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글
모든 글과 책은 지향하는 목적이 있다. 성경이라는 하나님의 계시 전달의 책에도 분명한 목적이 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2장 1절에서 “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찌니 혹 흘러 떠내려갈까 염려하노라”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흘러 떠내려간다는 것은 항구에 도착해야 할 배가 항구라는 목적지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가버리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여인의 손가락에 있어야 할 보석 반지가 손가락에서 빠져나가 빗물에 떠내려가고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목적지를 향하여 가는 길을 분명히 제시하고 있는데 목적지도 잘못 알고 있고 가는 길도 잘못 알고 있으면 되겠는가? 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간절히 삼가라”라고 하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 계시 전달의 책이다. 하나님이 자신이 누구인지 어떠한 분인지, 어떤 일을 하셨는지, 어떤 일을 하시려는지 계시하여 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알 수가 없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 자신과 하시는 일에 대한 계시 전달의 책이다.
이러한 성경의 원리를 압축한 것이 교리라는 것이다. 사전에 보면
교리(敎理)라는 말의 뜻을 “한 종교의 기본 이론”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 교리는 기독교의 기본 이론인 셈이다. 결국 교리는 성경의 원리를 기본적으로 압축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성경의 원리를 어떠한 측면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는 것이다. 마치 색안경을 끼면 그 색안경의 색깔로 세상이 보이는 것처럼
진짜 모습과 색깔은 전혀 다른데 색안경으로 말미암아 전혀 다른 색깔과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성경을 보는 가장 기본적인 두 가지 방법은 하나님 관점으로 보는 것과 사람 관점으로 보는 것이다. 하나님 관점으로 보면 신본주의(神本主意)가 되지만 사람 관점으로 보면 인본주의(人本主義)가 된다.
수많은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이 성경을 보아왔고 기독교 교리를 체계화하여 왔는데 모든 교리는 결국 두 개의 색안경을 통해 만들어진 교리로 압축된다. 두 개의 색안경은 신본주의와 인본주의인데 이를 다시 표현하면 히브리 사상과 헬라 사상이고, 또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일원론과 이원론이다.
오랜 세월 성경은 헬라 사상과 이원론으로 도배되어왔다. 그러나 지금은 이스라엘이 다시 구원에 이르는 때다. 다니엘의 70 이레 중 마지막 한 이레가 눈앞에 다가오는 마지막 시대다. 일원론으로 시작된 기독교의 교리가 다시 회복해야 할 때다.
일원론적인 구원관은 영혼과 육체를 나누는 것이 아니고 영혼과 육체가 함께 구원받는 것이다. 이것은 현재 하나님 나라에 영혼만 들어가고 육체는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부활을 받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오셔서 차례대로 육체의 구속인 부활을 받아 예수님처럼 산자가 되어 산자의 하나님 앞에 서게 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조금이라도 뒤틀리고 혼란스러운 기독교의 구원 교리를 바로 세워보려고 시도한 책이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구비되 내놓는 책이 아니고 급한 마음에 나타내 주신 만큼만 선보이는 책이다. 마지막 때가 가까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계시는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를 바로 깨달아 거기에 합당한 준비를 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바램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더*하*내* 연구보급소다.
이는 더데이(The Day) 하나님 나라 내비게이션(Navigation)의 첫 자만 따라 만들어진 명칭이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오고 있으니 거기에 들어가는 안내도, 지도를 연구하고 발전시켜 보급하자는 것이다. ‘일원론 이원론’은 그 가운데 하나다. 부족한 점과 연약한 것은 격려와 권면으로 대해 주시고 조금이라고 영적 유익을 얻고 더 많은 도전이 여기저기 나타나기를 소망한다.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