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17일 일요일 날씨 맑음
필자와 아내 둘이
저수재에는 정자가 하나 있다. 토요일 저녁 9시 쯤 정자에 도착하니 이미 한 팀이 자리잡고, 우리는 폐업한 식당 앞 주유소 처마 밑에 텐트를 치고 야영한 후 일요일 5시쯤에 산행을 시작하였다. 저수재까지는 단양과 예천 땅인데 저수재를 지나서 용두산에 이르면 문경 땅이 시작된다.
등산지도 안내 저수재에서 차갓재까지 (펌)
죽령이 포장 되기 전에는 예천에서 단양까지의 가장 가까운 왕래처가 이 곳 저수령이었고 그때는 이곳에 장사가 잘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죽령터널이 뚫리고 나서는, 이곳이 쇠퇴하여,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길이 되고 말았다. 엣날에는 순수 우리말로 돼지머리고개라 이름했다.
세로운 설레임이 시작된다 오늘도 아자!!
저수령표지 바로 옆에 용두산 등산로라는 안내 문구와 함께 본격적이 등산이 시작된다.
용두산은 여기서 10분 거리인데 갈까 하다가 아내가 동의하지 않아 그냥 통과했다. 해맞이 제단석이 있는데 이곳 용두산은 국사지맥의 시작점이다. 국사지맥은 이 곳을 기점으로 매봉(865m) 용문산(771m) 국사봉 (729m) 고종산(151m)을 지나 내성천과 금천의 합류지점에서 맥을 달리하는 총도상거리 45.7.km의 산줄기를 말한다.
해마다 이곳에서 예천사람들은 해맞이를 한다고 한다.
용두산 등산로라고 쓴지점이 국사지맥 시작점이고 대간길은 우틀하여 간다.
길이 참 좋다 이구간의 벌재 까지는 순탄한 육산길이다
이윽고 문복대가 우리를 맞이한다.
문복대는 이 산에서 한줄기가 북으로 뻗어 수리봉.신선봉과 단양팔경 중 유명한 상.중.하선암이 있는 도락산을 자산으로 호령하고. 이 산 밑에 배나무골,호박골,세작골,성골을 두고 있으며, 이 골짜기들이 모두 동로면 석항리를 이루고 있다. 석항을 돌목이라고 하는데 아직까지 남아 있는 예쁜 우리마을 이름이다.
백두대간이 죽령, 도솔봉, 향적봉, 저수령을 지나서 문경시 관내로 들어오면서 처음으로 큰산을 두고 있는데 옛이름은 운봉산(雲鳳山)이었다. 이곳 아래에 사는 석항리 사람들이 ‘문복대’라고 부르고 있어서 문복대로 이름하였다 한다. 다른 이름으로는 운봉재라 했는데 문복대가 벌재 방향으로 조금가면 허리를 낮춘 안부가 있어 이 곳을 통해 석항리 주민들이 산 너머의 마을로 오가던 길이 있다는 데서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백두대간 산줄기가 소백산을 거쳐 예천군을 지나 문경 땅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지켜 서서 복(福)을 불러오는 문(門)과 같은 첫 산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인 것. 국토지리정보원의 1:50,000 지도에는 문봉재라고 표기돼 있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경천호 주변의 붕어 입을 한 천주산과 공덕산이 장관이다. 조망지로서 최적의 장소다.
피톤치트가 나온다. 냄새가 참 좋다. 눈이 피로하지 않고 다리도 상쾌하다. 누가 이 맛을 알랴? 오직 여기에 있는 자 만이 누리는 호사다.
아무표시가 없어 무심코 지나칠뻔한 옥녀봉 근처
대간은 이곳에서 단양군과 잠시 헤어져 문경시 지경 안으로 진행한다. 남쪽 1Km쯤 떨어진 사면(斜面)에 삼율광산 작업도로가 올라와 있다. 이 고장에는 옛날에 ‘옥녀’라는 처녀가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간 정혼자를 기다리다가 지쳐서 돌이 되었다는 조금은 흔한 전설이 전해온다. 옥녀가 정혼자를 기다린 곳이 먼 길까지 내려다보이는 지금의 옥녀봉이라고
벌재에 다 왔다. 사진의 파란색 직진표시 방향이 대간 길인데 이리로 가면 벌재에서 황장산까지는 비법정탐방 구간을 감시하는 국공 초소가 있으므로 갈 수가 없다.
