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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무덤 속의 여인 선우철은 두 사람이 겨루는 상황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제 겨우 그들은 두 수를 주고받았지만 그러나 그 변화는 같지 않아 여러 식이 있었고, 또한 무림에서 보기 힘들고 들어보지 못한 기이한 절학이었다. 더욱이 괴여인의 마지막 한 발은 비류신보다 느렸지만 오히려 그의 몸을 적중시켰으니 이러한 기묘한 퇴법(腿法)은 정말 상상조차 하기 힘든 것이었다. 비류신은 몇 번이나 밀리자 마음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라 전신의 공력을 오른팔에 끌어 모은 뒤 허공에서 평평하게 뻗쳤다. 사실 고수들의 시합에는 손발을 움직이는 사이마다 모두 생사환멸지도(生死幻滅之道)가 갖춰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두 사람이 서서히 밀쳐내는 그 속에는 극히 강한 잠력과 암경(暗勁)이 들어있어 일단 기력이 서로 맞닥뜨리기 전에는 도무지 볼 수 없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사람의 사이에서 극히 강한 줄기의 회오리바람이 일어났다. 비류신은 진동되어 다시 몇 걸음 물러섰다. 그는 부르짖으면서 별안간 쌍장을 다시 내뻗쳤다. 조금 전 비류신은 일장을 밀어 쳐낸 뒤 돌연 심신이 움찔함을 느꼈다. 상대방으로부터 몰려오는 암경이 마치 산을 허물어뜨리고 바다를 뒤엎을 듯하여 그로 하여금 견뎌내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일제히 밀쳐낸 쌍장은 그의 모든 공력을 끌어 모은 것이므로 그 맹렬함이란 족히 산을 울리고도 남을 정도였다. 괴여인은 조금 전 비류신을 물리쳤을 때에는 경력을 삼성까지 증가시켰다. 그녀는 자기의 경력이 상대방에게 막 다다랐을 무렵 깜짝 놀랐다. 그가 젊은 나이에 그렇게 공력이 깊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그녀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비류신이 다시 쌍장을 밀쳐 왔다. 그녀는 여전히 삼성의 공력으로 맞이해 갔으나 돌연 몸이 부르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상대방의 잠력 암경이 전번보다 아주 강대해졌기 때문이다. 그녀는 외마디 냉소를 치며 오른손의 경력을 사 성까지 증가시키자 비류신의 내력과 서로 맞설 수 있었다. 괴여인은 복연(福綠)이 많아서 두 알의 양기혼원신단을 얻었기 때문에 공력이 이미 말할 수 없이 심후해졌다. 이런 까닭으로 그녀는 자신이 강호에서 이름을 떨치고 무림을 석권하여 뼈에 사무친 원한을 갚을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믿었었다. 그러나 비류신과 같은 청년을 만나 자기의 사 성 공력이 막히고, 또한 그가 격퇴되지 않으리라고 상상을 못했다. 그녀의 마음속은 놀람과 분노로 가득 찼다. 그녀는 차가운 코웃음과 함께 공력을 사 성에서 육성까지 끌어올려 갑자기 오른손을 질풍처럼 빠르게 뻗쳐 냈다. 순간, 비류신은 비명소리와 함께 일 장 밖으로 나가 떨어졌다. 그는 몇 모금의 선혈을 토해 냈고, 몸을 한바탕 휘청거리더니 마치 돌무더기가 무너져 내리듯 서서히 땅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선우철과 홍부용은 그가 떨어진 곳으로 얼른 뛰어갔다. 홍부용이 놀란 음성으로 다급하게 물었다. “비 상공! 