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역사문화 유적과 기독교
노 종 해(CM리서치)
충주 고구려 땅, 삼국접경지로 조선말까지 중부권 중심 도시
충주(忠州)는 자연경관이 수려하며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남한강 물이 풍부한 내륙지방으로, 농업, 산림업과 교통, 물류의 중심지로 번성하던 동서남북 사통팔달의 고을이었다.
충주는 삼국시대 고구려 땅으로 광개토왕비와 같은 국내에서 유일한 고구려비(忠州 高句麗碑, 국보 제205호)가 세워진 곳이며, 삼국시대부터 삼국의 접경지역으로 고구려성벽, 신라성벽, 백제성벽이 축성되어 있는 군사적 요충지였다. 문경새재를 넘어 충주를 거쳐 한양으로 가는 과거길의 길목이요, 외교 동지사 사절단들이 일본으로 오가는 “동지사 길”로 한양(서울)을 지키는 요새였고, 산업과 교통의 중심지요, 남한강가 가흥나루의 "가흥창"은 한양으로 운송하는 물류의 집산지였다.
남한강은 내륙 수로로 고려시대 전국에 12개 창(倉)을 세웠으며, 충주에는 덕흥창(德興 倉)이 설치하였고, 고려말에는 경남의 물류를 충주의 덕흥창으로 운송하여 수로로 서울까지 운송하였다. 이후 덕흥창을 충주의 달천과 남한강 합수지점인 가흥으로 옮겨 "가흥창"이라 하였다. 조선말까지 가흥창은 물류집산지로 번창하던 곳이었다. 현재 이곳에는 탄금호로 "세계조정경기장"으로 조성되어, 세계인들이 오고가는 스포츠레저, 골프장, 캠핑장으로 명소가 되있다.
고구려는 이곳의 지명을 "충주"라 칭하였고, 신라는 "예성"이라 했다. 조선 건국 초기인 태조4(1356년) 전국을 팔도로 나누고, 충주에 충청감영((忠淸監營)을 설치하고 관찰사(觀察使)를 두었으며, 1895년 을미관제 개혁 때, 충주부(忠州府)에 20개 군(郡)으로 개편하였다. 충주목사(忠州牧使)의 관할지역은, 충북, 경기, 강원 3개도에 걸친 중부내륙 지역이였으며, 제천-청풍-단양-진천-청주와 용인-죽산-이천-양지, 원주-정선-영월-평창 등으로 광활하였다.
중부내륙의 행정중심 산업도시 충주-몽고, 임진왜란 전쟁과 일제에 의해 철저히 파괴 되
그러나 충주는 7차의 몽고전쟁, 임진왜란, 한국전쟁 등 전쟁지역이었다. 동학혁명 의병투쟁 지역이며, 일제강압정책과 전쟁에 의해 철저히 파괴 된 도시로, 특히 일제의 침략정책으로 철저히 수탈되고 파괴 된 도시이다. 1906년에 충주의 행정구역이 축소정리 되어, 경기도, 강원도로 분산되었으며, 1908년에는 일제에 의해 충북관찰부가 청주(淸州)로 강제 이전 되었다.
오늘날 충주의 도심에는 전통한옥 가옥들이 일제의 파괴로 흔적도 남아 있지 않으며, 도로는 개발을 명분으로 재정비 되었고 도로명도 개명 되었다. 현재 충주목사(忠州牧使)가 주재하던 감영(監營)의 “관아”와 “향교”가 남아있을 정도이다.
충주에는 일본 헌병대가 주차한 곳으로, 동학혁명 의병투쟁, 독립투쟁의 목표가 되였다, 의병과 3.1독립투사, 항의시위대들이 충주의 일제의 관청과 헌병대로 향하였다. 해방 이후 충주 헌병대 본부 자리에는 충주시청으로 사용하가 이전하였고, 현재 이마트가 자리하고 있다.
충주에는 산업 농지와 토지수탈의 “조선식산은행”(1918년 설립)이 있고, 최근 소녀상(2019.3.1.설립)도 세워져 있다. 일제는 풍년을 기원하는 한국 전통문화의 사직단을 허물고 , 신사를 그 자리에 설립하여 신사참배를 강요하였다.(참조-盧降熙:韓國의 地方自治, 鹿苑出版社1987.pp82ff. 전홍식:일제침략과 강점시기 충주지역사, 한국학술정보사,2010. pp27-45. 유홍준:나의 문화유선 탐사기8, 남한강 편, 창비2015. 전홍식: 역사도시 충주의 발자취와 기억, 좋은땅,2021.)
충주 범바위(호암) 호숫가의 유적과 동상들
일제는 사직단이 있던 사직산 언덕에 충주신사(忠州神社, 1912년)를 세우고, 그 일대를 공원으로 조성하고, 일본인들의 휴식 놀이공원으로 활용하였다. 일제는 신사 일대(문화동 현, 사직로)에 공원을 만들고, 농산물의 풍작을 위해 대제와 소제의 저수지를 만들었다. 이곳이 홍수로(1916년) 제방이 무너진 소,제 저수지를, 일제는 농산물을 수탈키 위해 확장하여 개축(1918년)하고 호암제(湖巖提)로 개명한 곳이 오늘날 호암지이며, 호암호수생태공원이다. 한국인들은 이 지역의 옛 지명을 “범바위”(호암)라 하였다. 충주신사(忠州神社) 자리에는 현재 음악 창작소와 수도사업소로 사용하고 있다.
