단순한 원리의 귀결인 것이다.
높은 마음의 발달은
종교적 훈육(나중의 삶에서 그것을 거부하게 됨을 별론으로 하고)은 물론이고
어리 시절에 아름다음, 특히 고전음악, 미술, 발례,
자연과 접하는 것으 강력하게 지지되는데,
그러한 것은 모두가 상호 연결되어 있는 에너지 패턴들의 발달 및
물질적 뇌 자체의 뉴런 발달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자유와 에고
①대량 학살을 포함하여,
②전쟁과 범죄 및
③ 모든 사회적 갈등의 근거는
에고 자체의 핵심에서,
특히 성급한 욕구와 목청 높은 항의 및 비현실적 기대를 동반하는
유아적 에고에서 기원한다.
그러나 인간이 성숙해지면서
과도한 에고
(선불교의 십우도에 나도는 길들이지 않는 황소)는
더욱 조용해지고 유순해지며, 타기 쉬워진다.
심리적 의식의 진화는 다음과 같은 몇가지 다른 메카니즘을 통해 일어난다. ⑴ 억압 원시적 충동은 억압되고 뒤이어 부정되며, 그다음에는 타인에게 투사된다. (사회적피해망상) ⑵ 내맡김의 승화 적절한 양육과 더불어, 자기애적인 원시적 충동은 사랑과 수용 같은 그리고 지지적 부모 및 권위 인물과의동일시 같은 더 나은 이득을 얻는 대가로 포기된다. ⑶ 순응 이것은 성숙을 회피하는 방식이며 원시성이 지속을 나타내는데, 왜냐하면 에고 중심성은 억제될 뿐이고 내면의 자기애적 '왕 아기' 태도의 전능함(과대성)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내적으로 원하는 것에 대한 모든 방해를 임의적이고 가증스러운 권위주의로 보는 결과를 낳으며, 분개, 반항, 저항, 지속적 미성숙함으로 귀착된다. 이 이원성은 또한 사건을 가해자/피해자 모델고 분열시키는 것과 같은 실상에 대한 심각한 왜곡으로 인도하는데, 가해자/피해자 모들은 그 다음에 사회에 투사되어 지극히 무시무시한 귀결을 낳는다. 자개애적 에고 속의 이러한 분열이 지난 세기에 1억명 이상의 생명을 앗아갔다. |
그리하여 성숙의 실패는 병리적 성격장애로 인도하는데,
그런 성격장애네는 범죄성향, 만성적인 정치적 반체제주의,
그리고 자국민뿐 아니라
자신의 가족까지 살해하는 가대한 폭군과 독재자들의 병적 자기 중심성의 포함된다.
자유대 유치증
유아적 에고는
자유를 방종이자 괘락주의의 즉각적 충족으로,
더불어 타인에 대한 무관심으로 잘못 해석한다.
약화된 형태로,
이런 사람은 끊임없이 한계에 도전하며
모든 제한을 뒤엎으려고 한다.
유아적 에고는
또한 경계선은 넘는 것에 어떤 귀결도 없어야 한다는 비현실적 기대에 이른다.
이것이 요즘 십대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인위적으로 유발된 기대인데,
십대들은 자신은 피해자이므로
사회적 위반에 대해 책임이 없다는 관념을 주입받았고
그것을 해로운 태도로 귀착된다.
대중매체의 쇼크자키들이 최근 알아낸 것 처럼
극단주의는 결국 역반응을 촉진한다.
어떤 좋은 것의 남용과
온전치 못한것의 악용은 자멸적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행위는 사회구조의 생존의 기본적 요구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결국 자유의 악용은 자유의 상실을 초래한다.
자개애적 에고 욕구 불만은
가장 빈번하게 증오를 일으키는 방아쇠이다.
현 사회에서 증오는
모든 권위 있는 인물과 기관들을 향해 자유롭고도 공개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정치적으로 유아적 에고는
무신론자와 무정부주의자이다.
이들은 모든 상황을
가해자/피해자 측면으로 보는 피해망상과
광범위한 지각의 왜곡을 일으키는 경향이 있다.
지난 수십년간,
모든 사회적 관습을 무시하는 것을
쿨하게 여겼던 1960년대의 나 세대에 대해 책이미 있는 것으로 지목되어 온 것은
사회적 발달의 결핍이었다.