다리 아래로 내려와서 월악농장으로 가는 길을 버리고 반대방향으로 가면 큰 도로가 나온다.
벌재(625m)
박상일 씨가 "소백산맥 지역의 교통로와 유적"이라는 제목으로 1990년 국사편찬의원회에서 주관한 논문을 제출했는데 소제목 중 하나인 "국사관논총"편 16쪽에 "적성은 벌재의 한역으로 보인다"는 언급이 있다. 벌재의 남쪽 마을이 바로 문경시 동로면의 적성리인데, 한자 표기가 붉을 ‘赤’인 것으로 보아 ‘붉은 재’를 이 고장 말로 '붉재'의 경상도 방언 '벌재'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단양의 옛 지명인 적성 역시 벌재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고 있는데, 지금의 단성(丹城)면이다 또한 단양읍 벌천리의 속칭이 벌내이고, 벌내는 벌천리 앞을 흐르는 하천의 이름이기도 하다. 고개의 이름도 여기서 유래되어 벌령, 벌치, 벌재라 하였고, 이것이 고개 양쪽 마을(적성리와 단양)의 지명이 된 것으로 보인다.
정상석이 너무 크고 운치가 없다.
국공을 피하려면 벌재에서 문경시 동로면 방향으로 한 100여m쯤 내려 와야 한다.
출입금지 팻말이 보이고 자세히 보면 리본이 달려 있다. 이곳을 치고 올라가면 대간 길 헬기장이 나타난다.
많은 대간꾼들이 이 길을 이용했던것 같다. 헬기장까지 제법 길이 잘 나있다. 헬기장에 이르러 본격적인 산행을 이어간다.
지나 온 대간길 맞은편에 문복대와 옥녀봉이 내려다 보인다.
폐백이재 근처를 지나 치마바위 오르는 곳의 경치다.
유래에 관한 정확한 문헌은 없지만, 폐백이재는 치마바위와 연관있는 듯 보인다. 마을 주민들은 이곳을 지날 때면 귀신이 나온다고 하여 혼자서 길 가는 것을 꺼린다는데, 치마바위와 928봉 사이에 위치한다. 곱게 차려입은 새색시가 시부모에게 폐백을 드리는 광경을 떠올려 폐백이재라 하였다는 설이 있다. 묏등바위와 황장산 사이의 감투봉이 비녀를 꽂아 쪽을 진 것 같아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과도 연관되는 듯하다
폐백이재에서 조금올라와 보이는 문경쪽 마을경치 경천호가 보일듯 말 듯하다.
치마바위에서의 경치.
치마바위까지는 급경사와 바위지대를 건너야 한다.
삼각형으로 표시한 움푹들어간 곳이 황장재. 황장재를 지나 찍었다.
황장재는 감투봉과 치마바위 사이에 위치한 고개로 문경시 동로면 생달리와 동로면 명전리를 잇는 길이다. 이 고개는 생달리의 동로초등학교 생달분교(폐교)와 명전리의 문안골로 이어지는 길로 등산로가 잘 나 있다. 문안골쪽으로는 오르는 길에 고려시대에 자연석으로 쌓았다는 석성이 남아 있다. 생달리 토사골쪽은 수리봉이 있으며 지리가 형성돼 암벽훈련 코스로 인기를 얻고 있다.
눈이부시다. 용기 있는 자만이 누리는 호사다, 이곳에 올라온 자들에게만 허락된 경치다.
황장재를 지나 감투봉에서 ..
치마바위를 지나 감투봉까지는 비법정탐방로 답게 험하기가 그지없다. 등산로는 나 있으나 안전시설이 전혀 없고 바위와 험한길 사이의 곡예를 즐긴다. 하지만 눈이 호강한다.
