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권정생 지음 『몽실 언니』
역사의 교훈
역사를 아는 방식은 다양하다. 증언, 체험, 기행, 다큐멘터리, 역사책의 정사와 야사, 그리고 문집의 내전과 외전, 소설등. 옆 동네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내가 모르면 아무 것도 아닌 일이다. 알아야 공감이 되고 교훈이 되고 연대가 되는 것이다. 한국 전쟁은 나에게 먼 옛날 먼 동네 이야기였다. 그러나 내가 태어난 지 불과 16년 전 이야기임을 알면 소름이 끼친다. 우리 세대의 삶을 결정한 80년 5월 항쟁은 내 딸아이에게는 17년 전 이야기이다. 이보다는 먼 날이지만 바로 어젯 일처럼 생생한 것도 있다. 몸에 기록되면 그렇다. 내가 체험한 87년 6월 항쟁이 그렇다. 벌써 36년이 되었다, 앎과 의미의 태양계는 시간순이 아니다. 어느 것은 강하게 구심력으로 어느 것은 약하게 원심력으로 작동한다. 그렇게 한국전쟁 역사는 내 의미장(場)의 어느 한 곳에 적당히 돌고 있다고 하겠다.
그래도 나름 한국전쟁을 많이도 바라 보았다. 한국과 북한인이 쓴 글(그 안에도 얼마나 다양한 관점이 있나!), 중국인이 쓴 글, 미국인이 쓴 글도 읽었다. 심지어는 비교하면서 읽기도 했다. 내 할아버지는 동네에 터키군이 공동묘지에 진을 쳤던 일이나, 홀연히 동네에 들어와 머슴살이 하던 똑똑하게 생긴 청년이 어느 날 인민위원회 뭔가 하는 사람이 되더니 나중에 국군 장병이 되어 나타났기도 한 일등을 말씀해 주셨다. 전쟁 당시 13살이었던 내 아버지도 피난 가던 때 호두나무 밑에는 모기가 없었다는 이야기도 했고, 소아마비로 절름발이가 된 둘째 삼촌 이야기도 해 주었다. 그러나 거기까지. 그 이상 나아가는 이야기는 없었다. 나도 거기까지. 그런 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가끔은 역사를 삶의 체험 현장에서 대자적으로 읽어야 한다. 내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읽는 동시에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본질을 찾는 고민을 같이 해야 한다. 권정생선생님의 글은 그런 면에서 도움이 된다. 역사에서 인간 삶의 무엇이 중요한지를 건드리기 때문이다. 오늘도 내 이성과 감성의 원심력을 잡아 댕겨 본다. 읽고 또 읽어도 매번 새롭게 다가오는 몽실언니를 보며 내 삶의 구심력을 잡아 본다.
권정생
작가는 고난에 찬 슬픈 인생을 살아냈다. 이 소설의 내용은 대부분 작가의 경험을 기반하고 있다. 일본에서 태어나 해방이 되어 부모 따라 고국에 왔다. 동족상잔의 전쟁과 좌우 폭력을 어린 아이의 눈으로 경험했다. 거지생활도 했고, 신장결핵으로 수술은 했으나 2년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기도 했다. 죽기 전에 글이나 실컷 써 보자 했다. 대표작인 『강아지똥』이 그 때 쓴 것이다. 이후 예상대로(?) 죽지 않은 그는 당시 통념과 다른 동화를 써 냈다. 현실과 동떨어진 세상을 배경으로 한 예쁜 동화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반영한 슬픈 동화를 말이다.
작가는 6.25전쟁을 주제로 한 장편 소년소설 세 작품을 썼다. 초가집이 있던 마을( 1978.1 ~ 1980.07), 몽실언니(1982.01~ 1984.03), 점득이네(1987.03~ 1989 01)이 그 것이다. 몽실언니는 1981년 말에 최완택목사가 운영하는 민들레교회 주보에 2회 연재하고 이후 잡지 새가정에서 1982년 1월부터 1984년 3월까지 연재를 했다. 당시 군사정권하에 검열에 걸리지 않기 위해 내용을 수정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기사 그렇다. 인민군 치하의 마을 모습을 소상히 밝히고, 만났던 인민군언니와 오빠의 인간적이고 착한 모습을 그려 냈으니. 더욱이 “국군이나 인민군이 서로 만나면 적이기 때문에 죽이려 하지만 사람으로 만나면 죽일 수 없단다”했으니.
선한 영향력
몽실언니를 살아낼 수 있게 만든 이들은 주위 사람들이었다. 댓골의 순덕이네, 노루실의 남순이네, 장골할머니. 식모살이 들어갔던 최씨네 가족, 부산에서 만난 청년 배근수와 서금년아줌마. 고모 살강댁도 그렇다. 몽실이가 기구한 삶을 살았지만 자신을 도왔던 이가 있었기에 살아 남을 수 있었다.
나도 중1때 온양에서 천안으로 초5 동생을 데리고 통학한 적이 있다. 시외버스를 타야 하는데 시내버스를 탔다. 낸 차표가 여기 것이 아니라는 기사의 말에 당화했다. 그때 한 아주머니가 대신 차비를 내 주었다. 난 제대로 인사를 하지 못한 채 어벙벙 자리에 앉았다. 감사하지만 창피함과 약간의 수치심에 매여 있었던 것 같다. 세월이 흘러 그 고마움은 내 가슴 한 켠에 자리 잡았다. 선한 영향력이라고 할까? 나도 모르게 그 아주머니를 닮아가려 노력하고 있으니. 소설 속의 장골할머니를 보면서 어렷을 적 나를 도와준 아주머니를 떠올렸다.
같은 경험, 또 다른 수용
또한 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하다. 식모살이 때 장터에서 만난 꽃파는 아이에게 동정어린 돈을 주려할 때 “난 거지가 아니니까 공으로 돈 받지 않아”라는 말을 듣고 몽실이는 세상을 그런 자세로 살아야겠다고 결심을 한다. 또한 노루실 야학에서 공부를 하며 몽실이는 사람은 왜 공부를 해야 하고,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지 생각한다. 몽실이는 남의 힘을 믿어서는 안되고 남의 말이 아닌 제 스스로의 생각을 주장하고 있는지 알아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의 힘이란 나보다 난 것들을 따라가고 자신을 부정하고 현재를 미래에 저당잡히게 하는 것이다. 스스로의 생각은 그런 남과 비교하지 말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꿋꿋하게 해 나가는 힘이 된다. 그렇지 않으면 진정 내가 권력과 부를 가지게 될 때, 남에게 강요하는 ‘남의 힘’과 ‘지배 관념’의 꼰대가 될 것이다. 자신이 성공했다고 잘난 척하게 하고, 내가 모범이라고 으스대고, 나처럼 살라고 남에게 강요하는 헛 것이 되고 만다. 그렇게 살지 않도록, 말도록 노력할 일이다.
책 익는 마을 원 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