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령강림을 준비하면서(2)>
영적 리더인 엘리야처럼
약 5:17-18 / 엘리야는 우리와 조금도 다름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비가 오지 않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자 3년 반 동안이나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18) 다시 비가 오게 해주시기를 기도하자 비가 쏟아져서 초목이 다시 푸르게 되고 들의 곡식들이 자라서 열매를 맺었습니다.
1. 엘리야를 쓰신 하나님
1. 엘리야의 등장(왕상 17:1)
엘리야 선지는 오므리 왕자의 아합왕이 이스라엘을 다스릴 요단 북편에 있는 길르앗(Gilead) 지방의 디셉에서 등장하여 아합에게 수년 동안 가뭄이 있을 것을 경고하였다.
2. 그릿시냇가에서(왕상 17:2-7)
아합에게 가뭄이 있을 것을 경고한 후 엘리야선지는 하나님의 명대로 아합을 피해 요단강 앞 그릿시냇가로 가서 숨고, 까마귀들이 가져다주는 떡과 고기를 먹고 시냇물을 마셨다. 계속된 가뭄으로 시냇물이 말라 더 이상 마시지 못하였다.
그릿시냇가(Cherith brook) / 그 위치에 대해서는 정확한 이론은 없으나 중세시대에는 요단 동편 길갈 근처로 현재의 와디켈트(Wadi Qekt)로 생각했고, 오늘날의 대부분 학자는 엘리야의 고향에 있는 여러 강줄기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아마 성서에 언급된 요단 앞과 그 내용 전개를 보면 디셉에서 그리 멀지 아니한 요단강 근처의 한 조그마한 와디(Wadi) 강줄기였을 가능성이 크다.
3. 사르밧에서 과부의 공궤를 받음(왕상 17:8-24)
그릿시냇물이 마르자 하나님의 명대로 시돈지역에 속한 사르밧(두로와 시돈의 중간지점)으로 올라갔다. 그가 사르밧의 성문에 이를 때에 아들과 같이 떡 하나를 만들어 먹고 죽으려고 하는 과부를 만나 그 떡을 자신이 먼저 먹은 다음 그 과부의 집에 가뭄이 마칠 때까지 기름과 밀가루가 부족하지 않을 만큼 먹을 수 있는 기적을 베풀어 주었다. 이일 후 하루는 그 과부의 아들이 병으로 죽자 엘리야는 그 아이 위에 몸을 3번 펴서 엎드린 후 하나님께 기도하여 낫게 하였다.
사르밧에서 3년을 지낸 후에 엘리야는 가뭄이 끝날 것을 아합에게 고하기 위하여 사마리아로 내려가는 궁내 대신 오바다를 만났다. 이 자리에서 의로운 오바댜는 엘리야로 아합에게 안 가기를 청하였으나 엘리야는 만나기를 맹세했고, 이에 오바댜가 할 수 없이 아합에게 엘리야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아합은 나가 엘리야 앞에 이르고 엘리야는 바알과 아세라 신과의 대결을 갈멜산에서 갖기로 제의(提議)하였다.
4. 갈멜산의 대결(왕상 18:19-46)
엘리야 선지의 제의를 수락한 아합은 바알 선지 450명과 아세라 선지 400명을 갈멜산으로 나오게 하였다. 마침내 엘리야와 바알과 아세라 선지 850명은 제단을 쌓아놓고 불이 임함으로 대결을 시작하였다. 바알과 아세라 선지들이 먼저 단을 쌓고 제물을 올려놓고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하며 부르짖었으나 아무런 응답이 없자 단 주위에서 뛰기까지 하였다. 이에 오정쯤 되어 엘리야는 저들에게 ‘너희 신이 묵상하고 있는지 잠깐 나갔는지 혹은 길을 가는지 아니면 잠이 들었는지 모르니 큰 소리로 부르라’고 조롱까지 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더 큰 소리로 부르며 자신들의 규례대로 창과 칼로 자해하여 피를 흐르게 하며 부르짖었으나 저녁때까지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이에 엘리야는 주위의 모든 백성을 모이게 하고 돌로 여호와의 단을 쌓고, 주위에 도랑을 만들고 송아지로 각을 떠서 제단의 나무 위에 놓았다. 그리고 물을 가져다가 번제물과 나무 위에 여러번 부어 도랑에 물이 가득하게 될 때까지 부은 다음 저녁 소제 드릴 때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소서’하며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까지 태우고 도랑의 물도 다 마르게 하였다. 이에 백성들은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라고 외쳤고 엘리야의 명령대로 바알과 아세라 선지를 잡아 기손시내로 데려다가 모두 죽였다. 그리고 나서 엘리야는 아합에게 비가 올 것을 알려 주었고, ‘강이 범람하기 전에 마차를 태고 내려가라’라고 말하였다. 이 말과 동시에 큰 비가 내렸고 아합은 속히 서둘러 이스라엘로 갔다. 이때 엘리야는 이스르엘 입구까지 아합왕 앞에 행하였다.
