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적멸보궁(寂滅寶宮)에 건봉사, 용연사, 도리사를 보태어 8대 적멸보궁이라고 한다.
5대 적멸보궁은 통도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강원도에 있는데 8대 적멸보궁에 추가된 3곳은 건봉사만 강원도에 있고 용연사와 도리사는 모두 경상북도, 그것도 팔공산 자락인 달성과 선산에 자리 잡았다.
8대 적멸보궁 두 번째 이야기는 비슬산 용연사이다.
ㅇ 비슬산 용연사(龍淵寺)
비슬산(琵瑟山). 어감이 참 부드럽다.
비파 비(琵), 거문고 슬(瑟)로 산이 거문고를 닮았다거나 정상의 바위가 신선이 거문고를 타는 모습이라서 비슬산이라니 산에 오르면 음악이 들릴듯하며 산 봉우리들이 참으로 아름다운 산일듯하다. 일설에는 인도의 힌두교 신 비슈느를 한자로 음역하여 쓴 것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도 한다.

<해발 1,083m의 산 정상은 크고 평평하다는데 직접 오르지는 못했으나 산 아래 숙소에 걸려있는 그림을 보니 과연 예사롭지는 않아 보인다. 따로 시간을 내어 오르고 싶은 산이다.>
비슬산 용연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桐華寺)의 말사로 신라 신덕왕 1년(912) 보양 국사가 창건하였으며, 원래 이곳은 용(龍)이 살던 곳이라 절 이름이 용연사(龍淵寺)라는 것이다. 임진왜란 때 모두 소실된 것을 휴정 사명대사 명으로 인잠, 탄옥, 경천 스님 등이 재건하였지만 효종 1년(1650)에 일어난 화재로 보광루만 제외하고 다 타버려 다시 중건하는 등 이후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용연사가 유명한 것은 대단한 문화재나 크고 멋스러운 건물이 있어서가 아니라 바로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寂滅寶宮)이라는데 있으니 팔공산 남쪽 도농통합 광역시인 대구광역시에 속한 달성군 옥포면 반송리 비슬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달성군에서 봄이면 화려하게 꽃으로 장식할 용연사 벚꽃길을 따라 산자락을 거슬러 올라가노라면 옥연지라는 제법 큰 저수지를 만나는데 이곳이 송해 선생 부인의 고향, 즉 처갓집 동네라는 것이며 그래서 옥연지 주변에 송해 공원을 제법 크게 조성해 놓았다. 흥미로워서 잠시 둘러본 후에 계속 올라가면 오른쪽으로 태봉산을 두고 들어간 계곡 안에 용연사가 있다.
이곳이 절인가 싶어 차에서 내리면 이내 길이 양갈래로 나뉘는데 왼쪽으로 가면 적멸보궁이요, 오른쪽으로 가면 극락전이 있는 절집 영역이니 자연스레 두 곳으로 나뉜 형국이다. 우선 왼쪽 적멸보궁으로 계단을 오른다.

<용연사 일주문, 통상 무슨 山 무슨 寺 라고 적는데 여기는 琵瑟山 龍淵寺 慈雲門이라고 적었다.>

<왼쪽 적멸보궁으로 올라가는 계단 초입에 문 하나가 더 있다. 일각문(一角門)이라고 하는데 琵瑟山 龍淵寺 寂滅寶宮이라고 적어 이곳이 특별한 곳임을 나타내려는 듯하다.>
일각문을 지나 제법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면 대개의 절집이 이층 누각을 지나 금당에 이르듯이 이곳도 이층 누각 아래로 누하진입(樓下進入)하여 고개를 들면 적멸보궁이 나오는 구조로 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홀가분한 구조이다.

<일각문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나타나는 2층 누각에는 '금강계단(金剛戒壇)' 현판을 달아 이곳이 진신사리를 모신 곳임을 알린다. 누각의 뒤편에는 보광루(普光樓) 간판을 달았는데 누각 아래로 올라가게 되어 있다.>

<누각 아래를 통과하여 몇 개의 계단을 올라서면 눈앞에 '적멸보궁(寂滅寶宮)' 간판을 단 법당이 보인다. 높직한 월대위에 팔작지붕을 갖춘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다포식 건물인데 정면에 알루미늄 새시에 2중 유리문을 달아 고졸한 맛은 없다.>
부처님 진신사리는 적멸보궁 법당 뒤 계단(戒壇)에 모셔져 있다. 통도사, 금산사와 더불어 이곳 용연사까지 세 곳이 계단형 진신사리탑을 모셔 유명한데 용연사 계단은 통도사에 비해 규모는 작아 아담하고 조촐하다.
임진왜란 때 난을 피해 통도사에 있던 부처님 진신사리를 금강산으로 모시고 가려다가 이곳 용연사가 안전하다고 생각되어 보관하였으며 난이 끝나자 사명대사의 제자 청진 스님이 사리 2과중 1과를 본래 봉안처인 통도사로 돌려보내고 1과는 이곳 용연사에 모시게 된 것이라고 한다.

