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하는 세상
손 원
세수만 하고 꾸미지 않은 민낯, 맨발, 노브라, 노팬티 등 용품 미착용 상태를 언급하면 어색하다. 민낯, 맨발, 노브라, 노팬티가 본래의 모습으로 태곳적부터 그렇게 살아왔다. 집 안에 있을 때 치장하지 않고 맨몸으로 있으면 더없이 편안하다. 특히 잠잘 때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잔다는 사람도 있다. 한때 혼자 원룸 생활할 때 그런 적이 있었다. 새장을 나온 새처럼 홀가분함을 만끽했다. 그런 상태가 좋긴 하지만 무인도가 아닌 이상 우리는 늘 싸매고 가리고 살아야 한다. 이슬람권 여성들은 히잡으로 얼굴을 모두 가리고 눈만 들어낸 채 외출을 한다. 그들만의 문화와 생활방식이겠지만 무척 답답해 보인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마스크를 끼고 몇 년을 지냈다. 답답했지만 건강을 지키기 위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했다. 요즘 마스크 착용이 자율로 바뀌었지만, 외출 시 여전히 마스크를 착용하는 사람이 꽤 있다. 몇 년 착용하다 보니 익숙해져 미세먼지에 대비하고, 감기 예방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꾸밈없는 자연 상태가 좋을까, 아니면 적당히 포장하고 꾸미는 것이 좋을까는 사람의 취향이기에 가타부타할 것은 아니다. 보는 이의 눈높이에 맞추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고 보면 인간의 손이 미치는 모든 것은 적당히 포장되어 있다. 포장하지 않은 생일케익은 생각조차 할 수가 없다. 우선 부드러운 빵과 덧입힌 생크림 케익을 그대로 들고 다닐 수도 없고 품격도 떨어진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의 모습은 치장 이상으로 포장의 극치다. 때에 따라서는 할 수 있는 최선의 포장을 해야 하고 그것이 보는 이들에게 호감을 갖게 한다. 한편으로 지나친 포장은 오히려 부작용을 초래하기도 한다. 양말 한 켤레를 선물하면서 아름드리 상자에 담아 겉모양을 지나치게 화려하게 포장했다면 어울리지 않는다. 즉 과대포장으로 개봉하는 이가 실망할 수도 있다. 포장 개봉 시 내실이 부실하면 이내 실망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이런 경우를 접해 봤을 것이다. 과대 포장은 먼저 선물 한 사람에게 실망하고, 배보다 배꼽이 큰 것에 대한 손실 감을 갖는다. 엊그제 손자에게 줄 전자칠판을 홈쇼핑으로 구입했다. 케이스에 들어 있어, 그냥 줘도 되지만, 아내는 포장용지로 예쁘게 포장해서 두 놈이 올 때 줬다. 놈들은 포장에는 관심 없고 포장지를 단숨에 벗겨 펜을 들고 끄적거리며 좋아했다. 겉보다 내용에 관심이 큰 것이 본래의 모습이다. 그렇다고 포장 하지 않고 구입한 그대로 선물한다면 어딘지 부족한 느낌이다. 상품은 구입 시 어느정도 포장이 되어 있지만, 그대로 선물함은 성의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가급적 예쁘게 재포장하여 내밀면 성의가 있어 보여 기분이 좋다.
포장은 내용물의 가치를 높인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했다. 포장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누구나 손에든 것에 대해서는 포장에 관심이 적다. 사과 한 봉지를 사드라도 직접 먹을 것이라면 비닐봉지에 넣어 가져온다. 즉 포장과는 거리가 멀다. 남에게 선물할 사과라면 박스째로 구입한다. 별도로 포장하지 않고 그대로 선물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박스 포장이 잘 되어 있다. 더욱이 박스에는 생산자의 전화번호까지 있어 생산품에 대해 책임을 져 소비자의 신뢰를 얻고자 한다.
선거철이면 자신을 드러내려고 꾸밈과 포장에 최선을 다한다. 남에게 돋보이려고 함이다. 학력, 경력은 물론이고 쉽게 드러나는 외모, 차림새까지 신경을 쓴다. 물론 그렇게 하는 것을 나무랄 일은 아니다. 자기 PR이라고 했듯이 자신과 상대방 모두에게 필요하다. 하지만 허위, 과대포장이 문제가 된다. 그것은 상대방의 판단을 흐리게 하여 이득을 취하려는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포장은 스스로 함이 원칙이다. 남이 포장 해 줄 수도 있지만 허와 실의 구분이 어렵다. 양심에 따라 스스로 포장 함이 마땅하고 평가 받을 수 있다. 인생 포장은 인생 역정을 두고 하기에 오랜 기간과 의미 있는 삶, 지식, 능력, 도덕성 등 모든 것이 포함된다. 인생 포장은 프로필이라 할 수 있다. 프로필은 길어야 한 페이지 정도이고, 단 몇 줄에 불과할 수도 있다. 거기에 살아온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다. 프로필을 담는 상자는 크기 제한이 없다. 몇 줄의 프로필 일지라도 보석처럼 보일 수도 있고, 수십 줄의 프로필일지라도 하자가 있다면 하잘것없을 수도 있다. 얼마나 값지고 훌륭한 지는 그가 살아온 인생 역정에 달려있다. 인생 역정의 포장은 줄이지도 늘리지도 않고 객관적이어야 한다. 내실있는 포장은 기본이고, 귀감 되는 삶이 포함되면 세인의 호평을 받을 수 있다. 지금까지 나의 삶을 포장해 보자. 세줄 남짓한 나의 프로필이 나돌고 있다. 나의 저서에 표기 된 프로필은 나름 나를 포장해 놓은 것이다. 세 줄의 프로필은 평범하기는커녕 초라 해 보인다. 그렇다고 과대 포장할 수는 없다. 앞으로 더욱 멋진 삶으로 보석처럼 빛나게 포장하여 나를 드러내 보고자 한다.
※ 2024. 1. 31. 고령신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