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인천공항에서!
(CJ,2023.10.7.토):코로나 팬더믹으로 여행도 못했는데, 정년은퇴 후 5년만에 막내의 초청으로 추석을 홍콩에서 지내려고 4박5일 여행하게 되었다.(9.24~28) 항공표 구입부터 공항으로 출발하며 어리둥절하다.
인천공항 고속버스 창가에서 사진도 찍어보며 설레이기도 했다. 충주 탄금호, 산과 농촌 정경, 인천대교를 지나 공항 터미널II에 도착했다.
5년만에 도착한 공항은 더욱 편리해지고 친절하며 새로웠다! TV에서는 항저우 아시안게임, 북한과 인도네시아 축구경기를 재방송하고 있다.
공항에 도착하여 체크인도, 출국 심사대에서도, 면세구역에서도 어리둥절하고 신기하였다. 홍콩에 도착하여서도 입국심사대도 간편하고 신속하였다. 출입국 스템포도 없고 여권으로 전자 심사였다. 신기하군!
그래도 아내와 함께 여행이 새롭고 설레이기도 하다. 우리는 결혼 52년 기념 여행으로 여기니 기쁨이 솟았다.
홍콩 공항에 도착하니 며느리가 마중 나와 있었고, 호텔예약 및 식사, 교통, 택시 등 4박 5일 홍콩 일정을 모두 맡아 안내해 주었다. "이번 추석은 저희와 함께 지내요!" 막내의 초청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홍콩 첫날(9.25.월)-도풍산 기독교 센터에서
홍콩에서 첫날 일정-오봉로 호텔, 전철 사틴역, 택시로 도풍산, 도풍산 교회 기독사찰, 신학교 등, 몽콕에서 점심, 레이디스 마컷, 침사추이, 시계탑 사랑의 거리, 훼리 센트럴 피어 선착장, IFC 몰, 페시픽플레이스 막내사무실, 북경루 저녁식사(7:50pm)
사틴( 沙田, Shatin) 전철역(MTR)에서 택시로 도풍산(道風山)에 올랐다.(9월 25일.월) 수도자들의 수행수련 길인 좁은 산 길을 굽이굽이 돌아 도풍산 크리스천센터에 들어섰다. 중국전통식 정원과 건물들이 고즈넉 정겨웠다.
도풍산 입구문 기둥에는 "생명문"으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많은 사람들이 넓은 길을 찾지만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협착하다" (마 7:13-14)고 쓰여있다.
둥근 아취 모양의 입구로 들어서니 도풍산 성전, "기독사찰"(Christ Temple)이 보였고, 좁은 문으로 들어서니 성전과 부속건물들이 보였다.
성전( (Christ Temple)은 중국 불교 사원 모습으로 독특하였고 처가 난간에는 작은 종이 눈에 띄었다. 종에는 "영귀상제"(하나님께 영광)이란 글자가 보였다.
성전 강단 중앙에는 도성육신(道成肉身),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붓글씨로 써 놓았다.
성전 내부는 수리 중이어서 관찰할 수 없어 아쉬웠다. 그러나 사진으로 불교풍은 강단과 십자가 등을 볼 수 있었다. 소예배실, 세미나실, 숙소 등 건물을 둘러보았다. 중국 전통 가옥과 건물, 아기자기한 정원들이 정겨웠다.
나는 한국 교회도 한국전통 가옥과 건물, 정원이 요긴하다고 여겼다. 도풍산은 중국인들의 생활에 불교의 영향이 크므로 불교도들에게 복음전도하기 위해 설립하였단다.
도풍산에서 나가는 문에는 "박애"로 "온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하라"(막16:15)란 말씀이 기둥에 써있다.
라이헬트 선교사, 머리 깎고 승려복 입고
필자는 도풍산을 설립한 노르웨이 루터교 선교사 칼 L, 라이헬트(Karl Ludvig Reichelt, 1877~1952) 목사는 어떤 분인가? 그 생애와 선교역사를 살펴보았다.
라이헬트는 중국어 발음으로 "아이샹더"(艾香德)이며 노르웨이 남부에서 태어났고(1877), 2살 때 아버지는 소천하였다. 어려서부터 집 근처 산 등성에 있는 교회로 오르기 좋아하였다.
라이헬트는 "스타방거(Stavanger) 선교사 양성학교"에서 선교사 훈련과정을 마치고, 교회목회와 교육사역으로 활동하였고, 특히 부흥전도자로 주목받았다.
아이샹더(艾香德)는 노르웨이 선교협회(NMS)에서 중국선교사로 파송받았으며(1903년), 함께 파송받은 아나 게른하드센(Anna Gerhardsen) 선교사와 결혼하였다.(1905년) 이들은 중국 남부 후난(Hunan)과 후베이(Hu1bei)에서 교회개척과 교육 선교사로 사역했으며(1903~1912), 서커우(Shekou)에 있는 루터교 신학교에서 신약 교수로 일했다.(1913-1920).
라이헬트 선교사는 중국 토착인들의 불교 도교 등 종교생활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으며, 승려들의 사찰생활에 관심을 갖고, 승려들과 사찰생활하며 중국종교와 수련자의 삶을 탐구하였다. 불교 도교 등 중국 종교에 대해 배우고 익히기 시작하였으며, 연구하고 책을 저술하기도 하였다.
1913년부터는 신학교에서 교육사역하면서 더욱 중국인들의 종교를 연구에 심취하며, 불교 승려들에게 복음 전도의 사명에 불탔으며, 승려전도에 목적을 두었다. 1919년 승려의 첫 세례는 쿠안투( Kuantu)이었다.