5. 이세벨을 피해 브엘세바로(왕상 19:1-3)
이세벨은 엘리야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를 갈멜산에서 죽인 것을 알고 사자를 보내 엘리야를 죽이려고 하였다. 이 소식을 엘리야는 그곳을 피해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자기 사람과 함께 갔다.
6. 로뎀나무에서의 통곡(왕상 19:4-7)
이세벨을 피해 브엘세바로 온 엘리야는 자기 사람을 그곳에 머물게 하고 다시 남으로 하룻길을 걸어 한 로뎀나무가 있는 곳에 이르러 하나님 앞에 죽기를 간구하다가 잠이 들었다. 천사가 와서 깨운 후 숯불에 구운 떡과 물을 먹고 다시 잠이 든 후 천사에 의해 일어나 다시 음식을 먹고 힘을 얻었다.
7. 호렙산으로(왕상 19:8-18)
로뎀나무 아래서 천사가 가져다준 음식을 먹고 힘을 얻는 엘리야는 40일을 행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산에 가서 한 굴에 거하였다. 그곳에서 ‘다메섹의 하사엘과 예후와 엘리사에게 각각 기름을 부어 아람왕과 이스라엘의 왕과 자신의 후계자로 세우라’라는 명을 받았다.
8. 엘리사를 만남(왕상 19:19-21)
호렙산에서 명을 받은대로 엘리야는 그곳을 떠나 아벧므홀라에서 열 두겨리의 소로 밭을 갈고 있는 엘리사를 만나 자기 겉옷을 던져 자기를 따라오게 하였으며 엘리사는 이때부터 엘리야를 따라다니며 수종을 들었다.
9. 나봇의 포도밭 사건으로 아합이 죽을 것을 예고함(왕상 21:1-26)
엘리야가 엘리사를 만난 후 아합은 아람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부친(오므리)이 빼앗겼던 성읍을 도로 찾았다. 이 일 후 아합은 자기 궁 가까이에 있는 나봇의 포도밭을 사는 데 실패하자, 왕후인 이세벨의 모략으로 돌로 쳐 죽인 후 그 포도밭을 차지하였다.
이 일을 엘리야가 하나님에게서 듣고 아합 앞에 나가 그가 죽어 그 피를 나봇이 죽은 곳에서 개들이 핥을 것을 예고하였다. 이에 아합은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옷을 찢고, 금식하며 행보를 천천히 하며 겸손하자 하나님께서는 그 재앙을 아들의 시대에 내리게 하셨다.
그리고 아합이 아람을 물리쳐 승리한 후 3년째에 아합은 남유다의 여호사밧 왕과 연합군을 조직하여 아람의 길르앗 라못을 치러 올라갔다. 이 싸움에서 아합은 부상을 당해 저녁에 죽어 사마리아에 장사되었고, 그 병거는 사마리아의 창기들이 목욕하는 곳에 부으니 개들이 그 피를 핥았다.
10. 아하시야에게 경고함(왕하 1:1-4)
사마리아에서 여호사밧 17년에 즉위한 아하시야왕은 통치 기간에 악행과 바알신 숭배와 그 아비의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 통치 말년 그가 다락난간에서 떨어져 병이 들었을 때 에글론 신에게 치료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사자를 보냈는데 엘리야를 통해 침상에서 죽을 것을 보고 받고 오십부장 50인을 엘리야가 보냈으나 불에 타서 죽었다. 이에 다시 오십부장 50인을 보냈으나 마찬가지로 불에 타죽었고 세 번째로 보낸 오십부장 50인들은 간절히 생명을 간구하매 죽지 않고 엘리야와 함께 왕에게 갔다.
