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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무경과 둔궤의 차이점
무극 8장 22절
궤 안에는 "오강록(烏江錄) ", "설문(舌門) ", "반구제수(半口齊水) ", "천문지리 풍운조화(天文地理 風雲造化) ", "팔문둔갑 지혜용력(八門遁甲 智慧勇力) "등의 글을 쓰시고 글자마다 화각(火刻)하신 다음, 내부 정면의 문자 주위에 경면주사(鏡面朱砂)로 24점을 돌려 찍으시며 "이 궤는 나의 도지(道旨)와 도통(道統)을 숨겼으므로 둔궤(遁櫃)니라. "하시니라.
무극 8장 172절
상제님께서 백지에 태극을 무수히 그리시고 또 사각에 다른 글자를 쓰신 다음, 덕찬에게 동도지(東桃枝)를 여러 개 꺾어 오게 하셔서 덕겸에게 "태극을 세는데 열 번째가 될 때마다 동도지 하나씩 입에 물고 세도록 하라. "하시므로 그대로 하여 다 세어 보니 49개니라. 상제님께서 "맞았도다. 만일 잘못 세었으면 큰일이 나느니라. "하시며 동도지를 드시고 공중을 향하여 큰소리로 "나머지 하나를 속히 그리라. "하신 다음, 그 종이로 두루마리를 만드셔서 그 후에 약방 둔궤 앞에서 불사르시니라. 또 "백지에 용(龍)자 한 자를 써서 약방 우물에 넣으라. "하시므로 그대로 하니 그 종이가 물 속으로 들어가자 물이 솟구치니라.
태극 2장 66절
상제님께서 보천교 도장을 가리키시며 일동에게 하명하시기를 “우리는 오늘 밤 보천교의 치성이 끝난 후에 저들이 숨기고 있는 증산상제님의 둔궤(遁櫃)를 통사동 공부처로 모셔가야 하느니라.” 하시고 각자의 행동 방법을 자세히 가르쳐 주시니라.
태극 2장 68절
상제님께서 각 방문 앞마다 교도들의 신발이 많음을 보시고 승오로 하여금 곤봉으로 본당 마루를 힘껏 내리쳐서 교도들을 깨우게 하신 다음, 몸소 우뢰같은 용성(龍聲)으로 “천명에 의하여 천보를 모셔가리니 순순히 응하라. 만약 거역하는 자는 천벌을 받으리라.” 하시니 교도들은 청천벽력 같은 일에 겁이 나서 꼼짝도 못하니라. 상제님께서 각 방을 수색하게 하셨으나 둔궤를 찾지 못하므로 친히 한 방에 임어하시니라.
태극 2장 69절
상제님께서 그 방에 병풍으로 가려놓은 둔궤와 약장을 발견하시고 두 장사로 하여금 대청으로 들어내게 하시고 출어하시며 승오에게 명하셔서 약장은 그대로 두고 둔궤만 지고 나가게 하신 다음, 일행을 재촉하여 회정하시며 계철에게 대문을 지키고 서서 보천교도의 추적을 막게 하시니라.
태극 2장 70절
이때 보천교도들은 치성을 마치고 모두 잠자리에 들었다가 벼락같은 호통 소리에 혼비백산하였는데 누군가의 “둔궤 가져간다.” 하는 고함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문을 열어 보니 어떤 장사가 둔궤를 지고 대문을 나가고 있으니라. 뛰쳐나와 뒤쫓았으나 또 한 장사가 대문을 지키고 서서 추적을 막음으로 더 쫓지 못하고 장사들이 대문 밖으로 나간 다음에야 일제히 일어나 벌떼같이 나서서 추격하니라.
태극 2장 71절
승오는 둔궤를 지고 뛰어가면서 추격자들을 덤비는 대로 밀어내서 따돌렸으나 그 수가 너무 많아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우니라. 이때 계철이 상제님의 신변을 경호하여 드리려 하니 "나는 괜찮으니 승오를 도와 주라. "하시니라. 계철이 승오를 도와 산길로 들어가서 숲 속에 둔궤를 안치(安置)하고 되돌아오니 일행의 행방은 알 수 없고 온 들판이 추격자들로 가득하고 달빛과 함께 그들의 횃불이 밝아 더 지체할 수 없으니라. 다시 산으로 가서 둔궤를 지고 걸음을 재촉하여 날이 샐 무렵 통사동 공부처로 돌아오니라.
태극 2장 72절
공부처에서는 복우도장을 비롯한 가족과 도인들이 밤을 새워 일행을 기다리더니 두 장사만 돌아와서 경과사를 말하되, 상제님의 안부는 모른다 하니라. 도장께서 크게 걱정하시며 장사들에게 “혹시 그 신상에 변고가 생김은 아니냐? 둔궤는 있고 주인이 없으면 어찌하느냐?” 하시니라. 진(辰)시경까지 환어하지 않으시므로 몸소 사람들을 거느리고 찾아 나서셔서 태인(泰仁) 가는 큰 길에 이르셨을 때, 서산공 일행만 만나시니라. 그들 역시 밤새도록 상제님을 찾다가 환어하신 줄 알고 돌아오는 길이라 하므로 일행은 다시 합류하여 정읍방면으로 찾아 나서시니라.
태극 2장 74절
선덕부인께서 둔궤를 보고 감격하셔서 한참 동안 흐느끼시다가 “10년간의 삼천(三遷) 끝에 진주에게 돌아왔으니 천행(天幸)이로다.” 하시고 다음과 같이 둔궤의 내력을 설명하시라.
