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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네팔 안나푸르나 1일차. 2일차~히말라야 언저리에 발을 들여 놓다.
네팔을 다녀온지 벌써 2달째.
네팔은 모놀의 해외여행 중에서 가장 감동이 컸지만 히말라야 고봉만큼이나 부담도 컸다. 태산같은 감동을 어떻게 써내려가야 할지 도통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리고는 오늘 결심했다. 오늘부터 일주일동안 모든 일을 스톱시키고 오로지 감동의 복기를 하면서 히말라야 여행기를 쓰겠노라고 ~ 베란다 빨간 대야를 봐도 랄라구라스가 생각나고 길거리에서 본 백색의 빙수를 봐도 면 마차푸차례가 생각나니 아마 히말라야의 상사병이 단단히 든 모양이다.
몹쓸 전염병이다. 1년전 협회의 임인학 선배가 그랬다. 멍한 표정에 틈만 나면 히말라야예찬을 하니 병에 단단히 걸린 모양이다 한편으로는 그곳이 얼마나 좋았으면 임 선배가 그랬을까 묘한 호기심이 발동한 것이다.
1월 초순이었다. 임선배로부터 혜초여행사 김부장을 소개받고 그 날 전화통화 하고 바로 달려가 만나 날짜를 잡아 버렸다. 이심전심이랄까, 눈빛과 대화 몇마디 나누면 면 와닿는 사람이 바로 김병구 부장이다.
모놀의 해외답사....이리 신속한 결정은 없으리라 다음날 공지 올리고 그 다음날 신청받자마자 30명셔터를 내려 버렸다. 임선배의 전염병이 나를 움직였고 하룻만에 모놀식구들의 가슴속 깊은 곳까지 전염 시켜 버린 것이다.
두 번에 걸친 설명회. 그리고 세 달의 혹독(?)한 훈련~~ 프로니까 자율에 맡겼다. 그리고 4월 19일 31명의 전사는 세계의 지붕을 향해 비행기에 오른다.
네팔을 다녀오고 나서 난 결론을 내렸다. 세상은 두 부류의 인간이 있다고 본다. "히말라야를 본 사람과 안 본 사람"
영화 버킷리스트.생이 얼마 남지 않음을 알게된 두 사람, 잭 니콜슨과 모건 프리먼 둘은 죽기 전에 꼭 하시 싶은 일들을 적어 실천에 옮긴다. 문신하기, 카레이싱, 소녀와 키스하기 등등 그들의 마지막 묻힌 곳은 히말라야였다. 삶의 종착역으로 히말라야를 삼은 것이다. 일생의 한번쯤은 히말라야를 마주하길 권한다. 자신을 돌아보기에 이만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왜 산을 오를까? 년중 6개월을 네팔의 산악가이드 조차 대답을 못한다. 아니 우리에게 다시 묻는다. '나야 돈을 벌기 위해 오르지만 당신들은 무엇 때문에 오릅니까?' "산이 거기에 있어서' 고루하고도 해매한 답변은 하고 싶지 않다.
거대한 설산을 마주하고 있는 그 순간, 난 한없이 작고 초라한 존재임을 알게 되었다. 티끌 만한 내가 너무나 거만하게 살아온 것이 후회되었다. 요욕으로 가득한 마음으로 설산을 대한 다는 것이 용납되지 않아다.
난 거대한 고해소를 마주하고 가슴속 깊은 곳에 숨겨둔 죄를 끄짚어 내 절대자에게 마구 떠들었다. 찌질한 죄들이 순백의 눈 속에 파묻혔으면 하는 바램이었을까?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안개 속에 나의 죄과가 사라지길 기대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눈을 뜨고 안나푸르나를 보니 듬직한 아버지 처럼 보였다. 산은 나를 두 팔로 보듬어 주고 있었고 나는 그 품에 안겼다.
<1일차>
여행자에게는 묘한 촉수를 가지고 있다. 공항에 발을 들여 놓은 순간 공기를 색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세계를 아우를줄 아는 자유인 말이다.
세계 최고의 시설을 자랑하는 인천공항 구내를 방황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해외공항에 발자국을 찍을수록 우리 공항이 얼마나 시설이 좋고 고마운지 알게 된다. 시설을 떠나 중국은 줄을 길게 세워 놓는 것을 즐기고 러시아는 보드카처럼 우릴 차갑게 대한다.
