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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사도행전8장4~25절
제목 :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하다
스데반은 성전과 율법을 거스렸다는 죄목으로 고소되어,
심문을 받을 때 스데반은 설교로 답변을 합니다.
스데반의 설교를 들은 사람은 마음에 찔였습니다.
마음에 찔린 그들은 둘로 나뉘었습니다.
하나는 그 해결방법을 사도들에게 물어 그리스도인들이 되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를 갈았습니다. 귀를 막았습니다.
큰소리를 지르고 일심으로 달려들었습니다.
그리고 성밖에 내치고 돌로쳤습다.
스데반은 순교를 당하면서도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보며 자기의 영혼을 주님께 부탁하였습니다.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바드시옵소서”(7:59절)
뿐만 아니라 원수를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7:60절).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사울은 스데반의 죽음에 대하여 마땅히 여겼습니다(1상반절),
박해의 결과 사도를 제외한 모든 기독교인들이 예루살렘을 떠나 도처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성도들이 각처로 흩어진 것은 핍박을 피해 도망하기 위함이었지만,
그 배후에는 복음의 세계적 확산을 도모하고자 한 하나님의 뜻이 작용하였습니다.
1.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함(4절)
“[4]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박해로 인해 흩어진 자들은 사마리아는 물론이고 베니게와 구브로 그리고 안디옥에까지 이르러 주의 복음을 증거했습니다(11:19).
*행11:19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교회사를 통해서 볼 때 박해와 순교는 교회 성장의 밑거름이었습니다.
2. 빌립의 전도(5~8절)
1)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5절)
“[5]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흩어진 기독교인의 활동에 대한 첫 번째 언급으로서 빌립이 소개되는데 사도들 중의 한 사람인 빌립(막 3:18)과 같은 이름입니다.
여기서 빌립은 예루살렘 교회의 일곱 집사 중의 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12사도 중 한 사람이었다면,
사마리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게 된 것을 보고,
베드로와 요한이 굳이 그곳을 방문해,
성령 받기를 간구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마리아 성은 '사마리아라 불리는 그 성' 이란 의미로 구약 시대 북쪽 이스라엘의 수도를 가리킵니다.
2) 무리가 빌립의 말을 따름(6절)
“[6]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 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이 표현은 빌립의 말에 권위가 있었음을 암시하며,
동시에 초대 교회의 복음 전파에 예수님 당시와 같이 표적이 큰 비중을 차지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6:8).
빌립을 통해서 나타나는 표적은 그가 전파하는 말에 권위를 부여하여,
사마리아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신뢰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을 나타냈습니다.
3) 빌립을 따는 이유 (7절)
“[7]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1)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나감
귀신들린 사람들이 크게 소리지르며 나갔습니다.
벧하우젠(Welhausen)은 '사람들에게서 더러운 귀신들이 울부짖으며 나갔다'고 번역하기도 합니다(Meyer, Bengel).
(2)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음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았습니다.
빌립에 의해 치유 받은 사람들이 영적인 불구자 뿐만 아니라,
육신적인 불구자까지 포함되었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4) 빌립의 사마리아 선교가 성공적이었습니다(8절)
“[8]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고 한 것은
복음의 궁극적인 목적을 시사해 주며,
또한 빌립의 사마리아 선교가 매우 성공적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앞 절에서 언급된 소외된 불구자들의 쾌유와 악령으로부터의 해방,
그리고 온 성의 기쁨은 복음이 수용된 곳에서 일어나는 마땅한 결과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짤막한 본문은 빌립의 선교활동의 결과에만 국한되지 않고 이 후에 있을 기독교 선교 활동의 핵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3. 시몬의 개종과 잘못된 신앙
1) 시몬의 개종 (9~13절)
(1) 마술을 행하여 자칭 큰 자라 함(9절)
“[9]그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 하니”
5-8절에서 언급되었던 빌립의 활동 내용과 그 결과에 대한 구체적 사례를 제시하기 위해 '시몬'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화제를 바꾸었습니다.
여기서 언급된 시몬은 본장 외에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습니다.
다만 초대 교회의 몇몇 자료에만 그의 신분과 활동이 언급돼 있습니다.