감투봉에서 보이는 문경방면 경치.
감투봉은 암릉지대와 황장재를 지나서 만나는 암봉으로 높이 솟아 있다. 주위는 전체가 깎아지른 벼랑이다. 바람이 심하여 정상에 서 있는 낙락장송이 제 가지로 몸을 감싸며 꽈배기를 튼다. 감투는 벼슬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성인 남자들이 머리에 쓰던 탕건을 의미하기도 한다. 봉우리 형상이 감투처럼 생겼다
멋진 소나무가 오랜세월을 견딘 역사를 뽑낸다 . 아마 필자보다 두세배나 많은 겨울을 보냈으리라..
유명한 암릉지대를 지난다. 지난 겨울 이곳에서 어느 산악인이 발을 잘못 고정해서 골절로 후송되었단다.
법정탐방로라면 데크를 만들었을 듯! 그러나 그 것이 비법정 탐방로의 매력이 아니던가?
드디어 비 법정탐방로가 끝나고... 생달리에서 올라오는길은 데크로 만들어져 있고 이곳을 따라 수 많은 탐방객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우리가 출입금지방면에서 쑥 나온 것을 보고 어디서 왔는지 궁금해 수많은 사람이 물어본다. 이곳에 작은 쉼터가 있다.
황장산까지 300m 남았다
한참을 기다려 겨우 사진을 찍는다. 황장산(黃腸山 1077.3m)은 북쪽 계곡에 산성이 있어 있어 작성산(鵲城山)이라고도 하며 산들머리에 봉산(封山)표석이 있는 유서 깊은 산으로서 계곡과 수려한 암봉이 자랑이다.100대 명산으로 기재되어 있다.
이 산은 백두대간이 지나는 산으로서 국립지리원에서 발행한 1/25,000지도에 황정산(黃庭山)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정확한 이름은 황장산이라 부르는 것이 옳은 듯하다. 황장목이 많고 1925년 조선총독부 임시 토지조사국에서 발행한 '조선의 산악 명칭과 소재 높이'에 황장산(黃腸山)이라고 표기되어 있으며 현존하는 노인들이 황장산이라고 부르고 있다.
황장산은 동로면 한 가운데에 솟아 있다. 산경표에 기록된 본래의 이름은 작성산(鵲城山)으로 문안골에 있는 고려시대의 산성인 작성산성에서 유래했다. 지금의 황장산(黃腸山)은 이곳에서 질 좋은 소나무인 황장목이 생산돼 궁궐의 용재로 사용했고, 조선조 숙종 때인 1680년 이곳의 벌목을 금지하기 위해 "황장봉산(黃腸封山)"했다고 기록되어 이 후 "황장봉산"을 줄여서 "황장산"으로 불렀을 것으로 생각된다. 황장목은 줄기의 고갱이 부근에 송진이 적절히 베어들어 속살이 누런 소나무를 말하는 것으로, 그 모양이 마치 누런 창자와 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균열이 적고 단단해 임금의 관이나 대궐을 만드는 데 쓰였다 하며, 封山이란 나라에서 나무 베는 것을 금지하던 산을 말한다.
작은차갓재다. 안생달로 하산할 수 있지만, 우리는 좀 더 가서 큰차갓재에서 하산하기로 한다. 이곳에서 마골치까지 비법정 탐방로이며 금줄이 쳐 있다.
백두대간 중간석은 두개가 있다. 여기 말고 조금 더 남진하면 포항셀파 산악회에서 실측하여 세운 표지석이 하나더 있다. 이곳은 국립지리원에서 만든 지도를 바탕으로 만든 중간지점이다.
큰 차갓재에는 송전탑이 세워져 있고 남진기준 좌측방향으로 탈출로가 있다.
파란선은 큰 자갓재에서 내려오는 길이고, 오른쪽은 작은차갓재에서 내려오는 길인데 마을회관근처에서 합류한다.
안생달 작은차갓재에서 내려오는 길에 오미자 동굴이 있다.
도상거리 17.5km 접속거리 2km
총 41161보 실산행시간 7시간 41분 33 초 (식사 휴식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