"이 둔궤는 증산상제님께서 화천 전년 4월에 동곡약방을 차리실 때, 약장과 함께 만드셔서"?이 궤 속에 번개가 들어야 한다."?하시고 또"?이는 나의 도지와 도통(道統)을 숨겼으므로 둔궤니라."?하시며 약방에 비치하시고 공사를 보신 천보니라. 화천하신 후에 김수부(金首婦)가 간수하더니 고수부(高首婦)가 교단을 세울 때 옮겨갔는데 경석의 전횡(專橫)을 못이겨 떠나자 경석이 숨겼던 것이니라. 그 문에는 상제님께서 손수 자물쇠를 채우시고 열쇠를 숨기셨으므로 지금까지 누구도 열 수 없으니라.”
태극 2장 75절
둔궤의 크기는 가로 4척, 높이 3척, 폭 1척5촌이며 5푼 두께의 오동나무 판자로 짜고 그 겉에는 옻칠을 하여 모양은 함과 같으나 문은 장롱과 같이 앞으로 열게 되어 있으니라. 선덕부인께서 그 문에 채워진 자물쇠가 한 번도 열린 흔적이 없음을 확인하시고 기뻐하시니라.
태극 2장 76절
이러한 설명을 들은 가족과 도인들은 그 신비에 새삼 감탄하면서도 약장까지 모셔오지 못함을 서운히 생각하고, 더욱이 장사들은 상제님의 후한 대접을 받았으면서도 이 일을 아울러 완수하지 못한 자책으로 고두사죄(叩頭謝罪)하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둔궤만으로도 족히 구천상제님의 도수를 받들 수 있으니 너무 염려하지 말라. 만일 꼭 필요하다면 왜 그대로 두라 하였으랴? 그대들은 앞으로 한번 더 할 일이 있으니 그때에도 차질 없도록 하라.” 하시니라.
태극 2장 77절
상제님께서 공부실 상좌(上座)에 둔궤를 안치하시고 그 날 저녁에 대치성을 올리신 다음, 하교하시기를 “내가 그대들의 도움으로 천장지보(天藏之寶)를 잘 모시게 되었는 바 이는 구천상제님께서 짜 놓으신 삼천(三天)의 도수로서 내가 봉행하여야 할 큰 도수 중의 하나니라. 그러므로 아무리 어려워도 하여야 할 공사며, 또 나 아니면 못할 일이니라. 만약 도수가 아니라면 모셔 올 필요도 없지마는 다른 때 그들이 잠든 틈에 쉽게 모셔 와도 될 일을 굳이 사람들이 많이 모인 때, 잠자는 사람들을 깨워 알리기까지 할 이유가 어디 있으리요? 그러므로 훗날 오늘의 일에 대하여 시비를 일으키는 자는 도수와 공사를 모르는 자니라.” 하시고 이날부터
"둔궤도수(遁櫃度數) "공부에 임하시니라.
태극 2장 78절
둔궤도수공부 1개월이 되던 날 상우와 두 장사에게 하명하시기를 “그대들은 오늘 둔궤를 경상도 함안군 대산면 용화산(龍華山)의 반구정(伴鷗亭)으로 옮기되 협로(狹路)로 가도록 하라.” 하시며 그곳으로 가는 길과 반구정의 내력를 하교하시니라. 일행은 이날 둔궤를 혼수(婚需)짐처럼 꾸며 지고 통사동을 출발하여 임실(任實), 장수(長水)를 거쳐 산청(山淸), 의령(宜寧)을 지나 반구정까지 좁은 길로 돌아 5일만에 도착하니 상제님께서는 조주일, 권태로 등을 거느리시고 먼저 임어하셨으니라.
태극 2장 80절
상제님께서 반구정 공부실 상좌에 둔궤를 모시고 공부설석하신 다음 대치성을 올리시니라. 두 장사에게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하시며 위로금을 하사하시니 그들은 “진인의 공사에 만분지일이라도 도와드림이 일생의 영광이옵고 보수를 바람은 아니옵나이다.” 하고 고사하며 그 중에서 여비만 받아 떠나니라. 상제님께서 “그대들의 공로는 후세에 길이 남으리라.” 하시며 못내 아쉬워하시니라.
태극 2장 82절
상제님께서 2월 중순 백일공부를 마치시던 날 “이제 둔궤도수를 잘 마쳤노라.” 하시며 시종들의 노고를 치하하신 다음, 상우에게 하명하시기를 “이 둔궤 문에 채워진 자물쇠를 열어야 하리니 열쇠를 만들도록 하라.” 하시니라. 상우가 칠원읍(漆原邑)에 가서 열쇠장수를 데려와 자물쇠에 맞추어 열쇠를 만들어 열려고 하였으나 열리지 않으니라. 다시 여러 개를 만들어 며칠 간 수십 차례 시험하였으나 끝내 열리지 않으므로 “그만두고 돌려보내라.” 하시니라.