부상이 심합니까?” 괴여인은 뼈를 에이는 듯한 차가운 목소리로 그녀의 말을 받았다. “그의 내장은 이미 중상을 입었다. 만약 그가 더 이상 말을 하면 상처가 심해져 어쩌면 그것 때문에 목숨을 잃을 지도 모른다.” 선우철이 눈을 똑바로 뜨고 바라보자 비류신은 숨결이 정상적이고 안색이 여전해서 전혀 내장에 중상을 입어 피를 토해낸 사람 같지 않았다.그는 크게 놀라고 있었다. ‘이 사람은 어째서 이렇듯 괴이할까. 정말 약간의 사법(邪法)이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으면 어째서 이렇게 빨리 회복할 수 있단 말인가? 지금 만약 그를 제거하지 않는다면 후일 나는 결코 그의 적수가 되지 못할 것이다… …’ 이렇게 생각하자 선우철은 재빨리 두어 걸음 다가가 낭랑한 음성으로 말을 건넸다. “비형의 상처가 매우 중하니 제가 운공 조식을 도와드리겠소!” 그는 이렇게 말하며 암암리에 오른손에다 진기를 모은 뒤 비류신의 등심을 향해 눌러갔다. 순간 뜻밖에도 괴여인의 입에서 외마디 고함이 튀어나왔다. “비켜라!” 그 소리와 함께 한 줄기 부드러운 힘이 뻗쳐와 선우철로 하여금 곧장 두 걸음 물러나게 했다. 이때 비류신이 별 같은 눈을 번쩍 뜨고 부리부리한 눈빛을 내쏘며 꼿꼿이 서서 노한 음성으로 외쳤다. “다시 한 번 나의 일 장을 받아 보시오.” 그는 오른손을 곧 뻗쳐냈다. 괴여인은 비류신의 이런 괴이한 동작에 정말 적지 않은 놀라움을 느꼈다. 하나 그녀는 비류신이 잔재주를 부려 자기를 놀라게 하려는 것뿐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별안간 그녀는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다. 극히 거대한 한 줄기 잠력이 마치 겹겹이 몰아쳐온 파도와 같이 몰려오는 것 같았다.그녀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공력이 순간적으로 회복되고 또한 내력이 더욱 강해질 줄을 어찌 생각이나 했으랴! 그녀는 일시 무방비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가까스로 방비책을 발견했을 때 아주 강맹한 광풍이 이미 몸 가까이 육박해 왔다. 그녀는 다급한 가운데 왼손을 휘둘러 부드러운 암경을 쳐내서 그의 장력을 해소시켰다. 그렇지만 비류신이 뻗친 장풍의 위력은 대단해서 미처 해소되지 않은 장력의 남은 힘은 그녀로 하여금 반걸음 물러서게 했다. 한편 비류신도 두 어깨를 한 번 휘청거린 뒤 뒤로 두 발짝 물러섰다. 이렇게 되고 보니 괴여인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그녀는 돌연 고개를 젖히고 처참하고 매섭기 이를 데 없는 괴소를 터뜨렸다. 청풍검 선우철은 웃음소리를 듣자 괴여인이 살기를 띠었다는 것을 즉각 알아차렸다. 그는 황급히 소리쳤다. “홍 낭자, 비형! 빨리 이 무덤을 벗어납시다.” 선우철은 말소리와 함께 재빠르게 몸을 움직여 이미 입구 쪽 돌계단에 뛰어올랐다. 그러나 괴여인이 그를 가만히 놓아둘 턱이 없었다. 그녀는 매섭게 고함을 쳤다. “모두 목숨을 남겨 놓아라!” 한편 비류신과 홍부용은 선우철의 경고를 듣자 역시 고개를 돌리고 나가려 했다. 그러나 다시 그녀의 광포한 말을 듣자 가슴 속 혈기가 끓어오름을 금치 못했다. 비류신은 재빨리 걸음을 멈추고 일 장 밖에 있는 괴여인을 응시하였다. 괴여인이 매섭게 외치면서 돌연 왼손을 들어 올리자 극히 차가운 음유암경(陰柔暗勁)이 선우철의 등 뒤를 향해 맹렬히 쳐갔다. 이때 선우철의 몸은 이미 육척이나 떨어져 있어 곧 무덤 밖으로 뛰어나갈 수 있었다.