宿佛地庵(숙불지암) - 불지암에 묵으면서
虛應堂 普雨大師(허응당 보우대사 ; 1510? - 1565?)
兩峯如袖擁簷楹 양봉여수옹첨영
소매 같은 두 봉우리 처마 기둥 감싸 안아
勢若王維畵筆成 세약왕유화필성
그 형세는 왕유가 그린 듯하네
風打梨花香一樹 풍타이와향일수
바람이 배꽃 스치니 숲가득 향기 서리고
澗搖禪客夢三更 간요선객몽삼경
개울 소리 한밤중에 선객의 꿈 뒤흔드네
人間天地塵常暝 인간천지진상명
사람 사는 세상에는 항상 먼지 자욱하지만
壼裏乾坤景自淸 곤이건곤경자청
별천지 신선 세계 풍경 절로 맑네
銅水更尋雙掬飮 동수갱심쌍국음
감로수 다시 찾아 두 손으로 떠 마시니
都忘參學十年情 도망참학십년정
참선 공부 10년정을 모두 잊게 되네.
袖(수) ; 소매.
擁簷楹(옹첨영) ; 옹(擁)을 끌어안다. 첨(簷)은 처마, 영(楹)은 기둥이다.
지붕의 처마가 지붕을 받친 기둥을 감싸 안다.
王維(왕유) ; 당의 시인이자 화가. 자연을 소재로 한 서정시에 뛰어나 ‘시불’이라고
불리며, 수묵 산수화에도 뛰어나 남종문인화의 창시자로 평가받는다.
一樹(일수) ; 한그루의 나무(?), 여기서의 樹(수)는 단순한 초목으로서의 나무가 아니라
一(일)의 수식을 받아 숲으로 풀어야 맛이 살아난다.
壼裏(곤이) ; 곤(壼)은 대궐의 문 내지 문지방이니 그 보이지 않는 내부.
신성하고 경이로운 곳.
銅水(동수) ; 미네랄이 많아 맛이 좋은 음용수. 감로수(甘露水)라고도 쓴다.
都忘(도망) ; 도매금으로 잊어버리다. 몽땅 잊어버리다. 모두 잊다.
掬(국) ; 움켜쥐다.
參學(참학) ; 참선공부.
불지암은 마하연의 동쪽에 있는 암자로서 표훈사에 딸린 암자다. 옛날 어떤 스님이 골짜기에 들어와 땅을 파다가 부처처럼 생긴 돌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 암자를 지어서 불지암이라고 이름 붙였다고 한다.
보우대사는 불지암 뒤로 불쑥 솟은 두 봉우리를 보고 당나라 화가 왕유의 그림을
떠올리고 있다. 불지암은 경치로도 아름답지만 물맛도 일품이었다. 대사가 동수라 쓴 것은 ‘감로수’로 써서는 율을 맞출 수 없었음이고, 여기에 구리동을 넣어 미네랄맛을
문자로 나타냈음은 대단히 기발한 발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