태극 2장 83절
이튿날은 도기 12년(단기 4253년, 서기 1920년) 경신(庚申) 2월 17일, 양력 4월 5일 청명절(淸明節)이니라. 상제님께서 입절시각(入節時刻)인 사(巳)시에 공부실에서 절후치성을 올리신 후, 둔궤 앞에 따로 법수(法水)를 상에 차려 올리시고 시종들을 정렬하여 법좌(法座)하게 하신 다음, 친히 분향, 4배하시고 일동에게 태을주를 연송하게 하시니라. 상제님께서 공부하실 때 쓰시는 주(籌)대를 열쇠구멍에 끼우시는 순간 뇌성벽력이 일어나며 천지가 진동하고 실내가 별안간 어두워졌다가 다시 밝아지며 자물쇠가 스스로 열리니라. 일동이 신이하게 생각할 때 상제님께서 둔궤의 문을 여시니 또 한번 뇌전이 일고 궤 안에서 섬광이 번쩍이니라.
태극 2장 84절
상제님께서 둔궤의 문을 열어 놓으시고 4배를 올리시므로 일동도 따라 올리고 내부를 살피니 그 안에는 양피(羊皮) 한 장과 반쯤 핀 국화 한 송이가 들어 있으니라. 내부 정면 중앙에는 "오강록(烏江錄) ", 그 좌측에 "설문(舌門) ", 우측에 "반구제수(半口齊水) ", 좌면에는 "천문지리 풍운조화(天文地理 風雲造化) ", 우면에는 "팔문둔갑 지혜용력(八門遁甲 智慧勇力) "이라는 화각서(火刻書)가 있고 정면 문자 주위에는 주사(朱砂)로 24점이 선명하게 찍혀 있으니라.
태극 2장 85절
상제님께서 둔궤 내부를 상세히 친감하신 다음, 말씀하시기를 “과시 천보로다, 수운(水雲)의 거년 경신(庚申) 4월 초5일은 음력이로되, 나의 금년 경신 4월 초5일은 양력이니 음양합덕(陰陽合德)이며 태극도수(太極度數)가 분명하도다.” 하시며 감탄하시니라. 다시 문을 닫으신 다음, 자물쇠를 채우셔서 전과 같이 안치하시며 “이제 너희들이 본 바와 같이 내가 구천상제님의 도수를 음양합덕으로 하나하나 잘 풀어 가고 있으니 흔쾌한 바니라. 다만, 너희들은 조심하여 천기를 누설하지 말지니라.” 하시니라.
태극 2장 89절
백일간의 "검무도수 "를 마치시고 8월 중순에 다시 통사동으로 환어하실 때, 칼은 가져오시고 둔궤는 그 곳에 두시니라. 그 후에 조주일이 상제님을 배신하고 몰래 반구정에 가서 둔궤를 가지고 진주(晉州) 모처로 도망하여 사술(詐術)로 신도를 모으다가 1년 만에 죽으니라. 상우가 이 소식을 듣고 상제님께 둔궤를 찾고자 여쭈니 “둔궤는 이미 도수에 따라 쓰여 나의 일을 다 마쳤으니 그로써 족하고 둔궤라는 둔(遁)자는 또한 도망둔자로서 도망자의 소유가 됨은 필연이며, 이제는 한낱 궤에 불과하니라. 또 비일주일(非一周一)이라 후일에도 이러한 배신, 난법자가 나타나 세상을 현혹하는 일이 있으리라.” 하시며 찾지 말도록 하시니라.
태극 2장 96절
상우가 지난 봄에 둔궤의 내부를 살피고 그 신비에 감동한 이래, 그 비의(?意)를 깨닫기에 골몰하더니 연말 어느 날 상제님께 오강록과 설문의 뜻을 송구히 여쭈니 “오강록(烏江錄)은 나의 비결이고 설문(舌門)은 너희 비결이니 더는 묻지 말라.” 하시니라. 다시 여쭈기를 “양피는 미생(未生)의 뜻이옵고, 24점은 사철의 뜻이오며 반구제수(半口齊水)는 선생님의 존함(尊啣)이 분명하오나 반개국(半開菊)의 뜻은 무엇이옵나이까? 하교하여 주옵소서.” 하니 “국화는 9월 5일에 반쯤 핀다는 뜻이니라. 그러나 이런 일에 몰두하면 수행에 방해되니 근신하고 수구여병(守口如甁)하라.” 하시니라.
96. 상우가 지난 봄에 둔궤의 내부를 살피고 그 신비에 감동한 이래, 그 비의(?意)를 깨닫기에 골몰하더니 연말 어느 날 상제님께 오강록과 설문의 뜻을 송구히 여쭈니 “오강록(烏江錄)은 나의 비결이고 설문(舌門)은 너희 비결이니 더는 묻지 말라.” 하시니라. 다시 여쭈기를 “양피는 미생(未生)의 뜻이옵고, 24점은 사철의 뜻이오며 반구제수(半口齊水)는 선생님의 존함(尊啣)이 분명하오나 반개국(半開菊)의 뜻은 무엇이옵나이까? 하교하여 주옵소서.” 하니 “국화는 9월 5일에 반쯤 핀다는 뜻이니라. 그러나 이런 일에 몰두하면 수행에 방해되니 근신하고 수구여병(守口如甁)하라.” 하시니라.