그러나 한 줄기 음경(陰勁)이 질풍처럼 그의 뒤 석 자까지 몰려오자 그는 상대방 장력이 극히 매섭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돌연 몸을 비스듬히 하고 오른손으로 연속해서 사 장을 쳐냈다. 그의 장세는 너무나 빨라 상대방으로 하여금 몇 번을 쳐냈는지 알아내기 힘들게 하였다. 선우철은 사 장을 내뻗쳤지만 돌연 기대(奇大)한 한 줄기 음경이 곧장 부딪쳐 옴을 느꼈다. 그는 속으로 크게 놀랐다. 급히 기세를 모아 왼손을 서서히 밀어내었다. 왼손의 장력을 중간쯤까지 밀어내자 선우철의 몸뚱이는 이미 시위에서 벗어난 화살처럼 무덤 밖으로 튀어나갔다. 괴여인은 그것을 보고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그 녀석에게 나는 정말 속아 넘어갔구나.이제 보니 그의 무공이 제일 높군.” 괴여인은 혼잣말처럼 이렇게 중얼거리더니 갑자기 싸늘하게 외쳤다. “바보 같은 녀석, 너는 정말 목숨을 버릴 생각이냐?” 그녀가 이렇게 외치며 오른손을 가볍게 펼치자 한 줄기 암경이 맹렬하게 비류신을 향해 쳐갔다. 비류신은 그것을 보고 대뜸 입을 열었다. “마침 잘 쳐냈소. 나는 정말 당신이 무엇을 믿고 날뛰는지 알아보아야겠소.” 그는 오른손으로 휙 소리와 함께 일 장을 뻗쳤다. 장풍은 일진의 가벼운 휘파람소리를 일으키며 괴여인을 향해 몰아쳐 갔다. 그가 뻗친 이 장력은 별로 신속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퍽 강맹절륜하여 위력은 사방 수척을 뒤덮었다. 그런데 여기에 이상한 일이 생겼다. 비류신의 장력은 그녀가 앞서 쳐낸 암경과 부딪치지 않고 오히려 괴여인을 향해 곧장 부딪쳐갔다. 그녀가 왼손을 약간 급하게 휘두르며 외마디 답답한 콧소리를 내고 몸을 한 번 휘청거린 뒤 뒤로 삼사 보 물러서는 것이 보였다. 분명히 그녀는 비류신의 일장을 맞고 이미 가볍지 않은 상처를 입은 것 같았다.이것으로 인해 비류신은 그녀에게 살기를 일으키고 말았다. 그녀는 본래 비류신을 해칠 마음을 가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암중으로 몇 번이나 그를 구해주기까지 했다. 그래서 조금 전에도 선우철이 암암리에 비류신에게 한 줄기 암경을 쳐내는 것을 보고 그녀는 암경을 뻗쳐 그것을 해소시키려 했다. 하지만 비류신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도리어 그녀를 향해 일격을 격중시킨 것이다. 괴여인이 뒤로 물러서던 몸을 가눈 뒤 냉소를 쳤다. “이것은 네가 스스로 불러일으킨 죽음이니 내 마음과 수단이 악랄하다고 탓하지는 마라.” 그녀는 이렇게 말하면서 몸을 유령같이 움직이며 곧장 덮쳐 왔다. 홍부용이 돌연 날카롭게 외쳤다. “언니, 잠깐 인정을 베푸십시오. 모든 것을 오해한 거예요.” 괴여인은 이미 비류신의 삼척 밖까지 덮쳐들었으나 홍부용의 외침 소리를 듣자 힘껏 쳐내려 하던 악랄한 초식을 재빨리 거두어 들였다. 비류신이 그녀가 덤벼드는 것을 보자 아무 말도 없이 중궁(中宮)을 밟으면서 손을 들어 괴여인의 가슴팍을 향해 맹렬하게 일장을 눌러갔다. 괴여인은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동시에 신속하게 일장을 밀어 쳐내 비류신이 뻗친 장력과 맞닥뜨려갔다. 양장이 부딪치자 일진의 미친 듯한 회오리바람이 일어났다. 비류신은 가벼운 비명을 지르며 서서히 뒤로 세 걸음 물러선 뒤 그냥 무덤 안 돌계단에 주저앉아 버렸다. 순간 비류신은 벌떡 일어나서 일장을 똑바르게 뻗쳐냈다. 이것을 본 괴여인은 섬뜩함을 금치 못했다. 그녀는 이 사람이 이토록 괴이할 줄 생각도 못했다. 그는 마치 자기의 장력에 울려 부상당한 것 같았는데 뜻밖에도 순식간에 곧 회복을 하고 또한 쳐내는 장력은 더욱 웅후(雄厚)하였다. 