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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왜 고난을 당하는 것일까?
사도행정 16장 16절-34절
사람들이 감당하기 힘든 고난을 겪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경우도 허다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고난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행복하고 평탄한 인생을 살았다 할지라도 결국 인간은 죽기 때문입니다.
유한한 인간에게 고난은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왜 고난을 당해야하는지, 고난이 왜 있는지 충분히 설명하기는 불가능합니다.
도리어 아무 잘못한 것도 없는데 이유없이 고난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베드로는 고난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니 악을 행하다가 고난을 당하지 말고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당하는 것이 낫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고린도후서 1장 4절에서 환난 중에 하나님께서 바울을 위로하심으로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 능히 위로하게 하신다고 증거를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고린도후서 1장 8절,9절에서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바울 자신이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바울로 하여금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신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고 증거했습니다.
바울은 바울 자신이 고난당하는 이유를 하나는 고난당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함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려함이라고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왜 고난을 당하는지를 충분히 설명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어떻게 할 것인지를 설명하고 있을 뿐입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은 바울이 하나님의 인도하심 따라 아시아 쪽으로 복음을 전파하지 않고 유럽으로 복음을 전파하게 되었을 때 유럽의 첫 성 빌립보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성에 도착했을 때 기도할 곳을 찾고 기도하러 강가로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바울이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귀신 들린 여종하나를 만나게 됩니다.
그 여종은 점으로 자기 주인에게 큰 이익을 주는 여자였습니다.
그 여인이 바울 일행을 따라와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전하는 자라.”하였습니다.
하루만 아니라 여러 날을 하였음으로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여 귀신을 여종에게서 나가게 했습니다.
그러자 여종이 점을 치지 못하게 되고 여종의 주인들이 수익이 끊어지게 되었습니다.
수익이 끊어지자 여종의 주인들이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로 관리들에게 끌고 갔습니다.
그리고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바울의 일행들이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고 로마 사람이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고 고발을 하였습니다.
상관들이 바울 일행들을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인도하심 따라 빌립보 성에 가서 복음을 전했는데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는 고난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고난을 당한 바울은 기도하고 찬양하고 감사하고 순종했습니다.
고난 중에도 바울은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을 했습니다.
바울이 할 일은 복음을 이방인들에게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라면 어떤 고난도 감사함으로 받아드릴 수 있었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었습니다.
도저히 받아드릴 수 없는 고난도 있습니다.
그래도 기도하고 감사하고 찬양하고 순종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삶입니다.
감당할 수 없을 때에도 고통 속에서 기도하고 감사하고 찬양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내 모든 일들을 다 주께 맡기니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라고 고백하며 사랑으로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절규하셨지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인류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디고 이깁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고난까지 감당하는 이유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할 때에도 우리가 사는 이유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왜 사람들이 고난을 당하는 것일까요?
고난이 인간에게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고난을 당할 때 인생을 돌아보게 되고 인생의 진리를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고난을 당할 때 인간의 참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고난당할 때에도 진리의 말씀과 거짓이 없는 사랑으로 살았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바울이 기도하고 감사하고 찬양할 때 옥문이 열리고 차꼬가 풀리는 놀라운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바울을 지키던 간수는 옥 문이 열렸으니 당연히 바울과 그 일행이 감옥을 나갔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자결을 하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간수가 죄수를 지키다가 죄수가 도망하면 간수는 로마법에 의해서 사형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간수는 사형을 당할 것을 생각하고 자결을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바울과 그 일행은 감옥 문이 열렸는데도 감옥을 나가지 않았습니다.
간수가 바울의 모습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의 참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로 인해서 간수가 복음을 받아드리고 자기와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빌립보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교회가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기 때문에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고난을 허락하셨을까?
고난이 사람들에게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남은 사명은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것, 교회를 개혁하는 것입니다.
그 사명을 위해서 어떤 고난도 감당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고난을 당할 때 왜 살아야하는지를 묻게 됩니다.
그리고 사명을 발견하게 됩니다.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어떤 고난도 다 감당했습니다.
바울에게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사명이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1장 10절에서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바라노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사명이 남아있는 한 죽지 아니하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매를 맞고 차꼬에 매여서 감옥에 갇혔지만 기도하고 감사하고 찬양하며 이웃을 사랑하며 순종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파하는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그리고 고난을 당할 때도 이웃을 사랑하는 바울을 통해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의를 행하다가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선을 행하다가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정신장애인이 가난하니 사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은 자발적 가난의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나눔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입니다.
예루살렘교회 교인들은 가진 것을 서로 필요에 따라 나누며 살았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가진 것이 없으면 사는 것이 힘든 사회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은 것들을 소유하려고 합니다.
소유한 것이 많을수록 편하게 살 수 있는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가진 것을 나누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능력껏 벌고 필요에 따라 나누며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모습입니다.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당하고 의를 행하다가 고난을 당해도 기쁨으로 기도하며 감사하며 찬양하며 순종하며 사랑하며 사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사람들이 왜 고난을 당하는지를 다 알 수는 없지만 고난을 당해도 의를 행하고 선을 행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오늘도 힘든 길을 가지만 우리는 의를 행하며 선을 행하며 하루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파할 수 있다면 인생은 고난을 당해도 살만한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고난의 의미를 알게 하옵소서.
고난 중에도 기도할 수 있고 감사할 수 있게 하옵소서.
사랑함으로 고난이 우리에게 유익함을 알게 하옵소서.
고난 중에도 복음이 전파되게 하셔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 - 멘

첫댓글 고난 중에도 기빠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