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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보랭 성 모 발현 성지
개 요
벨기에 남동부에 위치한 보랭은 프랑스와 맞닿은 국경 지대 마을로 성모님이 발현하시기 전까지는 지도에도 없던 곳이었다. 벨기에인들이 전쟁 위협과 대공황으로 경제적인 위기에 처하자 마르크스주의에 매혹되어 냉담에 빠지는등 벨기에 가톨릭이 위기에 처했을 때 성모님이 발현하신 성지이다. 발현 당해에만200만 명이 방문하였으며, 성지가조성된 이후 10개월 동안 170만 명이 방문하여 루르드보다 더많은 방문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다음 15장에 소개할 바뇌와 더불어 벨기에인들의 가톨릭 복귀와 일치라는 의미 있는 결실을 보여 준 성지이다.
성모님의 발현
보랭에서 성모님은 1932년 11월 29일부터 1933년 1월 3일까지 36일 동안 저녁 6시에서 10시 사이에 거의 날마다 발현하시어,당신의 모습을33번이나 보여 주셨다. 드장브르 가족의 14세 앙드레와 9세 질베르트,그리고 부아쟁 가족의 15세 페르낭드와 13세 질베르트, 11 세 알베르 라는5명의 아이들이 성모님의 발현을목격하였다.
11월 29일 화요일,아버지의 요청으로 페르낭드와 알베르는 수녀원 부속 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 질베르트를 데리러 가면서 이웃집 친구인 앙드레와 작은 질베르트를 불러 같이 갔다, 저녁 6시 반경 아이들은 수녀원에 도착하여 루르드 마사비 엘 동굴을 본떠 만든 성모 동굴이 있는 정원에 들어섰다. 알베르가 먼저 달려가 초인종을 눌렀다. 수녀님이 질베르트를 데리고 나오기를 기다리다가 알베르가문득 고개를 돌렸는데,정원 옆을 지나가는 철도 교량 위에 강렬히 빛나는 아름다운 여인이 있는 것이 보였다.
여인은 0.5m 정도 공중에 떠서 철도 제방 위를 걸어 다녔는데 두 발은 구름에 가려져 있었다. 다른 아이들과 막 수녀원에서 나온 질베르트도 빛나는 여인을 보았으나,질베르트와 함께 나온 발레리아 수녀에 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발현을 목격한 아이들은 두려운 마음에 집으로 도망쳤고, 부모에게 이사실을 알렸지만믿어 주지 않았다.
11월 30일 수요일,같은 시간에 네 아이가 평상시와 같이 질베르트를 데리러 갔다가 빛나는 여인을 또다시 보았다. 여인은 제방 위를 걷다가 내려와서 성모 동굴 쪽으로 갔다. 아이들이 이 사실을 부모에게 다시 말했지만 부모는 화를 내며,누군가가 아이들을 겁주려고 하는 짓으로 여겼다.
12월 1일 목요일, 발현에 관한 이야기가 온 마을에 퍼졌다. 드장브르네 어머니는 아이들을 놀려 먹는 사람을 찾으려고 수녀원에 함께 갔다. 아이들은 수녀원의 성모 동굴 가까이에서 흰옷에 흰 베일을 쓰고 구름 위에 서 있는 여인을 다시 보았는데,여인의 머리에서 황금빛 광선이 나와 마치 왕관을 쓴 것 같았다. 아이들은 즉시 무릎을 꿇고 성모송을 외웠다. 그러나 어머니를 비롯한 어른들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그래서 어머니가 막대기로 사방을 휘저으며 동굴 쪽으로가자 아이들이 “엄마,더 이상 앞으로 가지 마세요. 바로 앞에 여인이 있어요!”라고 소리치자 여 인은 사라졌다.
12월 2일 금요일,아이들이 같은 시간 같은 곳에서 다시 여인을 목격하였다. 여인은 20세 정도로 보였고 미소가 아름다웠다. 오른팔에 묵주가 들려 있고,두 손은 마치 기도를 바치는 것처럼 합장하고 있었는데,이후에는 항상 그곳에서 나타났다. 여인의 키에 대해서는 90〜120cm라고 나오는 자료도 있고 단순히 작았다고 하는 자료도 있는데 대부분의 자료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 아이들은 무릎을 꿇고 성모송을 바쳤다. 알베르가물었다. “당신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님인가요?” 그러자그분은 미소를 지으며 그저 고개만 끄덕이셨다. 알베르가 다시 “무엇을 원하시나요?”라고 묻자,성모님이 처음으로 입을 열어 “항상 선해야 한단다”라고 답하셨다.
