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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형령주 제2권 제16장 천축국(天竺國)의 파계승(破戒僧) ━━━━━━━━━━━━━━━━━━━━━━━━━━━━━━━━━━━ 관도(官道)가 다섯 방향으로 갈라지는 곳. 죽립을 쓴 청년이 한가운데서 사방을 쓸어보고 있었다. "어디로 갔을까! 으음- 태산 쪽으로 갔을까?" 반 시진 동안 제갈유룡을 찾아다니던 탁몽영이 결국 멈춰선 것이 다. 그가 우두커니 서 있을 때, "정말 볼 만하지 않는가?" "헛헛- 그런 구경은 처음이네. 하여간 황금천만량(黃金千萬兩)은 공중으로 뜨고 말았네." "아니야! 헤헤- 이천만 량 짜리 목이 생기지 않았나?" "헤헤- 그 목은 삼천만 량을 줘도 못 자르네. 누가 감히 혈미인 의 목을 자를 수 있단 말인가? 마종의 소실을……." 세 사람이 동쪽에서 다가서고 있었다. 표사인 듯, 여러 가지 무기를 골고루 지니고 있었다. 하남삼협(河南三俠). 천지를 떠돌아 다니며 협행도 하고 돈도 버는 사람들이었다. 그들 이 관도의 모퉁이를 돌 때, "말 좀 묻겠소!" 탁몽영이 허공에서 떨어져 내리며 그들을 가로막았다. 탁몽영은 장읍(長揖)을 취하며 물었다. "제갈유룡이란 자를 못 봤소?" 그가 냉막히 묻자, "뉘… 뉘시오?" "무… 무척 당돌한 분이군!" "헤헤- 제갈대협은 못 봤고… 빙차(氷車)는 봤소!" 하남삼협은 탁몽영의 몸에서 일어나는 한기(寒氣)에 조금 놀랐으 나 그의 공손한 태도에 어느 정도 마음을 놓은 눈치였다. "빙… 빙차를 봤소?" 탁몽영이 고개를 들 때, "우-!" 등 뒤 이백 장 떨어진 곳에서 장소성이 났다. "우-!" 머리를 길게 풀어 흐트린 적족괴인(赤足怪人) 하나가 탁몽영을 쏘 아보며 번개같이 날아들었다. "귀찮게 따라오는군. 하여간 추종술(追從術)만은 대단하다." 탁몽영은 그를 바라보지도 않았다. 적족괴인은 벌써 이백 리 째 그의 뒤를 쫓아왔었다. 한데, 하남삼협이 그를 보고 아연실색했다. "적족만리객(赤足萬里客)이다!" "으으- 잘못 걸리면 죽는다. 아주 무서운 자다!" 그들은 기겁하며 북쪽으로 꽁무니를 뺐다. 적족만리객(赤足萬里客). 그는 주로 하남하북(河南河北)을 종횡하고 있었다. 그는 벙어리로 불렸다. 그는 괴행(怪行)을 자주했고, 그 덕에 그 가 지나는 곳엔 피바람이 불었다. 휘… 잉……. 맨발에 긴 머리카락, 그는 붉은 구름이 덮쳐들듯 탁몽영 앞으로 떨어져 내렸다. 탁몽영은 어쩔 수 없이 그를 보게 되었다. 적족만리객은 얼굴이 누렇고, 코가 아주 큰 사람이었다. 머리카락 은 희고 꽤 길었다. "으으-!" 그는 입을 벙긋거리며 다짜고자 탁몽영의 맥문을 나꿔채려 했다. "무례하군!" 탁몽영은 기다렸다는 듯 흰 손을 휘저었다. 두 사람의 손이 한데 마주치는 순간, 꽝-! "어이쿠-!" 적족만리객은 이상한 나라말로 비명소리를 내며 한 걸음 뒤로 물 러났다. "범어(梵語)를 하다니? 천축(天竺) 사람이오?" 탁몽영이 그 나라말로 되묻자, "헤헤- 신통한데? 헤헤- 중원에 와서 말이 통하는 사람을 보기 는 처음이다. 헤헤- 벙어리처럼 행동하느라 고생이 많았는데… …!" 적족만리객은 아주 기뻐했다. 그는 손이 퉁퉁 부어오르는지도 모르고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흉 칙한 얼굴이나, 웃는 모습에는 악한 구석이 없었다. "노납은 광애라마(光涯喇 )다. 홍의교(紅衣敎)의 파계승(破戒僧) 이지!" 