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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육신을 버리고 새 육신을 받을 때에는
1, 이끄는 말
육신은 이제 죽어진다 하여도
변함이 없는 소소(昭昭)한 영식(靈識)은 영원히 사라지지 아니하고,
또다시 다른 육신을 받게 되므로 <천도품 6>
우리는 믿어야 한다.
우리의 영혼이 영원하다고
견성한 큰 학자가 증명할 것이다.
예) 전파, 전기,
예) 동산 이병은법사님 – 알봉에서 할머니보고 여보
달라이나마 -
전생의 기억 -
지수화풍 4대(四大)로 된 육체는 비록 죽었다 살았다하여
이 세상 저세상이 있으나 영혼은 영원불멸하여 길이 생사가 없나니
<천도품 16>
※ 영식(靈識) ~ 지식을 배워서 아는 것과는 달리
사람의 근본 성품은 본래 신령스럽게 아는 마음 작용
영지[靈知] ~ ⑴ 신령스럽게 앎. 신령스러운 지혜.
⑵ 진리의 소소영령(昭昭靈靈)함을 나타내는 말.
⑶ 정신에서 발현되는 지혜.
마음에 분별과 주착이 없는 가운데 영묘하게 앎이 나타나는 것.
영혼[靈魂] ~ 육체 속에 깃들어 생명을 부여하고 마음을 움직인다고 여겨지는
무형의 실체
영혼[靈魂] ~ 또는 혼백(魂魄)은 사람이나 동물의 생명을 유지시키고 정신을 갖게 한다고 여겨지는 것으로 과학의 범주 밖에 있기 때문에 과학의 범위에서는 판단할 수 없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현재 과학의 판단능력으로는 존재 여부가 식별되지 않았다. 하지만 비과학적인 범위에서의 인간의 경험과 지식으로써 영혼이 존재한다고 증언되고 있으며 인류 역사에 있어서 다양한 형태의 종교와 사후세계 및 영적인 현상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근간이 되고 있다.
칼 융(Jung, Carl Gustav)은 영혼을 인간의 외부에서 내부로 들어와 생명의 원리로 작용하는 실체로 본다. 그에 따르면 영혼은 ①스스로 자발적인 운동과 활동을 하며, ②감각적인 지각에 의존하지 않고 이미지를 산출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③이러한 이미지들을 자율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기독교는 이러한 영육일원적인 영혼관에서 탈피하여 영혼을 육체와 달리 초인간적이고 영원한 성격을 지닌 실체로 파악했다. 이러한 영혼은 신의 속성을 가지고 창조되었기 때문에 육체의 힘으로도 파괴할 수 없으며 앞으로 재림할 그리스도가 구원할 대상이기도 하다.
현세(現世)에 사는 것만 큰 일이지만
죽는 일도 크게 아나니,
잘 죽는 사람이라야 잘 나서 잘 살 수 있으며,
잘 나서 잘 사는 사람이라야 잘 죽을 수 있다
생은 사의 근본이요 사는 생의 근본이라는 이치를 알기 때문이니라.
<천도품 1>
윤회를 한다고 한다면 연결이 되어 있으니
밤을 잘 보내야 낮이 편안하고 - 하루
겨울을 잘 보내냐 봄이 좋다. - 겨울을 잘 보내야
인생의 생ㆍ로ㆍ병ㆍ사가 마치 춘ㆍ하ㆍ추ㆍ동 사시(四時) 바뀌는 것과 같고 저 생과 이생이 마치 거년과 금년 되는 것 같나니라.”<천도품 16>
2. 영혼이 이 육신과 갈릴 때
1) 기식이 완전히 끊어진 뒤에
예외) 기식이 남아있는데 영혼이 먼저 뜬다.
[영혼이 이 육신과 갈릴 때에는 육신의 기식(氣息)이 완전히 끊어진 뒤에 뜨는 것이 보통이나, 아직 육신의 기식이 남아 있는데 영혼만 먼저 뜨는 수도 있으며, 영혼이 육신에서 뜨면 약 칠·칠(七七)일 동안 중음(中陰)으로 있다가 탁태되는 것이 보통이나, 뜨면서 바로 탁태되는 수도 있고, 또는 중음으로 몇 달 혹은 몇 해 동안 바람 같이 떠돌아 다니다가 탁태되는 수도 있는데, 보통 영혼은 새 육신을 받을 때까지는 잠잘 때 꿈꾸듯 자기의 육신을 그대로 가진 것으로 알고 돌아다니다가 한 번 탁태를 하면 먼저 의식은 사라지고 탁태된 육신을 자기 것으로 아나니라.]<천도품 13>
2) 중음에 머무는 시간
약 칠·칠(七七)일 동안
중음이란 중유라고도 하는데
생유(태어남) 본유(삶) 사유(죽음) 중유(죽은 후)
예외) 몇 달 몇 해 떠돌아다니기도
특히 자연스럽게 가지 않으면 착에 걸려 잘 못간다.
