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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열왕기상7장1~12절
제목 : 솔로몬의 왕궁 건축
성전 건축 이야기(6장, 7:13~51) 사이에 왕궁 건축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성전이 7년 만에 완공된 이후, 13년에 걸쳐 왕궁과 주변 여러 건축물을 준공합니다.
1. 솔로몬 왕궁의 건축과 구조(1~6절)
솔로몬이 왕궁을 십삼 년 동안 건축하여 준공합니다(1절).
“[1] 솔로몬이 자기의 왕궁을 십삼 년 동안 건축하여 그 전부를 준공하니라”
1) 왕궁의 규모입니다(2절)
“[2] 그가 레바논 나무로 왕궁을 지었으니 길이가 백 규빗이요 너비가 오십 규빗이요 높이가 삼십 규빗이라 백향목 기둥이 네 줄이요 기둥 위에 백향목 들보가 있으며”
(1) 그가 레바논 나무로 왕궁을 지었습니다.
'레바논 나무'란 곧 '백향목'(柏香木, Cedar)을 말합니다.
그런데 특별히 여기서 '나무'로 번역된 '야아르'는 '모으다', '소집하다'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이것은 다순히 건축 재료를 백향목으로 사용했다는 뜻을 넘어 백향목의 밀집 상태, 즉 수풀을 이루고 있는 상태를 지칭 합니다.
따라서 본절은 '레바논 숲의 궁'으로 번역하는 것이 보다 타당할 것입니다.
그리고 대다수의 영역부들도 본절의 '나무'를 '숲'이란 의미로 번역하였습니다.
아마도 이 궁은 매우 서늘하고 쾌적한 장소였을 것입니다(삿 3:20).
왜냐 하면 백향목의 숲이 근동의 더위를 잊게 할 만큼 시원한 그늘을 형성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맥락 하에서 본절의 '레바논 나무 궁'은 레바논의 백향목들로 건축되었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지(Keil, Bahr, Patterson), 후자들의 주장처럼(Dathe, Michaelis)레바논에 여름 별장용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은 아닙니다.
한편 이 궁의 용도에 대해서 여러 논란이 있으나 일부는 병기고로 사용되었으라는 점만은 분명합니다(10:17;사 22:8).
그러나 병기고 외에도 좀 더 다양한 용도로 이용되었을 것입니다.
(2) 길이가 백 규빗이요 너비가 오십 규빗이요 높이가 삼십 규빗입니다.
왕실에서 사용하는 규빗(52-54cm)이었다면<6:2>),
레바논 나무 궁의 크기는 길이 52-54m, 폭 26-27m, 높이 15-16m가량 입니다.
즉 높이만 성전과 같고 길이와 폭은 성전보다 두 배 가량 더 크고 넓습니다(6:2).
(3) 백향목 기둥이 네 줄입니다.
궁전의 하층은 기둥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습니다.
혹자는 이 기둥들의 숫자가 400개라고 주장하나(Thenius), 궁전의 규모를 감안할 때 너무 과밀(過密)합니다.
한편 궁전이 단층이 아니라고 추정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4절 주석을 참조하라.
2) 기둥 위에 있는 들보 사십오 개를 백향목으로 덮었습니다(3절).
“[3] 기둥 위에 있는 들보 사십오 개를 백향목으로 덮었는데 들보는 한 줄에 열 다섯이요”
본절의 난점은 2절과의 모순 때문에 생깁니다.
왜냐하면 2절대로라면 백향목 들보도 네 줄이어야 할 것이나,
본절은 한 줄에 열 다섯씩 사십 오개, 즉 세 줄로 말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본절의 '들보'를 '골방'으로 해석합니다
이 같은 견해는 궁전도 성전처럼 다락과 골방을 갖고 있으리라고 추측하는 데서 비롯됩니다(6:5).
한편 '덮었는데'에 해당하는 '사푼'은 지붕을 덮었음을 의미합니다(6:9).
따라서 앞의 수정된 견해를 취할 경우 본절은 '사십 오 개 골방의 지붕을 백향목으로 덮었다'는 의미가 된다.