그는 범어로 크게 말했다. "홍의교?" "헤헤- 과거에 그랬다는 말이고… 헤헤… 장래에 그렇게 되기 위 해 시주를 쫓아다녔다." "그게 무슨 소리요? 파문(破門) 당했다가 다시 입문한단 말이오?" "그렇다!" "그 일이 나와 상관이 있단 말이오?" "그렇다!" "흠-." 탁몽영이 침중한 숨소리를 내자, "내 놔라- 그 비급을……." 광애라마가 손을 활짝 폈다. 그의 손바닥은 아주 컸다. 홍의교 비전 대마수(大魔手)를 십 성 넘게 단련한 탓에 보통사람 손보다 세 배는 거대했다. 불타는 숯을 얹어놔도 그 손은 뜨거움 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노납은 그 덕에 파계했다. 그리고 그것을 얻는다면 다시 바라문 (婆羅門)으로 들어갈 수 있다!" 광애라마는 한 자 한 자에 진기를 모았다. "천룡행공비급 말이오?" "그렇다. 그 비급은 홍의교의 장경고(藏經庫)에 비장(秘藏)되어 있다가, 중원인에 의해 약탈당했다!" 광애라마는 주먹을 거머쥐었다. 천룡신권(天龍神拳)을 내쳐 탁몽영의 머리통을 박살내 버리고 싶 은 듯, 그는 주먹을 가늘게 떨었다. "너는 저쪽에서 천룡행공신법을 시전했다. 노납은 네가 사 년 전 천축국 홍의교에서 그것을 훔쳐간 자라고 믿는다." 광애라마의 눈에서 불길이 쏟아져 나왔다. "훗훗- 나를 도적으로 모는 것이오?" "그렇다!" "핫핫- 천룡행공신법 정도로 도적이 될 사람은 아니오. 핫핫-." "무… 무시하는군?" 광애라마는 옷을 풍선같이 부풀렸다. 순간, 탁몽영은 손을 조용히 내저었다. "손을 쓰지 마시오. 라마승을 죽이고 싶지 않으니까!" "헤헤! 손을 쓰면 네가 죽지 왜 내가 죽느냐?" "라마공부(喇 功夫)의 삼절(三絶)은 하나같이 절학(絶學)이나, 중원의 무공만 못하다는 것을 모르오?" 라마공부의 삼절. 그것은 신법(身法)과 괴수력(怪手力), 그리고 선창음(禪唱吟)을 말한다. 광애라마는 고개를 저었다. "헤헤! 홍의교의 무공은 광세무변한 것이다. 아쉽게도 사백 년 전, 천수마불(千手魔佛)이라는 분이 많은 절기를 갖고 중원으로 들어와 다시 돌아오시지 않은 덕에 많은 절기가 실전(失傳)되었으 나… 헤헤… 나는 중원에서 아직 적을 만나지 못했다." "천수마불이 홍의교 사람이오?" 탁몽영은 조금 놀라워 했다. "헤헤! 그분은 홍의교 사상 두 번째로 강한 분이셨다." 광애라마는 득의만만해 하며 대답했다. "가장 강한 사람은 누구요?" "적주라마(赤珠喇 )라는 분이시다. 흐흐- 그분으로 말하자면… 당시 천하십대고수 안에 끼셨다. 헤헤!" "적… 적주라마!" 탁몽영은 새삼 놀라워 했다. '적주라마라는 이름은 나의 가슴에 있는 이름이다.' 그는 속으로 품안을 만졌다. 천외마벽경(天外魔壁經)이 만져졌다. 거기 절기를 남긴 사람 중 적주라마라는 이름도 있었다. '홍의교는 변황에서는 손꼽히는 강파(强派)다. 유명무실하게 된 이유는 절기가 많이 절전(絶傳)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광애라마를 자세히 바라봤다. 몰골은 흉하나 본래의 용모는 아주 선한 사람인 듯 싶었다. '만에 하나 이 사람을 백도(白道)의 강자(强者)로 만들 수 있다면 … 천축국의 무림계가 안정이 될 것이다.'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는 묘안 하나를 생각해내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듣고 보니 라마의 말이 맞구려. 