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명적(海東名迹)은 신숙주(申叔舟)의 동생 신말주(申末舟)의 손자 신공제 (申公濟, 1469~1536)가 역대 명필들의 글씨를 수집하여 원본 글씨 그대로 판각(목판과 석판 2종) 간행한 서첩이다. 이 책의 전후편 중 후편에 안지(安止)의 글씨도 들어 있는 것으로 보아 그는 당대에 명필로 인정받았던 것 같다.
해동명적(海東名迹) / 유지복 논고, 한국국학진흥원 국역, 박준철 국역, 스튜디오 수포토 사진촬영, 유수 사진촬영 [영주] : 영주시, 2021 - 국립중앙도서관 (온라인 열람 가능)
pp.108~109에 나오는 안지의 시는 양촌(陽村) 권근(權近, 1352∼1409)의 손자 권람(權擥, 1416~1465)이 1456년 7월 길창군(吉昌君)에 봉해졌을 때 지은 친필 시로 그 집안을 칭송한 글이다. 원제목은 증권길창람(贈權吉昌擥)이라고 한다. 번역은 pp.232~233에 나온다.
원본 시의 맨 첫글자는 勳이 아니라 같은 뜻의 勛으로 씌어 있다. 한국에서는 주로 勳으로 쓰나, 중국에서는 勛이 정자로 쓰이고, 勳은 이체자이며, 간체자로는 勋으로 쓴다. (참고 : 이체자 자전 勛) 선초(蟬貂) : 매미 선(蟬), 담비 초(貂). 옛날 고관들의 관(冠)에 달던 두 가지 장식물 (古代王公顯宦冠上的兩種飾物). ----------------------------------------
소수박물관 소장 해동명적(紹修博物館所藏海東名迹)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지정 위의 이미지는 경북 영주의 소수서원 박물관 소장본의 것이다.
여주이씨 옥산문중 유묵 - 해동명적 (驪州李氏 玉山門中 遺墨 - 海東名迹) : 보물 지정 여기는 전후편 중 전편의 일부만 있어서 안지의 글씨는 없다.
유지복, 《해동명적》을 통해 본 조선 초기 서풍 MUNHWAJAE Korean Journal of Cultural Heritage Studies Vol. 52 No. 1, March 2019, pp.148~169. -----------------------------
아래 서화 관련 저서에 안지(安止)가 올라 있다. 서예사에서 상당한 평가를 받는 것같다.
오세창(吳世昌, 1864~1953) 저,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 : 고려시대(麗代編) 165. 안지(安止) 『安止 字子行 處善 號臯隱 耽津人 太宗十四年 甲午 親試 同十六年 重試登第 官 領中樞 藝文館大提學歷任 官雖高而心愈下 家在 仁王洞 茅舍蕭條而 山水淸奇 每以諷詠爲娛 雖朋友尺牘之間 皆詩句 慵齋叢話曰 善書能筆而 傳東國文獻筆苑編 筆蹟模刊而海東名跡 匪懈堂瀟湘八景詩帖云』 동국문헌(東國文獻)의 필원편(筆苑編)에 모사하여 간행한 안지의 필적이 해동명적(海東名跡)과 비해당소상팔경시첩(匪懈堂瀟湘八景詩帖)에 있다고 했다하지만,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비해당소상팔경시첩은 간행본이 아니라 친필 그대로의 원본으로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안동순 선생은 근역서화징의 저자를 오세창이 아닌 성현(成俔, 1439~1504)으로 착각하신 듯하다. 위에 인용된 용재총화(慵齋叢話)가 성현(成俔)의 저작이며, 거기에 안지에 관해 다음과 같이 나온다. 근역서화징 내용 번역에 참고가 될 것같다.
대동야승(大東野乘) > 용재총화(慵齋叢話) 제10권 고은(皐隱) 안지(安止) 선생은 벼슬은 비록 높았으나 마음은 더욱 겸손하였다. 집이 인왕동(仁王洞)에 있어 초가집이 쓸쓸했으나 산수가 맑고 기이하여 항상 시가(詩歌) 읊조림을 즐거움으로 삼았으며, 비록 친구와의 편지를 쓸 때에도 모두 시구(詩句)를 사용하였다. 선조께 제사지낼 때에도 반드시 목욕 재계하고 정성을 다하여 일찍이 조금도 게을리하지 않고, 비록 식량이 자주 떨어져도 마음이 편하고 침착하였다. 벼슬이 1품에 이르고 나이가 80이 되어 늙어서 시골에 물러갈 적에 대궐에 나아가 네 번 절하고 크게 곡하고 떠나니, 지나가는 사람이 듣고 비탄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皐隱安先生。官雖高而心愈下。家在仁王洞。茅舍蕭條。而山水淸奇。每以諷詠爲娛。雖朋友尺牘之間。皆用詩句。其祭先祖考。必齋沐致誠。未嘗少懈。雖至屢空晏如也。官至一品。年八十。以老退于鄕曲。就闕下四拜大哭而出。行者聞之。無不悲嘆。
동국문헌(東國文獻)의 필원편(筆苑編) : 동국문헌 002책 p.45~ 여기에 안지가 나온다고 근역서화징에서 말했으나 링크된 위 장서각 소장본에는 안지가 보이지 않는다. 국립중앙도서관에는 동국문헌 여러 판본이 올라 있는데 거기에도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여러 판본이 있으니 그 중에 안지가 나오는 것도 있을 수 있다. 동국문헌보유(東國文獻補遺). 卷2 필원편(筆苑編)에도 안지는 보이지 않는다. 근역서화징의 참고문헌에 오류도 더러 있다고 하니 동국문헌 필원편에 안지가 나온다는 말은 착오일 수도 있다.
김충현(金忠顯, 1921~2006) 저, 근역서보(槿域書譜) - 한국의 명필 150인 : 한울엠플러스, 2016년 11월 30일 제3부 64. 안지(安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