출발시간은 아침 8시 25분. 네팔 카투만두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목적지까지 무려 6시간 30분이나 걸린다. 같은 아시아대륙이지만 네팔은 생각보다 먼 곳에 있다. 비행 정보를 보고나서야 그 해답을 찾았다. 8천미터 고봉이 자리잡은 히말라야를 비행기가 넘기 힘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인도차이나 반도를 거쳐 인도 콜카타 인근을 지나 카투만두로 들어서는 것이다.
3시간 15분 시차가 난다. 도착하니 점심쯤이었다. 그토록 오고 싶었던 네팔. 트랩에 내려와 키스를 하고 싶었지만 교황님 흉내 낸다고 욕할까봐 슬쩍 손만 댔다. 그 땅의 감동이 손끝을 타고 올라온다.
카투만두 트리부반 공항은 비스듬한 경사지붕을 가지고 있다. 히말라야를 상징하는 고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어찌보면 파탄의 더르바르 광장 사원의 처마을 닮은 것 같기도 하고
피텀버 라나가 환영의 인사로 우리들에게 꽃다발을 목에 걸어주었다. 나마스테. 산드라님은 현지인 같애.
우리가 머문 안나푸르나 호텔. 시내 한복판에 있어 타밀거리나 더르바르 광장을 도보로 오갈 수 있다. 공해로 악명 높기로 소문난 카투만두의 허파라고 할까.
수영장 딸린 호텔에다가 꽃 화원이 가득. 카투만두와 파탄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꺼내겠다.
다음날 아침 카투만두에서 포카라로 떠난다. 포카라는 카투만두에서 북서쪽으로 200여km. 밀림에다가 길이 좋지 않아 무려 6시간이나 걸린다.
가장 빠른 방법은 국내선 비행기. 30분이면 꿈의 도시 포카라에 닿는다. 트리부반국제공항 바로 옆에 국내공항이 자리하고 있는데 솔직히 우리네 시골 시외버스터미널 보다 못하다. 거기다 공사까지 하고 있으니 더욱 처량하게 보인다.
공항이 후졌다고 몸수색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오산. 어찌나 세심히 더듬던지~~나중에 무안하기 까지~한국이라면 성추행이야.
국내공항 역시 천장은 계단식이다. 어둡고 침침하다.
구형 삼성 TV인데 평판 TV로 바꿔주지~ 시골향기 물씬 묻어나는 공항을 보니 포카라행 비행기는 안전할까 걱정이 된다. 종종 사고가 나던데.
보딩패스에 항공사 이름을 보니 그나마 마음이 놓인다. 부처님 항공사. 그렇다면 우린 반야용선을 타고 서방정도로 가네~~참 그럼 죽는 건가^^
비행기까지는 셔틀버스로 갈아 타야 한다.
좌석은 지하철처럼 서로 마주보고 앉게 되는데 모르는 사람과 마주하면 무안할거야. 우리야 단체니까 더 행복하다.
드디어 반야용선에 오른다.
50석인데 우리 일행이 33명이니까 전세기나 다름 없다. 비행기 세워~~그럼 세워줄까~
성냥갑 같은 카투만두시내를 벗어나니 구름속으로 ~히말라야 산맥을 보는 것은 포기 우리나라처럼 초록의 산이 아니라 주름처럼 보인다. 바로 계단식 논 때문이다. 우리나라 땅덩어리의 2/3 , 인구는 2200만명. 먹고 살기 위해서는 산으로 기어 올라 땅을 일궈야만 목에 풀칠할 수 있단다. 30분....오르자마자 내리란다. 포카라. 하늘도 쾌청한데다 사뭇 공기도 다르다.
더구나 늘씬한 스튜어디스가 우릴 기쁘게 해준다. 우리란 남자들
혹시 대장을 한류스타로 아는 것은 아닌지~~ 가게 전방같은 공항을 빠져나왔다.
여행사에서 내준 침낭을 카고백에 넣었다. 8일동안 나를 따뜻하게 해줄 이불이다. 잘 골라야지. 재수 없으면 여름 침낭을 고를 수도 있다.
이 많은 짐이 버스에 다 들어가다니~~.
포카라는 네팔 제2의 도시이자 트레커의 안식처다. 네팔에 산만 삐쭉 있다면 얼마나 삭막할까. 포카라라는 지명 역시 '호수'라는뜻에서 유래되었다. 어째 이온음료 포카리스웨트와 어감이 비슷하다.
