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재집 별집 제4권 / 현가궤범 부록(絃歌軌範附錄) / 동요 율격〔東謠律格〕
노래라는 것은 사람이 마음속에 느끼는 것이 있어서 소리로 펼쳐진 것이다. 중국인들은 말과 글이 일치하기 때문에 노래가 입에서 나오면 곧바로 책에다 써서 읽을 수 있다. 중국인이 아닌 외국인들은 말과 글이 다르기 때문에 먼저 소리로 나타난 노래를 곧 그 나라 말로 읊을 뿐이다. 듣는 사람이 그 뜻을 깊이 헤아려보면 또한 그 본연의 정취를 알 수 있지만, 이를 글로 번역하게 되면 도리어 그 진면목을 잃게 된다.
우라나라 말로 된 노래 가운데 세상에 유행하여 전하는 것이 매우 많은데, 중고(中古)시기에 어떤 사람이 이를 모아서 훈민정음 글자〔한글〕로 번역하고 《대동풍요(大東風謠)》라고 제목을 붙였으니, 이 또한 국풍(國風)이다. 살펴보면 그 가운데에는 감정의 삿됨과 바름이 일정하지 않고 음이나 의미가 외설스럽고 잡다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그 가운데에서 충신 효자 위인 장사(莊士)의 글도 왕왕 나오니, 안목을 갖춘 이가 잘 골라서 노래한다면 사람들을 감동시켜 세속을 교화하는데 또한 보탬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특별히 율곡(栗谷) 선생의 〈고산구곡가(高山九曲歌)〉 한 편을 들어 시의 율격을 대략 본떠서 율을 배치함으로써 노래하는 체재를 보인다.
고산가〔高山歌〕
- 율곡 선생이 해주(海州)의 석담(石潭)에 거처를 정하고 살면서 주자서원(朱子書院)을 세우고 은병정사(隱屛精舍)를 지어 들어앉아 수양하는 곳으로 삼았다. 이에 여러 생도들과 함께 고산(高山)의 자연을 유람하고 감상하면서 아홉 굽이〔九曲〕에 이름을 붙이고, 이 노래를 지어 연주하였다. 그 뒤 우암 선생이 글을 번역하여 판각하였는데, 지금 《율곡전서(栗谷全書)》에 들어 있다. -
삽화 새창열기
고산의 아홉 굽이 연못을 / 高山九曲潭을
세상 사람들이 모르더니 / 사람이모르더니
띠 풀을 베어내고 살 곳으로 정하니 / 誅茅來卜居니
벗들이 다 찾아온다 / 벗님네다오신다
무이산을 상상하며 / 武夷을想像고
주자의 학문을 배우리라 / 學朱子오리라
첫 굽이는 어디인가 / 一曲은어듸고
관암에 해가 비친다 / 冠巖에비췬다
거친 들판에 안개 걷히니 / 平蕪에거드니
먼 산이 그림이로다 / 遠山이그림이로다
소나무 사이에 푸른 술동이 놓고 / 松間에綠樽을노코
벗이 오는가 보노라 / 벗오는양보노라
두 번째 굽이는 어디인가 / 二曲은어듸고
화암에 봄이 무르익었다 / 花巖에春晩커다
푸른 물결에 꽃을 띄워 / 碧波에츨워
들판 밖으로 보내노라 / 野外로보노라
사람들이 좋은 곳을 모르지만 / 사람이勝地를모로나
알게 한들 어떠하리 / 알게달엇더리
세 번째 굽이는 어디인가 / 三曲은어듸고
취병에 잎이 퍼졌다 / 翠屛에입퍼졋다
푸른 나무와 산속에 사는 새가 / 綠樹與山鳥는
소리를 높였다 낮추었다 할 때 / 上下其音는져긔
반송 바람 부니 / 盤松에受凮니
여름 더위 없어라 / 여름경이업셔셔라
네 번째 굽이는 어디인가 / 四曲은어듸고
송애에 해 넘어간다 / 松崖에넘거다
연못에 비친 바위 그림자는 / 潭心巖影은
온갖 빛깔이 잠겨있다 / 온갓빗치겨셔라
자연이 마음 기쁘도록 좋으니 / 林泉이깁도룩조흐니
흥에 겨워하노라 / 興을계워노라
다섯 번째 굽이는 어디인가 / 五曲은어듸고
은병이 보기 좋다 / 隱屛이보기조희
물가의 정사는 / 水邊精舍는
깔끔하기가 끝이 없다 / 蕭灑흠도가이업다
여기에서 강학하고 / 이중에講學고
달과 바람을 읊으리라 / 咏月吟凮오리라
여섯 번째 굽이는 어디인가 / 六曲은어듸고
