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옥임(수필)-당신은 언제 철이 들 거야.hwp
당신은 언제 철이 들 거야
정 옥 임
밤새 내리던 가을비가 그치고 싸한 날이다.
“가을이구나, 김장을 해야 하는데 언제쯤 할까?”
“김장걱정은 천천히 하고 경기도 파주로 핸드폰 샘플 갖고 가는 길에 함께 가자”는 남편을 따라나섰다. 초행길이라 주변 모두가 새삼스럽고 가을비가 내린 후라 온 산천에 울긋불긋한 단풍잎들이 완전 단풍대궐들이었다.
“세상에나! 이렇게 어여쁜 단풍들을 당신 혼자만 보고 다닌 거예요? 이 계절이 이대로 멈추었으면 좋겠네, 감상 좀 하게 천천히 달려요”
“당신은 도대체 언제 철이 들 거야? 나는 지금 단풍보고 감상할 겨를이 없어, 샘플이 통과가 될지, 되면 납품할 숫자를 정품으로 제대로 맞춰질지도 모르고 거리도 멀고 고민이 태산인데” 라며 툭툭거리는 남편의 말투가 밉지는 않았다.
“잘 되겠지요 뭐, 그리고 나 철 안 들고 이대로 그냥 살 건데”
단풍잎들마다 조롱조롱 매달린 말간 물방울은 요정들의 곱디고운 마음인 것 같았다.
“자연의 신비함이여!” 너무 호사스러운 풍경에 내 눈길과 마음을 어디에 둬야할지 정신이 아득하다.
“저 산이 공동묘지여! 험한 이 고개를 넘어올 때 한밤중 부슬부슬 비라도 내려 봐, 기분이 좀 묘하다”고 남편이 말했다.
그날 나는 거기가 공동묘지인지도 모르고 곱게 물든 산언덕의 단풍잎만 바라보며 있는 대로 수다를 떨다보니 좀 자중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그곳에 누워계신 그분들의 영혼을 위한 기도를 올렸다.
그날 준비해간 샘플이 통과되었다. 그 후부터 많은 물량을 맞추느라 낮엔 남편혼자 납품하러 다녀오고, 낮에 생산된 부품은 하루일과가 끝날 오후 9시 이후 인천을 출발 파주로 향한다. 다음 날 그 공장의 오전 생산라인에 차질이 없도록 미리 납품하기 위해서였다.
그날 오전에 이미 납품했던 부품 중 불량품을 수북하게 쌓아놓고 우리한테 이것 좀 보라며 야간담당자가 찡한 소리를 한다. 그 밤중에 가져간 부품의 거래명세서에 사인해 주는 것을 받아들고 돌아서는 남편의 표정이 씁쓸해보였다.
‘내가 보기엔 괜찮은 것 같은데... ... . ’ 밖으로 나오자마자 남편은 우리공장 야간근무자한테 전화로 “제발! 선별 좀 정확하게 하여 불량품 좀 덜나오게 하라” 는 목소리에 파주의 하늘에 떠있던 별들도 놀란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골치 아파 사업 못해먹겠다! 다 때려치우고 어서 고향으로 내려가 농사지으며 마음 편하게 살아야겠다,”고 힘 빠진 소리하는 남편이 짠했었다.
“우리 애들 공부마치고 결혼까지만 시키면 바로 고향으로 가자며 세월이 빨리 갔으면 좋겠다” 고 남편한테 위로 말을 건넸었다.
“당신 혼자 밤길을 다닐 때에 혹시라도 산모퉁이에서 왼손에 등불 든 여자가 차를 태워달라고 애원해도 절대로 태워주면 안돼요, 불여우가 여자로 둔갑한 거니까 눈도 마주치지 말아요, 입안에는 활화산 같은 불이 가득하다잖아요 어휴! 무서워!”
“그런 여우를 잡으면 껍질을 확~ 벗겨 당신 목도리를 꼭 만들어 줄 테니 밤중에 납품하러 올 때에 함께 오자”는 말에 동의했다.
“나 철없이 그냥 살아도 괜찮지요? 철이 꽉 차여있고 너무 야무진 여인을 데리고 사는 남자들은 엄청 피곤하다고 하던데”
“다 각자가 타고난 팔자대로 사는 거라”며 그동안 수없이 들었던 훗날에 우리들 노년은 고향에서 살 것이라고 청사진을 펼치는 남편의 기분이 좀 풀린 것 같았다.
“언제 어느 산골짝에서 산돼지나 노루가 우르르 튀어나올지도 모르니 항상 조심하자” 며 힘들고 지친 남편을 위로 겸 지루하지 않게 주책이 만발한 아줌마의 말투로 수다를 떨었었다.
정 옥 임
충북 진천 출생
포석기념 사업회 회원
진천 문인협회 회원
우리시 5기 동인
주소: 충북 진천군 혁신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