태극 3장 31절
그들의 말에 의하면 열수는 그동안 모교단의 임원이던 문남룡(文南龍)의 꾀임에 빠져 남룡의 주동으로 비밀리에 폭도들을 규합하여, 이때 상제님께서 모신 증산상제님의 성체와 둔궤를 비롯한 도장기금(道場基金)을 강탈하기로 모의하니라. 이에 열수는 도중(道中)의 정보를 제공하고 탈취한 돈은 남룡과 반으로 나누기로 하되, 거사일은 우수절로 정하고 미리 정우를 치성참례원으로 가장, 잠입시켜 전수에 몽혼약(?昏藥)을 몰래 타는 등 치밀한 음모를 추진하니라. 그런데 상우가 이 사실을 상제님께 서찰로 보고하여 상제님께서 둔궤와 기금을 미리 숨기셨으므로 이번에는 증산상제님의 성체와 기금의 극히 적은 액수밖에 강탈하지 못하고 실패하였으니 이는 오직 상우의 탓이라 하니라.
태극 3장 32절
이어 그들은 상우에게 “지금도 계속 증산상제님의 좌수성골을 위시하여 기금 전부와 둔궤를 강탈하고자 심복들을 형사로 가장시켜 사방으로 도주(道主)를 찾는 중이나, 이제는 네가 통사동으로 돌아가 도주의 소재를 탐지하여 알려 주어야 하고, 만약 그렇지 않으면 비밀보장을 위하여 너를 죽일 수밖에 없다.” 하고 위협하니라. 상우가 둔궤는 조주일이 가져간 사실을 말하였으나 그들은 듣지 않고 더욱 협박하므로, 부득이 거짓 동의하고 열수와 함께 25일 통사동으로 돌아오니라.
태극 3장 39절
3월 12일에 상제님께서 빙택에서 공부하시다가 집 앞에 거둥하시자 그때까지 추적하던 열수 등 폭도들에게 발각되셔서 그들의 소굴인 대전 본동 중앙여관으로 임어하게 되시니라. 그들은 상제님께 “좌수성골과 둔궤, 그리고 도장기금을 내놓지 않으면 죽인다.” 하고 협박하므로
“둔궤는 조주일이 가져갔고 성골과 금품은 너희들이 모두 강탈하고서 무슨 적반하장(賊反荷杖)이냐?” 하시며 대응하시니 언쟁이 벌어지니라.
태극 7장 8절
하루는 금현에게 하문하시기를 “너는 이때를 어찌하여 "초한도수(楚漢度數) "라 하는지 아느냐?” 하시니라. 금현이 “초패왕이 오강에서 자문이사(自刎而死)한 후에 "동해용왕이 되었다 "하옵는데 동서남북 사방 중에서 서백호, 남주작, 북현무, 동청룡이라 하여 유독 동방에만 용왕이 있사옵니다. 동은 3?8목(三八木)이옵고 지금이 3?8목운이오니 청룡 동해용왕의 해원시대가 되어 자연히 초패왕의 해원도수인 초한도수이오며 그러므로 구천상제님께서 둔궤에 오강록을 비록(秘錄)하심이라 생각하옵나이다.” 하니 “네가 아는 것이 무던하나 그것만은 아니니 너희는 언제나 무슨 일이든지 오행의 근본인 음양원리 즉 태극진리로 이루어짐을 깨달아야 하느니라.” 하시니라.
첫댓글 수도인들이 둔궤에 대한 교화나 내용은 별로 허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도주나 박우당은 아주 중요하게 여겼죠
도주는 이미 둔궤과 어떤것이다라는 것을 알았기에 보천교에 있던 둔궤를 가지고 옵니다
박우당 또한 개태사에서 둔궤를 가지고 갑니다 이때 박우당은 조화를 부렸죠
둔궤가 논산에서 중곡 도장으로 가기까지 비바람과 천둥번개가 치면서 막힌 고속도로가 뚫렸다고 표현 해야 되나
아무든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둔궤는 대순에 그대로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현무경 보다 둔궤와 둔궤 속에 각인한 글들 이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 하는 것입니다
박우당이 虛靈에 대해서 한 훈시가 있을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虛靈은 쥔장이 말한 비어 있는 것 같으면서 무언가 꽉 차있다
이 말을 다른 말로 하면 다른 神이 차고 들어온 것을 박우당은 虛靈으로 이야기 합니다
박우당 말을 해석 하면 자신의 靈이 비어 있으니 다른 神이 들어와서 이걸 虛靈으로 표현하는 것이죠
하여 虛靈들면 딴짓을 한다고 훈시한 내용 입니다
그럼 전경구절의 虛靈과 현무경의 虛靈은 뜻을 달리 해야 하는 것입니다
道傳於夜天開於子 轍環天下虛靈===>>> 이 虛靈을 해석 할려면 앞 문장에 마추어 해석 해야 됩니다
또한 현무경 무이구곡 虛靈符는 무이구곡이란 장소에 마추어 풀어야 됩니다
구복이는 머리 즉 앞에 문장의 해석을 뺀 몸통인 虛靈만 강조 하고 있죠 문제 있는거죠ㅡㅡㅡㅋㅋㅋㅋ
한문 구절은 일반적이 뜻으로 푸는 것이 아니라 전경은 그 대상에 맞게 풀어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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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奉於晨地闢於丑 不信看我足知覺
(교봉어신지벽어축)(불신간아족지각)
축시에 땅이 열려 새벽(새로운 神)神을 받들라고 가르치나
믿지 아니하고 자신만 바라보며 깨닫는 것은 발(足)만 알 뿐이다
足=발 족 (증산/도주/박우당/박성구)만 알뿐이다
여기서 땅은 地===>>神將들 이 신장들이 삼신과 박도전을 알때(知覺) 또 다시 새로운 神(진인)을 받들라고 가르치나
새로운 神을 믿지 아니하고 자신과 四족(네 발) 깨우쳤다는 것입니다 하여===>>>知覺
道傳於夜天開於子 轍環天下虛靈
도전어야천개어자 철환천하허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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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시에 하늘이 열려 고을(12고을)에 도를 전하니
하늘 아래 흔적(바퀴자국)의 고리가 虛靈(三神)이다
敎奉於晨地闢於丑 不信看我足知覺