순교자 저스틴(Justin)에 따르면 시몬은 사마리아의 깃타(Gitta) 출신으로서 애굽에 건너가 철학과 마술을 배웠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시몬에게 '마술사'를 의미하는 '마구스'(Magus)라는 별명을 붙여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이레니우스'(Irenaeus)의 주장에 따르면,
시몬은 '영지주의'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 외경 '베드로행전'에서는 시몬이 로마에 있는 기독교인들을 거짓된 가르침으로 타락시킨 자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이야기들이 사실적으로 고증될 수 없지만 시몬이 초대 교회에 상당한 악영향을 끼친 인물이었습니다.
자칭 큰 자 - 시몬이 자신을 가리켜 '큰 자'라고 언급한 것은 다른 사람이 그에게 붙여준 별명인 '하나님의 능력'(10절)이라는 말로 미루어보아 하나님의 이름으로 마술을 행하면서 사람들을 미혹시킨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가 행한 마술이 어떤 형태인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아마도 그는 마술을 통해 병자를 고치거나 귀신을 내어 쫓기도 했으며,
점성술을 통해 예언을 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Lenski).
(2) 많은 사람이 그를 따르며 하나님의 능력이라 함(10절)
“[10]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따르며 이르되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
①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청종하여
마술사 시몬은 모든 계층에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하지만 빌립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은 시몬의 능력을 훨씬 능가하여 시몬과 그의 추종자들을 압도함으로써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게 됩니다(12, 13절).
②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 - 사마리아인들이 시몬에게 붙여준 별명은 그가 하나님의 능력을 행하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인식되었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시몬은 마술을 행하면서 그것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속였을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그가 예수를 믿었을지라도 자신의 마술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면 그를 통해서 영지주의가 나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후에 진행된 이야기로 보아 그는 사도들의 능력을 자신의 마술을 능가하는 마술 정도로 생각했으며, 뿐만 아니라 전수될 수 있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즉 그는 사도들을 굉장한 마술의 전수자로 보았습니다.
이런 점에서 '영지'(靈智)가 전수될 수 있다는
영지주의자의 일반적인 생각을 시몬 역시 비치고 있습니다.
(3) 시몬을 따르게 된 동기(11절)
“[11]오랫동안 그 마술에 놀랐으므로 그들이 따르더니”
청중들이 시몬을 따르게 된 큰 동기가 시몬이 행한 마술 때문이었음을 다시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마술의 영향은 하루 이틀 정도의 영향이 아니라 오랫동안 지속되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빌립의 선교 현장이 시몬의 마술 행위로 모든 사람들이 사로잡혀 있는 열악한 환경이었음을 말해줌으로써 시몬까지 예수를 믿게 한 빌립
의 전도가 상대적으로 매우 성공적이었음을 보여줍니다.
(4)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12절)
“[12]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그들이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하고,
그들이 믿고 남녀 다 세례를 받았습니다.
① 하나님 나라
- 하나님의 나라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들어간 하나의 영역입니다.
-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에 우리가 들어가게 될 미래의 영역이기도합니다.
-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0,21절)
-하나님 나라는 거대한 나무가 되는 작은 겨자씨이다.
그 나라는 마치 언젠가는 밀가루 전체를 부풀리게 될 누룩과도 같다(눅13:18~21).
-예수님께서는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답변하셨습니다.(요18:36절)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14:17절).
성경은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말할 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성경의 어떤 구절들은 하나님 나라를 하나님의 통치로 말씀합니다.
(2) 어떤 구절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가 지금 들어가서 그의 통치의 축복들을 경험할 수 있는 영역으로 말씀합니다.
(3) 또 다른 구절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에 비로서임하게 되며 그 때에 우리가 들어가서 그의 통치의 완전함을 경험하게 될 미래의 영역으로 말씀합니다.
이렇게 보면 하나님 나라는 구절들마다 세가지 다른 의미를 지닌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절들마다 그 문맥 속에서 뜻을 파악하고 그런 후에 전체적인 해석 가운데서 서로 하나로 묶어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②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 이는 본서의 핵심 주제로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것입니다.
