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우연과 상상>
1. 매우 흥미로운 일본 영화를 보았다. 3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우연과 상상>이다. 3개의 에피소드 모두 ‘우연’ 속에서 발생하는 사건의 연속을 통해 인간의 다양한 내면을 보여준다. 일본 영화 특유의 섬세하면서도 치밀한 내적 묘사가 성적인 상황을 곁들이며 표현된다. 그 속에서 ‘상상’이라는 제목처럼 우리가 쉽게 표현하지 못하는 비밀스러운 감정을 만날 수 있다.
2. 영화의 에피소드는 첫째, 가장 친한 친구의 새로 만난 남성이 자신이 2년 전 사귀었던 애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 한 여성의 복잡스런 감정과 행동이 묘사되며, 둘째 에피소드에서는 성적 파트너의 강요에 의해 대학 교수를 유혹하려는 한 유부녀가 오히려 담담하면서도 진지한 교수의 태도에 감동하여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화해하지만, 그 과정에서 일어난 작은 실수가 결국 교수와 자신을 파괴시키는 기묘한 상황이 전개된다. 셋째 에피소드는 시골 고등학교 동창회에 참석한 동경 거주 여성이 착각 때문에 만나게 된 다른 여성과 서로의 가장 아프면서도 결코 잊을 수 없는 사랑과 우정의 진실을 교류한다는 내용이다.
3. ‘우연’은 전혀 계획하지도 예측할 수 없는 순간에 갑자기 자신의 삶 속으로 들어오는 충격적인 사건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연’이 주는 강도는 강력하며 이성적인 판단을 벗어나게 만든다. 세 개의 에피소드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갑작스런 ‘우연’에 혼돈스러워한다. ‘우연’은 현재의 일상을 넘어서는 강력한 ‘상상’의 세계를 제공하며, 다양한 형태의 결정을 꿈꾸게 만든다. 그것이 위안이 되기도, 자기 성찰이 되기도, 때론 파멸의 단초가 되기도 하지만 우리에게 다가온 우연이 촉발한 변화를 우리는 쉽게 통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통제할 수 없음, 때론 ‘운명’이라고 명명되는 이러한 상황이 우리가 삶에서 만나는 진정한 우리의 모습일지 모른다.
4. 각 에피소드의 결말은 다양하다. 첫째 이야기에서 여성은 자신의 사랑과 삶의 방식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친구의 입을 통해 듣게 되는 전 연인의 자신에 대한 인상은 제3의 객관적 시선을 통한 ‘자기 객관화’의 모습이다. 둘째 에피소드는 성적인 상황이 농염하게 전개된다. 성적 파트너의 강요라는 특이한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교수를 유혹하려는 행위는 교수의 소설 속, 성적 묘사를 통해 재현되지만 교수는 여성의 유혹보다는 오히려 타인의 목소리를 통해 다르게 다가오는 자신의 글에 대한 감동을 확인하는 것이다. 하지만 평화롭게 끝날 것 같은 상황은 야한 장면을 묘사한 내용을 이메일로 전달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일어나고 결국 교수는 쫓겨나고 여성은 이혼하게 된다. ‘우연’이 가져오는 끔찍한 아이러니이다. 서로에 대한 진정한 호의를 확인한 순간, 서로가 현실 속 최대의 적대자로 변신한 것이다. 셋째, 에피소드는 우연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서로의 착각 때문에 만난 두 여성은 고등학교 때 절친으로 믿었지만 다른 사람임을 확인한다. 하지만 그런 과정에서 20년 이상 서로에 대해 숨겼던 진실한 감정을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우연’이 주는 최고의 아름다움이다.
5. 삶 속에서 갖게 되는 ‘우연’에 대한 ‘상상’은 일상의 반복적이고 진부한 전개를 탈출하게 하는 힘이다. ‘상상’을 만들지 못하는 ‘우연’은 진정한 우연이 아니다. ‘우연’을 ‘운명’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싶은 것은, 우연이 우리의 삶의 방향을 명시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보여줄 때이다. 그때 우연은 우리를 여러 가지 ‘상상’ 속으로 빠져들게 하며, 다양한 결정을 꿈꾸게 만든다. ‘우연’은 우리가 가진 힘을 넘어 새로운 삶 속으로 우리를 안내하는 특별함을 지닌다. 그것이 실제적으로 어떤 의미있는 결과를 만들지 못했어도, ‘상상’할 수 있는 자유와 기쁨을 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연’은 즐거운 기억이다. 영화 <우연과 상상>은 ‘우연’이 우리에게 주는 다양한 얼굴을 재치있으면서도 심도있게 형상화한다. 영화를 보고 나자 특별한 ‘우연’이 생기길, ‘상상’해 본다.
첫댓글 알 수 없는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