<보물 제539호 용연사 금강계단(金剛戒壇), 적멸보궁 법당 뒤 한단 높은 곳에 담을 둘러치고 네모진 구역에 돌난간을 세운 안쪽에 널찍한 2단의 기단을 쌓고 그 위에 종(鐘) 모양의 탑신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에는 8부 중상을 양각하고 탑신 꼭대기는 큼직한 보주를 새겼는데 전체적으로 비교적 단순한 모습이다. 사방으로 사천왕상을 조각하여 세웠는데 옛 것이 아닌 듯하다. 알고 보니 하도 도난 위기가 있어 진품은 따로 모시고 있단다.>
진신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은 통도사에 비하여 작고 소박하지만 갖출 것은 다 갖추었다. 앞쪽으로는 제단처럼 큼직한 돌을 얹어 단을 쌓았고 그 앞에는 아담한 석등이 하나 서 있다. 사리탑 왼쪽에 하나, 오른쪽에 2개의 비석이 서 있는데 각각 용연사 중수비와 석가여래중수비, 석가여래비로 진신사리를 이곳에 모시게 된 과정을 소상히 적었다.
적멸보궁은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시고 경배하기에 법당 안에 불상이 없다. 용연사 적멸보궁 역시 불단 위는 비어 있고 금강계단이 보이도록 뒷벽에 투명 유리창을 내어 진신사리탑을 보며 예불을 올린다.


<법당 안에서 진신사리탑이 보인다. 뒷벽 중앙에 큼직하게 투명 유리창을 내었다.>
적멸보궁을 둘러보고 다시 아래로 내려와 처음 양갈래 길에서 오른쪽 계단을 오르면 극락전이 있다. 계단에 알루미늄 봉으로 난간을 세워 고졸한 맛을 지워버린 것은 참 이해하기 어렵다. 계단 위 사천왕문을 지나 이층 누각 안양루의 아래를 누하진입 방식으로 지나면 극락전 앞마당으로 올라서게 되는데 정면이 극락전이고 마당 한쪽에는 자그마한 삼층석탑이 하나 서 있다.

<계단 위 천왕문을 지나면 극락전이다. 적멸보궁 법당 정면에 알루미늄 새시와 이곳 계단의 알루미늄 난간봉은 고즈넉한 산사에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 현대식(?) 건축자재로 목재 등으로 대체하면 좋겠다.>
용연사 극락전은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1호로 단정한 맞배지붕을 가진 정면 3칸, 측면 3칸의 소박한 법당이며 안에는 목조아미타여래 삼존불을 모셨는데 보물 제1813호이다. 마당에 서 있는 삼층석탑은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8호로 지정된 고려시대 석탑이다.


<극락전 앞마당에 서 있는 삼층석탑과 안에 모신 목조아미타여래 삼존불>
비교적 작고 아담한 극락전은 불단에 모신 목조아미타여래 삼존불도 볼만하지만 그 뒷벽의 후불탱화나 불단 천장에 조각한 닫집과 용머리 조각 등이 눈길을 끄는 멋스러움을 갖추었으며, 구석구석 안팎으로 빈틈없이 천장이나 벽면이나 크고 작은 벽화와 그림들이 빼곡하여 찬찬히 둘러보는 즐거움이 있다.
그런데 10살의 어린 나이에 죽은 영조 임금의 큰 아들 효장세자 세자빈 조씨를 비롯한 몇몇의 시주로 만들었다는 후불탱화의 주존은 아무리 봐도 항마촉지인을 한 석가여래 부처님이다. 법당의 주존불로 아미타부처님을 모셔놓고 뒷벽의 탱화는 석가모님 부처님을 그려 걸은 이곳이 극락전인지 대웅전인지 헷갈린다.
첫댓글 옛기억이 납니다
50여년전 친구들과 갔어요
아무것도 모르고 불상이 왜 없을까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