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제: 건배사
하쿠나 마타타를 노래하다
신근식
사회가 복잡하고, 다양해지면서 각종 모임이나 회식자리가 자주 있게 된다. 여기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잔을 비운다는 뜻의 건배로 서구에서는 ‘브라보’, 일본에서는 ‘간빠이’, 중국에서는 ‘깐빼이’로 불린다.
건배사의 유래를 보면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중세인들은 술 마실 때 정령(精靈)이 몸 안으로 들어와 재앙이 온다고 했다. 그래서 마시기 전에 ‘쨍’ 하는 종소리 내면 마귀를 좇을 수 있다고 하였다. 또 다른 설은 로마시대에 상대방이 독 탔을까 의심해 술을 단숨에 마셔서, 독주가 아님을 확인했다. 어떻든 함께 잔 비우는 행위와 잔이 부딪치는 소리는 서로의 마음을 통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건배사에는 행운과 발전을 비는 기원이 담긴다.
단체로 회식하거나 무슨 행사의 뒤풀이로 술자리 갖게 되면 첫 잔 들 때에 건배사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건배사 제의받은 사람은 자신이 시작해야 할 건배사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그게 뭐가 스트레스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건배사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직장인이 51%나 된다는 조사 통계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회식 자리의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스트레스 받는 건 사실이다. 센스 있는 회식 건배사 미리미리 준비하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는 성서 발전을 위해서 “성서발전위원회”가 발족 되어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얼마 전에 “운영위원회” 행사에 갔다. 그날따라 회의가 길어서 한 시간 넘게 걸렸다. 드디어 식사 시간과 술자리가 시작되었다. 모두 정신없이 먹고 있는데, 옆에 있는 회원이 “집행부에서는 건배 제의도 한번 안 하네”라고 하였다. 회의는 순조롭게 잘 끝났지만, 소통과 화합의 자리에 의례적으로 건배사가 빠진 것은 사실이다. 내가 나서서 사무국장에게 “회장님 건배제의를 한번 하게 하죠” 하였다. 사무국장은 그때서야 회장에게 건배 요청을 하였으나 사양하였다. 다른 분을 시켜 “소화제(소통과 화합이 제일이다)”로 외쳤다.
다음은 전혀 예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두 번째로 나에게 건배 제의가 들어와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서 당황스럽다. 그전에는 건배사라면 미리 준비해서 모임 성격에 맞는 멘트(Ment)를 날렸지만 지금은 아무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건배를 시키든 안시키든 미리 준비해두는 것인데, 후회막급이다. 그러나 기지를 발휘하여 오늘 낮에 강서소방서 “의용소방대장 취임식”에 갔다 왔다. 거기서 한 소방대원의 건배사가 “의소대(의용, 소방대원과 대구를 위하여)”가 불현듯이 생각났다. 나도 건배사를 “성발위(성서, 발전을, 위하여!)”라고 짧은 멘트로 힘차게 외쳐 겨우 위기를 모면하였다.
글제가 “건배사”이다. “건배사”에 관한 자료가 많았다. 건배사의 요령, 순서, 예의, 테마별 건배사 등이 나와 있는데, 일찍 알았더라면 더 멋있는 멘트를 보내 분위기를 돋우었을 것인데, 아쉬움이 남는다.
21세기에 건배사 풍습이 빠르게 퍼진 것은 회식문화의 확산과 관련이 깊다. 그런데 이 건배의 진정한 뜻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모임의 성격을 더욱 끈끈하게 굳혀줌과 동시에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나아가 참석자 모두에게 행운과 건승을 기원하는 의미가 매우 짧은 시간에 강하게 전달되는 술자리의 이벤트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건배사는 간단명료하면서도 촌철살인의 기지가 번뜩이는 멘트가 가미 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건배사”는 연말연시에 송년회, 신년회 모임이 이어지면서 건배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한번은 아내가 운영하는 식당에 “고등학교 동문회” 모임에 갔다. 우리 말고도 다른 방에 몇 팀이 와 있었고, 조금 지나자 여기저기서 “건배사”가 터져 나왔다. 우리 방에도 이십 여명이 모였는데 예외는 아니다. 동문회원들이 건배사를 돌아가면서 하는데 특히 우리 방에는 더 요란스러웠다. 단순히 ‘위하여’로는 뭔가 부족했던 것 같다. ‘위하여, 위하여, 위하여’를 세 번이나 외쳐 다른 방의 손님들에게 눈살 찌푸리게 하였다. 아내가 나를 불러내어서 “창피스러우니까? 제발 ‘위하여’ 건배 좀 그만하라고” 언짢게 쏘아붙였다.
현대인에게 회식이나 술자리는 사흘 멀다 않게 거의 일상사나 다름없다. 그 자리에서 하는 건배사도 필수 의식처럼 되어있다. 그러나 좋은 자리, 즐거운 분위기를 위해서는 건배사도 격이 있어야 한다. 거창한 건배사를 해야 한다는 게 아니다. 함께 자리한 사람이 들어서 거북하지 않으면서, 다른 손님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의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한 것이다.
기발한 건배사 한 마디는 딱딱한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기발함이 지나쳐 듣기가 민망한 건배사(개나발, 가족같이 등)로 분위기를 망치는 경우도 있으므로 모임의 성격에 잘 맞게 사용해야 한다.
새로 개발한 건배사가 있다. 최근 코로나19 이후에 사용하는 ‘건배사’로 “하쿠나 마타타(Hakuna Matata)이다. 아프리카 탄자니아와 케냐의 공통어인 ‘스와할리어’로 ‘Hakuna'는 ’없다‘, 'Matata'는 ’문제‘란 뜻으로 ”걱정 하지마 다 잘 될 거야.”라는 위로의 주문이다. 이것 외에 즐겨 쓰는 건배사로 고사리, 소나무, 비행기, 참소주, 원더풀, 사우나, 오징어, 청바지, 해당화, 변사또 등이 있다. 그리고 `드숑-마숑((드세요-마셔요)`이나 `소취하-당취평(소주에 취하면 하루가 즐겁고-당신께 취하면 평생이 즐겁다)` 처럼 우리말을 불어나 중국어처럼 합성어로 꾸민 재치 있는 건배사도 가끔씩 사용하고 있다.
오늘은 나의 새로운 아지트인 집에서 주방 겸 책상위에 소주 한 병 놓고, 혼 술을 먹고 있다. 이 지구상에서 혼 술을 먹는 사람을 위하여 건배 합시다. 선창하면 후창하세요 “미사일(미래를 위해, 사랑을 위해, 일을 위해” “발사” 한 번 더 하겠습니다. 잔을 들어 주세요! 시작합니다. 모두 인생의 반전을 위하여 “하쿠나 마타타!” , 괜찮아, 걱정 말고 힘내~!
(230131)
첫댓글 수고하셨습니다.
카페지기.
감동 그자체입니다.
모두 감사합니다.
수정한 글을 올렸습니다.
한비수필학교장 이영백선생님의 지도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