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4장 50~53절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0 예수께서 저희를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저희에게 축복하시더니
51 축복하실 때에 저희를 떠나 (하늘로 올리우) 시니
52 저희가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53 늘 성전에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사도행전 2장 1~8절
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5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우거하더니
6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의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7 다 놀라 기이히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8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
지난주 말씀을 되짚어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9장 32절에 ‘군병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했습니다.
‘다리를 꺽다.’에서 ‘다리’라는 단어의 어근은 ‘샤카크’인데
⤷ 그 뜻은, ‘뛰다, 소원하다, 갈망하다.’의 뜻을 가지고 있고
그 의미는, ‘하나님의 뜻 안으로, 하나님의 나라 안으로 가기를 갈망한다, 소원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다리를 꺽다.’에서 ‘꺽다’라는 단어의 어근은 ‘샤베르’인데
⤷ 그 뜻은, ‘깨뜨리다, 박살내다.’의 뜻을 가지고 있고,
그 의미는, ‘세상의 어두움에 속한 무지와 육신의 정욕이 깨뜨려지고, 박살났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리를 꺽는다.’는 것의 의미는
⤷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시인하는 그리스도인은~,
어두움에 속한 무지, 육신의 정욕이라는 죄가 꺽여지고, 부워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십자가에 달린 좌우에 있었던 인간은 모든 인류를 말합니다.
그래서 이들의 ‘다리가 꺽어진 것’은~
⇨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모든 죄인의 어두움에 속한 영적 무지와 육신의 정욕이 깨뜨려 졌다는 것을
좌우에 달린 인간의 다리가 꺽어진 것으로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참 그리스도인, 참 교회‘는~
⇨ ’어두움에 속한 영적 무지와 육신의 정욕이 깨뜨려 졌다‘는 이 ’십자가의 은혜‘를 깨닫고
더 이상, 세상의 지식을 좇아가는 영적 무지함을 따르지 말고
우리에게 생명되신 예수님의 말씀에 깨어있어야 하며
육신의 정욕을 날마다 십자가에 복종시키며, 영원한 것을 바라보고 살아가야 합니다.
십자가에 달린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은 낙원에 갔지만, 한 사람은 심판을 받게 됩니다.
낙원에 간 사람은, 더 이상 영적 무지함을 따르지 않고, 깨어 있어 생명의 말씀에 순종하며
육신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그 육신의 정욕을 십자가에 복종시키는 ’참 그리스도인‘을 말하고,
심판받은 사람은, 예수님이 이미 심판해버린 영적 무지함과 육신의 정욕을 다시 붙잡고 사는 종교인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붙잡고 있고, 무엇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사단이 하나님의 말씀을 육신의 정욕적인 것으로 속일 때,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인 하와처럼
여전히 세상의 것이 목적이 되어 있거나, 생명의 복음보다 세상의 지식을 더 따르지 않는지는 않습니까?
기독교 방송에서 전하는 설교를 듣다 보면,
그 내용들이, 성도들이 세상을 바라보게 하고, 세상의 것이 목적이 되도록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대로 영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잘 가르치지 않습니다. 가르쳐도 너무 막연하게 가르칩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필요한 부분은 분명히 기도하고 구해야 하지만,
여러분이 영적인 것에 아는 것이 없고
예수님께 기도하는 한다는 것이~
세상의 것,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목적이 된 길을 가고 있다면~
설교자가 그 세상의 것을 아무리 정당화해도 그 길은, 하와가 걸어간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보시고, 또 가까운 성도에게 질문을 해보세요.
내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 위해, 얼마나 내 안에서 일어나는 정욕을 십자가에 복종시키고 있는지.
보이지 않은, 그러나 분명한 약속이 있는 영원한 나라에 대한 소망이 얼마나 있는지.
그리고 우리에게 약속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말입니다.
⇨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참 교회‘는, 이러한 것이 중심이 되어 말씀에 따라 삽니다.
그러나 종교인은, 자기 속에 있는 세상에 대한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는 대신, 그것을 감추기 위해
윤리, 도덕, 선행, 봉사 등으로 그것을 대신합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참 교회‘는, 자기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지,
자기 정과 욕심에 따라 살면서
윤리, 도덕, 선행, 봉사 등으로 나타나지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히 심판을 면하지 못할 인간을 대신해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 그리고 어두운 세상의 무지를 깨뜨리고 ⇨ 그리스도인에게 ‘살리는 생명의 복음’을 주셨습니다.
