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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爲福勝分 第十一 (함이 없는 복이 뛰어남)
須菩提 如恒河中所有沙數
如是沙等恒河 於意云何
是諸恒河沙 寧爲多不
須菩提言 甚多 世尊
但諸恒河 尙多無數 何況其沙
須菩提
我今實言 告汝
若有善男子善女人
以七寶 滿爾所恒河沙 數三千大千世界
以用布施 得福이 多不
須菩提言 甚多 世尊
佛告須菩提 若善男子善女人
於此經中 乃至受持四句偈等
爲他人說 而此福德 勝前福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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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爲福勝分 第十一
(함이 없는 복이 뛰어남)
圭峰:
二는 校量顯勝이라 於中에 文二니
一은 約外財校量하여
廣顯經勝이요
二는 約內財校量하여 倍顯經勝이니라
初中에 二니 初는 校量勝劣이요
二는 釋勝所以라 初中에
文三이니 一은 約多河以辨沙라.
규봉:
(2)는 헤아려 비교하여 뛰어남을 드러낸 것이다.
그 중에 글이 두 가지니
①은 밖에 있는(형상 있는) 재물을 가지고 헤아려
비교해서 경이 뛰어남을 넓게 드러낸 것이다.
②는 안으로 재물을 가지고 비교하여 헤아려서
경이 뛰어남을 배로 드러낸 것이다.
① 가운데 두 가지니
㉮는 수승함과 하열함을 비교해서 헤아린 것이고
㉯는 수승한 까닭을 해석한 것이다.
㉮를 셋으로 나누면 ㉠ 모든 恒河의 모래를
가지고 분별해 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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須菩提 如恒河中所有沙數
如是沙等恒河 於意云何
是諸恒河沙 寧爲多不 須菩提言 甚多
世尊 但諸恒河 尙多無數 何況其沙.
“수보리야! 항하에 있는 모래 수 같고
이 같은 모래 수 같은 항하라면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모든 항하에 있는 모래가 얼마나 많다 하겠느냐?”
수보리가 말씀드리기를 “매우 많사옵니다, 세존이시여!
다만 모든 항하만 하여도 오히려 많아 헤아릴 수 없사온데
하물며 그 모래 수이겠나이까?”
淸峯:
항하의 모래 수 만한 수의 항하와
그 항하수의 모래 수들이라니,
헤아리기 어려운 수의 많음을 비유로 드셨다.
說誼:
一恒河沙數無窮한데 沙等恒河亦無盡이로다
一性中有恒沙用이니 如恒沙用法無盡이고
一一沙亦無盡이니 一一法有恒沙用이로다
설의:
한 항하의 모래수도 무궁한데
모래 수와 같이 많은 항하라면 또한 다함이 없어라.
하나의 성품가운데는 항하의 모래 같은 묘용이 있으니
항하사와 같은 묘용의 모든 것 다함이 없고
낱낱의 항하사 또한 다함 없으니
낱낱의 모든 것이 항하의 모래수의 작용이 있노라
청봉착어:
하나 하나 모두가 일체를 구족했으니
하나 가운데 모두요 모두 가운데 하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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圭峰:
恒河者는 從阿耨池東面流出하여
周四十里라 沙細如麵이요 金沙混流라
佛多近此說法하셨으니
故取爲喩니라
규봉:
恒河는
아뇩지라는 못의 동쪽으로부터 흘러내려
주위가 四十리나 된다.
모래는 가늘어 밀가루 같고 금모래가 섞여 흐른다.
부처님이 이 강가에서 많은 설법을 하셨으므로
비유로 삼으신 것이다.
[아뇩지는
섬부주에서 가운데를 따라 북쪽을 향해
흑 산이 있고 다음에 대설 산이 있으며
다음에 향취산이 있는데 설산의 북쪽과
향취산 남쪽에 아뇩지가 있으니
사투리(放語)로 말하면 무숙뇌이다.
