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부음은 제사장이 왕이 될 사람에게 행하던 것으로, 대관식의 식전 행사라 할 수 있습니다.(삼상10:1;16:12~13) 예수님께서 기름 부음을 받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에게 기름을 붓는 이가 제사장이 아니라 ‘한 여자’입니다. ‘한 여자’라 적은 것은 그야말로 이름도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요, 차마 이름을 밝히기가 곤란한 사람이라는 의미겠지요. 성서 저자는 기지촌 여성인 막달라 마리아의 이름도 기록했는데,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려 그를 기억하리라’하신 ‘한 여자’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한 여자'에겐 필시 막달라 마리아보다 더 기구한 사연이 있었을 것입니다.
기름부음을 받는 장소도 궁전이나 성전같이 권위 있고 거룩한 곳이 아니라 ‘나병환자 시몬의 집’입니다.(막14:3) 나병환자는 격리되어야하는 사람입니다. 누구도 나병환자와 함께 하지 않았고, 더군다나 나병환자의 집에 들어간다는 것은 당연한 금기였습니다. 예수님은,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한 여자’에게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장소가 어떠하든, 누가 기름을 부었든, 기름부음 받은 자 예수님은 이제, 왕이 되셔야만 합니다. 왕이 되려면, 피를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적의 피든 동족의 피든, 왕이 되려는 자는 피를 피할 수 없습니다. 유대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왕, 다윗 또한 무수한 피를 보았습니다. 사람을 죽여야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왕이 되고자 한다면, 예수님도 피를 봐야 합니다. 왕이 되고자 하는 자, 사람을 죽여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겠다 하십니다. 한 여자의 기름부음을 장례를 미리 준비하는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막14:8) 한 여자가 베푼 기름부음이 대관식의 식전 행사가 아니라, 장례식의 식전 행사라 하십니다.
그러고 나서, 유월절에 예수님께서 밥을 드시면서 말씀하시기를, 밥을 자신의 몸이라 하십니다. 예수님은 밥이 되겠다 하십니다. 밥은 생명이지요. 예수님은 사람에게 먹혀, 사람들을 살리는 생명이 되겠다 하십니다. 또 예수님께서 술을 나누면서 말씀하시기를, 술을 자신이 흘릴 피라 하십니다. 십자가에서 죽을 것을 미리 말씀하신 겁니다. 피도 생명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죽어야할 사람들을 대신해서 대속의 죽음을 죽겠다 하십니다. 자신은 죽고 다른 사람들을 살리겠다 하십니다. 다른 사람을 죽이는 왕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죽이는 왕이 되겠다 하십니다.
제자들은 배불러서 노곤했던 건지 취해서 인지능력이 떨어졌던 건지, 다른 사람을 위해 죽어 밥이 되고 술이 되겠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는 노래하며 행진을 합니다. “이에 그들이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가니라”(막14:26) 제자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건지 아니면 이해하기 싫은 건지, 예수님께서 분명 자신의 죽음에 관하여 반복해서 말씀하시는데, 딴짓합니다. 우리가 노래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뜻과는 무관하게, 혼미케하는 음악에 빠져 그저 아름다운 소리에 취해있는 건 아닐까요? 제자들이 자신들 노랫소리에 도취되어 걸을 때, 십자가를 향하여 걸어가시는 예수님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1년 전 부활주일 새벽, 부활 설교를 준비하며, 욕하고 울면서 자판기 위에 손가락만 얹고 있었습니다. 세월호가 가라 앉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는데 이백 명 넘는 고등학생 아이들이 왜 죽었는지, 세월호가 도대체 왜 가라앉았는지 그 진상을 모릅니다. 진상규명위원회는 아직도 조사를 시작하지 못했습니다. 급기야 유족들이 삭발을 하고 다시 거리로 나왔습니다. 교회가 부활 주일을 맞아 마냥 찬양하고 기뻐하기만 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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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오마이뉴스)
하나님은 예수님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임마누엘 예수님은 그 때 물속에 가라앉던 아이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또 임마누엘 예수님은 지금 거리로 나선 아이들의 부모들과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부활에 관하여 말씀하시며 이렇게 당부하셨습니다.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막14:28)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보다 먼저 억울한 사람들의 마을 갈릴리로 가셨듯, 임마누엘 예수님은 오늘 우리보다 먼저 광화문에 가 계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저들과 함께 울며 거리에 계십니다.
갈릴리에 예수님이 계십니다. 우리보다 먼저 가 계십니다. 갈릴리, 우리가 가야할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