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본다. 교육이 없었다면 인간 사회가 어떻게 되었을까? 교육의 중요함과 교육효과에 대한 믿음으로 김유신의 어머니 만명부인은 신라골품제도의 한계 속에서도 긍정적인 기대나 관심이 좋은 영향력을 미친다는 일념으로 김유신을 가르쳤다. 그리하여 삼국을 통일하는 주역으로 키워 가야 출신중 유일하게 죽은 후 신라왕과 동일한 대우를 받게 하였다. 김유신 또한 어머니 말씀 따라 큰 인물이 될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자신의 흐트러진 모습을 발견하고 애마의 목을 자르는 결단을 하였다. 이처럼 교육이란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가 같은 마음이 될 때 교육의 효과는 배가 될 수 있다. 이를 두고 소크라테스는 “산파가 아이를 낳는데 도움을 줄 뿐이지 낳아 줄 수 없다” 고 했다.
조부모는 자식을 키운 경험의 바탕에다 지극한 사랑을 더하여 손주를 교육한다. 교육의 장소는 서당도 아니요 교실도 아닌 밥상머리가 주된 교육장소이다. 장모님은 친손녀 둘 친손자 하나 외손녀 한명을 밥을 손수 지어 먹여 키웠다. 친손녀 둘은 맞벌이 하던 우리 집으로 오셔서 결혼 10년 만에 낳은 외손녀를 돌보아주기로 하면서 전담이 되었다. 친 손주 셋은 학교 다닐 나이였지만 장모님 혼자서 딸네 집에 와서 외손녀를 돌봐 준다고 하기에는 입이 떨어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바쁜 농사철에는 부지깽이도 한 몫 한다는 농촌 사정을 뻔히 알면서 아이들 빨래며 밥이라도 챙겨 줘야하는데 혼자 오지 못하여 친 손주 셋을 함께 데리고 왔다. 아내 생각은 어렵게 얻은 딸을 남의 손에 맡기고 싶지 않았음은 당연한 일이 었다. 어찌되었건 둘 부부만 단촐 하게 살던 집에 삼대에 걸쳐 일곱 식구가 한집에 사는 대가족이 되었다. 아이들 넷을 뒷바라지 한다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다행히 모두들 성격이 까칠하지는 않고 순한 편이었다. 위로 둘은 학교준비물에 당시에는 도시락까지 싸서 등교를 시켜야 했다. 초등학교 저학년인 손자는 잠을 깨워 세수를 시켜 제 마음에 드는 옷을 입히고 밥을 먹여 학교에 보내는 일은 전쟁이나 다름이 없었다. 아내의 근무 형태가 숙직이 많아 부산한 전쟁터에 잠투정하는 외손녀까지 달래야 하는 일을 어떻게 매일 하였는지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하니 죄스럽다 못해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거기다가 나의 음주 습관은 팔자걸음에 혀가 꼬부라질 정도가 되어야 귀가를 하곤 하였다. 이삼차는 보통이던 그 시절은 자정이 넘은 귀가는 당연한 일상이 되었다. 잠귀가 유난히 밝았던 장모님이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였음은 당연지사였다. 미안한 마음이 여기서 끝맺음 하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사위집에 얹혀산다는 미안함 때문인지 못난 사위사랑인지 매일 아이들 반찬과 달리 술국을 끓였다. 지금 생각하니 딸아이 잠투정이라도 내가 받아주었더라면 이렇게 미안하고 죄스럽지는 않을 터인데 이젠 갚을 길 조차 없으니 한스러운 마음 고통이 되어 마음을 무겁게 눌러 온다. 이러한 전쟁과 같은 소용돌이 가운데서도 장모님은 밥상머리 교육을 잊지 않았다. 등굣길 바쁜 아이들이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면서
“ 고모부님 진지드세요?”을 한번이라도 들어보지 못한 때가 없었다. 나중 먹는 사람을 위해서 반찬은 덜어서 먹으며 좋은 반찬만 골라 먹지 말고 남은 식구들을 생각하며 먹으라고 입이 마르도록 반복해서 밥상머리 교육을 했다.
아이들은 입에 맞는 반찬을 쟁탈전을 하듯 먹기가 일쑤다. 그러나 장모님 밥상머리 손주교육 덕분에 반듯하게 자란 손주들을 보니 감사한 마음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맡 손녀는 치과 간호사 자격을 취득하여 아이 둘을 키우며 아직도 치과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 길에서 가끔 만나는 아이들이 어찌 밝고 맑은지 장모님 생각으로 혼자 웃음을 짓는다. 덧씌운 이빨에 문제가 있는듯하여 오늘 내일 치과를 들려볼 생각이다. 둘째 손녀는 전산을 전공하여 필요로 하는 이웃들이 많아 사는 동네에 학원을 차렸다. 아이 셋을 낳고도 학원생이 넘치어 그만 두지를 못하고 있다. 손자는 모범 학생처럼 경찰공무원으로 재직 중이다. 우리 딸아이는 국립대학에서 사서로 근무를 하고 있다. 글을 쓰며 크게 내 세울 것도 없는 장모님이 키운 손주들의 근황을 열거한 것은 장모님 밥상머리 손주교육 덕분에 반듯하게 자라 사회 활동을 잘 하고 있음을 감사하기 위함이다.
“장모님 정말 감사합니다.” “다가오는 추석에는 산소에서 꼭 뵙겠습니다.”
추석을 앞두고 마음이 울컥하다. 장모님 밥상머리 손주교육이 할머니의 할머니로부터 이어 받은 밥상머리 교육일 것이라 짐작이 간다. 밥상머리 교육이 우리나라 교육의 근간이 됨을 깨달았으면 한다. 장모님께서 끼니때마다 하신 밥상머리 교육 덕분으로 아이들이 반듯하게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잊지 않겠습니다. 못난 사위자식도 장모님이 사용한 밥상머리교육 교재로 손주들을 열심히 교육 하겠습니다. 그것이 보은의 길임을 늦게나마 깊이 깨닫습니다.
첫댓글 수고 하셨습니다.
한비수필학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