교봉어신지벽어축 불신간아족지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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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시에 땅이 열려 새벽(새로운 神)神을 받들라고 가르치나
믿지 아니하고 자신만 바라보며 깨닫는 것은 발(足)만 알 뿐이다
足=발 족 (증산/도주/박우당/박성구)만 알뿐이다
德布於世人起於寅 腹中八十年神明
덕포어세인기어인 복중팔십년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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寅시에 사람(神將)이 일어나 세상에 덕을 펼치니
八卦 중앙 두터운 곳의 신명이더라
(腹=복)===>>>명사; 물리===>>>배 5의 한자 五===>>>별이름, 또는 帝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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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하여 전경에 있는 虛靈 知覺 神明은 신장들이 깨닫는 과정이며
현무경의 무이구곡 虛靈符 知覺符 神明符는 장소를 이야기 하죠
이 모든 것이 상도 박도전 제세시에 이루어 진다는 것입니다
腹中八十年神明 <<<===상도나 대순에서 교화 할 때 노자를 들먹이며 노자에 비유 하여 교화해 왔었죠
증산의 눈은 易의 中央을 보고 쓴 글입니다 즉 남산에 올라가서 아래로 내려다 보면 서울 시내가 다 보이듯이
八卦의 中央도 언덕처럼 솟아 있어야 각 방위를 내려다 볼수 있는 것이죠
하여 배腹자를 쓴 것이며 八卦를 八十年으로 모사한 것이죠
😀 글은 이렇게 완성해 간다는 것을 모범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진리를 찾아가는 여정엔 이렇게 어우러져야만 합니다. 그래서 글이 다음글에 징검다리 역할을 해서 진리에 더 가까이 다가가도록 돕는게 글을 쓰는 이유입니다.
'스님(스머시기님)'처럼 자신만 아는 선문답을 펼치거나 비틀기에 정력을 쏟기엔 시간이 별로 없군요.
🤔 우선 한가지 의문이 드는군요.
장기준이 고수부댁에 가서 차경석과 고수부가 지켜보는 가운데 둔궤를 열었는데 위의 전경 속의 태극 2장 75의 선덕 부인의 말은 둔궤가 처음 열리는 것으로 묘사가 됐습니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도주에게 필요한 것은 둔궤라는 것입니다 이 둔궤를 장기준은 헌신짝 처럼 버렸고
도주는 자신의 목숨 보다 더 귀하게 여겼던 것이죠
그럼 둔궤가 무엇이다는 도주는 알고 있기에 본소를 찾아서 둔궤가 진짜인지 확인 하는 것이겠죠
선덕부인은 둔궤가 열렸는지 모를 수도 있겠죠
아니면 장기준의 현무경 출처가 차경석이가 가지고 있던 것을 필사보 해서 가져 갔던지
무극 9장 1절
구천상제님께서 도기 원년(단기 4242년, 서기 1909년) 기유(己酉)년 원조에 친히 현무경(玄武經) 세 권을 쓰셔서 한 권은 몸소 지니시고, 한 권은 후일 도창현(道昌峴)에서 불사르셨으며, 한 권은 내성에게 맡기시니 현무경은 한지 13장 26면에 문자와 부도(符圖)를 기록하여 철하신 책이니라.
무극 9장 3절
현무경을 쓰신 후에 백지에 글을 쓰셔서 두루마리를 만들어 물 담은 흰 병의 입을 막아 놓으시고, 그 앞에 백지를 깔고 그 위에 현무경을 놓으셨다가 거두시니라. 상제님께서 화천(化天)하신 후에 병마개를 빼어 펴 보니 "길화개길실(吉花開吉實) 흉화개흉실(凶花開凶實) "이라는 글과 다음의 의통(醫統), 병세문(病勢文) 등이 쓰여 있느니라.
여기서 한권은 몸소 지녔다는 것은 본소에 벽장 속에서 발견 된 현무경일테고 한권은 안내성에게 줬고
이 구절들에서는 궤에서 현무경이 나왔다는 내용은 없죠
[八五]기유년(己酉年-1909년)정월1일에 현무경(玄武經)이 세상에 출현하거늘 안내성의 집에서 흰병에 물을 담은 후에 양지에 글을 써서 권축(卷軸)을 지어 병입을 막아놓고 그 앞에 백지를 깔고 백지위에 현무경 상하편을 놓아두었더니,선생이 선화하신 후에 차경석이 내성의 집에 와서 현무경을 빌려가면서 병입을 막은 종이를 빼어서 펴보니 길화개길실 흉화개흉실(吉花開吉實 凶花開凶實)이라는 글이 쓰여저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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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곡비서에 있는 85절 내용 입니다
저는 장기준 쪽이 거짓이라고 보고 싶군요 진짜는 현무경이 아니라 둔궤였는데....음
둔궤는 왜 정해진 사람만이 열수 있는지 그 이유를 말 해야 겠군요
둔궤는 八卦의 문이고 이 문에는 12신장들의 영들이 모여 있는 것입니다 구러니 정해진 사람이 아니면 열수가 없죠
만약 정해지지않는 사람이 열면 반듯이 벼락이 칠테고 그 벼락에 목숨을 잃게 된다고 봐야 합니다
근데 장기준이 열었는데 아무 반응 없이 열렸다....??? 무언가 허슬하죠
무극 5장 17절
8월에 상제님께서 고부 입석리(立石里) 매부 박창국(朴昌國)의 집에 임어하시니, 마침 매씨 선덕부인(宣德夫人)께서 벗은 발로 풀밭에 다님을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며 말씀하시기를 "이 근처에 독사가 많은데 발을 물리면 어찌 하리요? "하시고 길게 휘파람을 부시자, 문득 독사 한 마리가 풀밭에서 나와 뜰 아래 머리를 들고 도사리니라. 이때 창국이 밖으로부터 들어오다가 독사를 보고 상장(喪杖)으로 타살하니라.