페와호숫가 산책에 나섰다. 히말라야의 만년설이 녹아 넉넉한 호수가 되어 네팔사람들의 생명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건너편 섬인 바라히 사원까지 부지런히 배가 오간다.
날씨가 도와주지 않아 호수에 비친 설산을 보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정한수를 놓고 기도하듯 거대한 산그릇에 페와 호수를 담고 모놀의 무사귀환을 기도했다.
오른쪽 사랑곳 전망대에서는 인간새가 하늘을 수놓고 있다. 모놀식구중 유일하게 고운님이 페러를 탔다고 하던데...아이고 부러워 사랑곳~~네팔어라고 하는데 무척 사랑스러워
점심은 혜초펜션에서 비빔밥으로~~든든하게 먹자. 그래야 산을 오르지
입가심으로 에베레스트 맥주 한 잔~걸쳤다.
최초등정자인 힐러리 경이 아니라 함께 등정한 네팔 셀파인 텐징노르기에가 모델이다. 시원한 맥주가 목구멍을 타고 오니 빙하를 들이킨 기분
배낭여행객의 안식처인 포카라. 전세계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여행객의 천국이지만 포카리 시 안쪽에는 아직도 힘들게 살아가는 네팔리안이 더 많다.
우리 32명+요리사 7명+가이드 6명+포터24명
총 69명..2개 소대가 넘는다. 가방 분배에 무척이나 신경쓴다. 한 개당 15kg 2개씩 그러니까 30kg을 메고 우리와 함께 9일을 함께 한다. 포터대장이 무거운 가방과 가벼운 가방을 짝을 이루게 한다.
산악 가이드만 6명. 선두, 중간, 후미 등에 서서 절묘하게 페이스 조절에 신경쓴다. 우린 연예인이고 이들은 보디가드 ^^
테디는 이병헌을 닮았단 말야.
네팔의 여인들은 달팽이 같이 매일 커다란 짐을 지고 다닌다. 발가락 사이에 슬리퍼를 끌고 무거운 짐을 머리에 지고 고행의 길을 걷는다. 알록달록한 등산복을 입고 이들 사이로 지나가는 것이 얼마나 미안한지 모른다.
나야풀 상점 앞에서 몸을 푼다. 9일 동안의 사투를 이겨내고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까? 몇 몇의 얼굴에는 기대 반, 근심 반의 표정이 역력하다.
드디어 출발~~~모놀 파이팅. 딱 8일 후에 이 자리에 다시 서게 된다. 부디 모두 함께 하길~~~ 답 3명이 빠졌지
입구는 보잘 것 없지만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니 제법 번화가가 이어졌다. 카레를 잔뜩 넣은 라면땅은 고도가 높아서 그런지 봉지가 잔뜩 부풀어 올랐다. 과일행상도 보였는데 탐스런 과일만 먹고 온 한국인의 눈에는 도무지 손에 집을 과일이 보이지 않는다. '나마스테' 환호를 받으며 대장정에 나선다.
세계 어디를 가든 아이들의 맑은 눈망울은 여행자의 힘을 북돋아준다. 큰 여자아이는 한국인이라고 말하면 깜빡 속을 정도로 우리와 닮았다. 십자가가 달린 천막교회를 지나자 시몬님이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 기부한다.
이 척박한 땅에 교회가 서 있는 자체만으로도 고마운 모양이다.
'링가'라고 불리는 남근석이 서 있고 반들 반들한 받침대는 '요니'라는 여근석이다. 음양의 조화랄까.
링가에서 갈라져서 시바신이 나오고 그는 삼지창으로 무장하고 있다. 이럿듯 시바는 다산의 상징이며 정력의 상징으로 통한다. 8일 동안이나마 시바 체력을 빌리고 싶은 심정이다.
소독차가 하얀 약을 뿌리면 아이들이 몰려들 듯 웃는돌님 카메라에도 아이들의 인기가 대단하다.
