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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이 들려주는 선비들의 풍류
탄금도(彈琴圖)
옛 선비들은 자연과 더불어 풍류를 즐기는 것을 선비들의 교양처럼 여겼으며
또한 그것을 인격 수양의 중요한 방편으로 여기기도 했다. 풍류에는 여러 사람과 더불어
즐기는 것이 있고, 다른 사람들의 간섭을 받지 않는 호젓한 장소에서 혼자 즐기는 풍류가 있다.
그런데 혼자 즐기는 풍수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거문고였다. 거문고가 詩, 酒와 함께
풍류생활의 필수적인 요소로 사랑을 받았던 것은 그것이 선비들에게 있어
단순한 악기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문고를 琴이라고 하는 것은 군자가 바른 것을 지켜서 스스로 禁한다는데서 나온 말이다.
즉 거문고 소리가 울려 퍼지면 바른 뜻을 감동시키기 때문에 선한 마음이 스스로 우러나서
사악한 마음이 생기는 것을 막아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현 군자들은 거문고를 타면서
항상 조심하고 스스로 사악한 것을 금할 것을 조절하였다고 한다. -風俗通義-
일찌기 공자가 사양이라는 사람에게 거문고를 배웠는데 거문고를 배우는 것은
기술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배우는 것이라고 말한 바가 있다.-(史記 孔子世家)-
또 음악에 대한 태도를 말할 때 "군자와 소인이 다른 것은 군자는 악도를 얻으려는 것이고
소인은 그 악음을 욕심내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禮記-
공자는 이어 음악은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했다. 즉 음악을 이해하고 있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또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는 것이다. -論語 壅也-
이와같이 옛 성현들이 거문고를 즐기는 뜻은 단순한 기예의 연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도를 배우고 터득하는데 있었다. 고려나 조선의 선비 문학 작품에 나오는 거문고와 함께
풍류도 항상 공자의 악도樂道와 장자의 무현금無絃琴의 세계로 향하고 있었으며 나아가
백아伯牙와 종자기鍾子期 사이 같은 벗을 구하는 경지에까지 이르고 있었다.
이경윤(1545~1611)-[월하탄금도月下彈琴圖] :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악도(樂道)와 무현금(無絃琴)의 풍류세계를 그린 그림
낙파 이경윤駱坡 李慶胤의 '산수인물화첩'에 실려 있는 그림 중 한폭으로, 인물을 중심으로 한
소경산수小景山水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이 그림의 초점은 거문고를 타는 선비에게 주어져 있고
주변의 바위와 나무 그리고 달은 배경 구실을 하고 있다. 화면은 간략하고 단순한 구도로
되어 있지만 침묵의 거문고 소리가 들리는 듯 시적 분위기로 가득 차 있다.
이 그림은 무현금無絃琴으로 통칭된다.
대부분의 선비들은 글을 통하여 두보나 도연명, 소동파의 풍류를 익히 알고 있던 터라
자신들의 풍류를 그들과 함께 같은 유로 놓고 싶어 했고, 그런 마음에서 무현금을 타면서 스스로
취했었다. 선비들의 이러한 취향은 시, 거문고, 술을 좋아하여 삼혹호三酷好 선생이라 불렸던
고려의 이규보의 글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옛말에 이르기를 거문고는 악의 으뜸이라, 군자가 항상 사용하여 몸에서 떠나지 않는다 하였다.
나는 군자가 아니지만 오히려 거문고 하나를 간직하고 줄도 갖추지 않고서 어루만지며 즐겼더니,
어떤 손님이 이것을 보고 웃고는 이어서 다시 줄을 갖추어 주었다. 나는 사양하지 않고 받아서
길게 혹은 짧게 타며 마음대로 가지고 놀았다. 옛날 진나라 도연명은 줄이 없는 거문고를 두어
그에 의해 뜻을 밝힐 뿐이었는데, 나는 이 구구한 거문고를 가지고 그 소리를 들으려 하니
어찌 반드시 옛 사람을 본받아야 하겠는가?" -東國李相國集(고려 때 문신인 이규보의 문집)-
백은배(1820~1900?)-[월야탄금도月夜彈琴圖]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우측 상단에 달이 빗기어 있다. 굴곡이 많은 나무는 지나온 세월의 풍상에 지쳐
곧 쓰러질것만 같아 종자 아이도 옆에 없이 홀로 거문고를 뜯는 선비의 쓸쓸한 모습과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 멋보다는 우울함이 감돈다.