여기서 특히 예수의 이름은 마술사인 시몬의 가르침과 구별된 의미로도 사용되었을 것입니다.
③ 저희가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음 - 빌립의 선교는 시몬의 막강한 영향력을 누름으로써 많은 추종자들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그 결과 청중들은 빌립의 설교를 듣고, 세례를 받음으로써 시몬의 영향에서 벗어나 기독교인이 되기로 결단했습니다.
(5)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음(13절)
“[13]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시몬도 믿고 -
사마리아 성의 변화가 파격적임을 묘사하는 이 한 마디는 빌립의 선교 활동이 성공적인 것이었음을 확증해 주고 있습니다.
시몬의 추종자들이 기독교인으로 변화되고,
최종적으로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가장 많이 행사하던 시몬이 기독교인으로 변화 된 것은 그곳이 거의 기독교화 되었다는 암시라고도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 빌립에 대한 시몬의 반응을 묘사하는 본문은 11절에서 묘사된 시몬에 대한 청중들의 반응과 대비되고 있습니다.
즉 모든 사람들이 시몬의 마술에 놀라는 장면과 시몬이 빌립의 능력을 보고 놀라는 모습은 서로 대조되어 빌립의 능력과 영향력이 대단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몬이 빌립을 추종하여 따라다닌 주된 목적은,
자신보다 더 큰 능력의 소유자임을 인정하여 그 능력을 마술처럼 배워보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을 것입니다.
표적과 능력 행사의 내용은 7절에 언급된 내용과 동일한 것이며,
당시 선교 활동의 중심 내용이 설교였지만 사실 많은 사람들을 기독교화 시킨 큰 요인은 역시 기적을 행한 신비한 능력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를 방문함 (14~17절)
(1) 베드로와 요한을 사마리아로 보냄
“[14]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1절에서 언급 된 바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사도들은 빌립의 사마리아 선교 활동의 성공적 보고를 듣고 두 사도를 파송하기에 이릅니다.
사도들 중에서 기둥같이 쓰임 받던 두 사도가 빌립의 전도지를 방문한 것은 두 가지의 큰 의미가 내포되고 있습니다.
① 빌립의 선교 활동에 대한 확인입니다.
즉 빌립의 선교 활동이 정당한 것이고,
사마리아인들이 기독교인으로 인정됨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② 복음은 어떠한 벽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해 보여준 것입니다. 즉 사도들의 대표라 할 수 있는 두 사람이 유대인들에 의해 경멸받는 이방인과 특히 사마리아인에 대한 편견의 벽을 허물고 모든 사람의 기쁨을 위해(8절) 사마리아를 찾아감으로 전정한 복음의 정신을 실천한 것입니다.
(2) 성령 받기를 기도함(15절)
“[15]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이로 보아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 지방으로 내려간 목적은 빌립의 선교 활동으로 나타난 성과를 더욱 견고히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미 이들에게는 유대와 사마리아간의 벽이(마 10:5;눅 9:51-53) 없어졌고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증인이 되라고 한 예수님의 예언이 성취되고 있습니다.
(3) 아직 성령 내리신 일이 없었다 (16절)
“[16]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더라”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
빌립의 선교 활동에 의해 그들이 믿고 세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성령을받지 못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1) 유대인에 대해 나쁜 감정을 지닌 사마리아인들에게 두 사도가 와서 안수하여 성령이 임하게 됨으로 예루살렘 교회와 사마리아인들을 한데 묶어주기 위해서 였을 것이다.
(2) 사도들에 의해 성령이 임함으로써 사도적 권위를 강조하기 위해서 였을 것이다.
(3) 빌립이 능력을 행하면서 전도하기에 바빴으므로 안수하지 못했을 것이다. 여기서 어떤 것이 정확한 추정인지는 알 수 없다.
(4)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17절)
“[17]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베드로와 요한이 안수함으로써 성령을 받고 참된 기독교인이 되었음을 확인하는 이 구절은 성령을 받기위한 안수의 필연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안수를 통해 성령을 체험하기도 하였지만(9:17),
말씀을 듣는 가운데 성령이 임하는 경우도 있고 (10:44),
여럿이 모인 곳에 임하기도 합니다(2:1-4).
