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강원도와 경기도를 가다
고양
막걸리 박물관 여러 척의 나룻배를 이어 만든 다리가 놓였다고 해서 붙여진 경기도 고양시의 ‘배다리’. 이곳에 ‘대통령의 막걸리’를 빚은 술도가로 유명한 ‘능곡양조장(현 배다리 술도가)이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막걸리를 즐겨 마셨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 당시부터 능곡양조장을 운영해 온 이가 박관현(75세)관장이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1966년 여름, 대통령은 당시 서울 시장과 고양시에 있는 골프장에 다녀오는 길에 시원한 막걸리 한 잔이 하고 싶었다. 그래서 들어간 곳이 인근 삼송동에 있는 ’실비옥‘이라는 주막이었다. 막걸리 한 잔을 들이켰는데 그 맛이 너무 좋아서 어디 막걸리냐 물었더니 능곡양조장에서 빚은 막걸리라고 했다. 대통령의 입맛을 한 순간에 사로잡은 덕분에 그 뒤 이곳 막걸리는 청와대에 진상(進上)되는 막걸리가 되었다.
청와대 납품 막걸리 1965년에 쌀로 술을 빚는 것을 금지시키고 밀가루 막걸리를 정착시키려고 한 장본인인 대통령이, 정작 자신은 쌀막걸리를 마신 것이 되지 않는가. 얄궂은 세상살이다. 청와대 납품 막걸리라는 훈장을 얻었지만 그만큼 애로사항도 많았다고 한다. 양조장이 특별 관리 대상이 되다 보니 관할 경찰서 관계자가 갑자기 들이닥쳐 막걸리 보관실을 검사하기도 했다고 한다. “대통령이 마시는 술을 빚게 되니까 위생복을 입으라고 하더라고. 의사가 입는 허연 가운을 입고 작업을 했지.” 박관장은 그 시절을 추억하며 허허 웃는다.
농사를 권장하던 대통령의 술 막걸리를 가리켜 ‘오덕삼반(五德三反)’이라고 한다. 오덕(五德)이라 함은 취하되 인사불성일 만큼 취하지 않음이 일덕, 새참에 마시면 요기되는 것이 이덕, 힘 빠졌을 때 기운 돋우는 것이 삼덕, 안 되던 일도 마시고 넌지시 웃으면 되는 것이 사덕, 더불어 마시면 응어리 풀리는 것이 오덕이라는 말이다. 삼반(三反)을 보자. 놀고먹는 사람이 막걸리를 마시면 속이 끓고 트림만 나며 숙취를 부른다 해서 근로지향의 반유한적(反有閑的), 서민으로 살다가 임금이 된 철종이 궁 안의 미주를 마다하고 토막의 토방에서 멍석 옷 입힌 오지항아리에서 빚은 막걸리만을 찾아 마셨던 것처럼 서민지향의 반귀족적(反貴族的), 군관민이 참여하는 제사나 대사 때 합심주로 돌려 마셨으니 평등지향의 반계급적(反階級的)이라는 것이 삼반을 의미한다. 서민 지향의 반귀족적인 막걸리. 막걸리를 찾았다는 철종처럼 농가 출신인 박정희 전 대통령도 막걸리를 찾았는지 모른다.
궁중에서 전해진 비법 박물관 1층 시음장과 마당에 설치된 텐트 안에서는 배다리술도가에서 빚은 막걸리를 마실 수 있다. 막걸리를 주문하자 주전자에 넣은 쌀막걸리와 함께 먹음직스럽게 붉은 빛이 도는 배추김치가 나왔다. 쌀 90%, 소맥분 10%, 전통누룩을 사용하지 않는 대신 소맥분 입국을 사용해 술을 빚는다. 10%의 소맥분은 입국을 만드는 데 사용한다. 잡맛이 없는 깨끗한 맛이 일품이다. 차게 해서 마셔도 좋고 차지 않은 상태에서 마셔도 목넘김이 부드럽다. 박 관장의 막걸리에는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비법이 있다. 창업자인 1대 박승언 씨는 궁중상궁으로부터 술 빚는 법을 전수받았다. 조선 말 철종 때 퇴궐한 상궁은 궁에서 ‘전약(한방을 다리는 관직)’이었는데 궁중 술에도 정통했다. 그 비법을 살려 빚은 술의 맛이 좋아 장안에 평판이 자자했다고 한다. 그 비법 중 몇 가지가 구전으로 나마 내려와서 지금도 술 빚는 데 응용되고 있다.