가로 세로 50유순이요,
8공덕수가 그 가운데 충만하고 그 중
사면에 각각 일대하가 흘러내려 동쪽 것은
이름이 긍가하로 아뇩지 주위를 한바퀴 돌아
동해로 흘러들고
남으로 신도하와 서쪽으로 박이하와 북으로
도다하가 모두 아뇩지를 애워싸 돌며 차례로
남쪽, 북쪽, 서쪽 바다로 들어간다.
주위 40리라고 한 것은
처음 곳의 입구처이다]
---
冶父:
前三三後三三이로다
說誼:
天地日月과 萬像森羅와
性相空有와 明暗殺活과
凡聖因果의 凡諸名數를
一句로 都說破로다
야부:
앞도 三三 뒤도 三三이로다
설의:
하늘 땅 해와 달과 삼라만상과
자성과 차별상과 빈 것과 있는 것,
밝고 어둡고 죽이고 살림과
범부와 성인 因果 등 무릇
모든 이름과 숫자를
이 한 구절로 모두 설파했도다.
---
청봉착어:
전삼삼 후삼삼 그것이 그것이니,
있어도 있지 않고 없어도 없지 않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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冶父:
一二三四數河沙랴 沙等恒河數更多인데
算盡目前無一法 方能靜處薩婆訶로다
說誼:
一二三四等恒河여 一恒河沙를 以爲數하고
一恒河沙가 猶未足하여 沙等恒河數更多이랴
諸法도 無邊數難窮하도다 窮盡諸法無異法이니
了得法法無異法하면 方能靜處薩婆訶이니라
야부:
하나 둘 셋 넷으로 항하의 모래 수를 세랴,
모래 같은 항하의 수가 다시 또한 많은데
셈을 다하여 눈앞에 一法도 없을 때
바야흐로 능히 적정처이니
비로소 사바하(成就)로다.
설의:
하나 둘 셋 넷 등의 항하여!
그 한 항하의 모래를 셈하고
한 항하의 모래로는 오히려
부족해서 모래 같은 항하의
수로서의 다시 많음이랴.
모든 것(法)도 끝이 없고 세어 다하기가 어렵도다.
모든 것(法)을 궁구해서 다해도 다른 것이 없으니
법과 법이 다른 것(法)이 없음을 요달하면 바야흐로
능히 적정처이니 비로소 사바하니라.
---
청봉착어:
그 많은 항하의 모래 수의 항하라 하물며
그 항하의 모래 수를 어찌 셀 수 있으랴?
낱낱의 모든 것(法)이 헤일 수 없는 그 많은
항하의 모래 수 만치 무궁하니라. 사바하
---
圭峰:
二는 約多沙以彰福이라
규봉:
㉡은 많은 모래로써 복을 드러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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須菩提 我今實言 告汝
若有善男子善女人
以七寶 滿爾所恒河沙數三千大千世界
以用布施 得福 多不 須菩提言 甚多 世尊
“수보리야! 내가 이제 진실한 말로
너에게 일러주노니,
약 선남자 선여인이 있어 칠보로써
저 항하의 모래수 만한 삼천대천세계를
가득 채워 이것으로써 보시한다면
얻은 복이 많겠느냐?”
수보리가 말씀드리기를
“매우 많사옵니다, 세존이시여!”
淸峯:
항하의 모래 수와 같은 항하와
그 항하의 모래수로 헤아릴 만한
삼천대천세계에 가득찬 수많은
칠보로써 보시를 행한 복이라면
그 얻은 복이야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임을 비유로 설하신 것이다.
---
圭峰:
論에 云하되
前己說喩거늘 何故로 復說인가하며
偈에 云하되 說多義差別이며 亦成勝校量이니
後福이 過於前이니 故로 重說勝喩라하다
何故로 不先說此喩냐하면 爲漸化衆生하여
令信上妙義故이며 又前未顯以何等勝功德으로
能得菩提故니라 三은 約多福以顯勝이니라
.