※ 중음 [中陰] ~ [불교] 사유(四有)의 하나.
사람이 죽은 뒤 다음의 생(生)을 받을 때까지의 49일 동안을 이른다.
중생은 세상에 태어나는 최초의 존재인 생유(生有),
태어나서 죽기까지의 생애인 본유(本有),
죽는 찰나인 사유(死有),
죽은 후에 다음 세상에 태어날 때까지인 중유(中有)의
넷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3. 새 육신을 받을 때
사람의 영식이 이 육신을 떠날 때에 처음에는 그 착심을 좇아 가게 되고,
후에는 그 업을 따라 받게 되어 한 없는 세상에 길이 윤회하나니,
윤회를 자유하는 방법은 오직 착심을 여의고 업을 초월하는 데에 있나니라.]
<천도품 11>
① 처음에는 그 착심을 좇아 가게 되고
간절한 원이 있는 곳 – 원력을 굳게 세운 후
예) 아이의 꿈이 외교관 – 초등학생이 영어, 외국에 가는 걸
교환학생(중학교) 웍킹홀리데이
호주에 가서 공부 하겠다고, 알바해서
※ 워킹홀리데이 ~ 해외에서 여행 중인 젊은이가 방문국에서 일할 수 있도록 특별히 허가해 주는 제도로 보통 관광 비자로는 방문국에서 노동이 금지되어 있으나 국제친선을 위해 특별히 설치된 예외적인 제도로 연령은 대게 18~25세, 6개월 체류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마음이 가 있는 곳 – 아쉬움, 사랑함, 안 잊힘, 증오
[근래 사람들이 혹 좋은 묘터를 미리 잡아 놓고 거기에 자기가 묻히리라는 생각을 굳게 가지는 수가 더러 있으나, 그러한 사람은 명을 마치는 찰나에 영식이 바로 그 터로 가게 되어 그 주위에 인도 수생의 길이 없으면 부지중 악도에 떨어져서 사람 몸을 받기가 어렵게 되나니 어찌 조심할 바 아니리요.] <천도품 20>
예) 자식, 돈, 사업장, 묘지, 원한
취향이 있는 곳 – 끌리는 곳 예) 바둑, 탁구, 술,
취미따라, 습관따라,
인연따라 - 잘 아는 곳, 아는 사람
※ 애착[愛着] ~ 몹시 사랑하거나 끌려서 떨어지지 않는 마음
② 후에는 그 업을 따라 받게 되어
업이 가는 길을 결정한다.
[사람이 제가 지어 놓은 것이 없으면 내생에 아무리 잘 되기를 원하여도 그대로 되지 아니하는 것이 비하건대 현생에서도 아무리 좋은 집에 들어가 살고 싶으나 자기의 집이 아니면 들어가 살 수 없는 경우와 같나니라. 공칠(公七)이를 보라! 이리(裡里)역에 내리면 몇 층 양옥이 즐비하되 그 집에는 감히 들어가 볼 생심도 못 하고, 그 찌그러진 자기 집에만 찾아들지 아니하는가. 이것이 곧 자기가 지어 놓은 대로 가는 실례이며 지어 놓은 그대로 받는 표본이니라.] <인과품 18>
원한다고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예) 익산역앞 공칠이 – 좋은 집이 있으나 찌그러진 자기집
여행을 가서 5성호텔 – 모텔
선업을 지은 사람은 복락을 수용하며
예) 불보살 세계 - 무량한 낙
악업을 지은 사람은 고액을 받으며
예) 탐·진·치 - 무수한 고
생각(원)과 형편이 맞아야 한다.
생각은 있는데 형편이 안 되면 못 가는 것 – 바보의 길, 불쌍
생각도 없고 형편도 안되면 - 고통
생각은 없는데 형편만 되면 – 타락
생각도 있고 형편도 되면 – 금상첨화
원력을 굳게 세운 후 착없이 길을 떠나오
4. 목적지
무량한 혜복 – 광대무량한 낙원
극락가는 길을 밝혀 주셨다.
복족 혜족족하시라
예) 두 스님이 있었는데
공부만 하던 스님
일만 하던 스님 – 남을 위해 일을 많이, 밥, 청소, 신도위해
공부만 하던 스님 – 가난한 스님으로
일만 하던 스님 – 궁중의 코끼리로
공부와 사업
식과 업이라 한다.
