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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 뜻 대로 비전을 세워야 한다(2) ♡♡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 16:9).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잠 19:21).
◇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비전을 주신다
영국에서 노예해방 입법을 주도한 윌리암 윌버포스(William Wilberforce, 1759-1833)는 한때 노예선 선장이었던 존 뉴톤(John Newton, 1725-1807) 목사와의 만남을 통해 극적인 전환기를 맞이하면서, 평생에 걸친 입법 투쟁을 통해 대영국 제국에서 노예를 해방시켰다.
미국이 남북전쟁을 통해 노예제도를 해방한 것보다 30여 년 먼저 영국에서 무혈 노예해방이 실시된 것이다.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만남이다. 인생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길이 갈린다.
물론 우리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만남은 예수님을 만나는 일이다. 하나님이 구원을 위하여 우리를 부르시고 소명을 위하여 부르시는 것은 예수님을 닮아가고 예수님이 하신 일을 계속 이어가게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외의 만남은 예수님과의 만남을 적용하고 실천하기 위한 만남이다.
만남은 일시적으로 만나기도 하고, 동역자로 만나기도 하고, 멘토와 멘티로 만나기도 한다.
일시적인 만남은 특별한 일을 위한 잠깐의 만남이다. 이방인인 고넬료의 회심을 위해 베드로의 만남이 이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행10:9-22; 44-48).
하나님은 또한 우리에게 동역자(co-worker)를 붙여주신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의 동역자이지만(고전 3:9),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필요한 동역자를 붙여 주신다.
동역자 관계의 대표적인 예는 바울과 바나바의 예를 들 수 있다. 괄괄한 바울과 차분한 바나바는 환상적인 동역팀이라고 할 수 있다.
전도자 빌리 그레이엄과 평생 동역한 찬양사역자 조지 베브리 쉐아(George B. Shea), D. L. 무디와 찬양사역자 아이라 생키(Ira D. Sankey) 등을 들 수 있다.
사업계에서는 시어즈 로벅 백화점(Sears & Roebuck)의 시어즈와 로벅을 들 수 있다.
영업의 달인 시어즈와 시계 수리공이었던 로벅이 설립한 시어저로벅 체인점은 월마트 이전까지 미국 최고의 체인점이었다.
마이트로소트사의 빌 게이츠는 경영은 스티브 발머에게 맡기고 자기는 자선사업에 전념하고 있다. 구글은 레이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두 사람이 공동 창업했다.
멘토(mentor)와 멘티(mentee)로서의 만남은 스승과 제자 또는 선구자와 후계자로서의 만남이다.
모세와 여호수아, 바울과 디모데와 같은 만남을 말한다. 윌버포스와 뉴톤의 만남도 이런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십자가의 요한은 영적 생활에서 하나님, 마귀 다음으로 중요한 사람이 영적 지도자라고 한다.
평생의 신앙생활에서 영적 지도자를 잘 만나느냐 못 만나느냐의 여부에 따라 신앙생활의 색깔이 달라지고 성숙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유명한 사람들일수록 더 멘토가 필요하다. 일본의 전 수상은 자기에게 3명의 조언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건강을 위한 의사, 세상 인심을 위한 언론인, 가치를 위한 성직자이다.
◇ 하나님은 감옥을 통해 비전을 주신다
미국 제 37대 리차드 닉슨 대통령(Richard Nixon, 1969~74 재임)의 법률·정치 특별보좌관이었던 척(찰스) 콜슨(Charles Colson)은 냉정하고 권력에 굶주린 자로 명성을 떨쳤다.
그러던 그는 워터게이트 사건에 연루되어 힘든 기간 중에 예수를 영접했고, 유죄 선고를 받아 교도소생활을 한 후 교도소 선교회(Prison Fellowship)를 설립하여 재소자 선교에 헌신했다.
옥중에서 집필한 『거듭남』(Born Again)이란 책을 출판했는데 베스트셀러가 되어서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1994년까지 5만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교도소 선교사역에 동참했다.
재소자들의 가족을 돕기 위한 돌봄 위원회가 설립되고, 매년 크리스머스에는 엔젤 트리 프로그램을 통해 재소자들의 수많은 자녀들에게 선물을 주고 있다.
교도소 선교사역은 또한 재소자들과 배우자들을 위한 결혼 세미나 및 전(前) 재소자들을 위한 지지 그룹도 운영하고 있다. 1993년, 콜슨은 종교계 노벨상인 템플턴 상을 수상했다. 상금 백만 달러는 사역단체에 헌금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감옥살이는 말 그대로 감옥이요 치욕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감옥-문자적이든 영적이든-을 통해 원하는 그릇으로 빚으시는 경우가 많다.
십대의 철부지 요셉은 종살이와 감옥살이를 13년 동안 한다.
그 즈음 요셉은 이집트와 전 세계에 닥칠 전무후무한 풍년과 흉년을 예고한 바로의 꿈을 해석하고 사후 대책까지 제시하자 순식간에 재소자에서 이집트의 총리로 신분이 수직상승 된다.
