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 Killer
요즘 나의 별명이다.
물론 어느 특정 장소에서,이지만 말이다.
건전한 정신과 건강한 육체,
무엇이 먼저라고 결론내기 어렵지만,
난 정신이 먼저란 쪽으로 가닥을 잡고 25년의 직장생활을 청산했다.
퇴직 후 개인적 화두는 Well-dying,
어떻게 잘 죽을 것 인가,는
주변에 폐끼치지않는 깔끔한 마감이어야 한다는 것.
그런데 그건 잘 사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내게 있어 잘 사는 것이란,
재물도 인간관계도 생존에 필요한 만큼,
소위 미니멀 라이프(minimal life), 만으로 스트레스 적은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경제활동은 가장 큰 스트레스 요인이니
수익활동 없이 기존 재정 내에서 잘 살다 가야 한다.
깔끔한 정리를 위한 조건들을 생각해 봤는데,
육체와 정신의 조화 아니겠는가,
적당히 몸 쓰고 정신의 활성화.
몸과 마음이 연동된,
미경험 분야(일종의 버킷리스트)에 집중해 보기로 했다.
단, 본인 소유 장비를 갖춰야 하는 등
추가 소비와 쓰레기 유발 인자가 없이
오롯이 내 재정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
그렇게 가닥을 잡아도 역시 스포츠 밖에 없다.
그런데 거의 둘 또는 단체로 상대가 있어야 하는데..
홀로되기를 선택한 후 홀가분하단 느낌은 없고,
넓은 광장에 미아된 느낌으로 10년..
내겐 아무도 없다.
적은 비용으로 혼자서도 할 수 있는 놀이가 있나?
걷기 운동이나 수영은 기본으로 하던 거고
등산, 스쿼시.........당구!!.....눈이 번쩍!!
학교 다닐 때 (알바하느라 시간도 없었지만)
날라리들이 출입하는 덴 줄 알고
눈길한 번 주지 않았던 당구..
그게 찬찬이 알아보니
장비도 필요없고 비용도 그럭저럭..
급 호기심 땡기며
바로 2020년 새해맞이 결심으로 실행에 돌입,
일주일에 한 번 씩 2시간 정도 하기 시작했다.
주구장창 한 곳에 붙박인 채 늙어가는
나의 차량 엔진도 보살필 겸
바람도 쐴 겸 당구장 출입은 잘한 선택이었다.
몇 달 후 코로나 방역수칙 공표되며 진도 나가기 힘들었지만,
사람 적은 시간에 틈틈이 연습하여 지금 120에 이르렀다.
초장에 배우기 정말 어려웠다.
당구장 구경조차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배운답시고 시작했으니 자세부터 외계인 포즈,
쪽을 수도 없이 팔았다.
모든 스포츠가 그렇듯이
올바른 자세에서 최적의 수행이 되는 법이지만
이거 신경쓰다 저게 어그러지고...
처음엔 길기만 한 큐대에 끌려다니기 일쑤,
“큐걸이 꽉잡아요” 주변 목소리에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었다.
(지금도 큐걸이 문제는 있는 편)
혼자 유툽보며 배우려 했는데
당구장 쪽에서 교습해 주시고
자주 보는 손님들도 곁에서 한마디씩 던지는게 도움이 되었다.
그래도 교과서가 있는게 아니니
밑줄 쫙~~하며 외울 수도 없고
당구장을 나오는 순간 바로 백지가 되는 등
나이를 실감해야 했지만, 특유의 뚝심으로 견디며 성장한 편이다.
당구장에서 ‘뻘쭘’은 한 달 만에 털었고
제법 손님들과 눈이 익어 말도 잘 섞게 되었다.
그렇게 8회 정도 지난 시점에 고맙게도
30놓고 게임을 해 보게 되었고
그 후 50 ....1년 남짓 되어 120이 되었는데
150, 200까지 가야지 하는 목표는 전혀 없고
그냥 한 두시간 재밌게 보내는 걸로 족할 뿐이다.
30, 50일 때는 마지못해 적선하듯
자원봉사 단원처럼 쳐주던 당구장 회원들이
지금은 ‘도전(농담)’을 외치며 경기하자고 한다.
나는 여전히 당구장 최하수이고
그들은 최소 4구 수지 200이상 3쿠션 15이상이다.
사실 도 닦듯이 혼자 하는 걸
더 선호하는 편이지만,
(그럴 용도로 배운 것이고 나는 원래 그런 사람)
감히 하수 주제에 튕길 수가 없다.
그들이 내 실력향상을 도모해주려는 갸륵함을 어찌 거절하랴.
상대 안 해본 회원은 없는 편인데
그런데 확실히 300이상 고수들한테는 역부족이다.
3쿠션까지 7~8인닝 안에 다 마쳐야 그들을 물리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을 이겨 본 건 상대가 아주 컨디션 난조일 때 불과 3번 정도
그런데 묘하게도
200에겐 거의 지지 않는 게임을 하는 편이라
200킬러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뱀발:
지금 나는 당구치는 걸 매우 즐거워 한다.
배워보니, 내 적성에 잘 맞는 거 같다.
큰 힘 안들이고 노후에도 할 수 있으니
혼자 노는 편인 나에게 안성맞춤이다.
남성분들이라면 당구 안 해 본 사람이 없을 것이다.
혹시나 계시다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큰 돈 안들이고 해 볼 수 있는 운동이라 적극 추천한다.
더 좋은 건 부부가 같이
시간을 즐겁게 공유할 수 있는 놀이인 것 같다.
여성분들에게 더 적극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