비류신은 옆으로 몸을 피하며 손을 젖혀 빙하개동(永河開凍)을 비스듬히 쳐갔다. 그는 여유롭게 신형을 움직이며 왼손으로 돌연 천운장(穿雲掌) 일식을 발휘해 괴여인의 손을 젖혀 쳐낸 일격을 마주 받아냈다. 그의 몸은 약간 울렸으나 그는 오히려 곧장 달려들었다. 괴여인은 오른손을 휘둘러 한 조각 장영(掌影)을 허공에 그려내어 덤벼드는 비류신의 몸을 저지하려 했다. 그러나 비류신의 몸은 두어 번 휘청거렸을 뿐 기묘한 신법을 펼쳐 극적으로 괴여인의 장세를 피해냈다. 그리고 그녀의 곁으로 바싹 달려들었다. 이 기묘한 신법은 상대하고 있던 괴여인으로 하여금 크게 놀라게 했다. 그 교묘한 신법은 그녀 자신이 현기현청의 비록에서 배웠던 어떤 일 초로도 막아낼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비류신은 몸을 바싹 달려들자 두 손을 일제히 내밀었다. 왼손과 오른손 손가락을 교차시키며 공격을 퍼부어 눈 깜짝할 사이 오장을 쳐냈으며 사지(四指)를 찍어갔다. 이 오 장 사 지는 비단 신속, 절륜할 뿐 아니라 악랄하기 이를 데 없어 손가락은 대혈(大穴)을 공격하였고 손바닥은 급소를 노려 매 일 초마다 능히 상대방의 목숨을 빼앗을 정도였다. 그야말로 공격하는 사람은 민첩하고 매서우며 악랄하고 오묘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하지만 공격을 당하는 사람은 더욱 뛰어났다. 괴여인은 몸을 반걸음도 물리지 않고 쌍장을 휘둘러서 단숨에 비류신의 오장, 사지의 신속한 공격을 해소시켜 버리는 것이었다. 그녀가 발휘한 모든 수법은 기묘하기 이를 데 없어 상대방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정묘한 절초였다. 비류신은 정말 감탄했다. 한편 그는 자신이 한동안 연마했어도 그녀의 적수가 아님을 알아차리자 맥이 풀렸다. 그는 힘없이 공세를 멈추고 말았다. 괴여인이 냉소를 쳤다. “이제 네가 나의 삼 초를 받아볼 차례가 됐다. 나는 너로 하여금 장풍 아래 떠도는 귀신이 되게 해주겠다.” 그녀는 말을 마치자마자 이미 몸을 날려 공격해 왔다. 왼손으로 후려치면서 오른손은 곧장 뻗쳤다. 비류신은 그녀의 이 일격 속에 기괴한 변화가 많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일시에 그것을 격파시킬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내지 못해 감히 그녀의 초술(招術)에 맞닥뜨리지 못하고 몸을 날려 한쪽으로 피했다. 괴여인이 또다시 냉소를 쳤다. “과연 물건을 알아보는 사람이구나. 어째서 이 일 초에 맞닥뜨려 시험해보지 않는 것이냐? 흥! 그렇지만 제 이 초는 너로 하여금 빠져 나갈 수 없게 할 것이다.” 그녀는 이내 왼손을 허공으로 치켜 올리고 오른손의 다섯 손가락은 갈퀴처럼 가볍게 쥔 뒤 곧장 그의 가슴팍을 쳐갔다. 비류신은 잠시 얼떨떨해졌다. 이번에 뻗친 이 일 초는 자신이 여태껏 보지 못한 무예임을 느끼고, 그녀가 가볍게 쥔 다섯 손가락 속에 매서운 살수의 변화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비류신은 두 발에 약간 힘을 주어 재빨리 뒤쪽으로 날아갔다. 그러나 순간 괴여인의 왼손의 기세가 돌연 내려앉았다. 그리고 다섯 손가락을 펴서 곧장 쳐가던 자세로부터 비스듬히 낚아채는 동작으로 변형시켰다. 이것은 실로 너무나 의외의 일이었다. 비류신의 오른팔 맥문은 이미 상대방에게 낚아 채여 있었다. 하지만 비류신은 소대호가 전수해 준 폐맥법(閉脈法)을 깊이 기억하고 있었으므로 비록 오른팔의 맥문이 잡혀있어도 전신의 진기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는 냉랭하게 코웃음 치면서 왼손으로 휘둘러 괴여인의 가슴팍을 향해 곧장 쳐갔다. 