그런 다음 성모님은 사라지셨다가 얼마 후 다시 발현하시어 항상 선할 것이냐고 물으셨고,앙드레가 “네,우리는 항상 선할 것입니다!”
라고 큰 소리로 답하였다. 성모님은 두 팔로 아이들을 안아 주시는 듯한 모습을 보이시고 사라지셨다. 아이들이 이 사실을 본당신부 람베르토에게 전하였으나,신부는 아이들이 머리로 상상한 것을 마치 정말로 보고 들은 것처 럼 착각한다고 여겨 관심을 두지 않았다.
12월 4일 일요일에도 아이들은 눈이 먼 노인,그리고 장애가 있는 아이와 함께 수녀원 정원에 있는 성모 동굴에 가서 묵주기도를 바쳤다. 말을 제일 많이 했던 알베르가 성모님께 두사람을 치유해 달라고 요청하였으나 성모님은 치유 대신 저녁마다 여기 와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날부터 많은 사람들이 와서 아이들와 함께 기도를 드렸다. 마을 사람들은 성모님의 모습을 보지 못하였지만 아이들의 눈에는 보였다. 점점 더 많은사람들이 몰려왔다. 성모님은 아이들에게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12월8일)에 꼭 오라고 말씀하셨다.
12 월5 일 월요일,많은사람들이 몰려왔다. 알베르가치유의 기적을 보여 달라고 요청하였으나 성모님은 침묵하셨고 아이들은 실망하여 울음을 터뜨렸다.
I2월 6일 화요일, 성모님이 발현 하신지 일주일이 되는 날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으며 성모님은 당신을 위한 대축일인 8일에 다시 오라고 요구하셨다. 벨기에 언론사들이 기자를 보내 성모님 발현과 관련한 기사를 보도하기 시작했으며 아이들과 보랭 주민들이 수많은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 이제 벨기에 전역에서 보랭 성모님의 발현을 알게되었다.
I2월 8일 목요일, 성모님이 말씀하신 날이라서 이전보다 많은 15,000명 정도의 군중이 몰려왔고 그들은 큰 기적을 기대하였다. 아이들도 부모와 함께 6시 10분경 수녀원에 도착하여 무릎을 꿇고 묵주 기도를 바쳤다. 성모님은 찬란한 빛을 발하며 나타나셨는데, 작은 질베르트가 울음을 터뜨렸다. 옆에 있던 한 의사가 왜 우느냐고 묻자 질베르트는 “성모님 이 너무 아름다워서요”라고 답하였다.
이후 아이들은 1시간30분 동안 탈혼 상태에 빠졌다. 의사 메스트 리오와 그의 요청을 받은 몇몇 의료진이 참여하여 아이들을 검사하였다. 아이들을꼬집고 때려도,눈에 불빛을 비춰도,심지어 불이 붙은 성냥을 손에 을려놓거나 날카로운 핀으로 찔러 보아도 아무 반응이 없었으며 아무 상처도 나지 않았다. 묵주기도 마지막 단을 바치자 성모님은 사라지셨다. 아이들은 부모님과 분리되어 수녀원에 가서 의사에게 심문을 받았고 며 칠 동안 교차 심문 과정 이 반복되 었다.
12월 17일,성모님이 당신이 서 계신 자리에 많은 사람들이 순례를 올 수 있도록 작은 경당을 세우기를 원한다고 말씀하셨다.
12월 21일, 성모님이 “나는 원죄 없이 잉태된 동정녀 마리아이다” 라고 당신의 신분을 밝히신 다음,머지않아 마지막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12월 23일,“당신은 여기에 왜 오셨습니까?”라고 묻자,성모님은 “나는사람들이 순례를 을 수 있게 하려고 왔다”라고 답하셨다.
12월 24일,성탄 전야에 6천여 명의 군중이 몰려왔다. 그들이 치유의 기적을 요청하였으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고,성모님의 발현도 짧게 끝났다.
12월 29일 목요일,성모님이 당신의 두 팔을 펼치시어 가슴에서 빛줄기가 주위로 퍼져 나가는 황금 성심을 보여 주셨다. 그것은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이었고,그로써 보랭 성모님은 ‘황금 성심의 성모로 불리게 되었다.
12월 30일, 성모님은 “기도하여라,기도하여라,많이 기도하여라”라고 말씀하셨다.
12월 31 일,성모님은 아이들에게 당신의 황금 성심을 다시 드러내 보이시며 항상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다.
