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 국물 더 주시오
김은미
무더위가 계속되는 어느 저녁 “냉면 국물 더 주시오 아이구나 맛 좋다 ~”로 끝나는 노래 「냉면」이 절로 생각났다.
중1 때 음악 선생님께 배운 노래다. 어쩌다 이 곡을 흥얼거리다 보면 그때 총각이었던 선생님의 얼굴이 따라왔다. 그는 입맛을 다시며 맛있게 선창했고 우리는 신나게 따라 했다. 큰 키에 마른 몸, 기다란 손가락으로 피아노 치는 모습은 음악만 먹고 자란 귀공자 같았다. 여름날 소나무밭에 있는 음악실에서 유리창을 모두 열고 솔향에 취하던 그 시절, 선생님에 대한 풋사랑은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친구와 함께 빈 교무실에 몰래 들어가서 선생님 서랍 속의 연애편지를 훔쳐보며 떨리는 가슴을 눌렀던 기억들, 몇 년 후 그가 편지 속의 주인공과 결혼한다는 소문을 들었을 땐 가슴 한쪽에 공허함이 일었다.
중1 여름 방학이 끝나갈 무렵이다. 당시 일본 교토에 사시던 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오셨는데, 내가 할아버지 따라 배를 타고 목포에 갈 일이 생겼다. 할아버지는 일본에서 40년 이상을 살았던 터라 우리말이 서툴러 목포에 사는 당신의 사촌과 조카 집에 갈 일이 생기면 나를 앞세우곤 했다.
목포 선창에 도착하자 할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근처 식당으로 갔다. 맛있는 것을 손녀에게 먹이고 싶었던지 무언가 주문했다. 그때, 벽에 붙어 있는 메뉴판에 “냉면”이 내 눈에 크게 들어왔다.
노래로 불렀던 그 냉면을 먹어볼 수 있게 되어 가슴을 두근거리며 나는 냉면을 먹겠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다른 맛있는 것을 먹으라고 했지만, 그래도 그걸 먹겠다고 했다. 얼마나 궁금했던 맛이었던가. 잠시 후 큰 대접에 담겨 온 냉면은 나를 무척 설레게 했다. 이윽고 내 손안에 들어온 대접을 살펴보니 국물에 잠겨 있는 면 위에 채를 썬 오이 몇 가닥과 무 생채와 삶은 계란 반쪽을 얹어놓은 게 다였다. 먼저 눈으로 실망했다. 그래도 그릇을 양손으로 들고 국물을 마셔봤다. 밍밍하면서 별맛이 없었다. ‘무슨 맛이 이래! 노래에서는 최고 맛있는 음식이라고 했는데, 맛있다는 국물도 밍밍해서 다 먹지 못하겠네!’ 그러고는 반 이상을 남겼다.
내가 많이 남긴 걸 보고 할아버지는 “왜, 맛이 없냐? 그러게, 다른 걸 먹으라니까.”라고 하시면서 당신의 밥그릇을 내 쪽으로 밀어주었다. 나는 입을 샐쭉거리며 할아버지의 남은 밥을 같이 먹었다.
그 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올라와 S 그룹사 공채로 입사하여 S 백화점 관리부에서 근무했다. 점심은 지하 3층 구내식당에서 먹었는데 자취하는 내겐 항상 꿀맛이었다. 고향 집에선 먹어보지 못한 다양한 메뉴가 나왔고 절기마다 특식이 나왔다. 특별 메뉴가 나오면 친하게 지낸 주방장 아저씨께 요리법을 물어서 배운 게 몇 가지 된다. 그중에 닭개장은 나만의 특별 메뉴여서 주변에 전승을 좀 했다.
여름이 되자 구내식당에서도 냉면이 나왔다. 나는 목포 선창가의 그 맛없던 냉면이 떠올라 6층 식당가에서 점심을 사 먹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동료는 냉면을 잔뜩 기대하는 눈치였다. 일단 구내식당으로 같이 내려갔다. 그릇에 담긴 냉면의 모양새를 보니 구미가 당겼다.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서 식초를 먼저 넣었다. 처음 본 겨자를 맛도 모르면서 듬뿍 넣고 대충 저은 후 한 입 먹는 순간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독특하고 강한 향이 코를 찔러 머리는 핑 돌고 눈물은 주르륵 흘러 어찌하지 못하여 그냥 눈을 꼭 감고 꿀꺽 삼켜버렸다. 그 모습을 누가 보기라도 했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고개를 살짝 들고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 제 몫을 먹기 바쁜 모습이다. 이런 촌스러운 모습을 들키지 않았으니 천만다행이었다. 물을 마셔 목을 가다듬고 국물에 남은 겨자 덩어리를 숟가락으로 떠냈다. 다시 국물을 휘젓고 마음을 졸이며 재차 떠먹어 봤다. 아!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뭔가 세련된 서울의 맛이었다. 얼마나 환상적이던지 소리를 크게 지를 뻔했다. 얼음 알갱이와 함께 먹는 국물은 말 그대로 끝내줬다. 그 후 가끔 냉면이 나올 때면 식초와 겨자를 적당히 배합하여 아주 맛있게 먹는 방법을 익혀갔다.
나는 한여름에도 뜨거운 커피를 마시는 등 찬 음식을 좋아하지 않아 오랫동안 냉면의 맛을 잊고 살았다. 그러던 10여 년 전쯤, 기억이 되살아날 만한 일이 생겼다. 7월 말의 거리에는 한증막을 연상케 하는 뜨거운 바람이 불어 온몸을 휘감았다. 출장을 갔다 복귀하던 나와 일행은, 잠시 걷는 것조차 힘들어 헉헉댔다. 어디든 시원한 곳을 찾아 들어가야만 했다. 때마침 깔끔하게 보이는 식당의 유리창엔 가슴까지 시원하게 해주는 냉면 사진이 붙어 있었다. 망설일 겨를도 없이 일행과 함께 들어가 사진 속의 냉면을 주문했다. 그건 ‘빨강 냉면’이었는데 이름처럼 빨간 국물 위에 살얼음이 덮인 모습을 보니 눈으로만 보아도 더위가 달아나는 것 같았다. 시원하고도 달콤새큼하여 입에 어찌나 착 붙던지, 그때부터 ‘빨강 냉면’에 중독되어 곧잘 핑곗거리를 만들어 가깝지도 않은 곳까지 먹으러 가곤 했다.
오사카에 사는 외삼촌이 30년 만에 서울에 왔을 때, 맨 먼저 사드린 한국 음식이 냉면이다. 외삼촌이 얼마나 대만족을 하셨는지 오실 때마다 냉면집은 필수 코스가 되었다.
여름에는 집에서도 손쉽게 할 수 있는 비빔 냉면을 자주 해 먹는다. 가족들이 잘 먹는 걸 보면 다행히 싫어하진 않는 눈치다. 나는 최근 코다리 냉면에 빠져 추울 때도 그 맛을 자주 즐기곤 한다. 한겨울에도 누군가 코다리 냉면 먹으러 가자고 하면 한달음에 달려 나갈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파릇파릇했던 그 시절의 음악 선생님과 냉면 한 사발 나누고 싶다.
김은미
전남 신안 안좌 출생
서울디지털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21년 월간 『한국산문』 수필 등단
한국산문작가협회 회원, 강서문협 회원
동인지 『목요일 오후』 『산문로 7번가』 공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