小塘 이재관李在寬(1783~1837)-[송하탄금松下彈琴] :개인 소장
고즈넉한 소나무 숲. 무릎 위에 놓인 현악기에 두 팔 올려놓은 처사가
숲 사이로 흐르는 물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금시琴詩 -蘇東坡-
약언금상유금성 若言琴上有琴聲 만약 거문고에서 거문고 소리가 나는 거라면
방재갑중하불명 放在匣中何不鳴 갑속에 들어가면 어찌 거문고가 울지 않는가
약언성재지두상 若言聲在指頭上 만약 거문고 소리가 손가락 끝에서 나는 거라면
하불우군지상청 何不于君指上聽 어찌 그대 손가락에서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蕙園 申潤福(1758~?)- [탄금彈琴]: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왼쪽 여인이 거문고의 뒤편 위쪽에 있는 줄감개를 돌리며 줄고르기를 하고 있다.
(註) 거문고의 줄감개(진괘)는 시계 방향으로 돌리면 음이 올라가고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리면 음이 낮아져 간단한 조율을 하는데 사용한다.
독좌유황리 獨坐幽篁裏 홀로 대숲 깊숙이 앉아 거문고 타니
탄금복장소 彈琴復長嘯 그 소리 긴 휘파람 소리 내어 되 울리고
심림인불지 深林人不知 심림에 묻혀 있어 뉘 알랴만
명월래상조 明月來相照 명월이 찾아와 서로반기네
- 부채 오른쪽의 제시는 단원이 당나라 왕유(王維)의 시 죽리관(竹裏館)을 옮겨 적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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檀園 金弘道(1745~1816) -[죽리탄금도竹裏彈琴圖]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대숲 속에서 홀로 거문고를 연주하는 선비가 앉아 있다. 선비는 홀로 앉히고
뒤쪽 저만치에 차 끓이는 동자를 포치해 대숲이란 연주무대를 입체적으로 안배했다.
작은 부채 속 깊숙한 공간설정이며 댓잎의 농담 및 시원스러운 여백 처리에서
예사롭지 않은 구성력이 엿보이는 그림이다.
김득신- [사대부행락도士大夫行樂圖].1815 :호암미술관 소장
긍재兢齋 김득신金得臣(1754~1822)의 풍속팔곡병(風俗八曲屛) 제1면 그림.
작자미상- [탄금풍류彈琴風流]
사계절의 풍속을 2폭씩 8폭으로 구성한 작자미상의 '四季風俗圖屛' 중
제4폭의 그림으로, 어느 여름 날 선비들과 기생들의 풍류가 담겨 있다.
조선 후기에 보이는 거문고 풍류 그림은 대체적으로 남자들이
거문고를 연주하는데, 이 그림은 기녀가 거문고를 탄다.
김홍도-[후원유연後苑遊宴]: 프랑스 기메박물관 소장
사대부가 뒤뜰에서 선비들과 여인들이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다.
거문고를 타는 사람, 대금을 부는 사람, 그것을 진지하게 감상하고 있는 여인들, 그리고
보료를 깔고 안침에 비스듬이 누워 음악을 감상하고 있는 주인 양반의 모습에서
양반들의 유흥과 아취가 느껴진다. 대나무로 만든 나무기둥에 등나무를 올린 취병(翠屛)에
후원으로 통하는 문이 있는데, 당시 사대부가의 후원모습이라 생각된다.
* 취병(翠屛)-'비취색 병풍'을 뜻하는 취병은 살아 있는 나무를 이용해 만드는 '생生울타리로
창덕궁 후원 같은 궁궐의 핵심 지역과 일부 상류층의 정원에만 사용된 친환경 담장이다.
신윤복(1758~?)- [상춘야흥賞春野興]:간송미술관 소장
당산관 이상의 양반들이 기생과 전문악사들의 연주를 감상하며
후원에서 풍류를 즐기고 있다. 악사들이 대금과 해금 거문고를 연주한다.
김홍도- 群賢圖 : 개인 소장
풍류를 즐기고 있는 여러 현인(賢人)들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동산에서 시를 읽고,
악기를 연주하고, 자연을 감상하며 여유를 누리고 있는 현인들이 다양한 자세로 앉아 있다.
주위에 책과 술상, 붓이 꽂힌 필통과 벼루 등에서 이 모임의 성격을 알 수 있다.
인물들은 감필법을 구사하여 의습선과 얼굴이 간략한 필선으로 그려져 있다. 인물을 횡으로
분산시켜 배치하여 풍류를 즐기는 현인들의 여유로운 아취가 느껴지도록 구성하였다.