1933년 1월 1일,성모님은 큰 질베르트에게 “항상 기도하여라”라고하시고,마지막발현은 이틀후에 있을것이라고하셨다.
1월 2일,성모님은 “나는 내일 너희 각자에게 따로따로 비밀을 이야기해 주겠다”라고 말씀하셨다.
1월 3일,성모님의 발현 마지막 날,3만 5천 명의 군중이 모였다.
성모님이 발현하시자 아이들은 기쁨에 넘쳐 환성을 질렸다. 성모님은 약속하신 대로 아이들에게 저마다 따로 비밀을 말씀해 주셨다.
먼저 앙드레에게는 “나는하느님의 어머니요하늘의 여왕이다. 항상 기도하여라. 잘 있거라”라고 말씀하셨다. 큰 질베르트에게는 “나는 죄인들을 회개시키겠다. 잘 있거라”라고 하셨고,알베르와 작은 질베르트에 게는 간단하게 “잘 있거 라”라고 하셨다.
그때까지 페르낭드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여 외톨이로 남아 낙담하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사람들은 천둥 같은 소리를 들었고,비로소 페르낭드에게도 성모님이 보였다. 성모님은 페르낭드와 다음과 같이 대화를 나누셨다. “너는 나의 아들을 사랑하느냐?” “네.”
“너는 나를사랑하느냐?” “네.” “너는 나를 위하여 너 자신을 희생하여라.” 성모님은 페르낭드에게 작별의 표시로 황금 성심을 보여 주시며 “잘 있거라”라고 말씀하신 후 사라지셨다. 이상의 내용은 총 33번의 발현 중에 중요한 18번의 발현을 정리한 것이다.
시현자
보랭의 시현자들은 이전의 시현자들이 성직자나 수도자가 되거나 성모님의 메시지를 널리 알리는 소명에 평생을 바친 것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 준다. 그들은 모두 결혼하였으며 보통 사람들과 같은 평범한 삶을 살았다. 이런 비범하지 않은 모습도 우리 신자들이 살아가는 삶의 한 방식이라는 의미에서 한편으로 안도감이 든다. 루르드의 베르나데트나 파티마의 루치아처럼 성모님의 발현을 목격한 시현자로서 평생 사람들에게 시달리며 자유롭게 살지 못하고 먼 곳에서 타향살이하며 고독하게 살아가다가 생을 마감하는 모습은 감동스러운 동시에 안쓰러운 연민이 들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시현자가 5명이나 되는데도 그중에서 단 한 명도 가족과 떨어져 살지 않았으며,모두 자신에게 주어진 평범한 삶을 충실히 살았던 보랭의 시현자들이 새롭게 보이기도 한다. 이는 자신의 가족을 성가정으로 만들어 주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것도 하나의 소명 임을 일깨운다.
앙드레 드장브르(1918〜1978)와 질베르트 드장브르(1923〜2015)는 세 자매 중 둘째와 셋째로 태어났다. 드장브르 가족은 원래 보랭에서 살았 지만 인근 보네슈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아버지가 1 3 년 동안 농장일을 하였는데,늘 가난을 면치 못하였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는 세 자매와 함께 다시 보랭으로 돌아왔고,2년 후에 성모님의 발현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
앙드레는 1941년 결혼하였으며 슬하에 3명의 자식을 두었는데, 성모님의 발현을 목격한 5명의아이들중에서 가장 먼저 60 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앙드레의 동생이자 시현자 중 가장 어렸던 질베르트는 1947년 결혼하였으며 오랜 세월 이탈리아에서 살다가 남편과 함께 고향 보랭으로 돌아왔고,2015년 92세의 나이로 선종하였다. 질베르트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성모님의 발현과 관련한 한 시간가량의 영상을 남겼다.
부아쟁 가족의 아버지 핵토르는 철도국에서 일하면서 어려운 살림을 조금이라도 면하려고 아내와 함께 보랭 중심가에 작은 가게를 열었지만, 성모님의 발현으로 문을 닫아야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 마리는 사회당에 아주 열성적이어서 가톨릭 신앙을 실천하지 않았을뿐 아니라 냉담에 빠지기까지 하였다. 그렇지만 발현 이후 자식늘의 도움으로 신앙을 되 찾았다.