그러므로 본문을 이해함에 있어서 안수를 통해서만 성령을 받는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며, 또한 사도에게만 성령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생각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도에 의해 성령이 강림한 것은,
다음 두 가지 의의를 지닙니다.
첫째는, 지방 교회는 사도들에 의해 인정을 받아야 됨을 암시합니다.
둘째는, 사도권에 따라 사마리아인들이 기독교인임이 최종적으로 확인되고 선포됨을 강조합니다.
3) 시몬의 잘못된 신앙(18~20절)
“[18]시몬이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19]이르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20]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1) 성령 받는 것을 목격한 시몬(18절상)
본절에는 시몬이 어떻게 성령받는 것을 보았는지에 대해서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아마 방언이나 예언을 통해 성령 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무튼 성령 강림으로 인해 외적 현상이 나타났음이 분명하며,
이 현상을 시몬이 목격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 강림의 현장에 있었던 시몬이 그 체험을 갖지 못했다는 사실은 그가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았음을 어느 정도 시사해 줍니다.
이러한 암시는 다음과 같은 내용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즉 성령 받는 것을 목격한 시몬은 두 사도에게 돈을 건네주고 그 권능을 팔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성령받은 사람에게서 어떤 신비한 현상을 시몬이 발견하고 마술을 전수(傳授)하듯이 성령도 전수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또한 13절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시몬이 빌립을 추종한 것이 표적과 권능을 보게 된 때문이라는 점과 시몬이 마술사였다는 점에서 아마도 성령을 주는 능력을 갖는다면 무엇이나 자신의 마술 능력을 능가하는 어떤 것을 행할 수 있다고 믿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아마도 성령을 모든 기적을 일으키게 하는 원천이 되는 것으로 이해하였을 것입니다(Bauernfeind).
즉 그는 자신이 돈을 주고 마술을 전수받은 것처럼 성령을 강림케 할 수 있는 능력을 배우고자 했을 것입니다.
(2) 돈을 드려 성령을 사려함 (18하반절 19절)
“[19]이르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이 표현도 18절에서와 같이 사마리아인들이 두 사도의 안수를 받으면서 성령 체험을 하는 그 장소에 시몬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성령 체험을 하지 못했음을 암시합니다.
여기서 '권능'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여수시아'로 1:8에서 '권능'으로 번역된 '뒤나미스'와 의미상 차이가 있습니다.
즉 '뒤나미스'는 성령을 통해 나타나는 외적 현상을 강조하는 반면,
'여수시아'는 내적 현상을 강조하는 용어입니다.
여기서 시몬이 외적 현상을 의미하는 '뒤나미스'를 나타낼 수 있는 '권세'를 요구했음을 암시합니다.
(3)성령을 돈으로 거래하려는 발상 자체는 곧 신성 모독입니다.(20절)
“[20]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하나님의 선물을 돈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
베드로가 말한 성령은 하나님이 주는 선물입니다.
따라서 선물이 한쪽에서 다른 한쪽에게 무상(無償)으로 주어지듯이 성령 역시 하나님에 의해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성령은 돈 주고 거래할 수 있는 성격이 전혀 아닙니다.
또한 받은 선물에 대해 돈을 지불하는 것도 선물을 준 자에 대한 모독 행위가 됩니다.
따라서 성령을 돈으로 거래하려는 발상 자체는 곧 신성 모독입니다.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 성령을 돈으로 얻겠다는 신성 모독적인 발상에 대해 베드로는 가차 없는 저주 선언으로 대용하고 있습니다.
'망할지어다'에서 전치사 '에이스'('안으로')가 목적격의 명사를 동반해서 서술적 의미로 사용되었는데, 이러한 용법은 70인역의 일반적인 예라는 점에서 본문이 70인역에 영향받았을 가능성을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한편 베드로의 저주에는 재물이 지닌 위험성을 지적하여 종교 타락의 원인이 되는 재물을 멀리 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즉 종교는 돈이 개입된 흥정물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또한 돈에 대한 집착 때문에 신앙을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의미로도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에게 내린 멸망의 저주를 연상하게 합니다(5:1-10).