왕 앞에서 엘리야는 말하기를 "네가 바알세불에게 물으려 하니 이스라엘에 그 말을 물을 만한 하나님이 없음이냐. 그러므로 네가 그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고 하였고 그 말대로 아하시야는 죽고 그 아들 여호람이 왕이 되었다.
11. 엘리사와 함께 승천 직전의 노정(왕하 2:1-5)
아사히야가 죽고 여호람이 북이스라엘의 왕이 된 때 엘리야 선지는 하나님이 명령대로 길갈로 갔으며 그곳에서 엘리사를 머물게 하고자 했으나 엘리사는 끝까지 반대하였다. 그리고 난 후 엘리야는 벧엘과 여리고로 갔고 그때마다 엘리사를 떼어 놓으려고 하였다.
12. 엘리야의 승천(왕하 2:6-11)
여리고에서 요단을 건넌 후 승천하기 직전 엘리야선지는 엘리사에게 구할 것을 말하라고 하였고 이에 엘리사는 갑절의 영감을 구했다. 그리고 난 후 엘리야는 홀연히 불수레와 불말이 내려와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하였고, 엘리사는 엘리야의 겉옷을 취하였다.
2. 엘리야의 후계자 엘리사(왕하 2:1-14)
왕하 2:9 / 그렇게 하여 요단강의 건너편에 이르자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물었다. ‘주께서 나를 데려가시기 전에 내가 자네를 위하여 무엇을 해주면 좋겠는가?’ 엘리사가 간청하였다. ‘선생님께서 예언자들에게 넘겨주실 영력 가운데서 제게는 두 몫을 물려주셔서 제가 맏아들처럼 스승님의 남은 사역을 수행하게 해주십시오!’
‘인내’(patience)와 ‘열정’(passion)이란 두 단어는 라틴어의 한 어근 ‘pasio’(견디다)에서 파생되었다. 인내라는 것은 열정을 포함한다. 인내하는 자는 열정을 가진 자이다. 자신의 일에 열정이 없으면 절대 인내할 수 없다. 열정을 가진 자만이 인내로 뜻을 이루어갈 것이다. 무엇보다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야 한다. 엘리야의 능력의 두 몫을 구하여 예언자직을 잘 계승하고 수행하며 완성했던 엘리사에 대해 살펴본다.
1. 엘리야를 끝까지 따라간 엘리사
자신의 사역을 잘 감당하였던 엘리야는 이제 삶을 마칠 때가 왔음을 알았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길갈에서 벧엘, 여리고, 요단으로 가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했다. 그 여정 가운데 엘리사는 엘리야로부터 ‘너는 여기 머물라’는 말을 들었지만, ‘야훼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답하며 끝까지 엘리사와 함께 했다(왕하 2:6).
사실 다른 제자들도 엘리야의 마지막이 가까웠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엘리사와는 달리 멀리 서서 바라보기만 했다. 반면 엘리사는 스승을 끝까지 따르고 그와 동행하며 고난도 함께 했다. 그 결과 엘리사는 엘리야의 능력을 이어받았다.
사실 엘리야에게는 엘리사 외에도 많은 선지생도들이 있었다. 길갈, 벧엘에도 있었다. 여리고에는 50여명의 선지 생도들이 있었다(왕하 2:7). 저들은 멀리 서서 요단강가에 서 있는 엘리야와 엘리사를 구경만 했다. 엘리야가 떠난다고 해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였다. 마치 베드로가 물 위로 걸을 때 배 안에는 있던 11제자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그 많은 생도들 중에서도 특별히 엘리사만은 스승인 엘리야의 사명의 고귀성을 깨달은 선지 생도였다. 다른 생도들은 갑절의 영감을 구하지 아니했다. 아니 그 필요성을 모르고 있었다. 단지 엘리야가 행하는 일을 바라보고만 있었을 뿐이다. 엘리사만이 갑절의 영감을 구했다. 그는 남달리 쓰임 받기를 원했다. 지금 자기를 장자처럼 여겨서 두 몫을 달라는 것이다. 그것은 엘리야의 후계자가 되어 시대적인 사명을 감당하겠다는 것이다. 시대의 타락상을 보면서 아픔을 느끼며 그 누구보다도 사명감에 불타야 한다.
