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이 시작되면서 비가 잦아지기 시작하였다. 내리는 비의 양도 남쪽과 중부지방과는 전혀 달랐다. 남쪽은 물폭탄이었지만 중부는 장맛비라 보기에는 다른 폭우성은 아니었던 것 같다. 잠시 장마가 물러가자 폭염이 이어졌지만 바람도 불어 견딜만하였다. 그런 영향으로 올해 들어 에어컨을 틀지 않고 지내는 중이다. 어느 날 계곡 따라 아래로 흐르는 물이 불현듯 떠올라 계곡으로 발길을 옮겼다. 계곡언저리까지 도착하였다가 변심이 생겼다. 별안간 물놀이를 제대로 즐기자는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계곡물에 전신을 담 그는 것처럼 호사 있는 물놀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나이에 계곡에 전신을 담그고 앉아 있다는 것은 타인들에게 불편함을 보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자제하기로 하고 일단 등산으로 온몸을 땀과 열기로 적신 다음 하산하면서 계곡 바위틈에 앉아 족욕으로 만족하기로 한 것이다. 정강이까지 계곡담수에 넣고 앉아 있어도 등줄기가 서늘해지면서 땀이 잦아들며 전신이 시원해지는 것처럼 좋은 피서도 없다.
급경사지을 선택 하여 오르는 길을 선택한 후 오르기 시작하자 숨이 턱밑까지 차오른다. 그리고 덩달아 심장도 요동치기 시작하며 맥도 빨라졌다. 한계점에 도달하면 잠시 서서 휴식을 취하며 숨을 고른 후 다시 걷기를 반복하며 등산 삼매경에 빠져드니 견딜만한 적응하는 몸으로 변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계점에 도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심장이 요동치는 소리와 함께 장딴지가 뻐근해진다는 것이다. 이 한계를 의식하고 정말 힘들다 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에게나 힘든 순간이다. 이 순간을 이겨내지 못하면 죽었다 깨어나도 정상이나 이 순간을 벗어나 앞으로 전진할 수 없는 것이다. 오를수록 고통의 시간은 작아지고 희열은 커져간다는 등산의 철학이 과시화 되어가는 것이 바로 오르는 매력이 아닌가 한다. 죽을 것 같지만 그 순간을 벗어나면 자신도 모르게 정상을 향해 오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자신과의 약속을 굳건하게 지키려는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걷는 시간을 1시간씩 끊어서 계획하고 50분 걷고 10분 쉬며 쉬는 시간마다 행동식도 챙기고 물도 마시며 열기를 식혀가며 오르다 보면 어느새 정상에 다다르게 된다.
사방이 툭 터진 전망과 산 아래 모든 것들은 조각돌만 하게 보인다. 땀의 대가는 바로바로 묵묵한 걸음과 걷는 내내 자신과 소통의 시간이 알게 모르게 다가오게 된다. 이때처럼 자신이 또렷하게 보이는 경우도 흔치 않은 일이다. 더 이상 오를 것이 없는 정상에 서면 오히려 스스로 깊은 침묵에 빠지는 경우가 참 많다. 젖 먹던 열정까지 빌려 올랐던 오름이 성취되자 보고 느끼는 것 외는 떠오르지 않아 결과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하산을 실행하게 됨으로써 소중하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켜낸 진정성 깃든 인내의 고결함 마저도 푸른 창공에 흩뿌려 버리고 묵묵히 다시 출발한 장소로 미련 없이 되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되돌아갈 방향이 없다면 오름도 있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등산의 덕목이다. 하산 길을 활엽수가 좋고 바람 잘 불어주는 방향으로 선택하였다. 오늘도 산을 찾는 조건을 간소하게 꾸렸다. 바람막이 상의, 생수 한 병, 행동식 두 개, 손수건, 핸드폰, 시계, 모자뿐이다. 산 중턱에 있는 숲 속의 빈터에 수량이 풍부한 샘이 있어 그곳으로 길을 열며 다가섰다. 저만치 보이는 곳에 당도했는데도 물 떨어지는 소리가 정겹게 들려왔다.