하나… 나는 도적이 아니고, 라 마는 전이나 마찬가지로 중원천하를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겠소!" "헤헤- 노납은 너를 잡을 작정이다! 잡아 고문하면… 비급을 취 할 수 있겠지!" 광애라마는 손을 쓸 자세를 취했다. "핫핫- 하수(下手)와는 싸우지 않는 사람이오. 내가 이제껏 쌓아 올린 무명(武名)을 라마 같은 하수와의 싸움으로 인해 무너뜨릴 수는 없는 일이오!" "으으… 기고만장이군?" 광애라마는 참지 못하고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대마수(大魔手)……!" 솥뚜껑만한 손바닥이 펼쳐지며 암경(暗勁)이 쏟아져 나갔다. 탁몽 영은 모르는 듯 미동(微動)도 하지 않았다. "쓰러져라!" 광애라마는 혼신의 힘을 다해 대마수를 시전했다. 우르르- 릉-! 벼락이 치는 소리와 함께 태산을 밀어낼 정도의 강력한 경기가 쏟 아져 나갔다. 광애라마는 탁몽영이 피떡이 되어 쓰러지는 모습을 떠올렸다. 한데, 스슥- 아주 경미한 소리와 함께 대다수의 힘이 무산(霧散) 되어 버리는 것이 아닌가! "장… 장력이 바다(海)로 들어간 듯하다니… 그… 그게 무슨 사공 이냐?" 광애라마의 머리카락이 하늘 쪽으로 빳빳이 퍼졌다. "장력? 조금 전 장력을 썼소? 난 산들바람이 부는 줄 알았는데?" 빈정대듯 내뱉는 탁몽영의 말에 광애라마의 몸뚱이가 조금씩 늘어 나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의 키가 본래보다 두 자 더 커졌다. "마천통비공(魔天通臂功)으로 끝장을 보리라. 마천통비공은 비급 을 찾으로 중원으로 나오기 위해 익힌 홍의교 최후의 수법이다." 우둑- 우둑-! 나무 부러지는 소리가 나며, 그의 몸 주위로 붉은 기류가 피어났 다. "차아- 악!" 광애라마는 기합 소리를 내며 두 손을 한데 합했다. 합장된 손바 닥 사이로 혈무(血霧)가 피어났다. 꽈르르르- 릉-! 우레 소리가 나며 탁몽영의 몸이 피구름에 잠겼다. 꽈꽝- 꽝-! 만균뇌정성(萬鈞雷霆聲)이 나며 흙보라가 피어 올랐다. 돌조각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가 떨어져 내릴 때, 쿵- 쿵- 쿵-! 광애라마는 비틀거리며 네 걸음을 물러나서야 겨우 몸을 바로잡을 수 있었다. 반면, 탁몽영은 그 자리에 서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옷자락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이 광애라마의 눈빛을 흐트리게 했다. "으으, 홍의교 사상 가장 큰 수치로다. 크으으- 장교(將校) 라마 로 장경고(藏經庫)를 지키지 못하고 도적 맞아 비급을 유실시킨 것도 대죄이거늘… 이인(異人) 하나를 꺾지 못해 수모를 당하다니 ……." 광애라마는 죽음보다 더한 치욕을 느끼며 손을 쳐들었다. 그의 손이 천령개(天靈蓋) 쪽으로 갈 때, "나 같으면 자결(自決)하지 않을 텐데!" 탁몽영은 또렷한 범어(梵語)로 말하기 시작했다. "훗훗- 잘하면 두 가지 절전수법(絶傳手法)을 찾을 천재일우(千 載一遇)의 기회인 것을 모르고 자결하려 하다니… 쯧쯧!" 그는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그의 세치 혓바닥이 몇 마디 말을 만들 어낸 직후였다. "두… 두 가지 절전비급이라니? 그… 그게 무슨 말이냐?" 광애라마는 손을 내리며 탁몽영 쪽으로 다가섰다. "핫핫- 천수마불권(千手魔佛拳)과 적주귀령강기(赤珠鬼靈 氣)라 는 것을 아는 사람을 내가 알고 있다는 말이오!" "그… 그게 사실이냐? 