범바위(호암) 호숫가에는 각종 문화 체육시설이 들어서있다. 실내경기장, 수영장, 베드민튼장, 청소년수련관, 충주시립 도서관(분관)과 우륵당, 호암예술관, 전통무예 택견원 등이다.
호수공원 호숫가 문화 체육시설인, 우륵당, 호암예술관, 태견장, 실내스타디움 등 앞에는 일곱 개의 동상이 있다. 즉, 악성 우륵 상, 신립 장군상, 김윤후 장군상, 서성 김생 상, 강수선생 상, 민충공 임경업 장군 상이며, 택견원 뜰의 신한승 상이다.
첫째는 악성 우륵(于勒) 선생의 가야금 탄금동상이다. 충주 우륵당 앞에 있다. 우륵선생은 3대 악성으로 가야국 악상였으며, 신라로 귀화하여 진흥왕 때 국원(충주)에 거하며 남한강을 내려다 보며 “탄금대”(彈琴臺)에서 가야금을 탄금하셨다.
둘째는 신립장군(申砬,1546-1592) 상이다. 1583년 함경도에서 여진족 1만의 병력을, 500명의 기병으로 물리친 명장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달천평야에서 왜군에 총포에 패하여 남한강에 투신한 비운의 장군이기도 하다.
세째는 김윤후 장군(金允侯, ?미상) 상이다. 고려시대 1232년 몽고군과 충주성 전투에서, 몽고군을 무찌른 명장이다.
네째는 대문장(大文長) 강수(强首, ?-692) 상이다. 강수 선생은 통일신라시대 대문장으로 유학자이셨다.
다섯째는 서성 김생(書聖 金生, 711-791) 상이다. 김생 선생은 통일신라시대 때 충주 지역에서 활동했던 명필 서예가이시다.
여섯째는 충민공(忠民公) 임경업(林慶業, 1534-1646)장군 동상이다. 임경업 징군은 광해군 10년(1618) 무과에 급제한 후 인조 2년(1624) 이괄의 난을 진압하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병자호란 때에는 의주부윤으로 있으면서 백마산성에서 전쟁을 승리로 이끈 분으로 큰 공을 세운 장군이시었다.
*충주 택견원과 뜰의 무형문화재 신한승의 동상
일곱째는 택견 전수자인 신한승 선생(辛漢承 1928~1987)의 동상이 텍견원 경내 뜰에 있다. 충주 택견원은 전통무예 택견의 보존, 보급, 발전을 위해 건립 되었다. 택견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의 민족문화 말살 정책으로 엄하게 금지됐지만 구한말의 택견 명인인 임호로부터 송덕기, 신한승으로 명맥이 이어져 왔으며, 1983년 6월 1일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신한승 선생은 국가무형문화재 제76호 택견 1대 보유자이시다.
순교자의 피가 부려진 충주-천주교 성지와 기독교 전래
충주 인근 30Km 지점에 천주교 성지인 "배론신학교와 배론성지"가 있다.(현, 행정구역은 제천으로 충주와 접경지역에 있다.) "배론성지"는 황사영 백서(黃嗣永帛書) 사건으로 시작 된 신유박해(辛酉迫害,1801년)를 피해 황사영(黃嗣永)이 몸을 숨긴 곳이며, 한국 최초 신학교인 "성 요셉신학교"(1855년)이 설립 된 곳이고, 두번째 사제인 "최양업"(崔良業) 신부의 묘가 있는 성지이다. 충주 관아 뜰에는 병인박해와 무인박해 때 순교한 “순교자 현양비”가 세워져 있다.
현재 순교자를 처형한 장소에는 “충주 우체국” 7층 건물이 서있다. 한국 천주교에서는 성지순례 지로 지정하고 있으나, 순교자의 피가 뿌려진 현장을 보존 못하고 개발하는(?) 충주시 뿐만 아니라, 충주 천주교와 기독교 연합회 등의 역사적 몰이해가 안타깝다.
충주지역은 한국 기독교 선교초기에 "이천-용인"까지였음을 유의하고, 중부내륙지역의 기독교 역사를 정리해야할 것이다.
1897년 이전 부터 "충청도에는 충주"에 복음이 전해졌으며, 과거길과 장마당은 육로이고, 남한강은 중부내륙지역으로 복음이 전해진 물길이기도 하다. 감리교 아펜젤러와 죤슨은 육로로, 장로교 언더우드 선교사는 남한강 물길을 따라 충주에 복음 들고 왔으며, 1897년에는 성도들의 공동체가 형성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조선그리스도 회보, 1897.9.15.)
감리교는 스웨어러(Rev Swearer, 서원보) 선교사는 1901년 내륙의 과거길, 장마당을 순행하며 복음전도의 발길이 이어져, 1903년에는 충주지역 첫 신도 공동체인, “충주제일교회”가 설립 되었다.(조선년회록,1901, 1903) 오늘날 남한강 목계나루에는 역사적인 "목계감리교회"와 "목계장로교회"가 있으며, 충주출신 "시인 신경림 선생의 시비"와 "목계캠핑장" 등이 있다.
충주는 서울의 강남 고속테미날에서 1:40분소요 되며, 승용차로는 1시간 거리이다. 2021년부터는 분당선과 연결 되어 전철도 개통 된다. 대한민국의 중심 고을, 충주의 역사문화 탐방여행을 추천하며, 역사의 현장에서, 오늘날 우리의 사명을 일깨우고 새로운 다짐과 건강하고 풍성한 삶을 역어가길 기원하며 마친다.(rch)
*충주 호암 생태공원, 호숫가 봄 꽃 과 걷는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