포천
군대 마케팅의 성공 신화 막걸리 하면 포천, 포천하면 막걸리를 떠올린다. 이렇게 된 데에는 ‘이동주조’의 창업자인 고(故) 하유천 씨의 공적이 가히 크다고 할 수 있다. 황해도 출신인 하유천 씨는 조선 시대에 이곳에서 빚은 술이 임금님 수라상에 올랐다는 이야기와 함께 해발 904m 백운산의 맑은 물이 모여 흐르는 백운계곡 지하 암반수의 물맛을 보고 확신을 가졌다고 한다. 포천의 물맛이 좋다는 것은 예부터 알려져 있었다. 그는 당초 암반수를 사용해 청주, 소주, 막걸리를 빚었으나 점차 막걸리에 전념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군대 마케팅’을 위해서였다. 경기도 북부에 있는 포천에는 군부대가 집중되어 있다. 1960~70년대에는 군부대에 막걸리가 공급되었다. 식량의 자급자족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그 시절 만복감과 영양을 함께 보충할 수 있는 막걸리는 군인들에게 좋은 먹거리였다. 포천막걸리는 포천에서 군복무를 마친 장정들이 입소문을 내면서 전국적으로 유명해졌고, 이동주조의 ‘포천이동막걸리’가 대표적으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 이동막걸리가 유명해지면서 그 후광 효과로 포천의 대표 먹거리인 ‘이동갈비’도 덩달아 인기를 얻게 됐다.
전국의 술독을 모아라 현재 ‘이동주조’를 운영하는 이는 하유천 씨의 딸 하명희 이사다. 지금도 여전히 항아리 술독에 술을 빚는 것은 그녀의 아버지 하유천 씨가 ‘항아리 예찬가’로 불렸을 정도로 옹기 술독을 고집했기 때문이다. “술은 숨 쉬는 항아리(술독)에서 빚어야 좋은 맛을 내고 부드러움도 오래 간다.” 그는 전국을 돌며 술 담는 항아리를 수집했다고 한다. 어른 두 명은 족히 들어갈 것 같은 400리터의 큰 술독은 일제 강점기부터 사용되어 온 것이다. 그의 집념 덕분에 ‘이동주조’는 한국에서 가장 많은 항아리 술독을 가진 양조장이 되었다. “항아리는 스스로 온도를 조절합니다. 온도에 따라 호흡을 하지요. 스테인레스 발효통은 스스로 온도 조절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냉각수 파이프를 넣어 조절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된장이나 김치와 같이 술을 자연적으로 발효하고 숙성시켜 좋은 맛을 내는 데는 항아리만큼 좋은 것이 없지요.”
일본에서 막걸리를 빚지 못하는 이유 현재 ‘이동주조’에서는 세 종류의 생막걸리(쌀, 밀가루, 동동주)와 살균막걸리(쌀, 호박, 검은콩, 더덕, 동동주 등)를 빚고 있다. 이동주조는 1993년에 처음으로 일본에 막걸리를 수출했다. 일본 수출이 점차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일본법인 ‘이동재팬’을 설립했으며 일본의 대형 슈퍼 등에서도 이동막걸리가 판매되고 있다. 그녀는 맥주처럼 살균막걸리도 차갑게 마시는 것이 맛있다고 한다. 그녀는 일본에 직접 막걸리 생산 라인을 갖추는 것에 대해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라며 그러나 “이동막걸리를 일본에서 생산하는 것은 어렵지요” 하고 확고하게 말한다. 그 이유는 역시 ‘물’이다. “제조 방법은 어디든 비슷하지만, 맛의 90%는 물이 좌우합니다.” 물을 고집하는 것은 선대로부터의 내림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