으으, 천수마불권은 천수라마의 비전술법이 고 적주귀령강기는 홍의교에서 창안된 수법 중 가장 강한 것인데? 으으- 그… 그것이 현존(現存)해 있단 말이냐?" 광애라마가 땀을 흘릴 때, "보시오!" 탁몽영은 서쪽을 바라보며 쌍권(雙拳)을 잇따라 쳐냈다. 휘휙- 휙-! 두 주먹이 뿌려지며 일천권영(一千拳影)이 흩날렸다. 꽝꽝- 꽝-! 무수한 권영이 일어나는 찰나, 사 장 밖의 아름드리 거목이 반 토 막으로 박살이 났다. "천… 천수마불권!" 광애라마가 혀를 내두를 때, 탁몽영은 오른손을 번쩍 들고 있었 다. 그는 엄지손가락과 중지(中指)의 끝을 한데 모아 원형(圓形) 을 만든 다음 가벼운 기합 소리를 냈다. "찻-!" 기합과 함께 손가락 끝이 떨어졌다. 피이이… 잉……. 은은한 혈류(血流)가 일어났다. 이어 황홀한 혈광이 뇌전으로 변 하더니 그대로 십 장 밖의 거석에 작살처럼 내리꽂혔다. 콰- 쾅-! 무시무시한 폭음과 함께 거석이 바스러지며 무수한 돌모래가 날아 올랐다. 적주귀령강기(赤珠鬼靈 氣). 그것은 사십구종마공(四十九種魔功) 중 열세 번째 수법이었다. "어떻소?" 탁몽영은 광애라마를 바라봤다. 광애라마는 서 있지 않았다. 그는 두 손바닥, 두 무릎, 그리고 이 마를 땅에 대고 있었다. "그… 그 수법을 아는 사람은 바로 홍의교제일인(紅衣敎第一人)이 라는 전설(前說)이 있습니다. 오오- 그것을 제눈으로 보게 되다 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윗어른을 몰라본 죄를 죽음으 로 씻겠습니다!" "핫핫- 나는 라마승의 윗사람이 아니오!" 탁몽영이 소매를 흔들자, 무영기공이 일어나 광애라마의 몸뚱이를 우뚝 세웠다. '무성(武聖)이다. 아아- 세상에 이런 고수가 있다니…….' 광애라마는 바람에 왔다갔다 하는 풀잎이 된 기분이었다. 탁몽영은 그의 단련된 몸뚱이를 살펴보다가 말했다. "라마승은 외공(外功)에 너무 치중했소. 그래서 홍의교 수법의 진 수를 터득하지 못한 것이오." "잘 보셨습니다. 어르신네!" "핫핫- 나를 따른다면 몇 가지 결점을 고쳐 주겠소." "오오- 저… 저를 거둬 주신다면… 죽음을 다해 충성하겠습니 다!" 광애라마는 다시 오체복지했다. 바로 그 때, 두우- 두두- 따그닥- 따그닥-. 요란한 말발굽 소리와 함께 길모퉁이를 돌아나오는 사두마차(四頭 馬車) 한 대가 있었다. 두우- 두두-! 마차를 모는 네 마리 말은 한혈마(汗血馬) 중에서도 가장 늠름한 건마들이었다. 마차는 빙옥(氷玉)으로 되어 있었다. 마차가 다가서며 한기가 느 껴지는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마차와 함께 겨울이 왔다. 보라, 허공에서 눈이 뿌려지지 않는가! 마차에서 일어나는 한기가 백 장 안을 설국(雪國)으로 만드는 것 이었다. 마차는 꽤 거대했다. 마부석(馬夫席)에는 세 사람이 있었다. 녹의복면인! 흑의노인, 청의노인인데 흑의노인과 청의노인은 등에 고검(古劍)을 메고 있었다. 흑의노인이 메고 있는 검은 폭풍신검(暴風神劍)이었다. 청의노인은 검신의 폭이 좁고 검신의 길이가 긴 기형검(奇形劍)을 메고 있는데, 둘 다 눈을 감고 있었다. 마차의 창문에는 주렴이 내려져 있어 안이 보이지 않았다. 가장 놀라운 것은 마차 뒤쪽에 매달려 오는 것이었다. "어이구-!" 끊어질 듯 이어지는 반벙어리의 비명 소리. 마차와 같은 속도로 굴러오는 한 사람의 입에서 나는 소리였다. 두우두- 두- 따각- 따각-! 