인적이 없으니 자연의 소리가 다들 크게 들려왔다. 야생화들이 핀 숲 언저리에 설치한 나무 장의자에 손가방을 내려놓고 손 씻는 곳으로 가 목에 묶었던 손수건을 풀어 적셨다. 냉기가 손끝을 잠시 떨게 하더니 곧 평상심을 찾았다. 순간적으로 적응을 받아들이는 능력이 바로 나 자신의 몸이다. 한 순가도 지체가 없이 반응하고 적응한다. 스스로 지시한 적도 없는데 감각이 행한 결단인 것이다. 어느 때는 감각을 감정이 대신하는 경우도 많다. 같은 느낌의 범주라 하면서도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감정이라면 몸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감각적 사유도 있는 것 같다. 다시 손수건을 목에 감자 찬기운이 섬뜻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다시 나무의자로 돌아와 앉았다. 하늘은 맑고 푸르다. 그리고 흰구름이 멋지게 파도 무늬를 그리고 있었다. 그 옆으로 동물형상들의 구름들이 제 각각 속도감 있게 흐르고 있었다. 그만큼 바람이 거센 모양이다. 잠시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그때 모자챙 위아래로 새 날갯짓이 느껴졌다. 곤줄박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곤질박이는 텃새다. 이 녀석은 참 유쾌하고 장난치기 좋아하고 유희를 즐길 줄 아는 녀석이다. 그리고 사람을 좋아한다. 모이를 손바닥에 펼쳐 놓고 들고 있으면 쏜살같이 달려와 그 작은 주둥이로 딱 한 모금만 물고 사라진다. 새들은 다 그렇지만 손이 없어 욕심이 없는 부류들이다. 받을 수 없으니 욕심이 없다. 욕심이 없으니 늘 새털처럼 가볍다. 그래서 푸른 창공을 마음대로 훨훨 날아다닐 수 있는 자유를 즐길 수 있는 모양이다.
곤줄박이는 번식기에는 암수가 함께 생활하며, 번식이 끝나면 소수의 무리로 몰려다니거나 다른 종들과 섞여 생활한다. 주로 나방, 거미 등 곤충을 주식으로 하지만 먹이가 부족한 겨울철에는 식물의 열매나 사람이 제공해 주는 인공먹이도 잘 먹는다. 식물의 씨앗이나 열매를 두 발로 쥐고 부리를 이용해 껍질을 깨뜨려 알맹이를 먹는다. 사람의 접근이 빈번한 국립공원이나 절 등에 사는 개체는 손바닥에 땅콩이나 잣 등을 올려놓고 가만히 있으면 날아와 먹는다. 먹이를 돌 틈이나 나무 틈에 숨겨놓는 저장습성이 있다. 일생동안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일부일처제 종이다.
모자챙 주변에서 까불더니 슬며 시 내려앉아 딴청을 부린다.
요 녀석은 어미 따라 비행 연습하는 새끼 곤줄박이다. 겁도 없이 슬금슬금 가방 모서리에 접근하더니 가방 중심에서 한참 놀고 날아갔다.
숲에서 새가 사라지면 얼마나 적막할까? 또한 생태계는 얼마나 손상될까? 상상하고 싶지 않은 생각이다. 이 녀석들과 1시간 정도 유희를 즐기다 보니 모든 삶의 시름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다. 자연은 통섭의 장이다. 수평, 수직적 연관 속에 자연은 늘 그 자리를 지키며 성숙해 나가다. 가을이란 계절이 돌아오면 계절이 스스로 선택한 목적인 결실을 나눔 하고 긴 동면으로 빠져들어 쉬고 다시 봄기운과 더불어 새 생명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순환이라는 것 생명이 지닌 고귀한 가치가 아닌가 한다.