육신의 정욕을 깨뜨리고 ⇨ ‘보이지 않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자기 중심에~ ‘나는, 나를 살리는 이 복음에 목말라 하는가, 영원한 아버지의 나라를 갈망하는가,
그리고 날마다 육신의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는가,’
이것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인가를 알 수 있는 기준’이요 이것이 없다면, 종교인입니다.
종교인은 예수님의 이름을 불러도 예수님과 상관없는 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신약 성경에 나타난 성도들이 어떻게 말씀으로 살았는지 그들의 삶의 모습을 잘 알고 깨달아야 합니다.
번영신학은 복음이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오늘 분문을 함께 봅시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하늘로 올라기시기 전에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하늘로 올라가십니다.
유월절이 지난 후 50일 후에 오순절(성령감림절, 추수감사절)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3일 후에 부활하시고, 그의 사람들과 40일간 함께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장 3절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약 120명의 사람은 7일 동안~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그들이 받은 가르침, 부활하신 예수님,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의 그 놀라운 증거를 가슴에 품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늘 성전에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고(누가복음 24장52~53절),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에서 마음을 같이 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며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립니다.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을 성전이라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8장 20절의 말씀도 ‘아버지가 약속하신 성령님을 기다린 후에 나타날 모습’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리고 오순절 날에,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인 곳에 아버지가 약속한 성령이 오셔서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비로소’ 복음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여러분과 오늘 나눌 말씀이 이것입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약 120명의 문도들은,
(고린도전서 15장 6절에는 부활하신 모습을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았고, 예수님의 핍박과 죽으심과 부활과 하늘로 올라가시는 것까지 보게 됩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가르치신 말씀에 대한 지식이 있었고, 경험도 있었고, 부활하시고 올라가신 증거도 있습니다.
그리고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 이 정도라면~ 예수님에게 배운 것을 나가서 가르칠 수 있지 않을까요?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신 것을 전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얼마든지 영에 속한 일을 전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예수님은 이들에게 지금 당장 나가서~ 지금까지 내게 배우고, 듣고, 본 것을 전하라 하시지 않으시고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 성령님을 기다리라.’ 하셨고,
⇨ 비로소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나서야 이들은 성령이 말하게 하심에 따라 예수님이 전하신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반드시 깨달아야 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에 그의 사람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고 하신 것은,
⇨ 하나님의 일, 영적인 일은~ 많은 가르침을 받아 많은 것을 안다 해도, 아무리 많은 경험과 증거가 있다 해도,
이것으로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오신 성령님이 하시는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삶도, 내가 아는 많은 지식, 내 경험, 내가 본 것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성령의 깨닫게 하심과 인도하심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교회’는, 성령이 임하시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전이라는 것,
‘교회’는,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 영에 속한 일을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영에 속한 그 일을 하시는 주체’는, 내가 아니라,
내 안에 오신 성령님이라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삶’도, 성령님이 깨닫게 하시고 인도하시는 삶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교회가 된 나’를 통해 나타나야 할 분은 ⇨ 오직 예수 그리스도요,
날마다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10~ 11절
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1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결론
성령은 우리를 통해서 영의 일, 하늘의 일을 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삶을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로 작정하면 우리는 제일 먼저 무엇을 구해야 합니까? 성령님.
성령님을 통해 말씀을 깨달을 수 있도록.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깨달은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내 모든 삶과 문제에 성령님의 인도하시도록. 나를 통해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성령님을 깨달을 수 있도록.
날마다 성령님을 통해 단장되어질 수 있도록.
예수님이 올라가시기 전에도, 그리고 ‘산상수훈’에서도
우리가 먼저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할 것은 성령인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7장 7~11절
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10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 11절에 ‘좋은 것’은 누가복음 11장 13절에 ‘성령’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 예수님이 산상수훈에서 하신 이 말씀이 오늘 본문인 사도행전 1, 2장에서 나타난 것이요
또한 우리에게도 나타나야 할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기 뜻과 생각대로 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지식, 경험, 증거로는 승리할 수도, 아름다운 결실도 맺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나’라는, ‘세상’이라는 사고에 갇혀 살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그 섭리를 깨달으시는 한울타리 교회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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