난징 정풍산에서 홍콩 도풍산으로
라이헬트 선교사는 1920년 노르웨이 선교협회(NMS)의 후원이 끝어진 때부터 독립하여 불교도 등 토착인들에게 기독교 복음을 전하는 사역에 몰입하였다. 즉, 난징의 "정풍산(Jing Fong Shan) 선교부"를 설립하였다.(1929년) 불교 승려들이 단기 또는 장기 체류할 수 있는 기독교 센터를 건립한 것이다. 1927년에는 22명의 중국인 승려들이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난징내전 때 정풍산은 불타고 파괴되었으며(1927년) 난징을 떠나 상해에서 체류했고, 홍콩으로 이전하여(1929년) 사틴의 도풍산(Tao Fong Shan)에 새로운 선교센다를 건립 봉헌하여(1931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아이샹더(라이헬트) 선교사는 불교도 등 중국인들에게 복음 전하고 종교적 대화를 촉진하여. 하나님과 사람이 만나는 곳으로 세계에 성령의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 "도풍산"을 설립하였다.
라이헬트는 선교 초기부터 세 가지 전도 방식을 채택했다. 1. 영혼구원과 교회개척 성장, 2. 진리를 찾고 발견하는 곳, 3. 사회 변화에 따른 섬김이었다. 아이샹더는 이를 위해 도풍산에 기독교 성전, 신학교. 연구소를 설립여 중국 학자들과 함께 진리를 추구하였다.
도풍산 성전은 중국 사찰 원형 그대로를 교회로 전향시켰고, 매일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승려들처럼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었으며, 사찰에 들어가는 승려들과 같이 수련 수행생활하며 복음을 전하였다.
라이헬트 선교사는 도풍산 성전을 설립할 때 불교 승려와 도교 270여 명을 전도하고 세례 주는 역사를 이루었고, 불교 사찰 자리에 교회를 개척하였으며, 불교와 도교풍을 접목한 교회와 건물, 수련 수행관들을 도풍산에 설립하였다.
덴마크 건축가 요하네스 프립 몰러( Johannes Prip-Moller)가 중국풍 건물로 디자인하였으며 건축하였으며, 도풍산 성전, "기독 사찰"(Christ Temple)은 홍콩 성공회 주교에의해 봉헌 되었다.(1934년)
오늘날 루터교 신학교와 토착신학 연구소, 수양관과 토착신학 "한어 기독교 문화연구소" 등을 이루고 세계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라이헬트 선교사는 세계선교사회의 등에서 종교혼합주의라고 비판과 논쟁도 많이 일으키고 비난을 받았으나, 라이헬트선교사는 자신의 믿음과 선교관을 굽힘없이 지켜나갔다.
세계2차 대전 때 일본이 홍콩을 점령으며, Reichelt는 도풍산에 연금 되어(1941년) 고난을 받았고 전 후에 귀향하였다. 다시 홍콩 도풍산에 왔으며(1951년), 이듬해 1952년 3월 13일에 소천하여 도풍산(Tao Fong Shan)에 안장 되었고, 묘비에는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다”고 기록 되어 있
다.
도풍산은 동양 토착화 신학과 세계 선교센터!
도풍산(道風山)의 "도"(道)는 나는 길이요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진리이며. "풍"(風)은 풍수의 풍으로 성령의 바람이고, "산"(山)은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다.
2010년 2월, 도풍산(道風山)은 "Tao Fong Shan Service Foundation Limited"라는 이름으로 홍콩 법인 재단으로 등록되었다.
오늘날 세계 각국에서 유학과 수련 수행객, 방문객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세계선교센터로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홍콩 여행의 첫날을 마치며
2023년 9월 말 홍콩 날씨는 섭씨 33도로 무더웠다. 섬으로 습기가 끈적끈적하고 햇볕은 따가웠다. 고목의 나무그늘에도 후끈한 바람이 열기를 식히지 못하고 있다. 도풍산 크리스천센터를 더 둘러보고 싶지만 점심시간도 되어, 다시 콜택시로 몽콕시내로 향했다.
몽콕은 쿠알라룸푸르나 뉴욕 등지의 차이나타운과 같아 정감이 들었다. 식다 메뉴도 선교지 쿠알라룸푸르에서 일상으로 맛보던 반가운 메뉴로 회상에 젖어 즐거웠다.
홍콩의 2층버스를 타고 침사추이 거리를 거처 부두가 몰에서 바다를 보며 쉬었다. 부두에서 훼리로 센트럴 "국제 금융센터"(IFC)를 둘러보았다. 막내가 금융가에서 근무하니 대견하고 감사하였다.
저녁식사는 막내 사무실이 있는 페시픽플레이스의 북경루에서 막내가족과 추석 만찬으로 즐거웠다. 특히 맛보고 싶었던 "페킹 덕"요리로 행복한 밥상이었다. 불빛이 찬란한 홍콩 금융 도심을 지나 호텔 숙소에서 나른한 몸을 눕혔다.
홍콩 호텔의 서비스는 좋았다. 냉장고에는 Free용품으로 가득 찾고, 매일 갈아주고 있다. 커피와 차는 물론, 체코 맥주2병, 코카콜라, 사과쥬스, 물 2병, 청량 물2병, 비타민까지 무료제공이다.
이번 추석은 홍콩에서 도풍산도 방문하고 결혼 52주년 여행도 되고, 여러모로 즐겁고 뜻있는 날이었다!(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