비록 요셉이 꿈 해석을 통해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지만 총리로서의 실무를 감당케 하기 위해 하나님은 미리 아시고 요셉을 13년 동안 노예와 죄수로 훈련시키신 것이다.
하나님은 십대의 다윗을 사울 왕의 충직이자 대장군으로서의 영화를 누리게 하신다. 그러나 사울 왕이 하나님을 뜻을 거스르자 다윗을 다음 왕으로 기름 부으신다.
그러나 다윗이 실제로 왕위에 등극하는 것은 다윗이 광야에서 사울 왕의 추적을 받으면서 10여 년 동안 영적 감옥생활을 거친 후였다.
광야에서 영적 감옥생활을 하는 동안, 다윗은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웠고, 고난과 역경 속에서 주옥 같은 시편을 많이 지었다.
감옥생활을 한 사람 중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사람은 사도 바울이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 된 후 복음을 전하면서 감옥을 수시로 들락날락하면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및 빌레몬서의 옥중서신을 기록했다.
바울에게 감옥은 넘치는 열정과 패기를 잠재우고,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살피고 자신의 내면을 살피는 성찰의 장소이자 성경 기록 장소였다.
존 번연(John Bunyun, 1628~1688)은 영국에서 누가 왕이나 절대 권력자가 되느냐에 따라 천주교가 국교가 되었다가 개신교가 국교가 되는 혼란한 시기에 살았다.
존 번연은 청교도 목사였다. 그런데 구교파가 왕이 되자 번연의 친구들은 번연에게 청교도 식으로 설교하면 체포될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번연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마침내 번연은 체포되어 12년 형을 선고 받았다.
12년 감옥살이를 하는 동안 그는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불후의 명작인『천로역정』(Pilgrim’s Progress)을 저술했다.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100개 이상의 언어로 출판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치고 있다.
1970년 11월, 스웨덴의 노벨위원회로부터 구소련의 솔제니친은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된다.
솔제니친은 소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통해 스탈린 시대 강제노동 수용소의 실상을 그렸다.
이 소설로 솔제니친은 소련당국의 미움을 샀고 이후 작품활동과 일상생활에서 당국의 제제를 받았다.
솔제니친은 결국 1974년 법정에 섰고 소련에서 추방돼 스위스로 망명했다. 이후 솔제니친은 미국에서 살다가 소련 사회주의 몰락과 함께 다시 소련으로 되돌아갔다.
솔제니친의 작품은 전체주의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판이 아니라 기독교적 사상과 인간애가 스며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노벨상 수상 식 때 솔제니친은 말했다.
“고맙다, 감옥이여!”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10).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감옥생활의 창피와 모욕을 견디지 못해 부러지고 말지만 하나님이 있는 사람은 겸손과 섬김의 기회로 삼아서 더욱 강해지고 인생을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 하나님은 역경을 뚫고 비전의 꽃을 피우게 하신다
조니 에릭슨은 17세이던 1967년 7월에 완전히 바뀌어져 버렸다.
미국 대서양 연안의 체사픽 만(灣)에서 다이빙을 하다가 몸이 바위에 부딪치는 바람에 척추가 부셔져 버린 것이다.
의사가 그녀는 평생 불구가 될 것이라고 말하자 그녀는 너무나 상심하여 차라리 죽고 싶었다.
그러던 중 성경 공부를 하면서 은혜를 회복함에 따라 그녀는 겸허하게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면서 고통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법을 배워가기 시작했다.
나중에 남편이 된 켄 타다(Ken Tada)와 조니는『조니와 친구들』(Joni and Friend. JAF)란 이름의 국제장애인선교회를 1979년에 창설하였고, 사역이 번창하여 2006년에는 조니와 친구들 국제장애인센터 IDC을 설립하였다. 조니는 2005년 미국 국무부의 장애인 고문위원회의 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장애인으로 승리한 사람이라고 하면 금방 떠오르는 한국 사람이 있다. 미국 조지 부시 행정부 때 백악관 국가 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를 지낸 한국 최초의 맹인 박사인 '강영우 박사'이다.
1944년 경기도 양평에서 출생한 그는 중학교 시절 사고로 실명하였고 뒤이어 모친과 누나를 잃고 일찍이 맹인 소년 가장이 되었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신앙과 굳은 의지로 1972년 연세대학교 교육학과를 졸업하였고 미국에 유학하여 1976년에는 한국 최초의 시각장애인 박사(피츠버그대학교 교육학 철학박사)가 되었다.
이후 미국 대통령이 임명하고 상원의 인준을 받는 고위공직자 500명 중 한 명인 백악관 국가 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로 임명되었다.
그의 이야기는 우리나라의 중학교 영어 교과서에 ‘현대의 영웅’으로 소개되었다.
그는 이렇게 간증했다.
“내가 시각장애인이 된 것은 이미 하나의 문이 닫힌 것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고난 속에서도 주님을 보았고 절망 속에서도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
‘나의 실명은 장애가 아니라 하나님의 도구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에 교량역할을 하는 도구이다.’”