신윤복- [후원탄금도後苑彈琴圖]
사대부가의 후원. 거문고를 연주하고 있는 주인과 쓰개머리의 젊은 여인이
아주 가까이 마주 앉아 서로의 눈빛을 바라보고 있다. 악기를 보지않고 여인을 바라보며
탄주하는 남자의 기녀를 향한 마음이 표정으로 담긴다. 이 그림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옆에 그린 괴석, 파초 그리고 구불텅하게 잘 생긴 소나무의 조화다.
성협- [탄금彈琴]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거문고를 타며 벗과 함께 풍류를 즐기는 선비의 모습이 평화롭다.
성협의 풍속화첩 14폭에 담긴 작품 중 하나로 선비의 줄을 짚는 왼손의 모습이
거문고를 실제 연주하는 손가락모양과 흡사하여 성협 자신이 실제로
거문고 연주에 어느정도 소양이 있지 않았나 짐작해 본다.
"한가롭고 평안하게 요금(瑤琴-아름다운 거문고)의 가락이 더디며
돌아가는 구름은 물을 불리나 세 명은 함께 어긋나니
세상의 아름다운 우리들의 이야기를 알아 줄 이 적지만
밝은 달과 맑은 바람 이것이 우리를 알아주는구나."
가야금 (伽倻琴)
가야금에는 '정악正樂가야금과 '산조散調가야금'이 있다. 법금法琴 또는 풍류風流가야금이라고도
하는 정악가야금은 신라 때부터 있던 것이고, 산조가야금은 조선 후기에 개량된 것이다.
이 둘은 구조는 거의 같지만 크기나 음역, 연주법 등이 조금 다르다. 정악가야금과 산조가야금을
구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바닥에 닿는 쪽 끝부분을 살피는 것이다.
법금은 끝부분이 '양이두羊耳頭'라 하여 양의 뿔처럼 좌우로 둥글게 튀어 나와 있고,
산조가야금은 '봉미鳳尾'라 하여 새의 꼬리같이 밋밋하게 되어 있다.
몸통을 보고도 알 수 있는데, 정악가야금은 통나무(큰 오동나무)를 파낸 것이고, 산조가야금은
앞면(오동나무)과 뒷면(밤나무)을 붙여서 상자처럼 만든 몸통에 울림 구멍이 나 있다.
羊耳頭가 있는 정악가야금
蕙園 申潤福(1758~?)- [청금상련聽琴償蓮] :간송미술관 소장
오른쪽 위에 제사(題辭)가 있다. '座上客常滿,酒中酒不空.'
"좌상에는 손님이 항상 가득 차고, 술단지에는 술이 비지 않는다"
('酒中酒不空'에서 앞의 '酒'자는 혜원이 잘못 쓴 것으로 '樽(준)'자가 되어야 한다)
후원에 연당(蓮塘)이 있고, 고목나무가 그늘을 드리우며, 잔디가 깔린 크나큰 저택을 가진 주인이,
연꽃이 필무렵에 맘에 맞는 친구들을 청하여, 연꽃감상의 즐거움을 함께하는 모양이다.
연당을 거치는 선들바람이 청향(淸香)을 실어오고. 가야금의 청아한 선율이 이 위에 어리는데.
의관을 파탈할 정도로 자유롭게 연꽃과 여인을 즐기고 있다. 이렇게 격의없이 놀수 있는 사이라면
어지간히 무던한 사이일 것이고. 의복 차림으로 보면 벌써 당상(堂上)의 품계를 넘어 있어서.
나이도 그리 젊지는 않을 듯 하니 정말 허물없는 오랜 친구들인 모양이다.
김희겸- [석천 한유도石泉 閑遊圖]: 담양田氏 보령공파 장충영각 소장
석천 전일상(石泉 田日祥 1700~1753)이 전라우수사를 지내던 1748년(영조24) 6월 어느 날, 여가 생활을 즐기던 한 장면을 당대 최고의 궁중 화원이던 불염재 김희겸(不染齋 金喜謙)이 사실적 초상화 기법으로 그린 작품이다. 석천의 주변에 무반사호(武班四好- 매(鷹), 칼(劍), 말(馬),여인(色))는 물론이고 문방사우(文房四友)까지 갖추어진 것으로 보아 그가 문무를 겸한 인물임을 알 수 있다. 기녀가 연주하는 양이두(羊耳頭)가 있는 가야금은 신라 토우나 토기, 악학궤범, 나라(奈良) 정창원(正倉院)에 있는 '시라기고도(新羅琴)' 모습과 일치하는 정악가야금이다.