규봉:
論에 이르되
“앞에서 이미 비유하여 설했거늘
무슨 까닭으로 되풀이 설하신 것일까?” 했으며
偈에 이르되
“여러 가지로 그 뜻을 차별로써 설한 것이며
또한 뛰어난 헤아림(校量)으로 이룬 것이니
뒤의 복이 앞의 것보다 뛰어남(過)으로
거듭 수승함을 비유를 들어 설하셨다”고 했다.
[여기서는 항하의 모래수와 같은 수의
항하의 모래수와 같은 수의
삼천대천 세계의 많음을 비유로 설하고
앞에서는 한량없는 그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채운 칠보로 보시한 복과 비교하여
설한 것으로 곧 많은 가운데 많음과,
뛰어난 가운데 뛰어난 것을
거듭 설하시고자 하신 것이다]
무슨 까닭으로
먼저 이 비유(무량삼천 대천세계)로
설하지 않았는가 하면 점차로 중생을
교화하여 최상의 높고 묘한 뜻을 믿게
하고자 하기 위한 까닭이며,
[점차로 중생을...(爲漸化 운운) 밑으로는
사람을 잡아서 통하게 한 것으로
기(법 그릇)는 얕고 근본 진리(法)는
깊어서 갑자기 설하면 믿기 어려우므로
점차로 이끌어서 뛰어난 덕을 알게 한 것이다]
또 앞에서 설한 수승한(何等) 공덕으로서
능히 보리(깨달음)를 얻음(證得)을 아직
드러내지 못한 까닭인 것이다.
㉢은 많은 복을 가지고 뛰어남을 나타낸 것이다.
[또 앞의 아래는 모든 것(法)을 들어 통하게
하시니 앞에서 비유한 4과가 마음에 없어
석가세존의 얻음이 없음 등을
설하지 못한 것이므로 운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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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봉착어:
앞에서 수미산을 비유로 설한 것은
하나의 삼천 대천세계의 큼을 들어
비유로 설하신 것이고,
여기서는 그 뛰어난 많은 것
(무량 삼천 대천 세계)을 수로 들어
비교하여 설하시니 많고 많음이 무량하여
헤일 수 없음인 것을 거듭 설하신 것이다.
사람들의 근기가 얕아서 오묘한 이치를
알기 어려울까 염려하여 알아 깨닫게
하고자 비유를 점차 크게 들어 설하신 것이다.
한가지 한가지 예를 비유로 들어 설해서는
뛰어난 공덕을 능히 증오하지 못할까 하여
점차 많은 복을 비유로 들어 나타내
보이고자 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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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告須菩提 若善男子善女人
於此經中 乃至受持四句偈等
爲他人說하 而此福德 勝前福德
부처님이 수보리에게 말씀하시기를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이 경 가운데 이에 사구게 만이라도
받아 지니는데 이르러 다른 사람을 위해
일러준다면 이 복덕은 앞의 복덕보다 뛰어나니라.”
淸峯:
왜냐하면 재물로써 보시한 복덕은
아무리 많다 하나 유상(有相)의 복덕으로
유한하여 인과가 따름이나,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대지혜로
무상도(無上道)를 증득하면 윤회를
벗어나는 한량없고, 끝이 없고,
비할 수 없는 공덕을 얻기 때문이다.
受持(받아 지닌다)라는 것은 가르침에
깨달아 계합해 아는 것을 뜻한다.
說誼:
施寶는 終感生死이니 所以爲劣이요
持經은 當趣菩提이니 所以爲勝이니라
설의:
칠보로 보시하는 것은
마침내 생사를 받게 되는 것이니
하열한 까닭이고,
경을 수지 하는 것은
마땅히 보리(涅槃)에 나아가게 되는 것이니,
뛰어난 것이 되는 까닭이니라.
---
圭峰:
施感生死요 經趣菩提이니
大意는 同前하다.
규봉:
보시는 생사를 감득하고
경은 보리(涅槃)에 나아가게 되는 것이니
큰 뜻은
앞(항하의 모래 수 만한 항하의 모래수의
칠보로 한 보시보다 뛰어남)과 같다.