상제님께서 탄식하시며 "독사혜(毒蛇兮) 독사혜여, 상인견지(喪人見之)에 상장타살(喪杖打殺)하고, 선승견지(禪僧見之)에 선장타살(禪杖打殺)이언마는 누이는 제어할 것이 없도다. "하시더니, 독사의 피가 땅에 묻어 있음을 보시고 "이 피를 맨 발로 밟으면 해로우리라. "하시며 친히 그 피를 발로 비벼 독기를 제거하시니라.
무극 8장 159절
이튿날 학동을 출어하시며 공우에게 말씀하시기를 "나의 이 번 길은 장래(將來)할 유일인(唯一人)의 절을 받기 위함이니 그 절이 천하에 널리 미치리라. 그 인사가 곧 후천진인(後天眞人)이니라. "하시고 홀로 정읍 마동(馬洞)에 임어하시니라. 그곳에 집 한 채를 사 놓으시고 매씨 선덕부인을 부르셔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출가 10년에 소생이 없어 시가의 소박을 당함은 측은한 일이나, 이 또한 도수니라. 이제부터 이곳에 홀로 살면서 도수에 따른 인사를 기다리면 내 일을 이루리니 대망(大望)은 정월 대망이니라. 이곳이 나의 본소(本所)임은 천기니 누설하지 말라. "하시며 그 집을 하사하시고 대흥리로 행행하시니라.
무극 9장 15절
이날 정읍 마동에 임어하셔서 누이 선덕부인에게 하명하시기를 "너는 이 본소에서 을미생(乙未生)을 기다리라. 그는 나의 도통(道統)을 이을 진인이니라. 그 진인을 나 본 듯이 경대(敬待)하되 천기이니 누설하지 말라. "하시며 그 집을 손수 수리하시고 도배까지 하여 주시니라.
태극 2장 74절
선덕부인께서 둔궤를 보고 감격하셔서 한참 동안 흐느끼시다가 “10년간의 삼천(三遷) 끝에 진주에게 돌아왔으니 천행(天幸)이로다.” 하시고 다음과 같이 둔궤의 내력을 설명하시라. "이 둔궤는 증산상제님께서 화천 전년 4월에 동곡약방을 차리실 때, 약장과 함께 만드셔서"?이 궤 속에 번개가 들어야 한다."?하시고 또"?이는 나의 도지와 도통(道統)을 숨겼으므로 둔궤니라."?하시며 약방에 비치하시고 공사를 보신 천보니라. 화천하신 후에 김수부(金首婦)가 간수하더니 고수부(高首婦)가 교단을 세울 때 옮겨갔는데 경석의 전횡(專橫)을 못이겨 떠나자 경석이 숨겼던 것이니라.
그 문에는 상제님께서 손수 자물쇠를 채우시고 열쇠를 숨기셨으므로 지금까지 누구도 열 수 없으니라.”
태극 2장 75절
둔궤의 크기는 가로 4척, 높이 3척, 폭 1척5촌이며 5푼 두께의 오동나무 판자로 짜고 그 겉에는 옻칠을 하여 모양은 함과 같으나 문은 장롱과 같이 앞으로 열게 되어 있으니라. 선덕부인께서 그 문에 채워진 자물쇠가 한 번도 열린 흔적이 없음을 확인하시고 기뻐하시니라.
그리고 한가지 더 대학 도수에 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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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극 6장 29절
상제님께서 김경학(金京學)의 집에 대학교도수를 정하시고 "학교는 이 학교가 크니라. 이제는 해원시대이므로 천한 사람에게 도를 먼저 전하여야 하리니 박수 6명을 불러 오라 "하시니라. 경학이 명을 받들고 불러오니 관건(冠巾)을 벗게 하신 다음, 각자의 앞에 청수를 놓게 하시고 거기에 4배를 시키신 후, 시천주 세 번을 외우게 하시고 주소, 성명을 물으시며 "세상이 다 아는 이름이냐? "하시고 "청수를 마시라. 이것이 곧 복수(福水)요, 복록(福祿)이니라 "하시니라.
무극 8장 67절
상제님께서 "천지대팔문(天地大八門) 일월대어명(日月大御命) 금수대도술(禽獸大道術) 인간대적선(人間大積善) 시호시호(時乎時乎) 귀신세계(鬼神世界) "라는 글을 쓰셔서 공우에게 주시며 "경수의 집 벽에 붙이라. "하시고, 또 "경수의 집에 수명소(壽命所)를 정하느니, 너희들은 모든 사람을 대할 때에 그 장점만 취하여 호의를 가질 것이요, 혹 단점이 보이더라도 용서하고 증오하지 말라. 네가 경수의 집에 함께 사는 고로 이 일을 너에게 시키느니라. "하시니라.
