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기 雙冀
![[쌍기] 아버님께서 고려에 오고 싶어 하신다...?](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img.kbs.co.kr%2Fcms%2FICSFiles%2Fartimage%2F2004%2F02%2F27%2Fc_d_emp07%2F20040227_101909.jpg)
혜종, 정종, 광종 시대를 배경으로 한 KBS 대하 사극 '제국의 아침' 에
등장한 쌍기의 모습
#高麗史93卷-列傳6-雙冀-001
○雙冀後周人仕周爲武勝軍節度巡官將仕郞試大理評事.
쌍기는 후주(後周) 사람이니 주(周)나라에서 벼슬하여 무승군(武勝軍) 절도 순관(節度巡官), 장사랑(將仕郞), 시(試) 대리 평사(大理評事)로 있었다.
光宗七年從封冊使薛文遇來以病留及愈引對稱旨光宗愛其才表請爲僚屬.
광종 7년에 봉책사 설문우(薛文遇)를 따라 왔다가 병으로 머물러 있게 되었고 병이 완치되자 왕이 불러 보았는데 그의 응대(應對)가 마음에 들었으므로 광종이 그 재주를 사랑하여 국서를 주나라에 보내서 그를 요속으로 삼을 것을 요청하였다.
![[유신성과 쌍기] 장기를 보면 정치가 보입니다](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img.kbs.co.kr%2Fcms%2FICSFiles%2Fartimage%2F2004%2F02%2F27%2Fc_d_emp07%2F20040227_101850.jpg)
遂擢用驟遷元甫翰林學士. 未逾歲授以文柄時議以爲過重.
이리 하여 그를 등용하게 되었으며 원보(元甫), 한림학사(翰林學士)로 급속히 승진시켰다. 그리고 그 해가 지나기도 전에 문한에 대한 직권(文柄)을 맡기니 당시 공론이 과중한 등용이라고 평하였다.
![[광종] 경들은 들으시오](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img.kbs.co.kr%2Fcms%2FICSFiles%2Fartimage%2F2004%2F02%2F27%2Fc_d_emp07%2F20040227_101843.jpg)
고려제국 제4대 황제 광종 - 노비안검법, 과거제. 공복 제도 등을 실시하여
호족의 세력을 누르고 고려 황실의 권위를 세우며 황권을 강화한 황제입니다.
九年始建議設科遂知貢擧以詩賦頌策取進士甲科崔暹等二人. 明經三人卜業二人
광종 9년에 처음으로 건의하여 과거(科擧)를 설치하고 드디어 그가 지공거(知貢擧-과거를 주관하는 관직)로 임명되어 시(詩), 부(賦), 송(頌), 책(策)으로써 진사(進士) 갑과(甲科)에 최섬 등 2명, 명경과(明經)에 3명, 복업과(卜業)에 2명을 선발하였다.
![[쌍기] 역사란 비정한 것이어서 패자에게는..](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img.kbs.co.kr%2Fcms%2FICSFiles%2Fartimage%2F2004%2F02%2F27%2Fc_d_emp07%2F20040227_101851.jpg)
自後屢典貢擧奬勸後學文風始興. 十年父侍御哲時爲淸州守聞冀有寵隨回使王兢來拜佐丞此後史逸.
그 후 여러 차례 과거의 일을 맡아 보며 후진 학도들을 권장하였더니 글을 공부하는 기풍(文風)이 흥성하기 시작되었다. 광종 10년에 그의 부친 시어(侍御) 쌍철(雙哲)은 당시 중국의 청주(淸州)원으로 있었는데 쌍기가 왕의 총애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회사(回使) 왕긍(王兢)을 따라 고려로 와서 좌승(佐丞)으로 임명되었으나 그 후의 일은 ≪사기≫에 전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