가야금을 들고 있는 新羅土偶 新羅土器(국보195호)에 있는 新羅琴
奈良의 正倉院(일본 왕실유물소장고)에 있는 新羅琴(809~823)
삼현육각(三絃六角)
삼현육각은 악기편성의 명칭이며, 또한 삼현육각 편성으로 연주하는 음악을 뜻하기도 한다.
삼현육각의 기본 악기 편성법은 단원(檀園)과 혜원(蕙園)의 풍속도에서 보는 것처럼
해금1, 피리 2, 대금 1,장구 1,북 1로 편성되며, 이는 <대풍류> 편성과 같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 악기의 종류와
편성인원에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삼현육각>과 <대풍류>의 차이점은 춤과 관련지을 때는 <삼현육각>이 되고,
풍류 즉 감상의 성격을 띨 때는 <대풍류>가 된다. 즉 감상용으로 연주하는 <삼현육각>은 <대풍류>로 따로 분류하고,
행악(行樂)이나 춤반주음악이나 잔치상 받을 때의 거상악(擧床樂)으로 쓰이는 음악을 <삼현육각>이라고 한다.
삼현육각은 소편성의 합주양식으로 궁중과 민간의 각종 의식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던 연주양식이다.
지금은 각종 전통의식이 사라졌기 때문에 삼현육각의 실용도도 그만큼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큰 굿판이나 탈춤공연, 승무·살풀이·승전무·검무 등의 춤 반주음악으로 자주 연주되고 있다.
김홍도- [무동舞童]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지금 저 사람들이 한창 질펀하게 놀고 있는 가락은 어떤 소리, 무슨 장단일까?
삼현육각의 여섯 악기가 한데 어울려 한바탕 흥겨운 가락을 몰고 가니, 잘생긴 무동은 덩실덩실
소매를 펄럭이며 걸지게도 춤을 춘다. 화가는 아무도 보고 듣는 이 없이 악공과 무동만을 동그랗게 그렸다.
화가는 저들이 누구를 위해 연주하는가에는 관심이 없다. 악기를 잡은 여섯 사람과
춤추는 아이, 바로 그들의 음악과 춤만이 이 작품의 진정한 주제인 것이다.
신윤복- [납량만흥納凉漫興] :간송미술관 소장
세 명의 선비가 악공들을 대동하고 산으로 피서가서 풍류를 즐기고 있다.
해금, 피리(두 명), 장구의 가락이 메아리치자 흥에 겨운 남녀가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다. (삼현육각 편성에서 대금과 북이 빠졌다.)
신윤복- [쌍검대무雙劍對舞]:간송미술관 소장
세력 있는 귀족이 장악원掌樂院의 악공樂工들과 가무歌舞에 능한 기생을 불러다가
즐기고 있다. 악공과 기생의 수로 보아 이 놀이가 보통 규모는 아닌데, 이를 즐기는 사람들은
오직 주인대감과 그의 자제낭관子弟廊官인 듯하니, 일가의 세도가 어지간한 모양이다.
혹시 혜원 신윤복을 키워준 어느 풍류 재상집에서의 한 때인지도 모르겠다.
검무기생의 날렵한 동작에서 오는 율동감은, 관객들의 도취된 몸짓과
악공들의 신바람 나는 연주에 혼연일치를 보여 아연 활기를 띈다.
김홍도-'평안감사향연도' 중 [부벽루연회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평안도관찰사부임축하도]는 [평양감사향연도]라 불리기도 하는데, 조선시대
평안도 관찰사의 부임을 축하하는 연회를 그린 3점으로,
<월야선유도><부벽루연회도><연광정연회도>로 되어 있다.
[부벽루연회도浮碧樓宴會圖] (부분)
대동강 부벽루에서 평안감사 향연회가 열리고 있다. 평양성 앞 대동강이 야단법석이다.
무희들이 삼현육각의 반주로 '무고(舞鼓)'와 검무(劍舞)를 추고 있다. 여섯 명의 악공들 옆에,
박(拍)을 든 악공이 서서 음악의 시작과 끝을 지휘 할 뿐만 아니라,
매 장단에 한 번씩 박을 쳐서 마루를 구분해 주고 있다.
취적도(吹笛圖)
산조대금(上) 정악대금(下)
예로부터 우리 음악에 쓰이는 악기들 중 가로 부는 악기를 가리켜 '적(笛)'이라고 쓰고
우리말로 '저'라고 부른다. 또 가로로 부는 악기 중 가장 큰 대금은 '큰저' 또는 '젓대'라고도 말한다.
