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미술관에서 관람한 에드워드 호퍼(1882~1967)의 작품들 중 "Second Story Sunlight (이층을 비추는 햇살)" 를 중심으로 호퍼 그림 전반에 나타나는 Solidarity(외로움, 고독)의 정체를 파악해 보고자 한다.
호퍼(Hopper)는 뉴요커로서 도회지 삶을 영위했는데 묘하게도 그의 작품은 관람자에게 세상과 유리된 삶같은 진한 고독을 느끼게 한다. 그 느낌은 어디서 연유한 것일까, 의문이 들지만 보면 볼수록 외로움은 자구적 의미 뿐 아니라 메타포(은유)의 양면성이 느껴지고 그것은 사회문화와도 깊은 연관성이 있는거 같다.
"호퍼풍(Hopperesque - a loud silence)"이란 말이 있다. 소음이 많은 도회적 삶속에 깃들여 있는 조용함 또는 혼자이기에 강인함 이라고나 할까.
그는 뉴욕커들의 내외부 생활, 인근 자연과 바다 그리고 주택과 빈 배도 많이 그렸다. 그런데 사람이건 풍경이건 그의 그림이 주는 독특한 기운이 있는데 그걸 일컫는 말이다. 그 풍은 이미 어린시절 그림에서부터 나타나고 있다.
"바다를 바라보는 어린 소년, 1890"
Little boy looking at the see
이미지 속 아이는 물결에서 살짝 떨어져 있고 손을 깍지 낀 채 뒷 사람에게서 멀어지는 모습을 하고 있어 어떤 생각에 잠겼거나 무리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놀랍게도 호퍼가 9세 때 받은 성적표 뒷면에 잉크로 그린 자화상이다. 장난기는 전혀 없는 뒷모습을 그릴 발상을 한 자체가 놀라운데 그 아이의 모습에 사유가 담겨있다는 건 더욱 경악스럽다.
아직 천진난만 해야 할 아이 몸에서 지독한 고독감이 배어나온다. 애어른이 느껴지고 강해 보인다. 어른 호퍼의 그림에 깔려 있는 A loud Silence 소리없는 강함, 외로움 속 독립성의 분위기다. 이미 이때 호퍼풍은 작동하고 있었나 보다.
"이층 비추는 햇살(Second Story Sunlight, 1960)"
위 그림에도 그 분위기는 고스란히 포함된다. 그의 선호 주제인 고립된 인물, 풍경, 건축물이 조화롭게 묘사되고 있고 도시인 실존의 양면성이 푸른색의 그림자와 하얀색의 빛으로 대체된다. 이층 주택이 충분한 하얀 빛을 받는 만큼 그 이면의 그림자도 차갑게 푸르다. 따뜻한 빛과 차가운 그림자의 날카로운 화면 분할 누구도 해결해 줄 수 없는 주택 속의 소외감, 내면의 유리감이 느껴진다.
그림자에 대비하여 캔버스를 관통할 듯 날카로운 빛(밝음)이 압도하는데 그것은 겉으로 느껴지는 외로움이 결코 소속하지 못하거나 어울리지 못해 받는 소외감이나 고립감 또는 결핍만을 내포하는 게 아니라는 암시를 준다.
장면은 관찰된 현실에 기반했을 것이다. 두 여인은 햇빛을 받기 위해 테라스에 있지만 한쪽은 내면(독서-정신)다른 쪽은 외면(일광요-몸)의 대리자 격이다. 따라서 묘한 심리적 불안정 기류가 흐를게 뻔하지만 애써 서로간 투명처리하며 자기 자신으로 집중하고 있다. 서로 연루되지 않음으로 인한 외로움이 느껴지지만 오히려 자립성으로 승화한 것처럼 보인다.
심리적 고독이 암울한 것이 아닌 자주적 존재 양식임을 보여준다. 도시 생활의 유쾌함엔 도시 생활의 슬픔도 포함하고 있고 파티보다는 고립감이 제 3자에게 위안인거와 마찬가지 이치이다.
위 그림에서 보듯 그의 그림은 존재의 본질에 공통으로 내재된 고독감, 누구에게 의존하거나 침해 또는 조종당하지 않는, 중심이 바로 선 존재, 타인과 함께 하는 공간에서조차도 독립성과 자주성을 유지할 수 있는 정신적 여유와 강함을 표현해 준다.
고독은 슬픔이 아니고 오히려 군중 속에서 강인한 자신을 확인할 기회이다. 홀로 남겨지는 것이 충실한 자아를 위해 필요한 요소임을 보여준다.
어릴적부터 발원한 그림의 스타일과 분위기, 즉 호퍼풍은 어떤 설정이나 탐구적 발상이 아닌 것으로, 표현에 있어 어떤 작위성도 없기에 보는 이들에게 격한 공감을 받는 것이리라.
그의 외로움(고독)은 인간의 근원적 외로움이고 현재 미국을 이룬 정신, 개척정신, 독립심과 자주성의 실체도 고독의 파생 기질이다. 고독할 수 있는 자가 강한 자라는 유추가 가능하다. 따라서 그의 작품을 단순 외로움으로만 해석하는 건 개인과 사회심리의 입체성을 간과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