질풍(疾風)같이 달리는 마차 뒤, 사람인지 피인지 모를 물체 하나 가 떼굴떼굴 굴러오고 있었다. "제… 제발 죽여 주십시오. 제발……!" 사람이 되어 죽기를 자처하는 사람. 그는 목에 쇠사슬을 두르고 있는데, 쇠사슬의 끝은 마차에 연결되어 있었다. 따각- 따각-! 마차는 비명 소리를 집어삼키는 굉음을 내며 달렸다. 마차가 지나치는 곳에 이상한 종이가 나비처럼 펄럭였다. 폭풍신 검을 멘 흑의노인이 간간이 방문(榜文)을 집어 내던지는 것이었 다. 시뻘건 종이 위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혈미인(血美人)의 수급(首級)을 황금 이천만 량에 사겠다 빙차주인(氷車主人)> 이천만 량짜리의 수급을 천하에 공표하는 방문. 따각- 따각- 두우- 두두-. 눈을 몰고다니는 사두마차는 바로 빙차(氷車)였다. "어이구- 제가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요? 흐흑- 부디 저를 죽여 주십시오!" 피떡이 되어 끌려가는 사람의 머리는 파르스름했다. 하나, 계인(戒印)은 보이지 않았다. "제발… 제발 저를 죽여 주십시오. 나으리들-!" 울부짖는 사람. 그는 천하제일의 음적(淫賊)으로 불리던 사람이었 다. 빙차가 갈림길에 이를 때, "아미타불-!" 빙차 앞으로 불쑥 다가가며 합장하는 산발노인이 있었다. 맨발의 거인(巨人)이었는 바, 그는 네 마리 말이 덮쳐오는데도 조 금도 동요하지 않고 길 가운데 서서 불호(佛號)를 외우는 것이었 다. "비켜라-!" "빙차를 막다니 죽고 싶으냐?" 마부석에 있는 노인들의 언성이 높아질 때, 거인은 땅에 털석 주 저앉아 이상한 말을 지껄이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노래를 부르는 것일까? 그는 한어(漢語)가 아닌 범어로 불경을 외우는 것이었다. 히이이- 잉- 따닥- 딱-! 네 마리 말은 그로인해 속도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 "발칙한 자! 당장 죽여 버리겠다!" 녹의노인의 눈에서 살광이 쏟아졌다. 빙차가 거의 멈춰설 때, "헤헤- 주인은 이제 일어나도 좋다고 했다!" 거인은 범어로 말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는 봉두난발한 머리카락을 바람에 날리며 남쪽으로 걸어갔다. 세 노인이 어처구니 없어 할 때, "헤헤- 모두 장님들인가 봅니다요!" 산발노인은 큰 바위 앞에 이르러 옥체부지했다. 바위 위, 전신을 피로 물든인 사람을 팔과 허리 사이에 잡아 놓고 있는 흑의괴인이 하나 있었다. 그는 대체 어디서 나타났을까? 세 노인은 그제서야 그를 알아보고 눈을 화등잔만하게 떴다. 특 히, 놀라워하는 사람은 녹발노인이었다. "저… 저 놈이오. 저 놈이 화형령주(火刑令主)요!" 그의 목소리가 하도 커 말이 놀랄 정도였다. 히이이- 힝-! 노인의 목소리에 놀란 말이 발굽을 쳐들 때였다. "소문 이상이군. 우리의 이목(耳目)을 속이고 혈화옥랑군(血花玉 郞君)을 훔쳐 가다니!" "훗훗- 제가 묻힐 묘혈(墓穴)을 파는 어리석은 놈!" 다른 두 노인은 중얼거리듯 말하며 서로 얼굴을 바라봤다. 바로 그 때, 고요하던 마차 안에서 차고 나직한 목소리가 흘러나 왔다. "그 자는 허무표묘신법(虛無飄妙神法)으로 다가와 삭옥능영지(削 玉凌影指)로 한철사(寒鐵索)를 자른 다음, 우회금나(迂廻擒拿)로 구양발(歐陽發)을 잡았다. 그 다음, 그는 금리도천파(金鯉渡穿波) 로 뒤로 삼 장 갔다가 곧바로 운룡등공(雲龍謄空)으로 저쪽으로 간 것이다!" 