이러한 동작의 변화는 모두 번개같이 신속했다. 괴여인은 비류신이 맥문의 견제를 받고도 여전히 경력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을 보자 마음속으로 섬뜩했다. 그녀는 왼손을 한쪽으로 맹렬하게 잡아당기며 몸을 빙글 돌리면서 비류신의 오른쪽으로 돌아 그의 곁으로 바싹 다가들었다. 그녀는 냉소를 한 번 짓고 입을 열었다. “지금 죽어도 너는 한이 없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며 오른손을 비스듬히 들어 비류신의 천령개를 내리치려 했다. 그 찰나였다. 날카로운 부르짖음이 귓전을 때렸다. “손을 멈추시오!” 홍부용의 만화신검이 어느새 검 집에서 벗어나 휘황찬란한 빛을 내며 비류신의 얼굴에 온통 반사되었다. “앗!” 순간 괴여인의 입에서 깜짝 놀란 외마디 고함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녀는 쥐고 있던 비류신의 왼팔을 별안간 놓아주고 오른손을 재빨리 제쳐 천령개를 향해 쳐가던 장세를 힘껏 바꾸었다. 그리고 식지와 중지 두 손가락으로 돌연 원을 만들어 다시 신속하게 튕겨 냈다. 두 손가락은 때마침 덮쳐오는 홍부용의 만화신검을 집었다. 그러나 곧 놓아주고 몸을 부르르 떨더니 연속 뒤로 칠팔 보나 물러갔다. 어둠 속에서 비류신과 홍부용은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없었으나, 지금 그녀의 두 눈에서 구슬 같은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원망과 애수에 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는 사아(邪兒)이다. 바로… 바로 그 애이다. 그는 죽지 않았구나. 아, 하느님! 그도 놀랍도록 절세적인 무공을 터득했군요.’ 그녀의 머릿속은 다시 그 비통한 원한의 일로 가득 찼다. 한편 비류신은 그녀가 갑자기 손을 놓아줄 줄 생각 못했다. “당신은 어째서 독수를 쓰지 않소?” 그러자 어둠 속에서 약간 떨리며 처량하고 애달픈 그녀의 음성이 울려왔다. “너… 너는 빨리 나가거라.” 홍부용은 그 말을 듣자 얼떨떨해졌다. “당신은 누구세요?” 괴여인은 그녀의 말을 아랑곳하지 않고 역시 처량한 목소리로 재촉했다. “너희들은 내가 누구인가 묻지 말고 빨리… 나가거라.” 비류신은 정말로 이 여인이 누구인지 몰랐다. 이런 갑작스러운 변화에 부딪히자 그의 머릿속은 어지러워졌다. 하지만 그녀의 무공이 아주 고강하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비류신은 힘없이 입을 열었다. “홍 낭자, 우리 나갑시다.” 그는 말을 마치고 서서히 무덤 입구를 향해 걸어 나갔다. 홍부용은 입을 다문 채 뒤를 따랐다. 이때 안으로부터 다시 그녀의 음성이 들려왔다. “강호에는 온갖 계략이 있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니 너희들은 특히 조심하여라. 그리고 홍 낭자, 너는 그를 잘 보살펴 주어라.” 그녀의 음성은 이렇듯 따뜻한 정이 들어 있었고 부드러웠다. 결코 전과 같이 차갑고 인정미 없는 것이 아니었다. 말 속에는 관심과 애정이 가득 차 있었다. 홍부용은 이 말을 듣자 더욱 얼떨떨해졌다. “언니의 말에 감사드리며 그것을 명심하겠어요. 그러나 당신… …” 홍부용은 그녀가 누구인가 물으려 했지만 갑자기 그녀에 의해 말이 막히고 말았다. “그럼 됐으니 빨리 나가거라!” 홍부용은 정말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무리 총명하다 해도 이런 기이한 변화는 종잡을 수 없어 어안이 벙벙해졌다.