페르낭드 부아쟁(1917니979)은 지방 세무국에 근무하는 알베르 데스파스와 결혼하였고 자신은 가정 방문 간호사로 일하였다. 슬하에 5명의 자식을 두었고, 나무르로 옮겨 가서 살다가 신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유치원 교사가 된 질베르트 부아쟁(1919나003)은 1945년 경찰관과 결혼하였지만,1953년 임무 수행 중 남편이 피살되었다. 미망인이 된 질베르트는 2명의 아들과 함께 타지에서 고향 보랭으로 돌아와 50년을 살다가 성모님의 마지막 발현일인 1월 3일에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부아쟁 가족의 막내 알베르(1있1〜2003)는 아일랜드와 독일에서 군 생활을 하였으며, 벨기에 오티그니에서 2년 동안 교사로 일하였다. 1948년 결혼한 후 같은 해에 벨기에령 콩고로 이주하였으며 그곳에서 3명의 자식을 낳았다. 1961 년 알베르 가족은 보랭으로 돌아와서 평범한 삶을 살았다.
발현 장소
독일이 전쟁을 일으킬 경우 벨기에는 바로 전쟁터가 될 것이 분명했다. 독일과 프랑스 파리가 직선으로 연결되는 통로에 위치한 리에주와 나무르는 그피해를 가장 많이 받을수 밖에없어,인근 주민들은 불안에 떨 뿐이었다. 더구나 대공황의 여파로 주민들의 경제적 사정은 예전보다 더 어려워졌다. 이 같은 불안과 고통을 겪으며 주민들은 사회주의에 관심을 기울였고,결국 가톨릭에 냉담해져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그릇된 선택을 하고 있을 때 성모님은 나무르 인근의 가난한 마을 보랭에서,게다가 가톨릭에 냉담하고 사회당을 추종하던 사람들의 자녀들에게 발현하셨다.
성모님은 처음 2번은 수녀원옆에 있는 철도 제방 위에서, 다음 31번은 수녀원 정원에서 발현하셨는데, 당시 모습을 그린 그림이 아래쪽에 있다.
그림을 보면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고, 그림을 통하여 5명의 아이들과 성모님의 모습(왕관,황금성심, 묵주, 복장, 손의 위치, 허리띠가 없는것, 작은구름등)을 확인할 수 있으며 주변 배경도 파악할 수 있다. 그림에서 뒤쪽으로 철도의 교량과 제방이 보이고, 오른쪽에는 루르드 마사비 엘 동굴을 본떠 만든 성모 동굴이 보이며, 가운데는 산사나무 앞쪽으로 빛나는 성모님이 위치하여 있는 것이다. 그림에 의하면 성모님이 발현하신 장소는 현재 야외 정원에서 성모상이 세워져 있는 위치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당시의 성모 동굴은 이제 남아 있지 않아 더 이상 볼 수 없는
데,언제 없어지게 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5명의 아이들은 성모님의 발현이 다 끝난 후에도 매일 야외 정원을 방문하여 묵주기도 를 바쳤다.
1946년 8월 22일 나무르 교구의 앙드레마리 샤뤼 주교가 정원에 성모상을 세우고 축성하였다. 그리고 성모님이 발현하신 위치에서 300m 떨어진 곳에 발현 기념 경당이 건립 되었는데,1947년 8월 22일 착공하여 1954년 8월 21일 봉헌되었다. 발현 기념 경당 외부 측면에는 앞서 나온사진과 같이 야외 미사를 할수 있는 제대가 마련되어 있어 날씨가 좋을 경우에는 여기서 미사를 봉헌한다. 물론 경당 내부에도 제대가꾸며져 있다.
성지 소개
성지 대부분을 대성당과 성당,경당이 차지하고 있는데,성지 입구에는 발현 기념 경당,성지 안쪽에는2층 대성당과 1층 성당이 있고, 발현 기념 경당의 측면과 성지 정원에 야외 제대가 마련되어 있다. 그리고성지 정원에 있는야외 제대의 지하에도 경당이 하나더 있다.
대성당은 1968년 10월에 봉헌되었으며 2천 명을 수용하는 규모이다. 성지 입구에 안내 센터가 있으니 이곳에서 기본적인 설명을 접할 수 있다. 성지 정원 옆에는 붉은 벽돌로 된 피정의 집이 있는데,성모님이 발현하실 당시에는 수녀원이 었으며,질베르트가 이곳에서 공부하였다. 피정의 집 입구에는 시현자 5명의 사진이 걸려 있다. 그리고 피정의 집에는 한국에서 파견 나온 수녀님이 상주하고 계시니 꼭 방문하여 수녀님의 안내도 받고 성지와 관련한 이야기도 듣도록 하자. 피정의 집은 숙소로도 이용 가능하여 사전에 예약하면 숙박과 식사를 제공받을 수 있다.
[자료: 세계의 성모발현 성지를 찾아서. 분도출판사. 최하경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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