여인의 목소리인데, 여인의 목소리 같지 않았다. 얼음 구덩이에서 흘러나오는 한 줄기 찬바람이랄까? 목소리만으로 도 땅덩이가 다 얼어붙을 것 같았다. 이제껏 누구도 보지 못했다 는 빙차주의 목소리가 그것이었다. 차가운 목소리가 흐르자, 혈화옥랑군을 납치한 탁몽영의 얼굴에 땀방울이 맺혔다. '정말 놀랍다. 아아- 모르고 있던 것이 아니라, 내가 다가가는 것을 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했던 것이구나.' 그는 조금 전 빙차주가 한 그대로 행동했었다. 광애라마가 마부 노인들의 이목을 흐트리는 사이, 그는 다섯 가지 수법을 써서 쇠사슬에 묶여 끌려다니던 사람을 구했던 것이다. "……." 피떡이 된 사람은 작은 숨소리를 내며 죽어 가고 있었다. 원래 어 떤 얼굴인지 알아보지 않을 정도로 상처가 심한 사람이었다. 바로 혈화옥랑군 구양발이었다. 하여간, 빙차는 완전히 정지되었다. 세 노인은 마차 아래로 내려 시립했다. 반면, 탁몽영은 혈화옥랑군을 바위 위에 눕혀 놓은 채 팔짱을 끼 고 섰고, 그의 오른쪽 뒤에는 광애라마가 시립했다. 꽤 답답한 침묵이 흘렀다. 침묵을 깬 것은 마차 속의 목소리였다. "중원의 인물 중 가장 강한 자라고 볼 수 있는 자다." 가는 목소리인데 꽤 멀리까지 들렸다. 나이를 짐작 못할 목소리였 다. "저 자를 잡아 삼노(三老) 아래에 두라. 저 자에게는 빙차일위(氷 車一衛)라는 직함을 내리겠다!" "차주(車主)! 화형령주를 노예로 쓰시겠습니까?" 세 노인이 허리를 숙인다. 녹발마제(綠髮魔帝). 탁몽영이 알고 있는 그는, 세 사람 중 가장 유명하지 못한 사람이 었다. 그의 오른쪽에 있는 청의노인. 그가 매고 있는 기형검에 죽은 사 람의 수는 삼천 명이 넘는다. 마지막으로 죽은 사람은 백오십 년 전 중원제일검(中原第一劍)이었다. 소림속가제자(少林俗家弟子) 항마신검(降魔神劍)이 바로 그였다. 귀형마검(鬼形魔劍)! 그는 중원에 적이 없음을 슬퍼하며 세상을 등진 사람이었다. 귀형마검 곁에 있는 흑의노인. 언제나 슬픈 표정을 하고 있는 사람. 그는 귀형마검보다 일배분 (一輩分)이 높았다. 그는 한 달 사이에 중원구파(中原九派) 장문 인을 모두 죽여 자신의 무공을 천하에 알린 다음 훌쩍 사라진 사 람이었다. 폭풍검마제(暴風劍魔帝). 그는 이백 년 전, 정사제일검(正邪第一劍)이었다. 하나, 지금 그들은 일 파의 장문인도 아니고 맹주(盟主)도 아니었 다. 말똥을 치우고, 말의 갈기를 닦아 줘야 하는 비천한 마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귀형마검이 허리를 숙였다. "차주- 속하 지노(地老)가 화형령주라는 애송이를 삼 초 만에 제 압하는 것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삼 초는 너무 짧다!" "예-에? 화형령주가 속하의 삼 초를 버틴단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 "……." "저 자는 조금 전 혼신공력을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삼백 년 내공 (三百年內功) 정도는 자유롭게 운용했다." "아아-!" "삼백 년 내공이면 귀형마검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 그렇습니다!" 귀형마검이 얼굴을 붉히자, "천노(天老) 폭풍검마제가 나가야 해결될 일이다. 저 자를 잡아 하인으로 거두고 혈화옥랑군을 다시 쇠사슬에 매달아라!" "예엣- 주인님!" 