그 그늘은 귀결이 무시하는 그러한 위치성의 순진성이었는데
이미 밝여진 바와 같이
사회관습을 무시하는 데 대하 귀결은
죽음이나 종신형까지 포함하여 정말 대단히 엄중할 수 있었다.
이 지구행성에서 생명의 진화에서 설명한 것처럼
최초의 생명형태는 선천적으로 욕심이 많았고,
인간에게서 그것은
채워지지 않는 끊임없는 굶주림/결핍/욕망으로 지속된다.
누구러지지 않은 자기애적 에고가 성인에게 지속되는것은
냉혹하고 기본적으로 박탈감을 느끼는 성격으로 인도한다.
내적 허영심은 만족할 줄 모르며
이는 실재하거나 가상적 무시에 대한 예민함으로 인도한다.
내부고발자등은
사람들에게 충실할 수 있는 능력이 없으며
타인의 신뢰를 저버리는 일에 재빠르다.
현재의 정치적 경향에 내재된 부모의 권위에 대한 적대감은
합법적 부모 권위와 기능에 대한 점진적 공민권 박탈을 통해 예시된다
성숙해지면서 사회적 삶은
동물충동을 승화시키는 대가로
사랑, 안전함, 성공, 존중, 자존감, 신체적 자유와 같은 상위의 이득을 얻은
거래들이 이루는 평행상태이자 그 귀결로 보인다.
어떤 경게선이나 사회벅 법적 규정이 속박하는지 혹은 보호적인지 여부는
외적실상보다는 하나의 관점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사회는
집단적 무지뿐만 아니라 집단적 지혜를 반영하는데
집단적 지혜는 흔히 큰 수난과 고통을 치른 대가로 온다.
사회에 의해 제어되지 않는다면
자기애적 에고는 플라이휳이 없는 엔진과 같다.
성숙해지면서 사람은
경찰, 법률, 윤리, 합리성, 도덕이
무책임성이라는 자유의 환상적 대체물을 부정함으로써
자신의 진정한자유를 보장한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지적 영역에서 유치증은
이성, 논리, 도덕, 윤리를 임이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강압이자 제한으로 보며
따라서 사회의 그러한 부준위는 범죄자, 범죄문화, 비속함을 의미한다.
유치증은 무정부주의자를 영웅으로 보고 그에 걸맞즌 미와 아름다움을 엏뜯는다.
에고는 영리하여 증오와 폭력이라는 자신의 유아적 동기를 합리화 할 수 있는데
그 방식은 신을 제거하는 것이거나
혹은 역석적으로 신의 이름(알라)으로 남을 학살하는 일(즉 지하드)을 정당화 하는 것이다.
이드(id)가 꿈꾸는 자유
팽창된 유아적 에고는
요구하고 자격이 있다고 과대하게 느낀다.
또 자신의 가진 권리 때문에
분개하고, 아무런 귀결이나 책임이 없는 방종을 허락받을 것을 기대한다.
따라서 사회구조가 전체적으로
충동성을 좌절시키는 큰 요인으로 보인다.
에고의 핵은
반항적 무정부주자에다. 무신론자이다.
삶의 끝없이 흥청거리는 로마의 주연이기를 기대하는 노출증 환자이며
그러한 기대에는 술 취한 방종이,
그리고 순진하고 취약한 이들에 대한 학대를 허용하는 각종 도착적 성행위가 포함되어 있다.
아이들에게조차 제한이 없으며,
아이들의 피해자화는 사회적으로 승인되어야하고 심지어 합법화조차 되어야 하는데,그에 대한 구실로 그들은 약탈적 행동이 언론 자유로서 용인된다고 선언하는 궤변을 늘어 놓는다(아동포로노)
자유와 뇌
발달과정에서 학습된 뇌는
자유 대 궤변
궤변은 고대 그리스에서
자유와 행복의 실상
파괴적인 모든 것이
공통의 근원을 갖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유, 성공, 건강, 평화 역시
영적진실과 온전성이라는 공통근원을 갖는다.
만인은 잠재적으로 자유로울 자유가 있다.
그것은 그저 진실에 이르는 길을 따르기로 하는 선택의 문제일 뿐인데,
사람을 그 길을 확인 가능하고, 인식 가능하고, 확증 가능한 것으로
발견할 수 있는 정도까지 따를 수 있다.
진정으로 성공한 이는
성공을 시샘하거나 미워하는 대신
그것을 모방하고, 복제하고, 동일시하고, 그릭고 그 모범을 세운다.