차근차근 지난 일을 돌이켜 보았다. 그녀는 들어올 때부터 선우철이 몇 번이나 비류신을 암살하려 하는 것을 발견하였고 모두 무덤 안 괴여인이 은밀하게 비류신을 도와 선우철의 경력을 파해하여 버린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홍부용은 속으로 괴여인이 비류신을 해하려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비류신이 말로써 반박을 하니 결국 그녀는 죽일 마음을 격발시킨 듯했으나 마지막에 자기가 일 검을 뻗치니 돌연 후퇴를 하고 내심으로 지극한 충동을 받은 것 같았는데… … 문득 한 가지 생각이 홍부용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럼 그 여자가 비류신의 옛 애인이란 말인가. 그렇지 않다면 어찌 이렇게 많은 괴이한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게다가 그녀는 시종 비류신의 이름을 묻지 않았는가?’ 무덤 속 여인의 비류신에 대한 아량 많은 태도에서 홍부용은 그녀와 그의 관계가 어쩌면 지난날의 연인일는지 모른다고 추측했다. 홍부용은 여기까지 생각하자 서글퍼졌고, 실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유유히 한숨을 내쉬며 비류신의 뒤를 바싹 따라 무덤 밖으로 나왔다. 비류신이 막 무덤에서 나서려는 찰나 맞은편에서 돌연 지극히 강맹한 장력이 부딪쳐 오며 곧장 출구를 가로 막았다.그러고 보니 밖의 여러 강호 무림 고수들은 여전히 물러가지 않고 한쪽에 둘러서 있었다. 비류신과 홍부용이 나오는 것을 보자 그들은 돌연 악랄한 수법을 펼쳐 두 사람을 향해 각기 일 장을 뻗친 것이었다. 장력의 기세는 정말 놀라웠다. 마치 급류가 휩쓸려 흐르고 산더미 같은 파도가 몰아쳐 오는 것 같아 능히 바람과 구름을 변색케 할 정도였다. 돌연 무덤 안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너희 두 사람은 무덤의 입구 좌우 양쪽을 향해 뛰어나가거라… …” 비류신과 홍부용은 강력한 장력을 보자 대경실색했다. 순간 이 말을 듣자 더 생각하지 않고 좌우로 뛰어나가며 쌍장으로 각각 두 줄기 강한 바람을 쳐냈다. 바로 두 사람이 막 뛰어나가는 찰나, 뒤이어 무덤 안으로부터 한 줄기 음풍이 불어와 두 사람을 향해 쳐오던 기이하기 이를 데 없는 그 기세를 허공에서 소멸해 버렸다. 여러 고수들은 무덤 안 괴여인이 이상하게도 비류신을 돕자 속으로 크게 놀라고 있었다. 이때 무덤 안으로부터 다시 으스스한 한 줄기 음풍이 뻗쳐 나왔다. 그러자 귀를 쑤시는 듯한 처참한 비명이 울리며 십여 명의 사나이가 쓰러졌다. 여러 사람들은 이 광경을 보자 한바탕 법석을 떨며 놀란 채 대전 밖으로 물러나갔다. 비류신과 홍부용은 재빠르게 대전 밖으로 뛰어나갔다. 비류신의 눈에서 날카로운 빛이 번쩍였다. 그는 주위를 훑어보며 매섭게 외쳤다. “어느 누가 나를 암살하려 했소?” 월광검 소대풍이 긴 수염을 쓰다듬으며 껄껄 웃었다. “비 노제, 당신의 친구가 여러 사람을 충동해서 당신을 죽이려 했네.” “그게 누구요?” 이때 살독수 강파문이 돌연 비류신의 등 뒤로 곧장 달려들었다. 그는 열 손가락을 쫙 펴서 번개처럼 비류신의 요혈 열 개를 향해 나꿔채 갔다. 청풍검 선우철이 큰 소리를 쳤다. “비형, 주의하시오. 등 뒤에 암습이 있소.” 그는 갑자기 몸을 날리더니 오른손으로 재빨리 강한 바람을 쳐내 살독수 강파문을 향해 부딪쳐갔다. 살독수 강파문은 비류신이 살독수(殺毒手) 아래 목숨을 잃을 찰나 선우철의 일장에 물러서자 화가 치밀어 크게 소리 질렀다. “좋소! 선우철, 당신은 뜻밖에도 그를 도와 우리와 대적하려 하는구려. 