3) 창틀이 세 줄로 있는데 창과 창이 세 층으로 서로 마주 대하였습니다(4절).
“[4] 또 창틀이 세 줄로 있는데 창과 창이 세 층으로 서로 마주 대하였고”
본절이 설명하는 상태가 무엇이냐에 따라 3절의 골방(들보)들이 어떤 배열을 가졌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단층 건물에 창이 세 줄씩 있을 가능성은 회박합니다.
만약 그럴 경우 3절의 골방들은 단층 내부에서 세 줄로 나란히 붙어 있는 납득키 어려운 구조로 배열되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창과 창이 서로 마주 대하였고" 있는 상태를 자연스럽게 설명하기가 매우 어렵게 됩니다.
그러나 15개씩 세 층으로 배열되었다고 본다면, 본절의 상태가 좀더 자연스럽게 풀립니다.
즉 창틀은 각 층에 한 줄씩 있고 각 층의 창은 방 맞은편에 서로 마주보는 창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Keil).
한편 이 골방들의 용도는 병기고 및 왕실 시위대의 거처 등이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Bahr).
4) 모든 문과 문설주를 다 큰 나무로 네모지게 만들었습니다(5절).
“[5] 모든 문과 문설주를 다 큰 나무로 네모지게 만들었는데 창과 창이 세 층으로 서로 마주 대하였으며”
'네모지게'(라바)는 문자대로 문의 모양을 사각형(square)으로 만들었음을 말합니다.
그런데 좀 이상한 것은 사각형의 문에서 문설주와 인방(6:31)은 당연히 사각형을 이를텐데 불필요하게도 '문설주'만 또 언급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많은 주석가들은 70인역(LXX)을 따라 '문설주'(메주자)를 '창틀'(메헤자)로 고쳐 읽습니다.
그렇케 되면 본절은 이 건물의 문 뿐 아니라 창문의 모양도 설명하는 셈이됩니다.
5) 주랑의 규모입니다(6절)
“[6] 또 기둥을 세워 주랑을 지었으니 길이가 오십 규빗이요 너비가 삼십 규빗이며 또 기둥 앞에 한 주랑이 있고 또 그 앞에 기둥과 섬돌이 있으며”
이 주랑은 벽대신에 기둥들로만 둘러져 있는 건물입니다.
그런데 주랑이 어떤 건물인가 하는 여부에 논란이 좀 있습니다.
혹자는 이 주랑의 길이가 레바논 나무 궁의 폭과 일치하는 점을 들어(2절) 이 주랑이 바로 레바논 나무 궁의 현관(porch)일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1)이 주랑이 성전과 거의 비등한 만치 커다란 크기이고(6:3),
(2)성전의 주랑은 그 폭이 성전의 폭과 일치하는데 비해 본절의 주랑 폭은 궁전의 폭과 일치하지 못하며(2절),
(3)이 주랑자체가 또 하나의 주랑을 갖고 있는 점 등으로 미루어, 이 주랑은 독립된 건물일 것으로 봅니다(Fergusson).
그러나 본절의 '주랑'(울람)이란 표현은 레바논 나무 궁과 이 건물 그리고 다음 절에 나오는 재판하는 주랑이 어떤 형태로든 상호 연결되어 있음을 시사해 줍니다.
이러나 사실은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서도 입증되는데, 즉 므깃도 궁의 유적을 통해 확인한 결과, 솔로몬 궁전은 분명 당시 수리아 북방과 아나톨리아 남방에서 주로 사용된 '비트-힐라리'(Bit-Hilani, 양 옆의 여러 개의 기둥이 세워져 있는 주랑을 통하여 넓은 실내로 들어가는 형태의 건축양식) 구조로 건축 되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섬돌(아브) - '섬돌'은 오르내리는 돌 층계입니다.
그런데 개역 성경 외에는 '아브'를 '섬돌'로 번역하지 않고 있습니다.