흑의를 걸치고 있는 폭풍검마제가 장읍(長揖)했다가 탁몽영 있는 곳을 향해 다가갔다. 슥-, 그는 순간적으로 이십 장을 날아올랐다. "대단한 위센데?" 탁몽영은 무심결에 손으로 죽립을 고정시켰다. 그가 폭풍검마제가 날아드는 것을 바라보고 있을 때, "광… 광불화인(狂佛火印)-!" 마차에서 큰 소리가 나더니, "천노! 네 적이 아니다. 돌아와라-!" 다급한 목소리가 뒤따랐다. "예!" 폭풍검마제는 탁몽영 바로 앞까지 왔다가 몸을 되돌렸다. 그는 날개 달린 새보다도 자유롭게 허공을 갈랐다. 슥-! 그는 탄지지간에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아가 섰다. "문을 열라- 인노!"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 오자, 녹발마제가 얼른 마차문을 열었다. 마차문이 소리없이 열리자, 안에서 얼음 덩어리 하나가 둥둥 떠서 내려왔다. 그것은 모공(毛孔)에서 빙무를 일으키고 있는 백의여인 이었다. 얼굴을 몽면으로 가린 여인인데, 머리는 궁장차림으로 틀어올리고 있었다. 옷차림이 풍성해 몸매가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스슥-, 여인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눈이 더 많이 뿌렸다. 스슥-, 여인은 느릿느릿 탁몽영 쪽으로 다가섰다. "광불화인(狂佛火印)을 다시 한 번 보여 다오!" 느릿느릿한 목소리에는 신위가 담겨 있었다. "광불화인이라니?" 탁몽영이 반문하자, "광불화형수(狂佛火刑手)를 익힌 흔적이 네 손바닥에 있지 않느 냐? 그것을 보여 달라는 말이다." "……." 탁몽영은 철퇴에 두드려 맞는 심정이 되었다. 아직 누구도 몰랐던 그의 진정한 출신(出身). 그가 광불화형전(狂佛火刑殿) 사람임을 알아보는 사람이 드디어 나타난 것이다. 광불화인(狂佛火印). 그것은 광불화형수를 익힌 사람의 손바닥에 나타나는 붉은 기운을 말한다. 빙차주는 멀리서 그것을 알아보고 폭풍검마제를 만류하고 직접 나섰던 것이다. "천 년간의 무공 두 번째인 광불화형수를 익히면 손바닥에 붉은 기운을 띠게 되고, 몸에서 열기(熱氣)를 발한다. 다른 사람은 모 르나 나는 안다!" 빙차주는 탁몽영에게서 삼 장 떨어진 곳에 멈춰 섰다. "한 가지는 맞으나, 한 가지는 틀렸다." 탁몽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슨 말이 틀렸느냐?" "광불화형수가 두 번째라는 것이 틀린 말이다!" "그럼 그것이 첫째라고 여기느냐?" 빙차주의 목소리가 더 차가워질 때, "훗훗- 반박할 말이 있느냐?" 탁몽영의 목소리도 그녀의 목소리 못지않게 차가워졌다. "……." "……." 두 사람은 서로를 노려보며 일 각을 보냈다. 빙차주가 한참 참다가 말했다. "광불화형전이 설 때의 하늘(天)은 좁았다. 하나, 그 이후 무림의 하늘은 높고 넓어져, 그 이상 가는 절기가 나타났다." "글쎄-!" "네 스스로 알고 싶으냐?" "알려 주면 고맙겠다. 훗훗- 이제껏 일 초 상대를 만나지 못했는 데… 훗훗- 너라면 나의 삼 주야(晝夜) 상대는 되겠구나!" 탁몽영은 말하며 광애라마를 바라보며 전음으로 말했다. "나의 수하들을 찾아가서 내가 빙차주와 겨루게 되었다고 말하시 오. 나의 수하는 모두 범어에 능하니 말이 잘 통할 것이오. 불패 검과 오목선자라는 모두 좋은 사람들이오." "예, 주인!" 광애라마는 허리 숙였다가, "한데, 굳이 싸우실 필요 있겠습니까? 