마을을 지나자 다시 넓은 길이 나온다. 히말라야 속내로 큰 길이 늘어난다. 왠지 문명의 속도가 히말라야의 꿈을 추월하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하다. 멀리 설산이 아른거리자 일행들은 술렁거린다. 거대한 설벽을 마주하면 어쩔려고~~
기게적으로 망치질 하는 소녀. 우리가 '나마스테'를 외쳐도 시선 한번 주지 않고 톱니바퀴 돌 듯 망치질에만 열중하는 소녀. 하루 일당 800원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소녀가장이다. 이들에게는 학교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
내 딸 정수가 이 곳에서 일주일만 돌을 깬다면 "세상에서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라는 말이 나올 걸
8일간의 산행을 마치고 짚차를 타고 오는 한국인들. 설산을 보고온 이들이 마냥 부럽기만 하다....8일동안 생고생 할 우리를 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8일 후 우리가 내려올 때 한국인들이 다시 올라가는 모습을 보니 무척이나 측은해 보였다. "우린 호텔 가서 발 뻗고 잘 거다. " '
콰이강의 다리 처럼 철교가 나타났다. 8일 동안 건넜던 다리 중에 가장 묵직한 다리다. 과연 저 회색 물은 어디서 흘러 내려왔을까?
모디콜라. 바로 안나푸르나에서 내려온 빙하수였다.
강을 건너니 베레탄티 마을이 나오고 반가운 한글이 발목을 잡는다. 엄홍길 휴먼재단에서 세운 학교다. 하긴 아이들의 유일한 희망은 배움이다. 배움이 없다면 이 산골에서 땅을 갈며 살아야 하니까
그 삼거리에 관광안내소가 자리잡고 있다.
입산허가증을 받는다. 성명 여권번호, 날짜 등이 표기되어 있다. 하산하면 도장을 받는다. 완주 증명서로 대체
서양인들은 포터를 고용하지 않고 본인이 직접 짐을 진다. 우리와 비교가 되네 비레탄티는 하얀 집들이 녹음과 잘도 어우러진다. 마을에는 넓직한 돌계단이 주를 이룬다. ~~8일 내내 돌과 친구가 되어야 한다.
뷰릉 콜라..콜라는 강이란 뜻인데 ~~콜라만큼 달콤하다고 보면된다. 비레탄티를 지나니 우리네 칠선녀 폭포쯤 되는 근사한 폭포가 반긴다. 사진에 콩알 만하게 보이는 것이 여자인데~~폭포와 어울리는 선녀같다.
혹시 궁금해하는 것 같아 확대~~'
내가 인솔하는 대장만 아니었으면 내려가서 서양선녀와 놀았을텐데~~아줌마들이 정수맘에게 고자질할까봐 참았다.
짐을 가득 실은 짐차 기우뚱거리며 올라오고 있다. 바로 우리 짐이었다. 그나마 이곳까지 길이 놓였으니 오늘 포터는 앉아서 돈 버는 셈이다.
마을 지나니 밀밭에서 여인에 풀을 뽑고 있다. 나마스테 라고 인사를 건내니 벌떡 일어나서 우리에게 안전을 빌어준다. 어찌나 고마운지~~
이런 네팔인의 따뜻한 마음은 우릴 히말라야를 고향으로 만들게 해주었다.
이모쯤 되는 네팔인이 우리와 동행을 한다. 나야풀 마을에서 닭 한 마리 사오는 모양이다. 표정이 무척이나 맑앗다. 가슴에 닭을 품고 흙길을 걷는 모습이 정겹게 보인다.
한 쪽은 네필인이고 한 쪽은 덜깬주 언니인 진도토리님이다. 어찌 이리 닮을 수 있을까? 체형이 똑같애~~덜깬주님과 닮은 사람이 러시아에 있던데~ ~ 비탈에서 풀을 뜯고 있는 양에게도 시선을 줘야 하고 밭에 김매눈 여인에게도 사랑스런 시선을 던저본다.
길이 놓이면서 오지사람들이 삶도 바뀌었다. 조그만 찦차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던지~~문명을 이어주는 초고속 교통수단으로 KTX가 부럽지 않다.
개울을 넘어가는 것은 식은 죽먹기, 구불구불 경사길을 오르는 모습이 위태롭다. 거기다 지붕에는 사람들이 앉아 있고~~
마을 남자들이 물고기를 잡고 있다.
옷수선하는 여인. 우리가 지나가도 무감각...재봉틀소리만 들릴 뿐. 개가 더 반가워 한다.
난 이소녀의 눈망울을 잊지 못한다. 두손을 모우고 날픈 목소리로 '나마스테'를 외치는 모습은 천사 그 자체다.