영역본들은 대개 건축물 상단의 수평 돌출 부분, 즉 '처마'나 '차양'의 뜻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공동 번역도 역시 '차양'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2. 재판정과 바로의 딸을 위한 집(7~8절)
1) 재판하는 주랑을 짓고 온 마루를 백향목으로 덮었습니다(7절)
“[7] 또 심판하기 위하여 보좌의 주랑 곧 재판하는 주랑을 짓고 온 마루를 백향목으로 덮었고”
보좌의 주랑 곧 재판하는 주랑. - 이 건물은 상아에 정금을 입혀 만든 화려한 보좌와 여섯 층계, 열두 사자 상들이 있는 곳입니다(10:18-20).
한편 본절의 '재판'(솨콰트)은 3:9의 '재판'과 동일합니다(대하 1:10,11).
따라서 이 건물은 왕의 주무(主務)를 수행하는 장소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입구나 현관의 의미를 지닌 주랑에서 왕이 백성들을 재판한 것은 이전 시대에 성문 앞에서 무리를 재판하던(삼하 15:2;룻 4:1, 2) 관습을 반영한 것이라 합니다(Stanley).
온 마루를 백향목으로 덮었고. - 이에 비해 성전의 마루는 잣나무로 덮었고 그 위에 금을 입혔습니다(6:16, 30).
2) 솔로몬이 거처할 왕궁은 그 주랑 뒤 다른 뜰에 있습니다(8절).
“[8] 솔로몬이 거처할 왕궁은 그 주랑 뒤 다른 뜰에 있으니 그 양식이 동일하며 솔로몬이 또 그가 장가 든 바로의 딸을 위하여 집을 지었는데 이 주랑과 같더라”
솔로몬의 거처할 왕궁. – 보좌의 주랑(재판하는 주랑) 뒤편에는 왕이 거처하는 궁이 있었습니다.
이궁은 레바논 나무 궁이나 재판하는 주랑과 달리 솔로몬이 사적인 생활을 하는 장소였습니다.
그 양식이 동일하며. -즉 재판하는 주랑과 같은 식으로 지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솔로몬의 거처가 재판하는 주랑과 같은 크기임을 의미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공작'(마아세)이 '솜씨', '기술'(wormanship, RSV)을 의미하므로, 솔로몬의 거처는 재판하는 주랑과 같은 기술과 양식, 그리고 재료가 사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즉 백향목과 상아 장식 등이 사용되어 매우 화려하게 꾸몄을 것입니다(10:18-20).
향편 본절로 미루어 6절의 주랑과 7절의 주랑은 서로 구별되는 별개의 것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7절의 주랑과 같은 식으로 지어진 솔로몬의 거처가 6절의 주랑처럼 기둥만으로 벽을 이룬 건물일리 없기 때문입니다.
그가 장가 든 바로의 딸을 위하여 집을 지었는데 이 주랑과 같더라. - 솔로몬 일찍이 결혼한 바로의 공주<3:1>를 위해 자신의 거처와 같은 식으로 지은 궁을 마련해 주었습니다(대하 8:11).
여기서도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같더라'가 규모의 동일함 보다는,
기술 및 재료의 동일함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한편 데니우스(Thenius)가 주장하듯 이 궁은 솔로몬의 모든 부인과 후궁들(11:3)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바로의 공주만을 위한 사저입니다(Hammond).
그렇다면 바로의 공주는 애굽의 위세와 더불어 솔로몬의 부인 중 으뜸의 지위를 갖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녀의 거처는 고대 동양의 왕궁 구조가 대부분 그렇듯이 왕의 기처와는 분리되어 그 뒤에 위치했을 것입니다(Keil).
전체적으로 보아 이처럼 왕과 왕비의 거처와 같은 사적 용도의 건물은 공적 용도의 건물(레바논 나무 궁, 기둥 주랑, 보좌의 주랑 등)에 비해 궁전의 안쪽에 위치했습니다.
3. 뜰과 집 안팎에 사용된 재료(9~12절)
1) 이 집들은 안팎을 모두 귀하고 다듬은 돌로 지었습니다(9절).