엘리사가 활동했던 이스라엘 북왕조시대는 엘리야 때보다 갑절이나 타락했던 시대였다. 우상을 섬기고 말씀대로 살겠다는 의지가 땅에 떨어졌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관심이 없고 모두 다 이방의 세속문화에 뒤섞여 살던 시대였다. 이러할 때 엘리사는 세상을 바라보며 사명감에 불탔다. 그냥 안일 무사하게 살기를 원하지 아니하였다. 시대의 등불로 살기를 원하였다. 하나님의 선지자로 쓰임 받을 바에야 장자같이 쓰임 받기를 원했다. 때문에 그는 갑절의 영감을 구했다. 갑절의 영감을 받아 갑절의 사명을 감당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갑절의 사명감에 불타야 한다. 갑절로 쓰임 받기를 기대해야 한다. 대강 살다가 대충 주의 일을 하다가 안일하게 죽어서는 안 된다. 한 번뿐인 인생이다. 너무나 고귀한 인생,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다가 죽을지 모르지만 11시에 포도원에 들어간 일꾼처럼 늦으나마 우리도 결단해야 한다. 비록 무지하고 무능하며 내놓을 것이 없는 인생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 쓰임 받기를 구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실 것이다. 정말 주를 위해 살고자 하는 불타는 사명감이 있는가를 보시며 일꾼으로 써주시기를 간절히 구해야 한다.
2. 하나님의 능력을 사모하여 엘리야 선지의 갑절 능력을 간구한 엘리사
야훼께서 엘리야를 회오리바람으로 하늘로 올리고자 하실 때, 엘리야는 제자 엘리사에게 ‘자네는 여기 남아 있게. 나는 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벧엘로 가겠네.’라고 했다. 그러나 엘리사는 엘리야의 말을 듣지 않았다. ‘주께서 확실히 살아 계시고 선생님이 확실히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지만 저는 결코 선생님 곁을 떠나지 않겠습니다.’(왕하 2:2)라고 말했다.
길갈에서 시작된 엘리야와 엘리사의 이 같은 줄다리기는 벧엘과 여리고에서도 계속되었다. 엘리야는 세 번에 걸쳐서 엘리사를 그의 곁에서 떼어 놓으려고 했지만 엘리사는 끝까지 스승인 엘리야를 떠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왕하 2:2, 4, 6).
하나님의 능력을 간절히 사모한 엘리사의 이 같은 태도는 야곱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야곱도 하나님의 축복을 간절히 사모한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얍복 강가에서 ‘안 됩니다. 내게 축복하실 때까지는 절대로 안 됩니다.’하고는 천사를 붙잡고 늘어졌다. 그 결과 야곱은 ‘하나님과 겨루어서 이긴 자’라는 뜻인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았다(창 32:28). 그러므로 말세를 살며 그나마 하나님의 일을 하려는 우리라면 엘리사나 야곱처럼 하나님의 능력과 축복을 사모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지금 온전한 마음으로 나를 찾아야 한다. 그러면 내가 너희를 만나 주겠다. 이제 너희가 나만을 찾는다면 내가 직접 너희 앞에 나타나겠다.’(렘 29:13-14)라고 말씀하셨다.
엘리야가 요단강을 가르고 마른 땅 위를 건넌 후 엘리사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물었다. 엘리사는 ‘선생님께서 예언자들에게 넘겨주실 영력 가운데서 제게는 두 몫을 물려주셔서 제가 맏아들처럼 스승님의 남은 사역을 수행하게 해주십시오!’(왕하 2:9)라고 요청했다.
이 말씀은 흔히 엘리사가 스승 엘리야보다 더 큰 능력이 나타나기를 구한 것으로 오해된다. 하지만 갑절이란 말은 엘리야에 대한 두 배가 아니라 다른 제자들보다 두 배를 의미한다. 그것은 엘리사가 엘리야의 예언자 사역에 대한 합법적인 후계자의 지위 즉 장자적 지위를 요구한 말이다(신 21:17). 그렇지만 숫자상으로 볼 때 엘리사에 대한 사건 기록은 그의 스승 엘리야에 대한 것보다 갑절에 해당된다. 그러나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한 것처럼 엘리사가 아무리 많은 일을 했을지라도 엘리야보다 높을 수는 없다. 참 제자라면 선생보다 잘 나기를 바라기보다는 선생님이 하시던 일을 이어받기를 사모했을 것이다. 엘리사는 이미 다른 제자들로부터 엘리야를 계승할 차세대 지도자로 인정받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지위를 이어받기만 해도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지위에 연연하기보다는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예언자적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는가에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그 누구보다도 성령의 능력을 원했고, 성령의 능력을 받아 엘리야의 사명을 이어갈 수 있었다.