또 형렬에게 "법은 원래 서울에서 비롯하여 세계 만방으로 펴 나가는 것이므로 서울경(京)자 이름 가진 사람의 기운을 써야 하리라. 그러므로 경수의 집에 수명소를 정하느니라. "하시고, 다시 경학의 집에는 대학교를 정하시며 "다유곡기횡이입(多有曲岐橫易入) 비무탄로정난심(非無坦路正難尋) "이라는 글을 쓰셔서 벽에 붙이게 하시고, 경원의 집에는 복록소(福祿所)를 정하시니라.
도주가 푼 대학에 관한 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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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 6장 34절
이달 중순에 상제님께서 백일공부를 마치시고 임원들에게 하명하시기를 “그대들이 지난번에 나를 지존(至尊)위에 오르라 함이 도수를 알고 한 일은 아니나 이 또한 천기니라. 이로써 이곳 도수를 마쳤으니, 천장길방(天藏吉方)인 길지(吉地)를 찾아 도강이서(渡江而西)하여 정주(定住)할""대이동도수(大移動度數)""와 상제님께서 정하신""대학도수(大學度數)""가 돌아오느니라. 운수는 좋으나 고난이 많으리니 그대들이 감내 할지 걱정이로다.” 하시니라.
태극 6장 59절
이달 하순에 상제님께서 대책위원들에게 하명하시기를 “도인들이 모두 감천으로 이주한 후에 나만 보수동에 남아 있는 것이 도수에 맞지 않은지라. 내가 감천으로 가리니 5감에 적당한 방 한 칸을 마련하라.” 하시므로 위원들이 상의한 다음, 비록 판잣집이나 중하의 집이 적합하여 거둥시의 임시 행재소로 정하여 드리니 “이곳에서 장차""대학도수(大學度數)""를 보게 되리라.” 하시며 왈유정(曰有亭) 관아재(觀我齋)로 명명하시니라.
태극 7장 6절
15일에 명절치성을 올리시며 하교하시기를 “내가 감천으로 옮겨 장차 대학도수를 보아야 하므로 이 치성은 태을주와 기도주의 운을 합치시키는 운합치성(運合致誠)이니라.” 하시고 이로부터 태을주 납폐지 소화제도를 폐지하시니라.
태극 7장 87절
이달 29일에 상제님께서 보수동 부산도장을 보수도정(寶水道庭)으로 개칭하시고 감천동 구덕정사의 정침(正寢)은 회룡재(廻龍齋), 공부실은 산회당(山會堂), 그 경내를 부산도장으로 명명하시며 “이곳에 장차 대학도수, 청학공부(靑學工夫)를 열 것이며 계대(繼臺), 영대(靈臺)가 있게 되리라.” 하시니라.
대학은 현무경을 푼 도수가 아니라 東學과 西學을 가르치는 장소를 말 하는 것입니다
이 장소에 수명과 복록을 붙이는 도수가 수명소 복록소구요
장소는 상도이며 여기서 수명과 복록을 붙이고 東學과 西學을 가르치게 됩니다
병세문에 있는 대학 도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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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有大聖人 曰東學
동유대성인 왈동학
西有大聖人 曰西學 都是敎民化民
서유대성인 왈서학 도시교민화민
孔子 魯之大司寇 孟子 善說齊粱之君
공자 노지대사구 맹자 선세제량지군
近日 日本國 文神武神 ?務道統
근일 일본국 문신무신 병무도통
朝鮮國 上計神 中計神 下計神 無依無托 不可不文字
조선국 상계신 중계신 하계신 무의무탁 불가불문자
戒於人 宮商角徵羽 聖人乃作 先天下之職 先天下之業
계어인 궁상각치우 성인내작 선천하지직 선천하지업
職者醫也 業者統也 聖之職 聖之業
직자의야 업자통야 성지직 성지업
하여 저는 장기준이란 분이 의심스럽다는 것입니다
차경석이나 고부인은 종통을 주장하기 위해서 그러게 짜 마출수도 있으나
현무경 가져가서 서전서문으로 이치를 깨닫았다는 것도 허구라고 봅니다
왜냐면 서전서문은 누가 중앙에 천자를 이르켜 세우느냐가 핵심 입니다
즉 천자를 이르켜 세웠을때 도와 통했다는 것이 되죠 하여 서문서전을 많이 읽으면 도에 통하고 라고 되어 있습니다
서전서문의 핵심은 建中建極입니다 요 순 우 심법이라 본인 스스로 천자로 나서지 않고 중앙의 자리를 비워두고
지켰다는 것이죠 도주도, 박우당도, 박도전도, 중앙에 차지할 진인이 있다는걸 알고
박우당에게 천자를 세우는걸 떠넘겨 버렸고 박우당도 중앙에 자리를 차지할 진인이 있다는 것을 알고 박성구에게 떠 넘겼고
박도전에서 중앙에 진인을 일으겨 세워집니다 그 내용이 훈시로 남아 았죠
이 내용이 요, 순, 우를 공사로 사용 했는 것입니다
근데 장기준이 서전서문으로 현무경을 풀었다는 것은 글세요 저는 이치가 맞지 않는다고 봅니다
다음은 박우당과 둔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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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년갑자(甲子)년 二월에 류기찬(柳冀讚)이 도전께 둔궤(遁櫃)에 대하여 말씀을 올리니라.