당신은 정말 의리가 없소.” 선우철은 태연하게 껄껄 웃어댔다. “강형, 오해하지 마시오. 사실 나는 당신의 목숨을 구해준 것이오.” 비류신은 마음속으로 선우철이 손을 써 도와준 데 대해 그지없이 감격했다. 그의 말을 듣자 싸늘한 웃음을 지으며 살독수를 향해 입을 열었다. “당신에게 솔직히 말해 만약 선우철이 당신을 격파시키지 않았다면 당신은 벌써 나의 절초의 반격에 목숨을 잃었을 것이오.” 선우철은 미소를 지었다. “강형, 당신은 이제 나의 의도를 알았을 것이오.” 살독수는 그 말을 듣자 어리둥절해졌다. 사실 선우철은 소대풍이 자기가 여러 사람들을 충동하여 비류신을 살해하려 한 것이 밝혀 질까봐 두려웠다. 그래서 조금 전 거짓으로 손을 써 살독수를 격파시킨 듯이 가장하여 비류신이 자기에 대한 의심을 갖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그는 살독수와 적대하는 것이 비류신과 적대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인데, 이 연극이 모두 쌍방에게 의심을 받지 않고 효과를 거둘 줄 미처 생각지 못했다. 월광검 소대풍이 참지 못하겠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흐흐흐… 선우휘가 이런 아들을 하나 가지다니 정말 얻기 어려운데… …” 비류신은 그가 지령보 안에서 잔해(殘害)를 가한 것에 원한을 품고 있었던지라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가로챘다. “흥! 우리의 빚도 청산할 때가 된 것 같소.” 그는 암암리에 경력을 끌어올려 소대풍에게 맹렬히 뻗쳤다. 순간 소대풍 곁에 앉아 있던 단단해 보이는 늙은이가 냉소를 쳤다. 그가 쌍장을 비스듬히 쳐내자 한 줄기 강풍이 질풍처럼 비류신의 암경을 향해 부딪쳐 갔다. 비류신은 그가 바로 소대풍과 모의하여 자기를 헤치려 했던 그 늙은이라는 것을 알아차리자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비류신은 번뜩이는 눈초리를 그에게 던지며 암암리에 경력을 모아 대갈일성 했다. “당신은 죽음을 자초하는 군요!” 휙 하는 소리와 함께 오른손을 젖히고 돌리면서 그 늙은이에게 곧장 쳐갔다. 이 일장은 그가 홧김에 쳐낸 것인데도, 또 최근에 공력이 많이 증가하였으므로 그 늙은이는 진동되어 칠팔 보나 물러갔다. 지령보 사람들은 이 광경을 보자 서서히 비류신과 홍부용의 곁으로 다가들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전초도주 금환두발이 여러 사람들을 거느리고 끼여 있었으며 흑도삼괴도 서서히 발걸음을 옮겼다. 장내는 긴장되다 못해 살벌한 분위기마저 감돌았다. 비류신에 의해 물러섰던 그 늙은이는 외마디 노성을 지르며 몸을 허공으로 날려 마치 독수리처럼 비류신에게 덮쳐갔다. 홀연 선우철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비형, 당황하지 마시오. 내가 돕겠소.” 그가 오른손을 휘두르자 네 줄기 흰 무지개의 빛이 번개처럼 비류신의 머리 위를 향해 곧장 날아갔다. 홍부용은 그것을 보자 깜짝 놀랐다. “선우철, 당신은… …” 비류신은 그 늙은이가 허공에서 돌격을 감행하는 것을 보자 전광석화같이 재빠르게 옆으로 몸을 옮겼다. 순간 선우철의 네 자루 비검(飛劍)은 그의 목덜미 쪽을 지나 곧장 그 늙은이를 향해 날아갔다. 처참한 비명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사방에는 핏방울이 날렸다. 늙은이는 비검에 머리통이 쪼개져 죽어 버렸다. 그리고 네 줄기 흰 빛은 반원을 그린 뒤 다시 선우철의 소매 안으로 날아들었다. 