선도
악도
육도 – 천상, 인도, 수라, 축생, 아귀, 지옥
천상, 수라, 아귀, 지옥 – 영계/음계
인도, 축생 – 현실/양계
음계에서는 천상계에
양계에서는 인도환생
경계따라 일어나는 마음
그 마음을 잘 운전하여야 -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몸이 따라 간다. - 심신작용이라 한다.
심신작용이 인이되어 과보를 받는다. - 인과 보응이라 한다.
인도하는 사람을 잘 만나야
잘 인도하시는 분 – 부처님, 성현, 스승님, 선지식
가는 길을 공부하는 곳이 회상
부처님 회상 – 영산회상
예) 교가 영산회상 봄소식이 다시와 만생령의 자부이신 대종사
※ 영산회상 ~ 불교에서 《법화경》을 설법할 때의 모임을 말한다.
석가여래가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을 모아 설법한 사실을 바탕으로
그 모임을 영산회상 또는 영산회라고 한다.
원불교에서는 소태산대종사를 새 부처님으로 받들며, 소태산에 의해 창립된 원불교 교단을 과거 부처님이 열었던 영산회상의 재현으로 여긴다. 따라서 원불교의 교가(敎歌) 첫 소절에 ‘영산회상 봄소식이 다시와’라고 그 의미를 분명히 하고 있다.
5. 남아있는 우리가 할 일
가시는 분이 편안하게 가실 수 있도록
우리 이렇게 살겠습니다 (고사에서)
어머니 참 고맙습니다 (고사에서 실 예를 들며 칭찬)
가시는 분에게 약도를 전달
(예, 천도법문)
우리의 생각이 전달
마음으로 축원
(경기장에서 응원하듯이, 수레를 뒤에서 밀어주듯이)
참고자료
영혼[靈魂] ~ 비슷한 말 성품ㆍ정신ㆍ 혼ㆍ혼령ㆍ혼백ㆍ얼ㆍ넋 등이 있다.
서구적 의미
영혼 또는 혼백(魂魄)은 사람이나 동물의 생명을 유지시키고 정신을 갖게 한다고 여겨지는 것으로 과학의 범주 밖에 있기 때문에 과학의 범위에서는 판단할 수 없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현재 과학의 판단능력으로는 존재 여부가 식별되지 않았다. 하지만 비과학적인 범위에서의 인간의 경험과 지식으로써 영혼이 존재한다고 증언되고 있으며 인류 역사에 있어서 다양한 형태의 종교와 사후세계 및 영적인 현상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근간이 되고 있다.
영혼의 개념은 문화와 종교에 따라 사용하는 의미가 다르다. 현대 물활론(物活論)에서는 영혼을 모든 정신현상과 동일한 것으로 본다. 물활론에 따르면 영혼은 물질의 한 속성에 불과한 것으로 인간의 뇌에서 일어나는 작용에 의하여 생긴 제반 정신활동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육체를 떠나 자유롭게 활동하는 영혼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오늘날은 이러한 영혼의 존재가 주로 종교의 영역에서 인정되고 있다.
칼 융(Jung, Carl Gustav)은 영혼을 인간의 외부에서 내부로 들어와 생명의 원리로 작용하는 실체로 보고 정신과 다른 것이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영혼은 ①스스로 자발적인 운동과 활동을 하며, ②감각적인 지각에 의존하지 않고 이미지를 산출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③이러한 이미지들을 자율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따라서 영혼은 인간의 창조물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은 영혼의 활동을 통하여 창조적인 능력을 부여받는다. 타일러(Tylor, Edward Burnett)는 종교의 기원을 원시 애니미즘에서 찾고 그것을 영적인 존재, 곧 영혼에 대한 믿음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원시인이 꿈이나 그림자 같은 비물질적인 현상에서 영혼의 존재를 생각했다고 보았다. 그러나 실제로 원시종교에서 나타나는 영혼은 인간의 내면적인 삶 속에 존재하는 어떤 힘이나 생명의 원리로 이해되고 있다. 현재 아프리카나 오세아니아에 존재하는 원시부족들은 이러한 영혼의 종류가 다양하다고 믿고 있다.
일반적으로 원시종교에서의 영혼은 다음과 같은 2가지 범주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본질적인 영혼으로서 인간에게 생명력을 부여하는 존재를 말한다. 이러한 영혼은 호흡ㆍ피ㆍ땀ㆍ눈물ㆍ정액 등에 깃들여 산다. 둘째는 외면적인 영혼이다. 이 영혼은 꿈을 꾸는 동안이나 사람이 죽기 전 몇 년 동안 육체를 떠나기도 한다.