3. 하나님을 만난 엘리사
엘리사는 엘리야의 영감의 두 몫을 요구했지만, 그것이 성취되기 위해서는 한 가지를 수행해야 했다.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어지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왕하 2:10)라는 말씀처럼 그는 엘리야의 승천을 눈으로 직접 보아야 했다. 그것은 바로 불수레와 불말들을 통해 엘리야를 하늘로 데려가시는 하나님을 엘리사도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다. 그럴지라도 엘리사는 고되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묵묵히 엘리야를 좇았고, 믿음으로 동행했다. 이것은 곧 엘리사도 엘리야의 길을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드디어 엘리야는 불 수레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이것은 선생님인 엘리야 선지자의 지금까지 행한 일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며, 앞으로 제자였던 엘리사도 그러한 길을 걸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신 것이었다. 그러자 하나님 성령의 능력이 그에게 임하였고, 바로 그것이 그가 엘리야의 예언자직을 계승했음이 확증되는 순간이 되었다.
그렇다고 성령의 능력은 엘리사 자신이 마음대로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엘리사가 엘리야의 떨어진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엘리야의 하나님 야훼는 어디 계시니이까’(왕하 2:14)라고 외쳤을 때 요단강이 갈라진 것처럼 우리들도 예수님의 뜻을 따르고, 이를 위해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해야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다. 엘리사는 엘리야에게 역사하셨던 성령과 동행하고 능력을 행함으로 엘리야의 사역을 이어갈 수 있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일을 감당하려면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한다. 이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특권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 기도할 때 주어진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음 전파의 사명을 맡겨 주셨다. 땅끝까지 복음이 전파되기 위해 우리 각자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닫고 부르짖음으로 능력을 받아서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일꾼들이 되도록 하자(막 16:19-20).
4. 하나님의 능력을 받은 엘리사
엘리사는 재물이나 명예를 구하지 않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했다(참조, 마 6:33). 마치 이러한 장면은 솔로몬이 하나님께 구한 바와 같다.
왕상 3:11-13 / 너는 오래 살게 해달라거나 큰 부자가 되게 해달라거나 원수들을 죽여 달라고 간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너는 이 백성을 올바르게 다스리기 위하여 내게 지혜를 간구하였다. 12) 그러므로 내가 네 간구대로 과거에나 앞으로나 어떤 사람도 너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지혜와 총명을 네게 주겠다. 13) 뿐만 아니라 네가 간구하지 않은 부귀와 영화도 네게 주어 네 평생에 어떤 왕도 너와 비교할 수 없도록 하겠다.
솔로몬처럼 엘리사 역시 해야 할 일이 많았다. 그는 엘리야가 했던 일들을 계승해야 했고, 선지자의 제자들도 보살펴야 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이스라엘의 원수들을 대적해야 했고, 하나님을 무시하는 세력들도 물리쳐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엘리사가 이러한 중차대한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능력을 갑절로 받아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엘리사의 사정과 소원을 감찰하시고, 하나님 마음에 맞은지라 그에게 큰 능력으로 덧입혀 주셨다. 이 같은 사실은 곧 엘리사에게 일어난 큰 기적을 통해 곧 확인되었다. 열왕기하 2장 13-14절을 보면 엘리야가 떨어뜨린 그의 겉옷을 주워 들고 요단 강가로 돌아와 서서 엘리야가 하였던 것과 같이 그 겉옷으로 요단 강물을 치면서 소리쳤다.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그러자 강물이 좌우로 갈라지면서 마른 땅이 드러나 그는 걸어서 강을 건너갔다.