비류신은 그것을 보고 감동해서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우철, 당신은 나를 돕기 위해 지령보와 원한을 맺는 것도 거리끼지 않으니 이 은혜는 나로 하여금 실로 몸 둘 곳을 모르게 하오… …” 망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는 돌연 바람소리가 허공을 울리며 강렬한 암경이 뒤에서 곧장 부딪쳐 오는 것을 느꼈다. 비류신은 단전의 진기를 아래로 내린 뒤 두 발을 힘껏 디딘 채 몸을 돌렸다. 이내 그는 장풍을 휘둘러 상대방이 쳐낸 일장을 받아냈다. 고개를 들고 바라보니 월광검 소대풍이었다. 사실 그는 좌우로 각각 일 장씩을 쳐내 비류신과 선우철을 습격한 것이었다. 선우철은 몸을 비켜 소대풍의 일격을 피해낸 뒤 비류신을 향해 낭랑하게 웃었다. “강호에는 서로 마음을 떠보려고 곳곳마다 계략을 강구하며 교활할수록 좋소. 그러나 비형은 사람을 대하는 데 너무 충실하고 솔직하니 나로 하여금 실로 본받게 하고 있소. 어젯밤 서로 만나고부터 마치 오랫동안 깊이 사귄 의리가 있는 친구같이 느껴졌소. 단지 비형께서 나를 꺼려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이에 피차 무엇을 가릴 게 있겠소? 또한 지령보와 나의 도장맹은 풀 수 없는 깊은 원한이 있으니 말이오.” 비류신은 그 말을 듣자 더욱 감동하여 격한 목소리로 말을 받았다. “선우형의 의리는 너무 깊소. 다행히 내가 선우형과 사귀게 됐으니 마땅히 정성을 다하여 우의를 증진시키고 가슴 속에 영원히 새겨두겠소.” 선우철은 비류신이 진정으로 감동하는 것을 보자 속으로 은근히 기뻐했다. 그는 자기가 그의 도움을 얻는다면 흑도사괴를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흑도괴마 봉화염이 이미 목숨을 잃었으니 더욱 쉬우리라 여겼다. 이런 생각을 하자 선우철은 큰 소리로 입을 열었다. “비형, 우리는 이제부터 서로 손을 잡고 힘을 모아 적에게 대항하여야 합니다. 우선 포위망을 뚫고 나가서 다시 대책을 강구합시다.” 적면귀 사심독이 음산하게 냉소를 쳤다. “선우철, 너는 설마 우리들과의 약속을 저버리려는 것은 아니겠지?” “사형, 그게 무슨 말씀이오? 나는 결코 우리들의 약속을 저버린다고 말하지 않았소. 단지 사형 등이 손을 잡고 힘을 모아 지령보를 대항하자고 한 어젯밤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 뿐이 오… …” 월광검 소대풍은 자기의 유력한 조수가 선우철의 손에 죽는 것을 보자 분노가 극도에 달했다. 그는 이미 선우철의 곁으로 달려들어 세 손가락을 쭉 뻗친 뒤 삼양개태(三陽開泰) 일 초로 선우철의 삼대 요혈을 노렸다. 장세가 뻗치자 세 줄기 지풍은 이미 몸 가까이 이르렀다. 소대풍은 초식을 펼치며 말했다. “예(豫), 노(魯), 악(鄂) 세 맹주 분들, 우리 지령보는 여태껏 당신들과 아무런 원한 관계도 없었는데 어째서 우리와 대적하려는 것이오? 선우철의 심술은 당신네들이 이미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을 테니 차라리 우리 힘을 합해 그를 처처해 버리는 것이 낫겠소이다.” 선우철은 깜짝 놀랐다. 그는 신속하게 몸을 비켜 그것을 피한 뒤 왼손으로 도전음양(到轉陰陽) 수법을 발휘하여 비스듬히 쳐갔다. 동시에 그 속에다 낚아채는 수법을 숨겨 소대풍의 맥문을 낚아챘다. 흑도삼괴의 하나인 살독수 강파문은 이때 낄낄대며 괴소를 터뜨렸다. “사형, 우리 힘을 모아 그를 처치합시다.”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즐독 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