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조광수-김승환 커플의 ‘당연한 결혼식’이 7일 오후 6시 청계천 광통교에서 열렸다. |
구월의 어느 멋진 날이었다. 환호와 눈물이 교차한 결혼식이었다. 김조광수-김승환 커플의 ‘당연한 결혼식’이 7일 오후 6시 청계천 광통교에서 치러졌다.
둘은 식에 앞서 하객들을 맞이했다. 그리고 “법이 인정하든 안 하든 우리는 부부다”라고 공표했다.
축하공연이 이어졌고 축하인사가 건네졌다. 25살의 레즈비언, 24살의 평범한 게이라 밝힌 이들이 무대에 올라 언젠가 자신의 미래가 될 이 날을 꿈꾸며 축하했다.
한 시인은 축시를 읽었다. 시인은 축시에서 “이날은 (이 세계에서) ‘없는 것’들이 태어난 날”이라며 “(없는 것들) 그 사이 사이에서 이 둘이 손을 잡아 주고 있다”라고 했다.
김조광수 씨의 노모는 무대에 올라 둘의 결혼을 축하하며 세상에 외쳤다. “부모님들, 꼭꼭 숨어있지 말고 앞으로 나와 주시라. 속 태우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 자녀들을, 나와 함께 힘 모아 보호해줍시다!” 그 말에 객석에서 환호와 울음이 동시에 터졌다. 둘은 노모 앞에 절을 올렸다.
마침내 두 개의 부케가 던져졌다. 오래된 친구가, 그리고 이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참석한 이름 모를 이가 부케를 받았다. 환호와 축하의 인사가 쏟아졌다.
식은 세 시간 동안 이어졌다. 준비된 객석은 일찍이 차서 사람들은 양옆으로 뻗어있는 청계천 다리를 따라 수놓은 무지개 깃발과 함께 자리를 채웠다.
부부가 된 두 사람은 낯간지러운 ‘부부생활 열 가지 다짐’도 읊었다.
승환 씨는 바람은 꿈속에서만 피우겠다 했고, 당신이 아무리 바빠도 하루에 30분 이상 대화 나누겠다고 했다. 당신의 흰머리는 내가 염색해주겠다 약속했으며 당신의 나이 듦을 아름답게 지켜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당신이 힘들거나 아플 때”까지 이야기했을 때, 그는 잠시 멈췄다. 눈물이 고였다. 말 잇기가 힘든 듯 먹먹해하다 다시 운을 뗐다. “당신의 손과 발이 되어주겠습니다”라고 문장을 마쳤다.
광수 씨도 약속했다. 화나고 싸워도 집은 절대 나가지 않으며 첫눈에 반한 그 순간을 잊지 않고 살겠다고 했다. 당신을 다른 사람과 절대 비교하지 않으며 민주주의의 기본인 표현의 자유, 정치·사상의 자유를 보장하겠으며, 마지막으로 사랑을 표현하는데 인색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이어 “사랑한다” 말했고 승환도 “나도”라며 화답했다.
어느 멋진 날이었다.
▲부부가 된 김조광수-김승환 씨가 김조광수 어머니에게 절을 올리고 있다. |
그러나 식이 진행되는 동안 결혼을 반대한다며 난입한 이들도 있었다. 한 남자는 자신의 인분과 된장을 섞은 오물을 무대에 뿌렸다. 그 오물은 축하공연을 위해 무대에 섰던 지보이스(G_VOICE) 단원들이 오롯이 맞았다.
후에 뒤풀이 자리에서 지보이스 단원들은 '똥물 티셔츠'를 선물로 증정한다며 ‘신혼부부’에게 주었다고 한다. 승환 씨는 받자마자 그 티셔츠를 입었고 광수 씨는 그 티셔츠에 입을 맞췄다 한다.
구월의 어느 멋진 날이었다.
전날부터 결혼식장 옆에선 이 결혼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방해가 있었고 그보다 오래전부터 이들을 혐오하는 자들이 있었다. 그 모든 시간을 지나 이 자리에 그들이 섰다.
아이러니하게도 ‘저들의’ 존재가 ‘당연한 결혼식’에 의미를 더했다. ‘저들의’ 존재가 지나온 이들의 삶을 투영해 보여줬다. 그래서 아팠고 더러는 눈물 흘렸으며 그리하여 사람들은 더욱 축복을 보냈다.
사랑하여 결혼한다고 한다. 사회적으로 공표하는 것이자 승인받고자 함이다. 이 결혼은 현 ‘제도’를 옹호하고 낡아빠진 제도 안에 들어가고자 함이 아니라 그 경계를 비틀고 지우는 것이리라. 결혼 ‘제도’에 대해 묻고 사랑에 대해 묻고 차별에 대항하는 축제였다. 구월의 어느 멋진 날에 열린.
'김조광수-김승환의 부부생활 열 가지 다짐'
- 김승환
하나, 바람은 꿈속에서만 피우겠습니다. 둘, 당신이 아무리 바빠도 하루에 30분 이상 대화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셋, 흰머리가 있다고 구박하지 않고 염색해주도록 하겠습니다. 넷, 아무리 화가 나도 우리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다섯, 어느 순간에도 당신의 손을 놓지 않겠습니다. 여섯, 얼굴에 나이의 그림이 그려지더라도 아름답게 지켜보겠습니다. 일곱, 매일 진실되게 사랑한다는 말 하겠습니다. 여덟,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겠습니다. 아홉, 당신이 힘들거나 아플 때, 당신의 손과 발이 되어주겠습니다. 열, 지나치게 나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고 다름을 존중하겠습니다.