원한도 없는데?" 하며 은근히 싸움을 만류했다. "진정한 고수는 원한 때문에 싸우지 않소. 무공 때문에 싸우지 -!" 탁몽영은 중얼거리듯 말하며 손을 휘저었다. 슥……. "어어- 엇!" 광애라마의 몸뚱이는 무형의 경력에 휘말리며 십 장 밖으로 날아 갔다. 탁몽영은 그를 날려 버린 다음, 빙차주를 쏘아봤다. "싸우기 전에 따질 것이 있다!" "뭐냐?" "혈화옥랑군의 일이다." "훗- 그 자를 알고 있느냐?" "훗훗- 네게 잡혀 만신창이가 된 혈화옥랑군은 내게 죄를 진 자 이고, 나의 수하 하나를 망친 자다. 혈화옥랑군은 이제 나의 포로 가 되었으니, 그렇게 알거라!" "그렇게 할 수 없다." "훗훗- 목은 하나인데 노리는 사람은 둘이니 싸울 이유가 또 하 나 늘었군! 그럴 바에는!" 탁몽영은 말하며 발을 슬쩍 내저었다. 퍽-! "케에에- 엑-!" 혈화옥랑군은 오공(五孔)에서 검은 피를 토하며 튀어 올랐다. "고… 고얀 놈!" 빙차주는 발끈 노하며 소매를 흔들었다. 날아오르던 혈화옥랑군의 몸이 섭물진기(攝物眞氣)에 끌려 다시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쿵-! "……." 혈화옥랑군은 흙바닥에 처박히며 입을 크게 벌렸다. 그러나 입에 서는 숨결이 흘러나오지 않았다. "죽이다니……!" 빙차주가 분노하자, "훗훗- 그 자와 무슨 원한이 있는지 모르나, 그 자에게 영약을 먹여 몸을 강철같이 만든 다음 개처럼 끌고다닐 필요까지야 있느 냐?" "으으- 네… 네가 나의 인질을 죽이다니! 으으- 너는… 죽어야 한다!" 빙차주의 목소리, 그 소리가 갑자기 탁몽영을 떨게 했다. 한동안 잊었던 목소리. '문군(文君)의 목소리다.' 탁몽영은 피가 마르는 기분이 되었다. 사문군의 음성! 빙차주의 목소리가 그녀의 목소리로 들릴 줄이야……. 그가 몸을 휘청일 때, "죽이겠다. 세상의 모든 사내 놈을!" 빙차주의 손이 어지럽게 흔들렸다. 꽈르르- 릉- 꽝-! 우수(右手)의 빙백강기(氷魄 氣), 좌수(左手)의 한음신강(寒陰神 ). 두 가지 기운이 한데 섞이며 빙극신강(氷極神 )이라는 가공(可 恐)할 힘을 만들었다. "자… 잠깐……!" 탁몽영은 또다시 들리는 문군의 목소리에 사지를 떨며 빙극신강을 쓴 여인을 봤다. 그 자태가 낯익게 여겨질 때였다. 꽈꽝-! 벼락치는 소리와 함게 몸이 꽁꽁 얼어붙었다. 호신강기(護身 氣)와 외공(外功)이 산산이 박살나며, 피가 끓어 올랐다. "너… 너무 강하군. 으으!" 그는 얼음에 뒤덮이며 휘청거렸고, 순간, 꽈르르르- 릉- 꽝-! 빙차주의 무자비한 손은 다시 한 차례 그의 몸을 후려갈겼다. 벼 락치는 소리가 나며 탁몽영의 몸뚱아리가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휘이이- 익-! 그의 몸이 구릉(丘陵)을 넘어가자, 빙차주가 옷자락을 떨치며 뒤 쫓아갔다. "왜 손을 쓰지 않았을까? 왜 호신강기를 극성으로 일으키지 않았 을까?" 그녀는 어이 없어 하며 뒤따르다가, 풍덩- 쏴아아- 쏴아아-. 급류(急流) 앞에 이르러 발을 세우고 말았다. "물… 물에 빠지다니……." 그녀는 황하 쪽으로 흘러가는 거센 물줄기를 볼 수 있었다. 탁몽영은 훌훌 날아가다가 폭이 오 장 정도 되는 급한 물줄기 속 으로 떨어져 내리고 만 것이었다. "왜 손을 쓰지 않았을까? 왜?" 빙차주는 오랫동안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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