대금은 살이 두껍고 단단하며, 양쪽 줄기에 흠이 깊게 팬 병든 대나무인
쌍골죽(雙骨竹)으로 만드는 것이 가장 좋다.
대금에는 부는 구멍인 취구(吹口)와 갈대청을 발라 맑은 떨림소리를 내게 한 청공(淸孔) 하나,
손가락을 막고 떼면서 음정을 변화시키는 지공(指孔) 여섯 그리고
높은 음을 조절할 때 쓰는 칠성공(七星孔)이 있다.
진재해(1691~1769)- [월하취적도月下吹笛圖] :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
달빛 아래 바위위에 앉아 소금과 비슷한 악기를 부는 선비와
눈을 감고 조용히 연주를 감상하는 선비, 그리고 찻잔을 받들고 오는 동자.
이경윤- [일적횡취도(一笛橫吹圖]
뾰족하게 솟은 산과 넘실대는 저 강물을 莪莪而洋洋而
어찌 꼭 거문고로 타야하리요. 何必絃之
그저 젓대 하나 가로 대고 부는데도 一笛橫吹
뾰족뾰족 넘실넘실 흥이 넘치는 걸. 莪莪而洋洋而
** 춘추시대 거문고의 명인 백아(伯牙)가 높은 산에 뜻을 두고 연주하면,
친구인 종자기(鍾子期)가 "멋지다. 마치 태산처럼 높기도 하구나(善哉莪莪兮若泰山)"라고 평하였고
흐르는 물에 뜻을 두고 연주하면, "멋지구나, 마치 강하처럼 넘실대는구나(洋洋兮若江河)"라고
평했다는 고사가 있다. <列子 湯問>**
이경윤- [기우취적도騎牛吹笛圖]: 간송미술관 소장
아름드리 고목이 있는 언덕, 소 두 마리가 서로를 흘깃 바라본다.
몸집이 크고 뿔이 초승달처럼 휜 물소이다.
소 등위에 올라탄 피리부는 소년은 소에 비해 지나치게 작은 체구를 지녔다.
두 눈을 껌뻑이는 소와 천진난만한 소년! 순수한 동심의 표상이며
모진 속세를 등지고 자연에 귀의하는 목가적 삶 그 자체이다.
권상로- [기우취적도騎牛吹笛圖] : 직지성보박물관 소장
직지성보박물관은 퇴경당 권상로(退耕堂 權相老 1879년∼1965년)가 그린
기우취적도(騎牛吹笛圖)와 고승탄금도(高僧彈琴圖)를 소장하고 있다. 이 두 폭의 그림은
직지사 조실스님이거처하던 벽안당(碧眼堂) 다락 여닫이문 양쪽에 붙어 있던 것이다.
퇴경당이 그린 기우취적도는 소를 타고 귀가하는 목동을 주제로 한 선묵화(禪墨畵)이다.
일반적으로 기우취적도는 소의 등에 앉은 목동이 피리나 대금을 불고, 소는
길을 따라 앞으로 걸어나오는 형식이다. 그러나 퇴경당은 소의 뒷모습과
소 등에 걸터앉아 대금을 부는 목동의 뒤 태를 비스듬히 비껴 그렸다.
오른쪽에는 이 그림과 짝을 이루는 보명대사의 계송이 실려 있다.
'푸른 버드나무 그늘 옛 시냇가에/ 놓고 거둠 이제는 자연스러워/
해 저무는 푸른 하늘, 향기로운 풀밭에서/ 목동은 돌아가네, 고삐도 없이'
(普明禪師頌曰 綠楊陰下古溪邊 放去收來得自然 日暮碧雲芳草地 牧童歸去不須牽 退耕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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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우취적은 자연과 하나 된 목가적인 서정을 표현한 화제(畵題)로 일반회화에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퇴경당의 기우취적은 선의 궁극적인 이상과 깨달음을 형상화한
십우도(十牛圖)의 한 장면으로 해석된다.
김시(1524~1593)- [기우취적騎牛吹笛]
양송당(養松堂) 김시(金禔)는 조선시대 화인 중에서 후기 심사정과 함께
비운의 화가로 대표되는 분이다. 사람들은 최립崔笠의 문장과 한호韓濠의 글씨와
그의 그림을 일컬어 삼절三絶이라 하였다. 당시에는 사대부들이 자기 수련과
여가의 차원에서 그림을 그리게 되는데, 김시가 비운의 화가가 된 것은
중종 때의 문신인 아버지 金安老(1481~1537)와 관련이 있다.