원래 둔궤는 상제께서 신경수의 집에서 만드시어 동곡약방에 두신 것을 차경석이 보천교 본부에 비치하였고
그것을 도주께서 재실(齋室)로 가져오시어 도수에 쓰신 후 함안 반구정에 옮겨 놓으셨는데 조주일(曺周一.)이
훔쳐 가 소재를 알 수 없었다.그 둔궤는 논산군(論山郡) 연무읍(鍊武邑)에 사는 사람의 집에 비치되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둔궤가 밤마다 울어대더니 집주인의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말했다.
『이 궤는 네가 가지고 있을 것이 못 되느니라.
서울 모처에 진인(眞人)이 계시니 마땅히 그 분께 올려야 하느니라.』
그 사람이 기이하게 여겨 동리 사람들에게 말하니 소문이 널리 유포되었도다. 그 후
그는 둔궤가 바로 상제의 유품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류기찬을 찾아와 둔궤가 자기 집에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류기찬은 이를 도전께 말씀드린 것이다.
二十五일 새벽에 도전께서 안영일(安永日). 류기찬(柳冀讚). 김찬성(金贊成). 서대원(徐大源). 정대진(鄭大珍).
천정술(千庭述)을 대동하고 중곡도장을 출발하셨다.
오전 十시경에 연무읍에 도착하시어 둔궤를 받으시고 열쇠로 둔궤를 여시는 순간
회오리바람이 크게 일며 뇌성벽력이 치기 시작했다. 도전께서는 둔궤를 차에 싣고 서울로 출발하시었다.
하늘이 칠흑처럼 어두워지고 뇌성벽력과 바람이 크게 일며 도전께서 타신 차를 따라오니
도로의 다른 차량들이 놀라 길옆으로 비켜섰다. 도전께서 중곡도장에 돌아오시어 둔궤를 영대(靈臺)에
안치(安置)하시자 뇌성벽력과 바람이 비로소 그치니라.
이후부터 도전께서는 둔궤(遁櫃)를 성궤(聖櫃)라 말씀하셨다.
이때에 도전께서 도인들의 바른 수도생활을 격려하셨다. 二월 어느 날 포정원(布正院)에서 임원들에게 분부하셨다.
『벌가벌가 기측불원(伐柯伐柯 其則不遠)이라 하였으니. 도의 본보기가 멀리 있지 않고 가까운 데 있느니라.
우주대원(宇宙大元)의 진리가 도이며 도는 사람만이 깨달아 닦을 수 있음이니 도인으로서 본분에 어긋나는
허망한 말과 행동을 삼가고 수도규정을 지키도록 하라
.「있는 말로 일을 꾸미면 천하가 부수려 해도 못 부술 것이요.
없는 말로 일을 꾸미면 부서질 때는 여지가 없느니라.」고 하셨으니
곧 무자기(無自欺)를 뜻함이니라. 도인들의 수도는 선후가 없고 도통은 원근(遠近)이 없이 천하동춘(天下同春)이
될 것이니. 수도의 제 규정을 준수하고 삿된 방법을 취하지 않아야 일시청풍(一時淸風)의 취정(聚精)의 경지에
이를 것이요 만약 삿된 방법을 감행한다면 이는 욕심을 앞세우기 때문에 정기는 물러가고 사기가 선동하는 법이니라.
이런 것을 일러 허령(虛靈)이라 하나니 허령은 곧 광증(狂症)이니라. 상제께서「허(虛)가 내리면 진(眞)을 받지 못한다」하셨으니 매사를 소홀히 생각하지 말고 일상 자신을 반성하여야 할 것이니라. 너희들은 나의 말을 바르게 인식하고
실천하여 생활화되도록 하라』
이러한 훈시(訓示)의 대지(大志)를 받들어 교무부(敎務部)에서는 경신(庚申)년 一월부터
갑자(甲子)년 三월까지 도인들에게 내리신 분부의 요의(要義)를 정리하여《대순지침(大巡指針)》을 발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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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둔궤가 옮겨 오고 대순지침이 발간된 가정입니다
그럼 박도전에게 둔궤가 오지 않았느냐 인데 크게 보면 박도전까지 옮겨올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박우당 제세시에 이미 十二神將들과 眞人이 대순에 들어 왔기 때문이죠 또한 박도전도 선화하기 까지
대순진리회 소속이였습니다 상도에서는 재명 당한 도전이라고 하지만 박우당이 제명 시키지 않고
화천해 버렸죠 하여 하늘이 정하여 내어 놓은 사람을 누가 제명 시킵니까 살림은 따로 할수 있으나 하늘의 족보는
하찮은 임원들이 제명 시킬수 없죠 하여 박도전 화천하기 까지 대순진리회 명칭은 그대로였습니다
또한 상도에 온 것은 둔궤가 아닌 대순에 각 방면에 흩어졌던 영들이 상도로 모이는 이유죠
즉 박도전이 하늘의 족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박도전은 둔궤가 아닌 살아 있는 신장과 진인이 옮겨 오는 것입니다
이정도쯤이면 현무경과 둔궤를 이해 하리라 봅니다
댓글을 달기도 만만치 않을텐데 장문의 댓글을 다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 좋은 연구자료가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