Sudame에서 차를 마셨다. 화초로 가득한 집. 그림 같은 식당.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힘들다 싶으면 어김없이 롯지가 반긴다. 이곳에서 진한 찌아를 마셨다. 우유와 찻잎을 섞은 차로 어 네팔인이 가장 애용하는 음료다.
쉼터는 돌을 쌓아 놓아 배낭을 얹도록 만들어 놓았다 가끔 대나무의자가 있는데 나랑 은사시나무님이 같이 앉았는데 우지끈~~ 의자가 무게에 못이겨 부러진 것이다. 이 때는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기는 법~~범인은 은사시나무님
가이드가 이곳에 머물고 차를 팔아주는 이유는 롯지주인 딸이 예뻐서라는데~ 삼각관계
대마도에 가면 이사야네라는 돌지붕집이 있는데 문화재로 지정되어있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지붕이 날아가는 것을 막으려고 했는데~~네팔의 집은 거의 돌지붕으로 보면 된다. 가장 흔한 것이 돌이니까.
야자열매인가??
바나나 꽃도 처음 봤다. 꽃이 아이 몸통 만하다.
고갯길을 넘어가니 아리랑가락이 흥얼거려진다. 아무래도 네팔은 한국과 닮은 점이 너무나 많다. 교육열도 그렇고 가족사랑도 그렇고 , 산도 물도 많고... 오늘은 맛배기 산행이랄까? 등산화 적응시간으로 봐야 한다. 고갯길 끝자락에 오늘 우리가 머물 힐레(hille)라는 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hill이란 이름처럼 언덕 경치고 그만이며 건너편 다랭이 논을 감상할 수 있는 포인트다.
롯지에 도착하니 산악가이드가 수고 했다고 따끈한 오렌지주스를 건낸다. 과일 주스를 뜨겁게 마시니 속이 따뜻하고 편하다. 찬 물 마시는 나라가 몇이나 될까? 그만큼 물이 깨끗해야 하는데 이침에 일어나면 문앞에 따끈한 차를 대령하고 저녁때 도착하면 요리사들이 미리 차를 끓여 놓아 피로를 풀게 했다. 8일 동안은 우리가 귀족이다.
카고백을 롯지 방까지 가져다주고 아침이면 포터들이 카고백을 챙겨서 떠난다. 그러니 8일동안 카고백을 들을 기회가 없다.
이 예쁜여인들은 요리사 포터 . 무거운 짐을 들고 성큼성큼..어찌나 빠르게 가던지~고마운 분들이다.
롯지에 오니 마음이 편해졌나보다. 로미와와 줄리엣처럼
2인1실~~롯지. 판자도 대충 엮어 놓았기에 방음장치는 전혀 되지 않는다. 내 방 나란히~~소음 때문에 고생했다고 하니까.위 로 올라갈수록 방은 열악하다. 해가 뜨지 않으면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다. 히긴 이런 맛을 즐기기 위해 네팔을 찾지 않았는가?
식사시간이다. 세상에나 돼지고기 수육, 토종 된장. 상추, 김치 ~~한국에서 먹는 것 보다 더 맛있었다. 거기다 후식으로 포도까지~~
네팔인 요리사 7명 작품이다. 너무 고마워서 박수를 쳐주었다. 수육에서 국수까지~~솔직히 정수맘보다 훨씬 요리를 잘한다.
후식으로 히말라야 커피와 유기농 설탕~~맥심커피 사절
히말라야 첫날~~롯지 식당에서 남자들끼리 우애를 다지며 한 잔~부라보
과연 내일 히말라야는 얼마나 우릴 감동시켜줄까~ 그걸 기대하면서 쿨쿨~ |
첫댓글 사진 한 장 한 장..글 한 줄 한 줄..모두 추억이예요..아름다운 추억..
기운없고 처져있을때 내마음을 힐링할 수 있었던 네팔에서의 아름다운순간...
빗소리, 바람소리에 눈떠서 대장님의후기 반갑네요.
다시한번 뻐근하고 가슴아리던 안나프르나의 그림이 스멀거려 남들이 알지못하는 가슴알이를 하고있는걸 간간이 느낄때 대장님이 적시타를 날리는군요.
내삶이 방전될때쯤 안나프르나의 아름다운풍광에서 사치스럽게 모놀했던시간이 충전기가되고있답니다 ㅋㅋ...