정선(1676~1759)- [낙조장유落照藏柳]: 독일 聖오틸리엔수도원 소장
불교의 견성 단계를 소와 목동의 관계로 나타낸 십우도(十牛圖) 중
6번째 내용인 기우귀가(騎牛歸家)를 그린 것으로 생각된다.
겸재謙齋 정선鄭敾은 여행을 즐겨 금강산 등 전국 명승을 찾아다니면서
그림을 그렸는데, 玄齋 沈師正, 觀我齋 조영석과 함께 '조선의 삼재三齋'라 하였다.
이경윤- [선상취소도船上吹簫圖]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갈대가 자라는 강가에 배를 대고 피리를 불고 있다. 고기잡이 에는 관심이 없는
은일자의 심정을 나타내고 있다. 바람에 일렁이는 갈대 소리와 피리 소리가
어울리는 청각적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는 듯하다.
유춘有春 이인문李寅文(1745~1821)- [목양취소도牧羊吹簫圖]:간송미술관 소장 단소(短簫)
양 치는 목동이 바위 위에 맨발로 앉아 단소(短簫)를 불고 있는 정경이 평화롭다.
단소는 퉁소보다 조금 작으며 세로로 잡고 부는 국악기이다. 오죽(烏竹)을 사용하여
모든 마디를 관통시키고 40cm 정도로 자른다. 음역은 2옥타브가 넘고 음색이 청아하다.
초정楚亭 박제가 朴齊家(1750~1815)- [목우도牧牛圖]: 朴漢洙 소장
이 牧牛圖는 비록 小品이기는 하지만, 단원의 佳作을 방불케 하는 作風을 보였을뿐만 아니라
선비풍(士人趣向)의 문기文氣가 곁들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화제畵題를 붙였다.
청장운 목아도기우 시천연화의 약기요정중 시속목아 불효사
靑莊云 牧兒倒騎牛 是天然畵意 若騎腰正中 是俗牧兒 不曉事
靑莊館 주인이 말하길 "목아가 거꾸로 소를 타는 것이 바로 천연天然의 화의畵意이다.
만약 허리 가운데 탓다면 이는 속된 목아로서 멋을 모르는 것이다."
김홍도-[선동취적도仙童吹笛圖]: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퉁소
김홍도가 그리면 무엇이든 조선 그림이 된다. 신선은 원래 중국인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신선도8첩병풍>에 나오는 신선들은 모두 조선 사람의 눈매와 표정을 하고 있다.
<선동취적도>의 퉁소 부는 소년은 넓적한 얼굴에 시원한 이마, 총기 있어 보이는 눈매가 영락 없는
조선 소년이다. 더구나 옷 주름의 출렁이는 윤곽선은 소년이 연주하는 우리 옛 가락 농현弄絃의
아름다움, 그 능청거림을 반영한 것이다. 첫머리의 강세는 마치 옛 음악의 합장단合長短처럼
강단이 있고, 쭉 잡아 뺀 긴 선에 이어 굵고 가늘게 너울거리는 선의 움직임이
유장한 우리 가락 그대로인 것이다. -오주석의 "그림으로 본 김홍도의 삶과 예술"에서-
상단 좌우에 표암(강세황의 號)과 사능(김홍도의 字)의 화제의 뜻은 다음과 같다.
鑿綠玉作九窮 工亦巧矣 - 푸른 옥을 뚫어 아홉 구멍을 만드니 솜씨 또한 훌륭하다.
吹之者 人謂子晉印則曰否 - 피리를 부는 이를 사람들은 자진이라 하나 나는 아니라고 말한다.
彼翩翩者羽何 以爲牲牲之角也 - 저 펄럭이는 것은 날개인가, 나는 뿔이라고 생각한다. (豹巖評)
李君用訥愛畵 入髓 - 이용눌은 그림을 사랑하여 골수에 미쳐 있다.
我愛用訥如用訥之愛畵寫此持贈 -내가 용눌을 사랑하는 것이 마치 용눌이
그림을 사랑하는 것과 같아서 이것을 그려 준다.
精到之意自在筆外 世如有子雲 可以之子雲 - 정묘한 뜻은 저절로 필(筆) 이상에 있으니
만약 세상에 자운이 있다면, 자운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기해 음력 시월 士能)
김홍도- [仙童吹笛圖]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퉁소 부는 선동의 자세가 '8첩병풍'의 선동과 같으나 사슴이 생략되었다.
우측 상단에 '사능사(士能寫)라 묵서(墨書)하였고,
"백문방인(白文方印)의 홍도(弘道)와 주문방인(朱文方印)의 사능(士能)",
두 개의 도장이 찍혀 있다.
