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백년을 위한 봄나들이
박 순 균(16회)
우리가 창덕을 졸업한지 어언 50년이 흘렀다. 오늘 이를 기념하기 위한 여행을 간다. 여행을 하면서 항상 느끼는 아쉬움은 다음에 꼭 만나자는 약속이다. 이번 여행은 고희와 맞물리는 뜻 깊은 기념행사로 부족함이 없어야겠다.
이 봄나들이는 우리나라의 최남단 다도해의 아름다운 해상국립공원이 한눈에 보이는 남해와 통영을 둘러보는 것이다.
4월 21일 만남의 첫날이다.
2박 3일, 4박 5일 두 가지 일정에 맞춰 80여명(국내:57명, 해외:23명)의 친구들이 참여하는 나들이에 날씨 또한 환상적이다.
출발지는 압구정역 근처였다. 만나는 순간부터 친구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반가움과 기대에 모두 어린애 같은 모습이다. 주변이 보이든지 말든지 삼삼오오 짝지어 떠들기 시작하여 왁자지껄 한 분위기는 끝이 없다. 곱게 생긴 주름이나 회색빛으로 물든 머리카락은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냥 여고생 이다.
서울에서 5시간 이상 버스를 타고 남해에 도착했다. 긴 시간이었지만 우리들에겐 상관없는 즐거움뿐이었다. 남해의 특산물이라는 멸치 쌈밥과 갈치조림으로 늦은 점심을 먹고 1960년대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독일로 떠났던 광부, 간호사들이 은퇴 후 귀국하여 정착했다는 독일마을로 향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풍요한 여건 속에서 부지런히 집을 짓고 정원을 가꾸며 마치 다른 나라의 정경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이렇게 만들어진 독일마을은 일 년 내내 많은 관광객이 다녀간다고 한다.
독일 마을과 인접한 원예예술촌에는 꿈을 담은 정원, 희망을 심은 편안한 안식처, 자연의 풍요로움, 잃어버린 꿈, 사랑과 추억, 아늑한 휴식 등을 느끼게 하는 사계절 풍경이 담겨져 있다. 남해의 푸른 바다 가까이에 위치한 정원과 서구식 집들은 이국적인 정서를 느끼게 한다.
다음은 이틀간 머물게 되는 통영 ES리조트로 가기 위해 다시 버스에 올랐다. 깨끗한 바다 한려해상공원이 한눈에 보이는 곳, 바다와 섬이 하나가 되는 ES리조트, 어떤 사람이 나폴리와 비교했다가 면박을 당했다고 하는 아름다운 풍광이 있는 휴식처이다. 우리들은 저녁을 먹고 우리는 준비한 50주년 기념행사를 시작했다. 교가를 부르고 ‘청바지’(청춘은 바로 지금부터)로 건배하고 자축 하는 고단한 하루를 마감했다. 어떤 방에서는 잠을 이루지 못하는 듯 아직도 소란스럽다.
4월 22일 둘째 날이다.
도다리 쑥국으로 아침 식사를 마치친 뒤에는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의 아름다운 섬 ‘욕지도’로 떠났다. 맑은 공기와 멋진 바다의 출렁임은 우리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어제의 피로로 지쳐있던 친구들도 동화 속 같은 섬을 둘러보고 삼삼오오 짝을 지어 숲속을 걸었다. 그리고 맛있고 풍성한 음식점은 ‘욕지도’를 다시 와야겠다고 다짐 할 정도였다. 식사가 끝난 뒤에는 다음 일정에 따라 아쉬운 발걸음을 뒤로하고 돌아오는 배에 올랐다.
오늘 저녁행사에는 45주년에 한 것처럼 반별 장기 자랑이 벌어질 예정이다. 모두 학창시절 대회에 참여하며 경쟁했던 그때와 똑 같았다. 배안의 구석구석에서는 장기자랑 연습에 정신이 없었다. 너무 웃어서 하루의 피로가 다 풀렸다. 서로 비밀로 한다고 쑥덕댔던 일, 다른 반이 뭐를 하는지 훔쳐보던 일, 지금 생각해도 입가에 웃음이 감돈다.
드디어 시작된 자축 공연............
‘아름답고 슬기롭고 부지런하자’는 교훈의 영향일까 바쁜 일정 중에 그렇게 많이 준비 했는지 모르겠다. 우리 친구들이 이렇게 귀엽고 예뻤나? 머리에 반짝이는 별 모양의 헤어밴드를 한 반, 질끈 동여맨 터번, 까만 정장 차림의 신사 머리는 하얀 가발, 목에 넥타이를 맨 사내, 화장지로 머플러를 만들어 두른 친구들, 60년대 식 복장을 한 친구들, 서로를 웃기겠다고 자신을 망가뜨린 모습이 폭소와 즐거움으로 되돌아 왔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슬기로움이 창덕의 긍지요 자랑이라는 생각이 든다. 행사를 무사히 마친 우리들은 내일을 약속하며 꿈속으로 들어갔다.
4월23일 1차 여행을 마무리하는 셋째 날이다.
2차 여행을 떠나는 친구들과 미리 작별 인사를 하고 각각의 차에 올랐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고성에 있는 보현암과 문수암을 들렸다. 암자를 중심으로 사방에서 다도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여기를 먼저 왔으면 좋았을 텐데 좀 더 시간을 갖고 둘러보았으면 좋았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생긴다. 잘 정돈된 진주 촉석루를 거닐며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누고 점심식사로 떡갈비와 진주비빔밥을 먹으며 헤어지는 아쉬움을 달랬다. 54명은 서울로 떠나고 26명의 친구들은 전라권 여행을 시작하였다. 서울로 가는 친구들은 금산에 있는 홍도 저수지를 거쳐 천안에서 저녁을 먹고 처음 만났던 자리에서 헤어졌다. 2차 여행은 순천 정원 박람회, 갈대습지관광, 여수 오동도를 둘러보는 일정이 시작되었다.
4월 24~25일 넷째, 다섯째 날이다.
다산초당, 영랑생가 녹우당, 윤선도 고택, 목포 유달산, 전주 한옥마을 등을 관광한 것도 즐거운 일이었지만 벌교에서 점심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에 고교시절에 불렀던 가곡, 팝송 등을 합창하며 한마음이 되었던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 하나로 뭉쳐 즐길 줄 아는 ‘창덕인’임을 자부한다. 일정을 모두 마친 지금 친구들은 5년 후를 기다리며 이 봄나들이를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그 동안의 즐거움과 다시 만날 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