그러자 맞은편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강 건너에서 이러한 광경을 다 보고 엘리사에게 ‘엘리야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엘리사 위에 머물렀다’(왕하 2:15)라고 하며 가서 엘리사에게로 나아가 땅에 엎드려 절을 하였다. 하나님의 능력을 간절히 사모했던 엘리사는 결국 하나님의 큰 능력을 받아 하나님의 위대한 선지자가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엘리사처럼 하나님의 능력을 사모해야 한다. 우리가 성령의 능력을 힘입으면 인간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일도 능히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슥 4:6)
5. 엘리사의 하나님
엘리사라는 뜻은 ‘야웨 나의 구세주’, ‘하나님은 구세주이시다’라는 뜻이다. 소 열 두 겨리로 밭을 갈고 있을 때 엘리야가 지나가다가 겉옷을 벗어던지며 부르니 농기구를 불살라 소 한 겨리를 잡아 삶아서 백성에게 주어 먹이고 엘리야를 따랐다(왕상 19:16-21).
그는 자비(왕하 2:21)와 청렴(왕하 5장)과 관용(왕하 5:19)을 갖춘 인물이다. 불굴의 신앙의 소유자이다(왕상 19:21). 민첩한 행동가이다(왕하 2:12-18). 정신력의 소유자(왕하 2:19)이고, 담대한 용기의 소유자(왕하 3)이며, 심오한 동정심의 소유자(왕하 4:1-7)이다.
무엇보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었다(왕하 4:8-37). 또 기꺼이 도움을 주는 자요(왕하 4:38-41), 명석한 지혜의 소유자요(왕하 5:1-19), 힘과 박력을 소유한 자요(왕하 6:1-7), 축복을 받을만한 사람(왕하 4:42-44)입니다. 비밀을 알았던 사람이다(왕하 6:8-23). 뛰어난 통찰력의 사람이다(왕하 6:24, 33:7). 분명한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다(왕하 8:1-6). 눈물과 슬픔의 소유자이다(왕하 8:7-15).
엘리사는 끈질긴 추종으로 영감을 받기까지 놓치지 않고 엘리야를 열심히 따라다녀 갑절의 영감을 받았다. 엘리야에게서 떨어진 겉옷으로 요단 강물을 쳐서 갈라지게 하고 건너왔다(왕하 2:13-14). 우리도 세상물을 가르고 나아가야 하겠다.
불량한 물에 소금을 쳐서 좋은 음료수를 만들었다(왕하 2:20). 먹을 수도 없고 식물이 자랄 수도 없는 썩은 물이었다. 그러나 소금으로 그 물을 달게 했다. 벧엘로 가는 길에서 아이들이 대머리라고 조롱하매 야웨의 이름으로 저주하여 암곰 두 마리가 수풀 가운데서 나와 42명의 아이들을 찢게하였다(왕하 2:23-24). 하나님의 사자를 조롱했으니 하나님을 모독하는 배교자로서 죽어 마땅한 자들이다. 하나님의 사자의 권위를 도전해서는 안 된다.
이스라엘 유대 왕과 에돔 왕으로 더불어 모압 왕과 싸울 때 물이 없어 고생하매 물을 내어 그 지경에 가득하게 하였습니다(왕하 3:20). 선지자의 생도의 아내에게 기름을 만들어 주어 채무를 갚게 하였습니다(왕하 4:7). 수넴 여인에게 아들을 낳게 하고 그 아이가 죽을 것을 다시 살렸다(왕하 4:17, 35). 국솥의 독을 제하고(왕하 4:41), 바알살리사에서 보리떡 20개로 100명을 먹이고 남는 기적도 행하였습니다(왕하 4:40~44).
나아만의 문둥병을 고쳐주고(왕하 5:41, 눅 4:27), 자기 종 ‘게하시’에게 문둥병이 발하게 하고(왕하 5:27), 물에 빠진 도끼를 떠오르게 하고(왕하 6:6), 자기 사환의 눈을 떠서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호위한 것을 보여주고(왕하 6:17), 아람 군사의 눈을 어둡게 하여 사마리아로 인도하고 그 눈을 다시 밝게 하여 사마리아성에 있는 것을 보게 하였다(왕하 6:18-20).
심지어 엘리사가 죽은 다음 해 봄에 어떤 사람이 죽은 시체를 엘리사의 무덤에 던져 놓으매 그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자 다시 살아나기도 했다(왕하 13:20-21). 엘리사는 엘리야의 갑절의 능력을 받아 수많은 기적을 일으킨 선지자가 되었다.