* 전각의 새김질은 두 가지로, 흰 글씨의 오목새김(白文)과 붉은 글씨의 돋을새김(朱文)이다.
(白文方印-도장의 글자 부분을 음각한 것으로 찍으면 붉은 바탕에 자획이 희게 나타나는 네모난 도장)
도장 두 개가 이용될 때에 白文方印을 위쪽에 朱文方印을 아래쪽에 찍는 것이 일반적이다.
당비파(唐琵琶)
당비파 향비파
굽은 목(曲頸), 4현(四絃) 곧은 목(直頸), 5현(四絃)
당비파는 통일신라 전후한 시기에 유입된 악기로 보고 있다. 고려시대를 통하여
주로 당악唐樂에만 사용되어 왔으나, 조선 이후는 향악곡鄕樂曲도 함께 연주하였다.
이 악기는 한 때 매우 성행하여 조선 성종 때는 영인怜人은 물론 사서士庶에 이르기까지
음악을 배우기 위한 기초적 악기로 연주하였으며, 나라에서 악공樂工을
취재取才할 때도 이 악기로 과시科試하였다고 한다.
이경윤- [주상탄금도舟上彈琴圖]. 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
세상의 번뇌와 시름을 모두 잊고자 강가에 배를 띄운 풍류가객의 표상이다.
고즈넉하게 달을 감상하거나 배 위에서 여유롭게 연주하는 화중인물에서
탈속적 삶을 꿈꾸는 선비들의 염원을 읽을 수 있다.
이경윤- [주상탄금도舟上彈琴圖]
김홍도- [포의풍류도布衣風流圖] : 개인 소장
<포의풍류도>에는 "종이 창에 흙벽 바르고 이 몸 다할 때까지 벼슬 없이 시가나 읊조리련다."
(紙窓土壁 終身布衣 嘯詠其中)는 화제가 적혀 있다. 내용이 자전적이어서.
정조대왕의 사후 단원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고 생각되는 작품이다. 반듯한 얼굴, 총명한 눈빛,
당비파를 연주하는 앞자리에 생황이 놓여 있어 음악을 극히 애호했다던 일상이 엿보인다.
서책과 두루마리, 완상용 자기와 청동기, 술 든 호리병과 시詩 쓸 파초잎 등이 화가의
인물 됨됨이를 말해 준다. 구석의 칼은 선비의 정기正氣를 상징하는 것이다. 사방관을 썼으나
드러난 맨발이 초탈한 심사를 엿보게 하니, 단번에 쓱쓱 그어댄 소탈한 필선과 꼭 닮았다. 하지만
이 모든 선들은 고도로 훈련된 서예적인 필선이다. 현대 화가들이 넘보지 못하는
단원 예술의 극한이 여기에 있다. 그림은 인격의 표출이다. -오주석-
취생도(吹笙圖)
생황(笙簧)
아악에 쓰이는 관악기. 이 악기에 김을 불어 넣는 통은 옛날에는 박통(匏)을 썼으나
뒤에 나무통으로 바꾸어 쓰게 되었으며, 통의 위쪽 둘레에 구멍을 뚫고 거기에
죽관(竹管)을 돌려 꽂았다. 생황은 국악기 중에서 유일하게 화음악기이며,
음색은 하모니카의 화음 소리처럼 맑고 부드럽다.
소당 이재관- [취황吹簧]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小塘 李在寬(1783~1837)- [선동취생도仙童吹笙圖]: 개인 소장
온 누리가 은백색 달빛 아래 잠들어 버리고 계곡을 타고 쏟아지는 물소리와
선동이 불고 있는 생황의 선율에 조용히 심취하고 있는 신선의 자태는
그야말로 선경의 오묘한 조화일치이다. 화면 오른편을 거의 즉흥적으로 여백 처리했다.
그러한 것은 화첩그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즉흥 처리이다.
김홍도- [선인송하취생도仙人松下吹笙圖]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낙락장송으로 대담하게 화면을 이등분 했는데, 아래쪽 뿌리와 위쪽 잔가지를
과감하게 화면 밖으로 밀어내서 보는 이가 순간 그림 속으로 빨려들어온 그낌을 준다.
소나무 껍질의 질감은 긴 용수철을 잡아당긴 듯한 탄력 있는 연속 곡선으로 묘사해
탈속한 분위기를 냈다.