선천성 장애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복음송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레나 마리아.'
레나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 때문에 가능했다"며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녀는 날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으며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 가장 기쁘다고 한다.
그녀는 신앙의 회복을 위해 성경학교를 수료한 후 인도로 전도여행도 다녀왔다.
호주인인 '닉 부이치치'는 태어날 때부터 희귀병인 '해표지증'으로 팔다리가 없다. 마치 오리발처럼 튀어나온 자그마한 왼쪽 발이 그가 가진 사지의 전부이다.
어린 시절의 그는 절망에 빠져 세상 사람 모두를 원망했다고 한다. 철이 든 8살 무렵에 이미 살아갈 의미나 학교에 가야 할 의미를 잃은 채, 하나님에 대한 분노와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에 빠져 절망 속에서 지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아들을 장애인으로 대하지 않았다. 다른 아이와 똑같이 사랑하고 가르치고 나무랐다.
그리고 아이가 스스로의 힘으로 세상을 헤쳐나가도록 강하게 키웠다. 그래서 일부러 장애인 학교에 보내지 않고 일반인 학교에 보냈으며 각종 운동과 컴퓨터를 가르치며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이런 부모님의 사랑과 가르침 덕분에 그는 자신의 삶에 대한 불만과 절망과 원망 그 모든 것들을 떨쳐내고 훌륭하게 학교를 마쳤으며, 대학에서 회계학과 재무학을 전공했다.
그는 현재 '행복의 전도사'로 활동하며, 전 세계인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일을 하고 있다.
그는 말했다.
“하나님이 나를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이제야 알겠다. 단 한 사람이라도 나를 보고 삶에 용기를 얻는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 하나님은 일터사역자로 부르신다
척 리프카(Chuck Ripka)는 학력도 변변찮고 특별한 기술도 없는 일용직 노동자였지만,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면서 한 걸음씩 전진한 결과 은행장이 되고 지역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일을 감당하였다.
그의 이야기가 알려지자 미국은 물론 세계 도처에서 그를 강사로 초청했고 미국의 CBS, CNBC, Good Housekeeping 및 영국의 런던타임스The London Times 등에서도 그에 대한 특집기사를 실었다.
척 리프카는 현재 Rivers International Development Community Bank의 CEO, 수출입회사인 Ripka Enterprises의 CEO 및 국제선교단체인 Rivercenter International Christian Network의 대표로서 일터와 선교단체에서 하나님 나라 확장에 충성하고 있다.
리프카는 말한다.
“주님에 대한 순종과 신뢰가 내 인생을 변화시켰다.
이것들-순종과 신뢰-덕분에 아무런 희망도 없던 20대의 청년이 공사장의 일용직 노동자에서 국제 은행가로 성공하고, 지방 은행에서 시작하여 국제급 은행으로 발돋움하는 금융제국을 건설하게 되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주님이 나의 순종과 신뢰를 통해서 내 가족, 이웃, 사업, 학교, 내가 도시 및 주 정부를 변하게 하셨다는 사실이다.”
국제일터사역협회 회장인 오즈 힐스만(Os Hillsman)은 말했다.
“척 리프카의 삶은 이론이 아니라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을 경험한 것을 실천한 것에 대한 간증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면 다니던 직장, 하던 사업을 모두 접고 신학교를 졸업한 후 목사로 안수 받고 목회를 해야 되는가?
전통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비록 부르심을 받았더라도 하던 사업을 그만두지 않고 사업체를 목회현장, 선교현장으로 섬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런 사람을 '일터 사역자'(Workplace minister 또는 Marketplace minister)라 부른다.
많은 사람들은 주님을 열심히 섬기다가 하나님의 특별하신 부르심이 있으면, 잘 되던 사업이나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신학교를 나와서 목사 안수를 받고 전임 목회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이런 전통적인 생각이 서서히 바뀌고 있다.
사역을 위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기 위해 꼭 지역교회라는 울타리 내에서 전임사역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터에서 전임사역을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 부르심과 목회에 대한 개념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전통적인 교회를 '지역교회'(Local church)라고 한다면, 직장이나 사업장을 교회로 여기고 섬기는데 이것을 지역교회와 구분되게 '일터교회'(Workplace church) 라고 부른다.
전임목회자가 아닌 일터 사역자에게는 일터가 교회-일터교회 -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일터 사역자들은 검소한 삶을 산다. 그들에게 소득의 십일조는 별로 의미 없는 개념이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얼마나 드리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남기느냐다(막 12:43-44 참조). 일터 사역자들은 믿음에 따라 십의 9조에서 최소 십의 5조까지 드리는 사람들이다.
이처럼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은 어느 한 가지 방법이 아니다. 하나님의 주권, 내 마음의 소원, 재능과 은사, 사람, 성경 말씀, 감옥과 역경 및 일터 등의 다양한 통로를 통해 세워지고 이루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