현지인과 닮았다는 도토리 님 사진에 갑자기 폭소가 모니터에.ㅎㅎ
어찌하여 같이 사진을 찍게 되었는지, 카메라 들은 대장님 꼬임에 넘어가신 걸까여?.
아무리봐도 웃음이...ㅎㅎ
진도토리 님, 나긋한 모습으로 편안히 대화하고 즐기시는 모습이
참 좋았습니다. 다음에도 함께 하시길요.
아!~
사랑곳에 잠자리 떼들 처럼 바글거리며 떠 있는 패러글라이드가 트래픽에 걸릴 지경이네요.
십몇년 전에 배탈이 나서 퍼밋까지 받아놓고 못 올라간 히말을 대신해서 혼자서 사랑곳에서 일출을 보았었지요.
그 때는 달랑 1개 있던 패러를 타자니 안 태워준다고... 아마 그 당시에는 영업은 안하고 매니아가 타는 듯 했어요.
그 외진 산골짜기에서 너무나 정확한 한국말을 잘하는 청년늘 만나서 반가웠는데 아니나 다를까 서울대학원에 유학 중인 학생이더라구요.
어릴 때 해마다 그곳을 찾는 한국인 사업가가 크면 한국에서 공부하게 해주겠다고 꿈을 갖게 해주고 이루어 주었다고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이 지금도 선~합니다.
랄리구라스가 허벅지게 피는 계절에 눈 덮힌 히말이라 더 멋진 여정인 듯 합니다.
저는 그 때 못 간 에베레스트를 티벳 쪽에서 보기는 했지만 티벳에서 네팔로 넘어가는 길이 감동의 도가니라는데..계획에 없으신지요?
세상의 변두리에서 신성하고 광활한 천계를 느끼고 돌아와 흐믓합니다.
몇 번의 탈피를 반복하는 뱀처럼 한마음 한 뜻이 하얗게 탈피를 누린 듯 합니다.
네팔은 그냥 지나는 트레킹 로드가 아닌, 마음에 드는 롯지에서
몇 날 며칠씩 묵으며 심신을 정화시키고 싶은 곳이었습니다.
대기자 탈출부터 행운을 누리더니 ABC에서 날씨가 좋아 얼마나 다행이었는지요.
대장님의 기도 덕분입니다. 모놀 최고!~
어쩜 좋아~~~~~
자꾸만 더 빠지니~~~~~~~
으~ 자꾸 볼 수록 감동이 더해지는 네팔의 희말여행기입니다.
대장님의 글에서 또 다른 감동의 희말을 보니 참 좋습니다.
한동안 희말에서 놀 수 있다는 것이 벌써 행복합니다. 대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
ㅎㅎㅎ별꽃 님의 코멘트가 가끔씩 웃음을 선사합니다.
히말후기를 하도 읽다보니 이젠 희말이 되어버렸습니다.
희말의 희망을 갖고 다음엔 꼭 같이 가야겠습니다.ㅎㅎㅎ
아이구~ 제가 가면 갈수록 이상한 오타를 자꾸 . . . ㅎ ㅎ 희말 히말 . . . ㅎ ㅎ
잔잔해질라 노력중인데 대장님이 또 돌맹이를...
오늘 날씨도 그렇고,
기분도 그렇고,
조녀석들이 배달해 주는 따뜻한 차한잔 하고 싶어요~~~
요즘 한참 바쁠 때다
답사후기를 쓰고 싶은데 작정하고 쓸 만큼 여유롭지 못하다
오늘 여러 모로 기분이 퀭한 상태로 귀가하여 막걸리 한잔 앞에 놓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입이 헤 벌어진다
밖에 비가 내린다 히말에서 하루종일 벗이 됐던 그 비는 아니지만 ㅎㅎㅎ
대장님 땡큡니다요, 여러 모로~~♥♥♥
우리의 히말은 영원합니다!!!
여행, 그것도 모놀하고 동행은 언제나 따따~~~~블이다!!!
이럴땐 모두 환한 얼굴!!
ㅎㅎ나들길체조가 바로 저기서 배워온거구나..ㅎㅎ
짬이생길때면 이곳을 자꾸 드나듭니다...
그곳에 향수가 요즘처럼 우기와 딱인지^^
아님 히말의늛에 빠졌는지^^
도토리 좀 구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