고대 그리스인들도 영혼을 2가지 종류로 나누었다. 첫째는 육체로부터 자유로운 영혼이다. 이 영혼은 인간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며 개인의 인격적 자아를 보장한다. 또한 사람이 죽으면 육체를 떠나 지하세계로 들어간다. 그러므로 죽은 자의 영혼은 산 사람의 영혼만큼 무수히 많으며 가끔 현세에 나타나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언하기도 한다. 둘째는 신체와 결부되어 있는 영혼이다. 이 영혼은 인간의 감정이나 지성 등과 같은 의식작용을 지배한다. 육체로부터 자유로운 영혼과 달리, 사람이 죽으면 활동을 멈춘다.
기독교는 고대 히브리인들의 영혼개념을 이어받았지만 나중에 육체와 영혼을 이분화했다는 차이가 있다. 고대 히브리인들은 영혼을 육체와 엄격하게 구분하지 않았다. 영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루아(ruah)’는 원래 ‘호흡’을 의미하는 말로 생명의 에너지를 나타내며, 마치 바람처럼 들을 수 있고 나무의 흔들림처럼 볼 수 있는 물질적 성격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기독교는 이러한 영육일원적인 영혼관에서 탈피하여 영혼을 육체와 달리 초인간적이고 영원한 성격을 지닌 실체로 파악했다. 이러한 영혼은 신의 속성을 가지고 창조되었기 때문에 육체의 힘으로도 파괴할 수 없으며 앞으로 재림할 그리스도가 구원할 대상이기도 하다.
동양적 의미
불교는 우주만물의 영속적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 무아설(無我說)을 주장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영혼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편 영혼의 존재를 인정하는 윤회설을 주장하기도 한다. 즉 전생의 영혼은 자신이 지은 업에 따라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나는 윤회를 거듭한다. 불교에서 추구하는 해탈의 관점에서 볼 때 윤회는 모든 만물이 무아임을 깨닫지 못한 영혼이 필연적으로 걸을 수밖에 없는 한계이다.
윤회의 흐름은 해탈을 통해 멈출 수 있다. 그러므로 영혼의 존재와 윤회는 해탈에 이르지 못한 자의 헛된 망상에 불과하다. 유교의 경우에는 음양(陰陽)으로 일컬어지는 기(氣)의 작용으로 생긴 혼백(魂魄)을 영혼으로 본다. 혼과 백은 인간을 구성하는 요소인데 죽음과 함께 각각 하늘과 땅으로 흩어진다. 혼백은 기의 굴신(屈伸) 작용으로 귀(鬼)와 신(神)이 되어 인간에게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원불교의 영혼
《대종경》 천도품 13장에 보면 인간의 영혼이 이 육신을 떠나 다음 생에서 육신을 받도록까지 경과하는 것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영혼이 이 육신과 갈릴 때에는 육신의 기식이 완전히 끊어진 뒤에 뜨는 것이 보통이나 아직 육신의 기식이 남아 있는데 영혼만 먼저 뜨는 수도 있으며 영혼이 육신에서 뜨면 약 칠칠일(49일) 동안 중음(中陰)으로 있다가 탁태되는 수도 있고 또는 중음으로 몇 달 또는 몇 해 동안 바람같이 떠돌아다니다가 탁태되는 수도 있는 데 보통 영혼은 새 육신을 받을 때까지는 잠잘 때 꿈꾸듯 자기의 육신을 그대로 가진 것으로 알고 돌아다니다가 한번 탁태를 하면 먼저 의식은 사라지고 탁태된 육신을 자기 것으로 아나니라.”
또 《대종경》 천도품 16장에서는 영혼이 불멸하여 길이 생사가 없음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어제가 별 날이 아니고 오늘이 별 날이 아니건마는 어제까지를 일러 거년이라 하고 오늘부터는 일러 금년이라 하는 것 같이 우리가 죽어도 그 영혼이요 살아도 그 영혼이건마는 죽으면 저승이라 하고 살았을 때에는 이승이라 하나니 지수화풍 4대(四大)로 된 육체는 비록 죽었다 살았다하여 이 세상 저세상이 있으나 영혼은 영원불멸하여 길이 생사가 없나니 그러므로 아는 사람에 있어서는 인생의 생ㆍ로ㆍ병ㆍ사가 마치 춘ㆍ하ㆍ추ㆍ동 사시(四時) 바뀌는 것과 같고 저 생과 이생이 마치 거년과 금년 되는 것 같나니라.”
저해가 비록 오늘 서천에 지나 내일 다시 동천에 솟아오르는 것과 같이 이 세상의 만물이 모두 이생에 비록 죽어 간다하나 죽을 때 떠나는 영혼이 다시 이 세상에 새 몸을 받아 태어나게 된다고 보는 것이 원불교의 영혼관이다. 〈朴光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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