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어릴적 50년대에는 누구나 그러 했듯이 궁핍한 생활의 연속이었다. 우리 집안은 사촌이 한울타리에 살았던 대가족 집안이었다. 나의 4촌은 40여명이나 되었고 항상 부족한 식량 때문에 부잣집 밥짓는날 만큼이나 우리는 굶주렸다. 난 동네를 주름잡는 개구장이였기 때문에 거의 저녁 식사(죽으로 때움)에 참석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나의 밥사발은 형들이 먼저 차지하고 그들은 오히려 내가 안 나타나기를 원했다. 그럴때 마다 나의 어머니는 감추어 둔 당신의 죽그릇을 나에게 주시곤 했다.
언젠가 영화 공공의적 1편을 본 적이 있다. 그 영화를 보면서 얼마나 속으로 울었는지 모른다. 설경구와 정준호가 대립하는 추리영화인데 악역인 정준호는 돈을 위해 갑부인 자기 부모를 살해한다. 어머니의 부검때 胃에서 손톱조각이 발견된다. 자식의 죄를 감추기 위해 어머니는 죽어가는 순간에도 현장에 떨어진 자식의 손톱 조각을 증거 인멸을 위해 삼켜 버린 것이다.
요즘 孝를 여러 각도로 해석하고 변질시키려는 의도가 있는 것 같다. 내리사랑은 愛이고 올리사랑은 孝이다. 시대가 흐름에 따라 여러가지 이유로 愛는 갈 수록 깊어만 가는데 孝는 등한시 되는 것이 개탄스러울 뿐이다. 孝를 愛만큼 할 수 없을까. 두고 두고 생각해야 할 부분이다. -끝-
첫댓글 효우들끼리도 반목하고 대립하는 것이 현실이다.
효가 현실에 맞게 변화해야 하는데
변화에 적응이 못하는 것같아요
송효우님의 좋은 효강의로 변화시켜보세요
그리고 변함없는 효에 대한 관심이 부족해서지요
반성하겠습니다.
어느 시인을 만났지요. 키가 자그마하신 분....
어머니께서 늘 속이 불편하시다면서 식사를 거르시자
이 시인은 늘 밥을 남겼답니다.
아침에 일어나보면 그 밥이 없어졌다고....
그래서 당신이 키가 작답니다.
모태본능이라 했던가요. 어머님의 사랑은 끝이 없답니다. 그래서 이혼한 부부 대부분이 자식을 어머니가 키운답니다. 남성들이여 씨는 뿌린다고 임무가 끝나는 게 아닙니다.
내 가정에서라도 지켜갈 효일 것 같습니다
세상에 효가 없어도
내 안에 지켜낸 효가 있다면
효는 이어질 것입니다
맞으신지요
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