자신의행위와 행위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은
그 자체로 지극히 강력하며,
사람의 측정된 의식수준을 거의 순식간에 200이상으로 끌어올린다.
모든 영적으로 진화된 사람들이
자신의 발달과정에서 학습하는 지극히 귀중한 통찰은
자신의 개인적 의식을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결정짓는 결정적 영향력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작동하는 원리는
마음은 속에 품고 있는 것을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나타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 알아채면
결국 위치성을 더욱 존중하게 된다.
실상에서 초콜릿은
바닐라의적이나 대립물이 아니라
대조적 선택지를 나타낼 뿐임을 아는 것은 매우 큰 도움이 된다.
또한 내부에 은밀히 감춰져 있는 유아적 에고는
지극히 결핍되어 있고
칭찬과 입력을 끊임없이 바란다는 것과
또한 부당성, 불만, 불의 원한을 키우는 것은 물론
정당성에도 집착을 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좋다.
에고의 부정적 위치성에서 많은 에너지와 이익을 얻는다는 것,
그리고 진짜 이득을 대가로 하여 얻는 그러한 수상쩍은 보상을 포기하려는 자발성에 의해
영적 진화는 크게 가속된다는 것을 아는데는
별다른 성찰이 필요하지 않다.
자유와 행복으로 가는 길
실패, 불행. 욕구불만, 결핍, 부족, 분노, 우울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믿기 어려울 만큼 간단하다.
삶은 바다를 향해하는 것에 비견할만한 여행이다.
이 해상여행에서
배의 나침판은 1도 이동하는 것이 여정의 끝에 항로를
수백마일 이탈했는지 여부를 좌우한다.
(나의)
내면에 존재하는 최강의 도구는 영적의지 자체이고
이것이 확고해질 때
그 어떤 장애와도 맞서 그것을 감당해 낼 것이다.
즉 영적의지가 모험에서 성공한다.
다년간의 임상 진료 영적교육, 연구는 물론
주관적 경험을 통해서 볼때,
영적의지는 이번 생애뿐만이 아니라
장구한 세월에 걸친 사람의
의식경로(고전적 카르마로 지칭)를 결정하는 원초적 방향타임을 확증한다.
(의식측정1000)
한가지 단순한 결정에 의해
불가능했던 것이 가능하게 되는데,
이는 코르크에 붙어있던 납추들이 떨어져 나갔기 때문이다.
이제 코르크는
장의 밀도와 힘에 의해 수월하게 떠오른다.
이렇게 해서 사람은
영적진보는 어려우며
그리고 자신은 혼자서 그걸 해내야 한다는 이기적 환상을 놓을 수 있다.
도리어 결핍의 환상은 사라지고
이제 강력한 에너지들이 사람이 진보를 지속하도록 돕는데,
사람의 진보에는
이제 증대된 자존감에서 우러나는 쾌락이 동반되고,
세계는 마술에 걸린 것처럼
우호적이고 도움이 되는 곳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뇌의 신경화학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하고,
나비가 고치에서 빠져 나오듯
에테르 뇌가 영적 에저지의 흐름(즉쿤달리니)이
시작된 귀결로서 솟아나며,
삶의 경험과 세상 속 자기에 대한 경험이 변형되기 시작한다.
에고는
서로 맞물린 벽돌로 이루어 진다는것,
그리고
별독 한장이라도 움직면
구조물 전체가 흔들리고
그다음에 구조물은
자체의 중력으로 인해 무너지기 시작한다는 것이 밝혀질 것이다.
표면상으로 작은 노력조차
아주 큰 효과를 낼 수 있는데
사람은
단순히 미소 짓는 것만으로
자신의 삶이 완전히 바뀔수 있음을 발견한다.
자기계발을 추구하고
영적인 길을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같은 발견의 실제를 확증한다.
다음은 승자의 태도에 대한 목록이다.
그 모두가 아주 간단히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고
지극히 장기적인 이익을 준다.
측정수준 200이상의 에너지 장에 영위하는 삶은
180의 의식 측정수준에서 사는 삶과는 전혀 다르다.