[곧 복은 보리(涅槃)에 나아가지 못하지만
2(수지→설)가지는
능히 보리에 나아간다 하는 것이다]
---
청봉착어:
보시는 복을 지으니 좋으나
복 지음만 집착하여
공덕을 쌓지 못하면
지은 것의 과보로
윤회의 인만 심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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六祖
布施七寶는 得三界富貴報하고
講說大乘經典은
令諸聞者로 生大智慧하여 成無上道이니
當知受持福德이 勝前七寶福德也니라.
육조:
칠보를 보시하는 것은
三界의 부귀한 과보를 얻고
대승경전을 강설하는 것은
모든 듣는 이들로 하여금
큰 지혜가 나게 하여
無上道를 이루게 하는 것이니
마땅히 알라.
경을 수지 하는 복덕이
앞의 칠보로 보시하는 복덕보다 뛰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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傅大士:
恒河數甚多인데 沙數更難量이랴
將沙齊七寶로 能持布施漿이라도
有相皆爲幻이라 徒言智慧强이니
若論四句偈하면 此福이 未爲長이니라.
부대사:
항하의 수가 심히 많은데
모래수를 다시 헤아리기 어려움에랴
모래 수와 같은 칠보로 능히 보시해
줄지라도 相이 있는 것 모두 幻인 것이라
다만 지혜가 더 강함을 말하는 것이니
만약 四구게를 논한다면
이 복(보시로 얻은)이 미치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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冶父:
眞鍮로 不換金이로다.
說誼:
眞鍮가 雖眞이나 比之精金하면 猶是僞寶요
施福이 雖勝이나 比之經福하면 猶是劣福이로다.
야부:
진짜 놋쇠라도 금과는 바꾸지 못하도다.
설의:
진짜 놋쇠가 비록 진짜이긴 하나
순금에 비하면 오히려 가짜 보배가 되고,
보시하는 복이 비록 뛰어나나
經 가지는 福에 비하면 오히려
하열한 복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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冶父:
入海算沙徒費力이라 區區未免走紅塵이나니
(紅은 一作埃라) 爭如運出家珍寶하여
枯木生花別是春이랴.
說誼:
棄本逐風波이니 終成有漏因이라
有漏因이 爭如直下明自己리오
因甚要須明自己랴
人人脚跟下는 淸淨本解脫이라
更明今日事하면 別有一春光이니라.
야부:
바다에 들어가 모래를 세는 것은
한갓 힘만 허비하여 차하게 번거로운
번뇌에 끄달림을 면치 못하나니
어찌 내 집의 진귀한 보배를 꺼내어
마른나무에 꽃피우는 특별한 봄만 같으랴.
설의
근본을 버리고 풍파를 쫓음은
마침내 有漏의 因을 이룸이라.
有漏의 因이 어찌 바로(直下에)
자기를 밝힘만 같으리오.
무엇으로 인하여 모름지기 自己를 밝히는가.
사람 사람의 선 자리가 청정한 본래 해탈이라.
다시 오늘의 일을 밝히면 별다른 한 봄빛이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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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봉착어:
복을 지으면 좋은 과보를 받고
공덕을 쌓으면 보리를 구하니
문 밖을 쏘다니며 부를 찾지 않아도
내 집안 창고에 보배가 그득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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宗鏡:
滿積恒沙七寶로 周廻布施三千하면
福德이 分明하여 果因이 不昩이나
能宣四句之偈하면 勝前萬倍之功이리니
用眞智以照愚함이 如急流而勇退로다
道하라 退後에는 如何인가
象踏恒河徹底過하여
大千沙界가 百雜碎로다.