6. 엘리사를 뒤 이은 제자들
왕하 2:1-6절 사건은 엘리야 선지자가 이제 곧 하나님께로부터 부름을 받아 하늘로 올리움을 받으려 할 때의 일이다. 그때 엘리야 선지자가 자기 후계자가 될 엘리사와 함께 길갈에서 출발하여 벧엘을 거쳐 여리고로 가는 장면이 여기서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거기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을 만나게 된다. 이것은 문자적으로 번역한다면 선지자의 아들들이란 말이 되는데, 곧 선지자의 제자들이란 뜻이다.
이 제자들은 나중에 7절에 보면 여리고의 경우 50명이나 모여 있었고, 4장 이하에 보면 단체생활까지 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들은 이때 선지학교, 오늘날로 치자면 신학교를 이미 형성하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그것도 한 군데도 아니고 세 곳에 일종의 분교들까지 세워진 상당한 규모의 선지학교였다. 이 선지학교들은 엘리야 선지자가 세운 것이었고, 이제 곧 엘리사 선지자가 이어받아 운영하게 될 학교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엘리야 선지자는 어떤 동기로 이 선지학교를 세우게 된 것일까? 그것도 한 군데도 아니고, 그 별로 크지도 않은 땅에 세 군데에서나 말이다. 오늘 같으면 그야말로 ‘신학교 난립’이란 비난 듣기 딱 좋을만한 일인데, 왜 엘리야는 그렇게 좁은 지역에 여러 선지학교들을 세웠을까? 우리는 엘리야 선지자가 활동하던 당시의 북왕조 이스라엘의 영적 상황을 비추어 볼 때 그 대답을 충분히 찾을 수 있다. 이스라엘은 영적으로 최악의 길을 치닫고 있었다. 아합 왕은 우상 숭배자인 이방 여인 이세벨을 아내로 맞아들였다.
그러지 않아도 하나님과 금송아지 우상을 함께 섬기는 혼합종교로 타락해 있던 북왕조 이스라엘은 그 이세벨이 들여온 바알과 아세라 우상숭배로 말미암아 설상가상이 되었다. 그런 와중에서 엘리야 선지자는 저 유명한 ‘갈멜산의 제단’을 통하여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살아 계신 참 신이심을 증거해 보이고, 바알과 아세라 우상 선지자들을 진멸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모든 것이 순탄치는 못했습니다. 이세벨은 더욱 악독하게 나왔고 엘리야는 목숨의 위협을 느껴 도망치게 되었다. 그런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는 호렙산에서 세미한 소리로 나타나셔서 그를 격려하시고 끝까지 진리와 사명을 위해 싸울 것을 명하셨다. 엘리야는 바로 그 직후에 엘리사를 만나 그를 제자로 삼게 된다.
이 본문에 등장하는 선지학교들은 바로 이때를 즈음해서 설립된 것으로 짐작된다. 갈멜산 사건이 있었던 당시에 오바댜란 숨은 성도가 엘리야 선지자에게 나타나서 자기가 하나님의 선지자 ‘일백 인’을 몰래 숨겨 먹여 살려 왔다고 했는데, 어쩌면 그들이 이 선지학교의 제1기 생도들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여튼 엘리야 선지자는 그런 이방 우상 종교, 혹은 금송아지 숭배의 혼합 종교들과 본격적으로 대항하여 싸우기 위해서는 갈멜산에서 했던 것처럼 자기 혼자서만 해서는 안 되고, 이제 이 진리 사수 투쟁에 뜻과 힘을 같이 할 참된 선지자들을 많이 키워내기 위해서는 선지학교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이전에 사무엘 선지자가 자주 사역했던 길갈, 당시 금송아지 숭배의 중심지인 벧엘, 예루살렘에 가까운 요지인 여리고 등을 골라서 선지학교들을 세웠다. 본문의 말씀을 보면 이곳 선지학교에 있던 선지생도들은 모두가 하나 같이 이제 곧 엘리야 선지자가 승천하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고 하였다. 이것은 그들 모두가 하나님께로부터 계시를 받을 수 있는 영적 수준 - 엘리야나 엘리사에는 미치지 못하였지만 그래도 상당 수준에 도달해 있었음을 보여 준다. 즉 엘리야의 선지학교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참된 진리를 선포하신다. 지금도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그루터기와 같은 하나님의 종들이 많이 있음을 감사하며 우리 자신도 그 중에 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