영적토대: 기초(1부)
목록 | 측정수준 | 비고 |
건강한 | 360 |
|
겸손 | 270 |
|
공정한 | 365 |
|
공평한 | 305 |
|
균형잡힌 | 305 |
|
느긋한 | 210 |
|
도움이 되는 | 220 |
|
마음에서 우러난 | 255 |
|
만족한 | 255 |
|
명예로운 | 255 |
|
배려하는 | 295 |
|
부지런한 | 210 |
|
온건한 | 225 |
|
외교적인 | 240 |
|
우호적인 | 280 |
|
유연한 | 245 |
|
윤리적인 | 305 |
|
의지할 만한 | 250 |
|
이상주의적 | 295 |
|
이용할 수 잇는 | 265 |
|
인도적인 | 260 |
|
점잖은 | 295 |
|
정직한 | 200 |
|
즐거운 | 335 |
|
진정한 | 255 |
|
충실한 | 365 |
|
친절한 | 220 |
|
평온한 | 250 |
|
행복한 | 395 |
|
확고한 | 245 |
|
힘들여 일하는 것 | 200 |
|
이 표는 200이상으로 측정되는
역사상 모든 성공한 사회들이 가치를 두고 지지해 온 성징들 드러낸다.
영적 앎에 이르는 길을 지지하는 사실은,
높은 동기는 힘을 반영하는 에너지로 보강되는 반면에,
이기적 위치는 약하고 제한적이며 소모적이라는 것이다.
부정적 성질들이 서로 얽혀 있는 것처럼
긍정적 성질들 역시 그러하고,
그래서 한 영역에서의 진보는
의식적으로 다뤄진 적조차 없는 다른 영역에서 놀라운 발전을 가져온다.
부정적 성질들은 극성을 띠고 있고
따라서 대립물을 불러 일으키는 반면
200수준 이상에서 사람은
대립물이 없는 실상을 대하게 된다.
그리하여
비우호적은
우호적이 대립물이 아니며
단지 우호성의 부재일 뿐이다.
긍정적 수준들을 통한 진보는
습관적이고 쉬어지며, 그 자체가 하나의 생활 양식이 된다.
의식의 매 수준이
어떤 강력한 장을 대표하고 있음이 밝혀진다.
따라서 사람이 정렬하기로 선택한 것은
그 사람의 삶의 성질에 보이지 않는 영향을 미친다.
경험을 통해,
사람은 왜 부익부 빈익빈이고
성공을 새끼치는데 성공만 한 것이 없으며
그리고 왜 끼리끼리 어울리고, 유유상종하며
혹은 왜 개와 같이 자면 벼룩이 옮기는지 알게된다.
마침내 사람은
승자들 곁에 붙어 있어라 는 말이
전제적 장에서 유익함을 받아들이는 것과
삼투작용을 통해 그러한 이익을 뽑아내는 것을 의미한다는 걸 깨닫는다.
그 다음에 사람은
아름다움은 아름다움이 하는 만큼이다 라는 것을 깨닫는다.
의식연구를 통해 사람은
어떤 태도를 채택하면
그 의식의 장 전체를 곧장 불러 들이게 되고,
그 다음에는 그 장이 부지불식간에 성격과 생각을 지배하기 시작한다는 것을
신속히 확증할 수 있다.
'내 생각으로 여겨지는 것은
특정한 에너지 장의 공통된 생각 일뿐
정말로 사적인 것은 아니다.
부정성에 대항하는 것보다는
그것을 피하는 것이 나은데,
사람을 불을 갖고 놀면서도 불이 옮겨붙지 않을 수 있다는 유혹과 환상에 저항하는 것이 좋다.
의식의 온전치 못한 장들은
지극히 교묘한 유혹적 프로그램을 포함하고 있다.
그런 프로그램은
여러 세기에 걸쳐 정교하게 다음어졌으며,
그럼으로서 유혹적인 외양으로 은폐되고 위장되었다.
예수그리스도는
부정적인 것에 대항하지 말고 그냥 피하라고 했다.
폭넒은 임상경험은 물론 연구를 통해
사람은 비온전성이라는 불을 갖고
정말 그져 놀기만 할 수는 없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따라서 영적 앎이 있는 사람은
덪을 식별하는 법을 배운다.
이를 악용하고 큰 이윤과 이득을 취하는 이들은 순진한 사람들이
속기 쉬운 성질을 이용하는 법과 덫이 매력을 가다듬어
그것을 지극히 유혹적으로 만드는 법을 배웠는데
이는 요즘 오락 매체가 드리운 그늘을 통해 나타나는 그대로이다.
