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골집 장남이 쓴 '기억의 소환'
바깥 나들이를 대신하여 '기억의 소환'으로 글 한 편 썼습니다.
강원도 삼척의 산골에서 태어나
사춘기에 부산으로 내려왔고,
하단, 당리, 서면을 거쳐 줄곧 광안리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88서울올림픽'이 있던 해 겨울에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자식들이 있는 부산으로 오셔서 고군분투 하시다가
2012년 여름 산바태풍이 덮치던 날 이른 아침, 어머니도 우리 곁을 떠나시고 없습니다.
이제 남은 피붙이라곤 형제들 뿐입니다.
내가 장남인 관계로 아래로는 세 명의 남동생과
위로는 두 분의 누님이 계시는 데
모든 일은 내가 처리하고 결정해야 하는 위치입니다.
그러다 보니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사람이 살아간다는 게 좋은 일만 있을 수 없듯
형제간도 비슷한 일들이 있게 마련이고,
때로는 섭섭하고 미안하고 가슴 아파 해야 할 때도 종종 생겨나게 마련입니다.
그래도 다들 건강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면 믿음직스럽고도
고마울 때가 많습니다.
나 역시 두 놈의 자식을 키웠고,
그 자식도 손자 둘을 낳아 할아버지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말없는 세월이 참 빠르다는 소회입니다.
힘든 세월이 있다 해도 지나고 보면 그때가 다 그립고 생각나 듯
오늘도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에 글 한 편 썼습니다.
그럼, 편안한 시간 되셨으면 고맙겠습니다.
때 : 2009.1.17(토) 맑음
장소 : 강원도 태백시 태백산 등반
누구와 : 부산시청 산악회 회원들과
12:17분
부산에서 버스로 태백시 '백단사 매표소'에 도착하여 첫 발을 옮깁니다.
고산이라 한낮에도 나뭇가지에 쌓인 눈이 머리위로 툭툭 떨어지고
하얗게 쌓인 눈에서 뽀드득 뽀드득 소리를 듣습니다.
13:19분
당골에서 올라오는 세갈래 길의 산 속에서
어묵 장사가 펼쳐놓은 솥단지에 맛있는 어묵이
김을 모락모락 피워 올립니다.
13:56분
정상 아래에 있는 용정(龍井)에 도착합니다.
용정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놓은 1,470m에서 솟는 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용정이 있는 만경사 마당에서 쪼그리고 앉아
늦은 점심을 먹습니다.
나도 그들과 함께 도시락을 꺼냅니다.
14:16분
해발 1,567m 정상에 도착을 합니다.
전국의 사람들이 하얀 눈 속에도 많이 찾아와 있었습니다.
태백산 정상의 '천제단' 입니다.
그리고 천제단으로 몸을 숨겨 바람을 피합니다.
사람들은 정성껏 준비해온 제수용품을 차려놓고 절을 올립니다.
다시 걸음을 옮겨 장군단으로 갔습니다.
사진을 찍기위해 장갑을 벗으니 손가락이 떨어져 나갈 것만 같습니다.
돌아서 내려오는 하산길은 능선길을 따라 문수봉으로 향합니다.
겨울 눈이 하얗게 내려앉은 주목들이 장관을 연출합니다.
푹푹 빠지는 눈 길을 걸어 문수봉에 왔습니다.
15:51분
돌탑이 있는 문수봉입니다.
둥글게 쌓아 올린 돌탑들이 아름다움을 넘어 신성스럽기도 합니다.
16:36분
석탄박물관이 있는 당골로 가는 길에 '하늘정원'을 봅니다.
장중한 송림들에서 솔향이 가슴 깊이 들어옵니다.
뭘까요?
장끼? 까투리?
하여튼 어릴 때 많이 본 발자국입니다.
16:48분
눈 축제장 준비가 한창인 당골에 도착합니다.
한쪽에는 하늘의 눈으로는 모자라 인공 눈을 만드는 제설기를 돌립니다.