“[9] 이 집들은 안팎을 모두 귀하고 다듬은 돌로 지었으니 크기대로 톱으로 켠 것이라 그 초석에서 처마까지와 외면에서 큰 뜰에 이르기까지 다 그러하니”
안팎을. – 이 말이 궁전의 안쪽 지역과 바깥 지역을 일컫는 말인지, 단지 건물 벽의 내면과 외면을 일컫는 말인지 분명치 않습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의미를 모두 포함한다고 보는 것이 문맥상 자연스럽다. 즉 '2-8절에 소개된 모든 건물의 내면과 외면'을 통틀어 지칭하는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귀하고 다듬은 돌. - '귀하고'(야카르)는 가치있고(valuable), 값비싸며
(expensive), 희귀한(rare)시 뜻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다듬은'(가시트)은 '자르다'라는 뜻입니다.
즉 돌의 울퉁불퉁한 부분을 잘라너어 고르고 반듯하게 만들었음을 의미합니다.
크기대로 톱으로 켠 것. - 미리 설계된 규격대로 치수를 재어 잘라냄을 말합니다.
한편 '톱'(가라르)은 틉질하는 소리에서 유래된 의성어라 합니다.
그런데 솔로몬 건축 공사에 사용된 톱의 모양은 알려진 바 없습니다.
참고로 당시 에굽의 톱은 한쪽 날만 있고, 후대에 니므롯(북 바벧론, 미 5:6)에서 발굴된 톱은 양날을 가졌다고 합니다(Layard).
그렇지만 성경 기록상 톱은 다윗 때부터 이미 사용되었음을 찻아 볼 수 있습니다(삼하 12:31;대상 20:3).
초석에서 처마까지. - '초석'(마사드)은 건물의 다른 부분들이 이에 의지하여 세워지고 연결되는 크고 귀한 돌입니다(5:17).
그리고 '처마'(테파흐)는 그 위에 다른 건축물을 세우지 않는 지붕의 돌출부입니다.
따라서 초석에서 일종의 대유법(代喩法)적 표현입니다.
외면에서 큰 뜰에 이르기까지. - 여기서 '외면'(후츠)은 성전의 '바깥 뜰'(혹은 '큰 뜰')을 가리키는 표현일 것입니다(대하 4:9).
이렇게 추측하는 이유는 본절이 궁전의 건물 및 공간 전체를 지시하려고 의도하는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본절의 '큰 뜰'이 왕궁 건물을 둘러싸고 있는 뜰 전체를 지칭한다면(Ewald), 본절의 '외면'은 왕궁과 성전의 경계를 이루는 성전의 뜰을 의미할 것입니다.
공동 번역도 이런 입장을 취해 "야훼(여호와)의 전의 뜰"로 해석하였습니다.
2) 초석의 커기입니다(10절)
“[10] 그 초석은 귀하고 큰 돌 곧 십 규빗 되는 돌과 여덟 규빗 되는 돌이라”
귀하고 큰 돌. - 5:17 주석 참조.
십 규빗 되는 돌과 여덟 규빗 되는 돌. -왕실에서 사용되는 규빗(6:2)이 적용된다면, 왕궁의 기초석은 각각 길이 5.2-5.4m 폭 3.68-4.32m의 크기입니다.
3) 초석위에 크기대로 다듬은 귀한 돌도 있고 백향목도 있습니다(11절)
“[11] 그 위에는 크기대로 다듬은 귀한 돌도 있고 백향목도 있으며”
초석이 다만 "귀하고 큰 돌"로만 묘사된데 비해, 그 위의 돌들은
"크기대로 다듬은 귀한 돌"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성전 초석의 경우를 염두에 둘 때(5:17), 왕궁의 초석도 다듬질 안하지는 않았겠으나, 초석은 눈에 보이지 않거나 땅 속에 박히는 것이므로 상대적으로 거칠게 다듬어졌음을 암시받을 수 있습니다.
반면 초석 위에 세워지거나 꾸며지는 돌들은 보다 매끄러울 뿐 아니라 작았으리라는 것은 당연합니다(Hammond).
4) 큰 뜰 주위에는 다듬은 돌 세 켜와 백향목 두꺼운 판자 한 켜를 놓았습니다(12절).