영적토대: 기초(2부)
목록 | 측정수준 | 비고 |
건전한 | 300 |
|
공손한 | 245 |
|
교훈적 | 200 |
|
긍정적인 | 225 |
|
기분좋은 | 220 | 우리는 이것을 행복이라 하는데 겨우 |
따뜻한 | 205 |
|
마음에 드는 | 255 |
|
믿을만한 | 290 |
|
보호적인 | 265 |
|
사려깊은 | 225 |
|
성숙함 | 280 |
|
세상의 소금 | 240 |
|
안정된 | 255 |
|
열린 | 240 |
|
유머감각 | 345 |
|
인내심 있는 | 255 |
|
적당한 | 245 |
|
정상적인 | 300 |
|
존경할만한 | 250 |
|
존중하는 | 305 |
|
지각있는 | 240 |
|
지지하는 | 245 |
|
지혜 | 385 |
|
질긴 | 210 |
|
질서정연한 | 300 |
|
참을성 있는 | 245 |
|
책임있는 | 290 |
|
충실한 | 345 |
|
합리적 | 405 |
|
유쾌한 | 275 |
|
|
|
|
극도로 흥분한 사람이 물속에서 발버둥 치다 익사하는 동안,
보다 진화된 사람은 물에 뜨는 법을 배운다.
긍극적으로 부력을 갖는,
영적 진보를 지지하는 바다는,
전체적이고 강력한 의식의 장이다.
이 장이 갖는 힘은
죽음 자체의 가능성조차 배제한다.
인간은 문명이 시작 되었을 때부터
그것을 직관하고 인식했으며,
생명은 오직 형태를 바꿀 수 있을 뿐 소멸될 수 없음을 인식하고 있었다.
(이 진술은 1000으로 측정)
선택의 귀결을 결정한다.
그것은 정말 비개인적 메커니즘이며 자동적으로 하는데
왜냐하면 에너지 장은
선택의 귀결로서 초대되기 때문이다.
선택의 낳은 귀결로서 개인은
쇳가루와도 같은데,
쇳가루가 장에서 갖는위치는
쇳가루 자신의 내련 결정의 직접적 귀결이다.
이러한 실상을 수용할 때
향상됨과 동시에 자유로워진다.
그와 동시에
그것은 무섭기도 하고 어느 정도는 겅악스럽게도 느껴진다.
그러므로 우주에서 유일하게 참된 자유는 선택의 자유이다.
이것은 인류가 받은 선물이다.
사람은 그 다음에 키를 잡고 있느 손은
다름이 아닌 자신의 손이라는 것과
나 자신의 천국이요 지옥이다(측정수준 700)라는 걸 각성한다.
이 전체적 진실을 수용할 때,
부질없는 바람 대신 강한 결의를 갖게 된다.
영적 실상에서 사람들이 정말 두려움을 느끼는 순간은,
자신의 운명은 오지 자신의 손에 달려 있다는 실상과 맞닥뜨릴 때이다.
천국은,
지옥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한 선택의 결과이자 귀결이다.
그러므로 자유의 문을 여는 열쇠는,
신성한 명령에 의해 전 인류에게 주어진
카르마적 유산이라는 은총에 따른 것이다.