조협에 냇물이 넓다 / 釣峽에물이넓다
나와 물고기 가운데 / 나와고기와
누가 더 즐거워 하는가 / 뉘야더옥즐기고
노을에 낚싯대 메고 / 黃昏에낙메고
달빛 받으며 돌아오리라 / 帶月歸노라
일곱 번째 굽이는 어디인가 / 七曲은어듸고
풍암에 가을빛이 좋다 / 楓巖에秋色좃타
차가운 서리 엷게 내리니 / 淸霜이엷게치니
절벽이 수놓은 비단이로다 / 絶壁이錦繡로다
차가운 바위에 홀로 앉아 / 寒巖에혼자안져
집을 잊고 있노라 / 집을잇고잇노라
여덟 번째 굽이는 어디인가 / 八曲은어듸고
금탄에 달이 밝았다 / 琴灘에달이발거다
거문고로 / 玉軫金徽로
몇 곡을 연주하는데 / 數三曲을노름나리
옛 곡조를 아는 이 없어 / 古調를알니업스니
혼자 즐거워 하노라 / 혼자즐겨노라 黃姑林姑
아홉 번째 굽이는 어디인가 / 九曲은어듸고
문암에 한 해가 저문다 / 文巖에歲暮커다
기암괴석은 / 奇巖怪石은
눈 속에 묻혔구나 / 눈속의뭇쳐셔라
구경다니는 사람은 오지 않고 / 遊人은오지안코
볼 것 없다고만 하더라 / 볼것업다더라
위 10장은 1장에 6구이다. - 율을 배치하는 것은 장단구(長短句)를 썼다. 세 련은 단편체(短篇軆)이고, 전어성(轉語聲)은 구결의 예를 써서 정율(正律)에 들어맞지 않다. -
부록 옥계조〔 附 玉溪操〕
- 옥계조(玊溪操)는 나 유중교가 지은 것이다. 냇물은 가평(加平)의 화악산(華岳山) 아래에 있고, 아홉 굽이가 있는데, 첫 번째는 와룡추(臥龍湫)이고, 두 번째는 무송암(撫松巖)이고, 세 번째는 탁영뢰(濯纓瀨)이고, 네 번째는 고슬탄(鼓瑟灘)이고, 다섯 번째는 일사대(一絲臺)이고, 여섯 번째는 추월담(秋月潭)이고, 일곱 번째는 청풍협(靑楓峽)이고, 여덟 번째는 구유연(龜遊淵)이고, 아홉 번째는 농원계(弄湲溪)이다. 이 조는 모두 3장인데, 첫 번째 장은 첫 번째 굽이에 속하고, 마지막 장은 아홉 번째 굽이에 속하며, 가운데 장은 그 사이의 일곱 굽이를 서술하였다. 본래 금율로 지은 것이므로 이제 건방지게 내 맘대로 여기에 덧붙인다. -
삽화 새창열기
자양금 비스듬히 안고 / 紫陽琴빗기안고
옥계동의 문으로 돌아서 들어가니 / 玉溪洞門도라드니
옛 못에 누워있는 용이 / 古湫에누은龍이
발자국소리 반기는 듯하다 / 최소반기는듯
무송암에 수건 걸어놓고 / 撫松巖에수건걸고
탁영뢰에 갓끈 씻으니 / 濯纓瀨에갓근씨셔
고슬탄은 어디인가 / 鼓瑟灘이어듸오
일사대를 지나간다 / 一絲㙜를지나겨다
추월담에 비친 둥근 달은 / 秋月潭一輪月은
천년의 마음이 뚜렷하고 / 千載心이두렷고
청풍협의 만길 절벽은 / 靑楓峽萬仞壁은
북극성을 떠받치고 있다 / 北極星을밧쳐잇네
묻노니, 바위 아래 거북이야 / 뭇노라巖下龜아
중국의 좋은 운세는 언제 돌아오는가 / 神州休運어늬오
골짜기가 툭 틔였으니 / 洞天이豁然開니
농원계가 여기로구나 / 弄湲溪가여긔로다
아이야, 술 부어라 / 童子아슐부어라
거문고 줄을 고르고자 한다 / 거문고의쥴고루고져
무이구곡가(武夷九曲歌)를 / 武夷溪九曲歌를
차례로 화답하노니 / 次第로和答니
옥녀봉 위에 사는 천년 묵은 학이여 / 玉女峰上千年鶴이
옛날 곡조와 지금 곡조의 같음과 다름을 / 古今調예同不同을
아는가 모르는가 / 아는다모르는다
위 3장에서 1장은 4구, 1장은 10구, 1장은 9구이다.
[주-D001] 동요(東謠) : 한글을 섞어서 지은 우리나라의 시가를 말한다.[주-D002] 무이구곡가(武夷九曲歌) : 주자가 중국 복건성(福建省) 무이산(武夷山) 계곡의 아홉 굽이에 이름을 붙이고, 이에 대해 노래한 것을 말한다.
ⓒ 한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 | 하영휘 박해당 노재준 권민균 (공역) |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