많은 재주꾼들이 쌓아 놓은 눈 덩이에
갖가지 조각품을 새깁니다.
그해 첫 산행이고, 즐겁고 행복했던 산행이었습니다.
태백석탄박물관 입구입니다.
사진 감상을 끝내고
자작 글 '겨울밤이 시리다' 한 편 붙입니다.
겨울밤이 시리다
강원도의 겨울은 길다. 삼척의 두메에는 처서가 되면서 겨울이 시작된다. 농사도 끝났으니 월동준비에 바쁜 계절이다. 라디오나 텔레비가 없던 시절, 그곳 사람들은 비구름만 보고도 날씨를 예측했고, 하늘의 별을 보고도 기상을 관측했다.
깊은 산골의 겨울은 여름 태풍과도 흡사하다. 가령 샛바람이 일면서 밤하늘이 새파라면 한파가 닥쳐올 징조였고, 진눈깨비가 내리다가 날씨가 포근하면 폭설이 내릴 조짐이다. 그곳 사람들은 그렇게 인식했고 그러한 인식들은 정확히 맞아갔다.
그날도 진눈깨비가 가끔씩 흩날렸다. 태풍의 전야처럼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했다. 그럴 때면 산골 사람들은 바빠진다. 여자들은 개울에서 물을 길어 나르고 남자들은 산에서 땔감을 나르느라 서로들 바쁘다. 보일러가 없었으니 모든 연료는 나무였다. 나무로 밥을 짓고, 나무로 방을 덥히고, 나무를 때서 소죽을 끓였다.
아버지는 지게를 지고 뒷산으로 오르셨고, 아들도 따라 종졸걸음을 걸었다. 나이가 어려 도울 수도 없지만 무슨 생각에서 아버지를 뒤따랐다. 그 곳은 서낭뒷골의 산이었고 경사가 있으면서 고도가 높았다. 능선에 오르면 골짜기가 발아래로 보였고 면사무소와 학교 운동장이 조금씩 보일 정도로 가팔랐다.
여름이면 소를 몰거나 소꼴을 베러 갔고, 동생과 개미집을 털거나 돌배나무에 매달려 돌배를 따먹기도 했다. 거기까진 제법 거리가 멀었지만 울창한 소나무 숲과 탁 트인 전망이 좋아 가파른 오솔길도 힘들지가 않았다.
그곳에 도착한 아버지는 걸음을 멈추셨다. 지게 작대기로 소나무 등걸을 툭툭 치고는 지게를 벗었다. 지게를 벗어놓고 윗도리에 들어있던 담뱃대를 꺼냈다. 담뱃대는 장죽에 담뱃진이 붙어있는 전통적인 것이었다. 거기에 연초를 부벼서 불을 붙였다. 담배를 피운다기보다 하나의 의식처럼 보였다. 가령 짐승이 자기의 영역을 표시하듯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행위와도 같았다.
긴 담뱃대를 물고 한 모금 깊게 빨아 당겼다. 흰 연기를 내뿜으며 잠시 먼 산을 응시했다. 그러다가 혼잣말처럼 허공에 대고 중얼거렸다.
“오늘 밤에 장사가 지려는 가보다.” 하셨다. 듣고 있던 아들은 아버지께 물었다.
“…… 장사가 지는지 안 지는지 어떻게 아는데요?”
“저-기 봐라, 기차소리가 들리지 않느냐?” 아들은 아버지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면서 책에서 읽은 기차를 떠올렸다. 하지만 한 번도 기차를 본 적이 없어 어떤 게 기차소리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아무도 안 들리는데요?” 아들은 겹겹이 내려앉은 산줄기의 파노라마를 보면서도 아무런 소리를 듣지 못했다. 간혹 가랑잎 굴리는 바람소리만 조용하게 들릴 뿐 고요 속의 적막함이다.