철학자들과 철학
철학자와 철학 | 측정수준 | 비고 |
A J 에이츠 | 475 |
|
NRA(전미총기협협)의 정치적 위치 | 205 |
|
객관주의 | 400 |
|
경험주의 | 475 |
|
공리주의 | 240 |
|
관념론 | 200 |
|
권위 | 400 |
|
그리스핀 경제학 | 400 |
|
기독교 근본주의자 | 205 |
|
기사도 | 465 |
|
나로파 불교대학 | 405 |
|
낙관주의 | 295 |
|
논리실중주의 | 380 |
|
뉴딜(루스벨트대통령) | 340 |
|
던스 스코터스 | 490 |
|
도덕 | 406 |
|
로저 베이컨 | 460 |
|
루돌프 카르남 | 485 |
|
램프 윌도 에머슨 | 485 |
|
모리츠 슬리크 | 480 |
|
미국의 보이스카우트(규약) | 455 |
|
미국의 보이스카우트(선서) | 450 |
|
밀턴 프리드먼 경제학 | 400 |
|
버트란드 럿셀 | 465 |
|
보수주의 | 405 |
|
사회 다원주의 | 215 |
|
성인들 | 550 |
|
소크라테스 | 540 |
|
쇠렌 키에르케고르 | 410 |
|
스콜라철학 | 460 |
|
신보수주의 | 395 |
|
신앙에 기초한 주도권 | 480 |
|
신학 | 460 |
|
실용주의 | 200 |
|
실존주의 | 275 |
|
아리스토텔레스 | 498 |
|
아인랜드 | 400 |
|
애드먼드 후설 | 499 |
|
에른스트 마흐 | 490 |
|
에렉호퍼 | 505 |
|
에피쿠르스주의 | 305 |
|
영적현인들 | 700 |
|
영지주의(그노시스) | 503 |
|
오귀스트 콩태 | 485 |
|
오킹의 월리엄 | 535 |
|
위대한 사회(린든존슨대통령) | 280 |
|
유아론(唯我論) | 350 |
|
윤리학 | 415 |
|
이타주의 | 435 |
|
이글 스카우트 | 460 |
|
자유방임주의 | 305 |
|
자본주의(철학) | 340 |
|
장폴 사르트르 | 200 |
|
적자생존론 | 220 |
|
전통적 미국철학 | 440 |
|
전통적 자유주의자 | 355 |
|
제국주의 | 200 |
|
조지오엘(1984) | 410 |
|
존 듀이 | 455 |
|
주지주의 | 395 |
|
집산주의 | 200 |
|
찰스 피어스 | 465 |
|
토머스 멜서스 | 204 |
|
토마스홉즈 | 475 |
|
플라톤 | 475 |
|
플라티누스 | 503 |
|
합리주의 | 470 |
|
행동주의 | 400 |
|
하버드 스펜서 | 410 |
|
헤리티지 재단 | 265 |
|
현상론 | 420 |
|
화신(위대한 스승들) | 1,000 |
|
휴머니즘 | 365 |
|
초절주의 | 445 |
|
지적부문
목록 | 측정수준 | 비고 |
과학 | 450-460 |
|
기하학 | 400 |
|
대수학 | 405 |
|
산술 | 395 |
|
심각법 | 410 |
|
성양의 위대한 책들 | 465 |
|
수학 | 450 |
|
신학 | 460 |
|
인체 기하학 | 405 |
|
존재론 | 465 |
|
형이상학 | 460 |
|
인식론 | 475 |
|
마음은 본래부터
진실과 거짓을 구별할 수 없다.
(그래서)
마음의 유일한 방어책은
이성과 지성에 대한 의존이다.
(그러하기 때문에)
교육은 많은 수준에 대하여 이로운 것이 된다.
하지만
진화하지 못한 에고에게,
생각하는 능력은,
이성으로부터 감정에 물든 위치들을
정당화하려고 하는 합리화로 전략한다.
진실에 대한 왜곡은,
그때 사회의 부수적 의식 수준들과 일치하는
층화된 수준을 이루는 경향이 있다.
200 이상의 의식수준에서 진실은
그 자체로 가치를 부여 받으며,
따라서 교육과 학식의 존경을 받는다.
하지만
자기중심적 에고에게 진실의 요건은
개인적 신념체계를 위협할 것이기 때문에 분개를 일으킨다.
그리하여
에고는
도덕, 윤리,책임을 억압적인 것으로 보고 거부한다.
그렇게 하는 가운데
낮은 마음에 의한 합리화가
변증법과 정직성의 요건을 대신하여
뻔히 보이는 새빨간 거짓조차
실상에 아무런 기초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진실 혹은 사실로 개진된다.
135에서 195 의식 수준의 특징을 이루는
진실의 왜곡은
교육받지 못한 이들에게는 매력적으로 보일 수 는 있지만,
그것이 분노, 시샘, 악의를 감추는 양의 탈이자 피해망상적 왜곡에 대한 정당화이다.
미움은 허술하게 합리화되고 공공연하게 폭발한다.
시뻘게진 얼굴로 목에 핏대를 세우고
분노의 삿대질하는 성난 연설자는
감정에 떨며 격한 몸짓을 한다.
동알한 팽창의 동물의 과시행동에서 나타난다.
기원전 350년경
플라톤 아리토텔레스 소크라테스는
궤변과 수사를 주의 깊게 분석하고
그에 대해 반박했는데
그때 합의와 토론은 종결되었다.