說誼:
七寶施來의 福德果因이 分明하나 四句宣來하면
勝前施功萬倍니라 持說此經이 因甚勝前福德인가
前則智眼이 未明하여 癡心을 未除하나
此則智以照愚하여 愚不得住니라 且道하라 爾後에는
如何인가 利根이 依經解義하면 洞明此道淵源하리니
淵源이 旣已洞明하면 曠劫無明이 當下灰리라
無名이 旣已灰하면 目前境界가 何有리오
종경:
항하사에 가득한 칠보로 두루 삼천 세계에 보시하면
그 복덕이 분명하여 인과가 어둡지 않으나
능히 사구게를 일러줘 베풀면 앞의 복 지은 것보다
만 배나 뛰어나리니, 참다운 지혜를 써서
어리석음을 비추는 것이 급류(생사의 흐름)에서
용감하게 물러남과 같은 것이다.
자. 말해보라!
물러간 후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코끼리가 항하강을 건너는데는
철저히 바닥까지 밟아 대천의 모래들
(중생의 집착하는 마음)이
모두 부서짐과 같도다
설의
칠보를 보시하는 복덕은 과보의 因이 분명하나
四句를 알려줘 베풀면 앞의 보시로 얻은 것 보다
만 배나 뛰어나니라.
이 경을 수지하고 설하는 것이 무엇으로 인해서
앞의 복덕보다 뛰어난 것인가?
앞에 것은 지혜의 눈을 밝히지 못하여
어리석은 마음을 없애지 못하나,
이것은 지혜로써 어리석음을 비춰서
어리석음이 머물지 못하는 것이니라.
자. 말해보라!
그 뒤에는 어떠한가?
높은 근기가 경을 의지해서 뜻을 이해하면,
이 도리의 깊은 근원을 환히 밝히리니,
깊은 근원이 이미 밝혀지면
오랜 겁 동안의 무명이 그 자리에서 사라지니라.
무명이 이미 사라지면
눈앞의 경계가 어찌 있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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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봉착어:
보시 복덕은 인을 심어 과를 받으니
생사 윤회를 벗어나지 못하나
사구게를 지니고 설함은 지혜를 밝혀서
인과를 벗어나게 하니
그 공덕이 수승한 것이라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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宗鏡:
重增七寶滿恒沙여도 如棄甛瓜覓苦瓜이요
豁悟眞空元不壞하면 百千三昧가 總虛花니라.
說誼
甛瓜服來하면 心自悅하고 苦瓜服來하면 氣未便이니
持經은 當受無上樂하고 布施는 終成有漏因이니라
布施는 因甚하여 終成有漏하고 持經은 因甚하여
受樂無窮인가
持經은 豁悟眞空하고 布施는 空然住相이니
住相布施는 生天福이라 猶如仰箭射虛空이니라
豁悟眞空은 元不壞이니 百千三昧가 總虛花니라.
종경:
칠보를 거듭 더하여 항하사의 모래같이 가득히 하여도
단 오이를 버리고 쓴 오이를 찾는 것과 같으니라
활연히 眞空이 원래 무너지지 않음을 깨달으면
백 천 삼매도 모두 헛 꽃이니라.
설의
단 오이를 먹으면 마음이 스스로 즐겁고
쓴 오이를 먹으면 기분이 편치 못하니,
경을 가지면 마땅히 위없는 즐거움을 받고,
보시는 마침내 有漏의 因을 이루니라.
보시는
무엇으로 인해 마침내 유루를 이루고,
경을 가지면
무엇으로 인(因)하여 즐거움을 받음이 무궁할까?
경을 가지는 것은 眞空을 활연히 깨닫고
보시는 공연히 相에 집착하는 것이 되니,
상에 집착하는 보시는 天上에 나는 복이라
마치 허공을 향해 화살을 쏘는 것과 같으니라.
진공을 활연히 깨닫는 것은 원래 무너지지 않으니
백 천 삼매 온갖 것들 모두가 헛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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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봉착어:
보시는 한량 있는 복을 이루고
경을 지님은 한량없는 공덕을 이루니
유루의 복은 인을 심어
과를 받음으로써 끝남이 있고
무루의 공덕은
무너짐이 없는 항상한 것이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