- 김조광수 하나, 당신의 잔소리까지 사랑하겠습니다. 둘, 화가 나도, 싸워도 집을 나가지 않겠습니다. 셋, 매일 30분 이상 꼭 대화를 나누겠습니다. 넷, 집에 국정원 직원들이 압수수색 할 때가 아니면 고함을 치지 않겠습니다. 다섯, 첫눈에 반한 그 순간을 잊지 않고 살겠습니다. 여섯, 다른 사람과 절대 비교하지 않겠습니다. 일곱, 자주자주 칭찬하겠습니다. 여덟,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아홉, 민주주의의 기본인 표현의 자유, 정치․사상의 자유를 보장하겠습니다. 열, 사랑을 표현하는데 인색하지 않겠습니다. 사랑해. |
▲나치 정권은 동성애자들에 대한 표식으로 가슴에 분홍색 역삼각형 표식을 달았다고 한다. 그렇게 동성애, 동성애자를 상징하는 색이 된 ‘분홍’ 풍선이 이날 결혼식장을 가득 채웠다. |
▲“LOVE NOT HATE! 저들은 혐오하고 우리는 사랑한다!” - 동성애자인권연대 |
▲“이성애자 가족만의 권리를 동성애자를 포함한 모두에게!” |
▲결혼식 전 진행된 기자회견 모습. |
▲축의금 부스. 축의금은 성소수자 인권센터 ‘신나는 센터’ 건립을 위해 쓰인다. |
▲준비된 객석은 일찍이 차서 사람들은 양옆으로 뻗어있는 청계천 다리를 따라 수놓은 무지개 깃발과 함께 자리를 채웠다. |
▲“며느리가 남자라니 농번기에 좋겠구나” 눈길을 끈 동성애자인권연대 팻말. |
▲영풍문고 쪽 청계천 입구에 있던 피켓들. “인류를 파멸케 하는 동성결혼 척결하자” 등 동성애 혐오 발언들이 적혀 있다. |
▲결혼식을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 |
▲축하인사를 하는 민주당 진선미 의원. |
▲축하인사를 하는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
▲에이템포의 축하공연. |
▲이날 사회를 본 변영주·김태용·이해영 감독. |
▲강허달림의 축하공연. |
▲‘몰래한 사랑’을 개사한 노래를 부르며 등장한 김조광수 감독. |
▲‘몰래한 사랑’을 개사한 노래를 부르며 등장한 김조광수 감독. |
▲김조광수-김승환 커플은 ‘몰래한 사랑’을 개사한 뮤지컬을 선보이며 결혼식 오프닝을 시작했다. |
▲김조광수-김승환 커플이 고 앙드레김 패션쇼 피날레 장면을 흉내 내며 노래를 마무리했다. |
▲지보이스와 함께 ‘몰래한 사랑’을 부르는 모습. |
▲한 남자가 결혼을 반대한다며 자신의 인분과 된장을 섞은 오물을 무대에 뿌리다 진행자들에게 제지당했다. |
▲대학생 지지자 모임 ‘이 결혼 찬성일세’ 소속의 24살의 평범한 게이, 25살의 레즈비언이라 밝힌 두 사람이 ‘당연한 결혼식’을 축하하고 있다. |
▲마주잡은 두 사람의 손. |
▲결혼 성사를 알리는 멘트와 함께 사람들의 환호와 축하를 받는 두 사람. |
▲이날 결혼식에는 천여 명의 시민들이 참석했다. |
▲친구사이 합창단 지보이스의 축하공연 |
▲‘부부생활 열 가지 다짐’을 읽는 도중 이른바 '활빈단' 소속이라고 밝힌 60대 남성이 “청계천을 더럽히는 동성결혼 박살내자. 온 국민이 반대한다”라는 손피켓을 들고 무대 앞에 난입했다. |
▲하객들 앞에서 ‘부부생활 열 가지 다짐’을 읽는 김조광수-김승환 부부. |
▲김승환 씨가 ‘부부생활 열 가지 다짐’을 읽다 눈물짓고 있다. |
▲두 사람의 모습에 하객들도 함께 눈물지었다. |
▲사람들의 환호 속에 퇴장하는 김조광수-김승환 부부. |
▲축하공연을 하는 제주도에서 온 밴드 ‘사우스카니발’. |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 미국 보수의 아이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말을 빌려 동성애 지지를 밝히며 동성애 혐오 범죄는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고 밝혔다. |
▲이날 결혼식에 참여한 상상행동 장애와여성 마실 김광이 대표와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박김영희 사무국장. |
▲‘허클베리 핀’의 축하 공연. |
▲‘허클베리 핀’의 축하공연에 열광하는 하객들. |
▲신동호 시인이 축시를 낭독하고 있다. |
▲부케를 던지기 위해 무대에 오른 김조광수-김승환 부부. |
▲부케 던지기에 앞서 김조광수 감독의 어머니가 무대 위에 올랐다. 이날 김 감독의 어머니는 “부모님들, 꼭꼭 숨어있지 말고 앞으로 나와 달라. 속 태우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 자녀들을 나와 함께 힘 모아 보호해줍시다!”라고 말해 하객들의 환호를 받았다. |
▲김승환 씨가 결혼을 앞둔 자신의 친구에게 부케를 던지고 있다. |
▲부케 받은 친구와 축하의 포옹을 하는 김승환 씨. |
▲결혼식 피날레로 펫샵보이즈의 ‘고 웨스트(Go west)’ 노래가 흘러나오자 서로 마주 보며 춤을 추는 김조광수-김승환 부부. |
▲결혼식 피날레로 펫샵보이즈의 ‘고 웨스트(Go west)’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김조광수-김승환 부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