따라서 2천년이 넘는 동안
보다 진화한 온전한 사상가들은
궤변과 수사를 끝난 문제로 간주했다.
하지만 매 세대마도
높은 비율의 인구가 200이하로 측정되며
그래서 사리 추구적 도그마는
새 옷으로 갈아입고 다시 튀어나와
어떤 비용을 치르고서라도 진실을 대체한다.
그리하여 이득을 위해 진실을 뒤엎는 일이 거세게 지속되어 온것이,
사실상 전쟁과 대량 학살의 일차적 토대이다.
측정수준 460은 박식함으로 가리키고
측정수준 470은 참된 합리성을 가치키며
측정수준 499 수준은 탁월함이나 천재의 가능성을 가리킨다.
--
--
진실 자체는 그 자체의 장점 덕분에 서 있지만
이상스럽게도 그것은 보기 좋게 혹은 입맛에 맞게 만들어져
'팔려야"하는 일이 많다.
의식수준의 낮은 인구는(사람은)
오직 이득에만 관심이 있다.
'진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온전한 이들을 중심으로 수요하는 개념이지만,
온전치 못한 이들에게 진실은
그들의 위치 전체를 위협하는 위험물이자 적인 것이다.
만일
거짓이 법적으로 진실과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면
더불어 학계의 찬성을 얻고,
그에 더해 대중매체를 통해 선전된다면,
그렇다면 괴불스, 히들러, 아이히만, 파시즘, 유대인 대학살은
스탈린, 폴 포트, 부헨발트 수용소가 그랬던 것처럼 합법적이다.
문제는 거짓 자체가 아니라
(루시퍼적으로) 거짓을 진실로 지정하는데 있다.
요즘 우리사회에서는
진실의 온전성의 왜곡의 이미 너무도 만연하여
사회는 그것이 기괴할 정도로 극단적으로 되어서야
예컨데 9,11 희생자는 정말이지 죽어 마땅했던 나치의 아이히만들 이라는 진술(90으로 측정)
정도가 되어야 진실에 대한 신성모득을 겨우 인지한다.
그 진술은 나중에 동조자들로부터 옹호받았는데
동조자들 자신의 합리적일 수 있는 능력은 9.11 희생자들은
이라크 전재으로 인해 죽어 마땅했습니다 라는 진술에 의한 그릇된 추론으로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사실을 보면 이라크 전쟁은 물론 9.11 폭탄 테러 뒤에 일어났고,
그것은 선행한 것이 아니라 귀결이었다.
이렇듯
상대주의는 지지자들이 만세를 합창하는 가운데
허위로 진술을 대체하였는데
그 지지자들 자신부터가 학문저 세뇌의 가련한 피해자였다.
이상과 동일한 원리를 적용할때
거짓은 합법적이고 정당하며,
그 다음에 선동, 반역, 간첩들의 배신행위 역시 마찬가지이다.
결론
자유는 독립된 내적 상태인 반면
해방은 집단적이고 사회적인 판단의 귀결이며 공동선을 위해 제한된다.
모든 행위와 선택에는
귀결이 따르므로 자유와 해방을 혼동하는 것은 심각한 오류이다.
우리는 결국 자신이 한 선택과 결정 그리고 그 귀결에 대한 책임을 수용해야 한다.
모든 행위, 생각, 선택이 영원한 모자이크에 더해진다.
우리가 내린 결정이 파문을 일으켜
의식의 우주전체에 번져 나가며 전부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생명을 지지하는 일체의 행위 혹은 결정은
자신의 생명을 포함하는 전 생명을 지지한다.
우리가 만든 물결은 우리에게 돌아온다.
이전에는 형이상학적 진술로 보였을 수도 있는 것이
이제는 과학적 사실로 확립된다.
우주 속 모든 것은
특정한 주파수를 갖는 확인 가능한 에너지 페턴을 지속적으로 방출하며
그것은 영원히 남는데, 방법을 아는 이들은 이 에너지 패턴을 읽어낼 수 있다.
일체의 말 행위 의도는
영구적 기록을 창조하고, 그로므로 모든 생각이 영원하 알려지고 기록된다.
비밀은 없고 아무것도 감춰지지 않으며, 감출 수도 없다.
(그러므로)
만인은 공적 영역에서 살아간다.
우리의 영은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시간속에 벌거벗고 있다.
만인의 삶은 최종적으로 우주에 책임이 있다.
(이는 1000수준의 진실로 측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