"들쑥날쑥한 대나무 관/ 봉황 날개를 펼친 듯한데
달빛 어린 집에 들리는 소리/ 용의 울음보다 처절하네." 라는 題詩처럼 羽衣 입은 신선이
홀로 쓸쓸이 생황을 분다. 영특한 눈매가 보이게끔 생황을 약간 기울여 그렸는데,
옷주름 선이 빠르고 율동적이어서 그 소리를 눈으로 보는 듯 하다.
신윤복- [주유청강舟遊淸江] :간송미술관 소장
녹음이 우거지고 강심에 훈풍이 일어나자, 몇몇 한량들이 한강에 놀이배를 띄우고
여가를 즐기고 있다. 신록이 그늘진 절벽 밑을 감돌아 나가는 뱃전에서는, 유량한 생황소리와
동랑(洞朗)한 젓대소리가 섞바뀌어 일어나서 강심에 메아리 지고, 일렁이는 잔 물결은
뱃전을 두드리니 여기에 시정(詩情)이 흐르는 사랑이 무르익는다.
"피리 소리는 바람을 타서 아니 들리는데
흰 갈매기가 물결 앞에 날아든다."
김홍도- [청루소일靑樓消日] :간송미술관 소장
탕건을 쓴 남자와 생황을 든 기생이, 어느 연회에 불려 갔다가 귀가하는 기생을 맞이하고 있다.
방안의 남자와 툇마루의 기생은 조금 전까지 생황의 고운 가락에 취해있었으리라.
김홍도- [월하취생도月下吹笙圖] :간송미술관 소장
질그릇 술병과 사기 되사발, 흰 족자 두 개, 벼루와 먹과 바닥에 나뒹구는 붓 두 자루.
어느 화가나 시인의 일상에 틀림 없다. 그런데 그 옆에서 준수한 사내가 파초를 깔고 앉아
시서화(詩書畵)의 정취를 마음껏 농하다가 그만 한 병 술을 다 비운 취기로 인해
북받쳐 오르는 스스로의 심사를 달랠길 없어 달빛 부서지는 방안에서 구슬프게 생황을 불고 있다.
"月堂凄切乘龍吟 달빛어린 방안의 처절한 생황소리 용울음을 이기네"
그림의 제시(題詩)는 [전당시(全唐詩)]에 실린 나얼(9세기 후반)의 생황시(笙篁詩) 중 일부이다.
이 제시의 내용으로 보아, 자신의 참을 수 없는 울분을 표출하고 픈 심정에서 그린 것으로 생각된다.
단원의 스승인 표암 강세황이 전하는 김홍도의 일면을 살펴보자.
"지금 사능(士能-金弘道의 子)의 사람됨이 얼굴이 빼어나게 아름답고 마음이 툭터져 깨끗하니
보는 사람들이 모두 고아하고 탈속하여 거리의 용렬하고 좀스러운 무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성품이 또한 거문고와 피리의 고아한 소리를 좋아하여 꽃피고 달 밝은 밤이면
때때로 한두 곡조를 희롱하며 스스로 즐기었다. 사능은 한편으로 음악에도 통하여
거문고와 피리의 운사(韻事)가 그 오묘한 경지에 이르렀으며, 풍류가 호탕하여 매번 칼을 치며
슬프게 노래하고 싶은 생각이나면 분개하거나 혹 많은 눈물을 흘리며 울기도 하였다.
사능의 마음은 본디 아는 사람만이 아는 것이 있다."
신윤복- [연당蓮塘의 여인],1805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아무리 기세가 대단했던 기생도 나이가 많아지면 이렇게 처량 맞게 되기 마련입니다.
기생이 늙으면 흔히 세 가지가 없어진다고 합니다. 우선 미모가 스러지고, 그 다음에
재물이 바닥나고, 마지막엔 명성까지 흐려진다고들 말하지요. 그래서 찾아 오는 사람이 없어
아주 무료해 가지고, 곰방대도 피워 물었다가 생황도 불었다가 하면서 소일합니다.
저 여인의 두 발 놓임새가 이렇게 헤벌어진 걸 보면, 아마도 전성기가 지난 것 같은데 얼마나
쓸쓸하고 처량맞습니까? 옛 시절이 화려했으면 화려했던 만큼 쓸쓸함도 배가 되었겠죠?
그런데 자세히 보면 화가는 화면 하반부의 연꽃을 애초부터 굉장히 높게 그려서
화면의 반이나 차지하게 그렸어요. -중략- 이것은 그러니까, 화가가
"여인의 눈에, 그 쓸쓸한 눈에 하나 가득 보이는 것은 오직 연꽃뿐이었으려니"
하는 의중을 표현한 것입니다. -오주석의 <한국의 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