“잘 들어보면 들릴 기다.” 아버지는 연신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그렇게 말씀하셨고, 아들은 계속해서 귀를 쫑긋하고 있었다.
“저기가 고모령인데 저기로 기차가 지나댕긴다.” 고모령은 몇 번 들어본 적 있지만, 거기에 기찻길이 있다는 건 처음 듣는 소리였다. 워낙 거리도 멀고 바람소리에 개미 실낱만한 기차소리를 구분하기에는 어린 나이였다.
“장사가 질라하모 기차도 바쁜기라.” 톡톡톡! 흙에 박힌 돌멩이에 담뱃대 터는 소리다.
“…….” 그땐 그게 뭔 소린지 몰랐고, 하늘과 맞붙은 산꼭대기에 기차가 굴러간다는 건 상상도 안 되었다.
그날 이후에도 그곳은 놀이터처럼 찾아갔고, 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세월이 흘러 자식들이 성장했다. 첫째는 부산으로, 둘째는 삼척 시내였던 북평으로 분가를 했고, 그 밑으론 서울과 충남으로 객지생활을 해나갔다.
그러던 어느 해였다. 동생이 북평으로 분가한 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형이 동생네 집을 방문하기로 했다. 부산에서 동생네 집을 가려면 기차로 가야 한다. 한 번에 갈 수 있는 기차도 없어 중간에서 갈아타야 했다. 영주에서 갈아타고 하룻밤 꼬박 새서 동이 틀 무렵 밤기차는 통리역을 힘겹게 올라갔다.
느릿느릿 움직이던 기차가 통리역에 들어섰다. 그곳은 내가 도시로 나온 시발역이고 가끔씩 찾아가는 기착지이다. 창밖은 새벽안개로 자욱해서 보이는 것이라곤 역사 건물과 플랫폼에 서있는 역무원뿐이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역무원이 수신호로 기차를 세우고 출발시켰다. 내리고 타는 승객도 아줌마 아저씨 몇 분이 전부였고, 기차는 연거푸 헉헉거리며 수증기를 내뿜었다.
갈 길이 먼 기차를 역무원이 청색 깃발로 출발시킨다. 기적소리를 울리면서 철거덕 철거덕 몇 번의 용트림을 했다. 기차는 연신 흰 연기를 공구랗게 내뿜었고, 차안은 냉기로 가득했다. 험준한 터널을 이리저리 굽이치다 산 중턱에서 잠시 멈추었다. 더 이상 오를 수도 내려갈 수도 없는 최고봉에 다다랐다. 나한정역이 있는 협곡으로 스위치백 구간을 만났던 것이었다.
그때에 알 수 있었다. 아버지가 하신 그 말씀을……. 기찻길이 태백산맥의 꼭대기에 었었고, 후진으로 내려가는 스위치백 구간이 있었으니 철길에 눈이 쌓이면 위험했다. 아버지와 함께 바라봤던 그곳과의 거리는 직선으로 15킬로 남짓하다. 바람이 잦아들고 주위가 고요하면 충분히 들을 수 있는 거리였다.
이제 아버지는 이 세상 분이 아니시다. 아버지와 함께 걸었던 그 산도 발걸음이 잦아든 지 오래이다. 나무가 우거져서 오를 수 없을 만큼 험해졌다. 그때 아버지는 자식들 걱정한 소리셨고, 월동 준비를 빗대어 하신 말씀이다. 폭설이 쏟아지면 긴 겨울을 눈 속에 파묻혀 지내야 했다. 내가 아버지가 되고 보니 조금 알 것도 같다.
# 샛바람 : 북풍의 강원도 사투리
# 장사 : 폭설을 뜻하는 고향의 토속어
# 고모령 : 하장과 신기로 이어진 고갯길, 고무릉리를 '고모령' 신기 쪽을 '고마람'이라 불렀음
# 공구랗다 : 치솟다의 방언
* 긴 글 읽으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가정에 건강과 평화가 함께 깃들기를 바랍니다. 꾸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