“[12] 또 큰 뜰 주위에는 다듬은 돌 세 켜와 백향목 두꺼운 판자 한 켜를 놓았으니 마치 여호와의 성전 안뜰과 주랑에 놓은 것 같더라”
큰 뜰 주위에는. – 솔로몬의 앙궁에도 성전과 마찬가지로 2개 이상의 뜰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1) 본절의 '큰 뜰'이라는 표현 자체가 보다 작은 어떤 뜰을 전제하며, (2) 8절의 '다른 뜰'은 이를 암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여기서 '큰 뜰'은 분명 건물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뜰을 가리킬 것입니다.
다듬은 돌 세 켜와 백향목 두꺼운 판자 한 켜를 놓았으니 마치 여호와의 성전 안뜰과 주랑에 놓은 것 같더라. - 이는 성전의 안뜰과 동일한 방식으로 담을 둘렀음을 의미합니다(6:36).
본절에서 "...것 같더라"로 번역된 '웨라하차르'는 '또 (여호와의 전의)뜰도 그렇게'라는 뜻입니다.
이때 '또'에 해당하는 '와우'는 잠언서등에서 종종 나타나듯 비교를 나타내는 문법적 기능을 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마치...같더라"의 번역은 원문의 뜻을 잘 전달해 주고 있는 셈입니다.
주랑에 놓은 것 같더라. - 본절의 '주랑'이 성전의 주랑인지 궁전의 주랑인지 분명치 않습니다.
또 궁전이라 해도 그 중 어느 주랑인지 결정하기 어렵습니다.
추측에 의해 성전 주랑이 아니고 궁전의 기둥 주랑(6절)으로 주장하기도 하며(Keil), 또는 재판하는 주랑으로 주장하기도 하나(Rawlinson) 확증적인 근거는 없습니다.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성전 건축 이야기(6장, 7:13~51) 중간에 솔로몬의 왕궁 건축 이야기가 등장합니다(1~8절).
굳이 솔로몬의 왕궁 건립을 이곳에 배열한 것은, 성전과 왕궁을 나란히 읽도록 하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임재로 이스라엘은 흥왕을, 그분의 부재로 몰락을 경험할 것입니다.
솔로몬 왕궁은 13년이라는 오랜 시간에 걸쳐 완공되었을 정도로 규모가 크고 웅장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성전을 떠나시는 순간,
왕궁에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울 것입니다.
아무리 튼튼한 도성도 하나님이 지켜 주시지 않으면,
하나님을 거역하면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볕에도 그림자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2) 솔로몬의 왕궁 내에는 여러 기둥을 줄지어 만든 주랑이 자리합니다(7,8절).
이 주랑은 왕이 백성을 위해 사무를 관장하고 판결을 내리는 용도로 쓰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이와 동일한 모습으로 “바로의 딸을 위해”집을 짓습니다.
20년에 걸쳐 이루어진 성전과 왕궁 공사, 백성의 노역, 그리고 애굽과의 동맹을 통해 나라의 안전을 유지하려는 속셈을 읽을 수 있는 바로의 딸의 존재 등 어딘지 모르게 불안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솔로몬의 마음에 잔뜩 낀 욕심의 구름이 어른거리는 것 같습니다.
욕심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말씀 앞에서 내 욕심을 정당화하지 말고,
내 욕심을 해석하고 읽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3) 솔로몬은 귀한 돌들을 다듬어 왕궁의 기초를 놓고 아름답게 장식합니다(9~12절).
집의 기초에서 처마까지, 안마당에서 큰 뜰에 이르기까지,
정교히 조각한 돌과 백향목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왕궁을 짓는 데 사용된 석재나 건축 방식이 성전과 같은 것은
솔로몬 왕궁이 하나님이 성전에 부속됨을 암시합니다.
왕궁에서 다스리는 왕도 하나님께 통치권을 위임받은 대리자일 뿐입니다.
따라서 왕은 이름을 드러내거나 자신이 한 일을 과시하려는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하나님의 참된 통치를 이 땅에 구현해야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하늘의 영광을 이 땅의 왕에게 내려 주실 것입니다.
이것은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름받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소명이자 소망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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