따라서 본문은 성령 은혜가 돈이나 인간의 욕심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8:21
“[21]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
이 말을 혹자는 시몬에게 베드로가출교(黜敎)를 선언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Haenchen, Neil).
그러나 이는 시몬이 기독교인이 된 사실(13절)을 부정하고 내어 쫓으려는 것이 아니라
첫째, 시몬을 책망하여 올바른 기독교인이 되게 하려는 의도와(22절)
둘째, 시몬과 같이 불순한 의도와 잘못된 신앙을 갖는 사람들은 기독교인으로서 용납될 수 없음을 선언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두 사도의 행위는 17절에서와 같이 온전한 기독교인을 인정하고 보증하며 거짓된 기독교인을 구별함으로써 예루살렘 교회와 사도의 권위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8:22
“[22]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
회개를 촉구하는 베드로의 이 말은 20절의 저주와 21절의 냉혹한 책망이 단순한 공격적 발언이 아니라 시몬으로 하여금 참된 기독교인이 되도록 하기 위한 말이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몬의 불경건하고 하나님 앞에 바르지 못한 마음을 '악하다'고 다시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서 사용된 헬라어 '카키아'는 부패된 심적 상태뿐 아니라 도덕적인 악행도 포함합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시몬의 부패된 심적 상태에만 국한되어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다음에 이어지는 구절에 의해 입증되었습니다.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 이는 시몬이 행동으로보다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범죄 했음을 보여주면서 마음에 지닌 사악함을 회개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시몬은 빌립이 행하는 표적을 보고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았을지라도 불순한 동기로 예수를 믿기로 작정한 듯합니다.
한편 '혹'으로 번역된 '에이 아라'는 조건절을 강조적으로 이끄는 표현으로 회개하고 기도해야만 용서받을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개역성경은 그 강조적 의미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고 오히려 그 의미를 불명확하게 번역했습니다.
“[23]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
악독이 가득하며 -
이에 혹자는 시몬이 미신과 마술의 쓴 뿌리에 여전히 집착하고 있거나 불의에 대한 벌을 받게 될 쓴 쓸개즙을 향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합니다(F.F. Bruce).
이와 유사하게 마샬(I.H. Marshall)은 시몬이 쓰디쓴 심판을 재촉하고 있는 것으로도 해석합니다.
따라서 본절에서는 시몬이 예수를 받아들였으나 옛날의 사악한 습성을 버리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불의에 매인 바 - 불의에 속하여 있는 시몬의 실존(實存) 상태를 묘사하고 있는 이 구절은 사 58:6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회개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회개는 악으로부터의 확실한 해방이며,
또한 악으로부터의 분리이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인간 실존 상태는 시몬에게만 국한되어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요구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4]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않게 하소서 하니라”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
베드로의 신랄한 비판에 대한 시몬의 반응은 자신을 위한 기도를 요청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베자 사본은 '울음을 멈추지 않고 통곡하였다'라는 구절을 삽입시켜 시몬이 베드로의 책망을 듣고 깊이 회개했음을 나타내었습니다.
그래서 몇몇 학자들은 베자사본의 첨가를 따라 시몬의 회개를 기정 사실화했습니다(Blass, Wendt).
그러나 시몬은 베드로의 저주가 자신에게 내려질 것을 두려워했을 뿐 진실한 회개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많습니다(Meyer, Bengel, Alford, Knowling, Lenski).
22절에서 베드로가 그에게 회개하고 기도하라는 권면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회개하지 않고 베드로에게 기도를 요청한 것은 여전히 기독교에 대한 오해를 갖고 있거나 아니면 불신앙 속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본 구절을 시몬의 회개로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25] 두 사도가 주의 말씀을 증언하여 말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갈새 사마리아인의 여러 마을에서 복음을 전하니라”
두 사도가...예루살렘으로 돌아갈새 -
이 표현은 선교의 중심이 예루살렘 교회라는 점을 암시하는 말입니다.
즉 모든 지방 교회는 교회의 중심인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확인받아야 한다는 뜻으로 교회의 정통성과 관계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상은 바울에 의해 이방 지역 선교가 본격화되면서 퇴색 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